선 자기 질문, 후 활동
- 2등 서월석
나는 요즘 우리 동네 청소년들과 즐거운 밀당을 하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은 농촌 마을 살리기 운동이다. 그 중 최근의 핫이슈는 ‘작은 도서관 만들기’이다. 여러 인맥을 통해서 책을 기증받았고, ‘당근마켓’에서 책장을 하나둘 주워 모아 도서관의 모양새를 만들어가고 있다. 새롭게 뭔가를 시작하는 일은 늘 할 일도 많고 일손도 많이 필요하다. 우연찮게 동네 중학생들과 함께 도서관 공간정비 자원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수많은 책을 옮기고 무거운 책장들을 옮기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즐겁게 참여하는 모습을 보니 이 친구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놀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가득한 요즘이다.
이런 찰나에 ‘북드라망 한뼘리뷰 대회’가 열린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나는 7권의 책 중 고를 것도 없이 「일요일 오후 2시, 동네 청년이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로 정했다. 제목 자체가 내가 요즘 아이들과 딱 하고 싶은 활동이기 때문이다. 시골 작은 학교를 다니는 덕에 체험학습의 기회가 많은 아이들이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활동의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학교 밖에서 함께 모여 뭔가 신나는 활동꺼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나 역시 중2 아이를 둔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게 하고픈 욕심도 있었다. 내심 이 활동을 통해 나도 뭔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졌다.
책은 학교, 집, 마을, 세상으로 점차 확장되어 간다. 봄에 읽은 학교 이야기는 『수레바퀴 아래서』, 여름에 읽은 집 이야기는 『우리 엄마는 왜?』, 가을에 읽은 마을 이야기는 『원미동 사람들』, 겨울에 읽은 세상 이야기는 『소년이 온다』 등의 책을 골라 함께 읽기를 했다. 저자가 아이들과 책을 읽으며 만나는 질문과 생각, 경험들에 대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이들이 책 속에서 어떤 훌륭한 배움을 얻게 되었을까 기대했다. 아이들은 이 책들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내가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나이든 교사가 자신의 교직 생활을 돌아보며 쓴 수기인 『학교는 시끄러워야 한다』를 읽은 한 친구의 말이다.
“선생님, 저 여기 올 때마다 너무 힘들어요.”
“왜? 책이 어려워?”
“아뇨. 그게 아니고, 책에서는 이렇게 학교에 문제가 많고 잘못된 부분도 많다고 배우잖아요. 근데 전 내일이면 다시 그 학교에 가야 된다고요. 이제 매일 학교에 갈 때마다 책에서 짚어준 문제들이 막 눈에 보이는데, 저는 그래도 계속 학교에 다녀야 되잖아요. 그게 너무 힘들어요.”
— 『일요일 오후 2시, 동네 청년이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차명식, 북드라망, 46쪽
이 말을 들은 저자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느꼈고 자신에게 화가 났다고 했다. 아이들이 제 주변을 돌아보길 바랐으면서 이런 가능성을 잊었던 자신에게 화가 났고, 저자도 학생이었을 때 같은 경험을 했었는데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고 한다.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지에 대해 늘 고민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저자와 아이들이 함께 책을 읽고 소감을 나누는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이 세상과 맞닿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세상과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대화는 나와는 다른 타자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동시에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 같은책, 211쪽
저자는 중학생들이 자신 주변의 익숙했던 것들을 낯설게 느끼길 바랬다. 낯섦 속에서 아이들은 학교와 집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새로운 질문은 대화와 관계의 시작점이다. 아이들과 책과의 만남, 저자와 아이들의 수업은 모두 대화의 일종이다. 이런 대화를 통해야 저자도 아이들도 함께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차명식이라는 저자와 만나고 청소년들과의 활동을 원하는 내 자신과 대화를 나눴다. 그 안에서 생기는 질문들은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킬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나는 중학생들과의 활동을 계획하면서 아이들에게 뭔가 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활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책과 만나는 아이들도 책을 통해 자신을 만나고 자신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세상과의 만남을 시작하는 것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의 커리큘럼 그대로를 가져와 우리 동네에 적용하고만 싶었다. 아이들과의 활동을 어떻게 하는지만 빨리 알려내려고 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활동방법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니 새로운 질문들이 생겨났다. 나에게 학교, 집, 마을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고 나는 왜 아이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물음도 생겼다. 내 활동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질문을 계속하다 보니 묻는 과정 자체가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킨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갖는 모든 질문들은 나와의 대화였다.
이 책에서 저자 차명식은 ‘한 사람의 삶의 태도는 그 자체로도 가르침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질문을 던지는 순간이 어떤 가르침보다 더 소중할 수 있다. 저자가 청소년들에게 세상과 대화하는 방법을 알려주듯, 나도 누군가에게 세상을 향해 말을 건네는 힘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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