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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드라망리뷰대회당선작] 청년, 연암에게 길(道)을 묻다

by 북드라망 2021. 6. 8.

청년, 연암에게 길(道)을 묻다

 

- 2등 이소민


재작년이었던가. 남산 강학원 한 켠에 앉아있을 때, 두꺼운 『연암집』을 손에 든 이들이 돌아다니곤 했다. 그들은 화장실에 갈 때도, 산책을 갈 때도 텍스트를 놓지 않았다. 매주 돌아오는 글쓰기 마감일 때문에 정신없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세상에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청년, 연암을 만나다』라는 이름으로. 공동체 생활을 같이해온 나도 저자들과 친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매번 공부의 현장이 엇갈렸다. 그들은 어떤 공부를 하고 있나? 연암과의 만남이, 또 저자들의 배움이 궁금해졌다. 


질문하는 청년

남다영, 이윤하, 원자연. 이 세 저자는 ‘남산 강학원’이라는 공부 공동체에서 생활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지도 않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삶을 방탕하게 내버려 두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청년이 향하는 코스와는 조금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대안학교 출신인 윤하는 원래 정규적인 코스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대학을 졸업한 다영, 그리고 직장에도 다니던 자연까지 동양 철학팀으로 만나 『연암집』이라는 텍스트로 글을 썼다. 이들은 왜 평범해 보이는 길을 거부하고 공부하고 있는 걸까? (저자 중 한명인) 자연은 말한다. 더는, “고민 없이 무언가를 쫓아서 살아가는 것을 더는 할 수 없다.”(76)고.


텍스트에서 청년들은 묻는다. 자신이 느끼는 슬픔이라는 감정에 대해, 또 무기력함에 대해. 함께 사는 친구에 대해.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이들이 어떤 정답 같은 결론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암집』에서 그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을 찾을 따름이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잠시 우울해지더라도, 슬퍼지더라도, 친구와 다투더라도 그 상황에 묻혀 지내지 않는다. 감정과 상황을 대충 덮어두려고도 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맞짱(!) 뜨고 한 걸음 나아간다. 나는 저자들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홀가분함까지 느끼기도 했다. 가끔 사람들과의 인연에 숨 막히는 기분이 든다는 윤하가 인연 덕분에 자신이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을 때, 독자인 나까지 어찌나 개운해지던지.^^

대학을 졸업할 무렵의 나는 참 불안했다. 그 ‘불안’은 내가 맞는 길을 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그에 대한 불확실함에서 온 듯하다. 그렇다면 세상에 ‘맞는 길’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 걸까. 그 길은 누가 정한 것인가? 그저 저자들처럼 어떤 고민과 마주했을 때 하나하나 스스로 해결하며 나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책을 읽으며 질문하지 않았기에 불안했던 것이었음을 다시 되돌아본다. 이제는 20대에 찾아 헤매던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정답 같은 삶은 없다는 것을 안다. 그저 다영이 말하는 해오라기는 해오라기대로, 까마귀는 까마귀대로 각자의 본성대로 살아가는 것이 전부가 아닐지!(142)


연암이라는 스승아래

‘앎과 삶의 일치’라는 구호로 생활하는 세 저자의 일상은 생생하다. 자연에 의하면 남산 아래, ‘놀멍쉬멍’ 지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굉장히 바빠 보인다. 활동하느라 또 공부하느라!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배움으로 이어진다. 더부살이하는 친구가 청소할 때 남기는 먼지 한 조각에서 감정이 일어나기도 하고, 퇴근 후 과자봉지를 뜯으면 뒤가 켕기는 자신을 의심해보기도 하며, 매니저로 활동하는 마음을 점검해보기도 한다. 이 다이내믹한 생활의 중심에는 연암이 있다.

친구들의 에피소드를 따라 읽다 보면 연암 어르신이 해결사로 등장한다. 그들은 연암에게서 무엇을 배웠는가? 분별심 없는 마음, 자기 윤리를 세우는 것의 중요성, 친구 사이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만이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 등등. 저자들은 연암의 가르침에서 힌트를 얻고 자기를 되돌아본다. 친구들을 통해 본 연암은 사람들과 진정으로 마음을 나눌 줄 알고, 부끄럽지 않게 생활하려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저자들은 연암을 만나 “심령이 트이고 막힘”(181)이 없는, 넓은 도(道)의 세계로 나아가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한 편의 글이 마무리될 즈음엔 자의식에 갇히지 않는 어떤 편안함과 자기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당당함이 묻어있었다. 나는 아직 연암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들을 통해 연암이라는 사람이, 그의 글이 또 그의 삶이 더 궁금해졌다.

프롤로그에서 다영은 묻는다. “자신이 만나는 세상을 곡진히 그려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30)라고.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다영의 질문이 오직 한 청년의 고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명의 청년 저자가 마주하고 있는 여러 상황과 질문은 지극히 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보편적이었다. 청년이 지나 중년이 되더라도 우리는 느닷없이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할 수 있으며, 친구 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또 다른 방식의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래서 『청년, 연암을 만나다』는 단지 청년들이 쓴 글일 뿐이지, 중·장년 누구나 공감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해왔기에 저자들의 글을 재미나게 읽었다. 에피소드에 나오는 인물이 누구인지 추측하면서 말이다. 책을 여러 번 읽은 이제야 그들을 조금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 
이제는 내가 연암과 만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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