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십대들이 보여준 ‘마주침’의 공부
- 2등 구혜원
청년 인문학 스타트업 ‘길드다’는 인문학 공부를 함께 하는 청년 단체다. 이들이 하는 인문학 공부는 그 스펙트럼이 무척 다채롭다. ‘길드다’에서 주도한 ‘비학술적 학술제’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당시 각종 인문학 단체의 청년들을 규합하고 뭔가 결과물을 만들어보기 위해 ‘길드다’ 멤버들이 다방면으로 노력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주역>을 주제로 한 전시 기획을 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 책을 읽고 세미나를 하고, 매달 웹진을 내고, 그러면서도 다른 공동체와의 네트워크를 조직하기 위한 ‘비학술적 학술제’를 계속해서 고민한다. 이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내가 ‘인문학 공부’라는 것을 너무 협소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문하게 된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이렇게 다양한 접속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거였다니!
나에게 이러한 신선함을 선사한 ‘길드다’ 멤버들이 쓴 책 『다른 이십대의 탄생』은 그들의 역사와 ‘길드다’ 탄생의 비밀(?)을 담고 있는 책이다. 처음 이 책을 펼쳐 들었을 때만 해도 내심 ‘성공시대’의 톤을 기대했다. 주인공들이 고민하고 고난을 겪고 동료를 만나 지금의 스타트업 ‘길드다’를 만들기까지의 성공스토리 말이다. 이런 기대를 한 이유는 이 책의 주인공들은 정말 ‘다른 이십대’이기 때문이다. ‘이십대’ 하면 떠오르는 생(生)들, 즉 대학생, 알바생, 취준생 그 어디에도 부합하지 않는 이들이 어떻게 의기투합하게 되었을까, 그 뒷사정이 그려져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고 나니 ‘다른 이십대’는 내 예상과 달랐다. 일단 책에 나온 ‘길드다’는 어엿한 상품을 내고 주가를 올리는, 그러니까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이 아니었다. 이들은 어쨌든 사업이 아니라 ‘공부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세 저자는 공통적으로 인문학 공동체 ‘문탁’에 접속해 공부를 한다. 그런데 이때 공부란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이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지, 그를 통해 자신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생생하게 배우는 것이다. 말하자면 ‘길드다’에는 서로 ‘다른’ 이십대가 있다. 그리고 이 다른 목적과 업을 가진 이들의 마주침이 ‘길드다’ 개성의 원천이 아닐까?
책에 묘사된 ‘길드다’가 한 발 내딛는 때는 멋지게 프로젝트를 완성한 순간이 아니었다. 저자들은 자신이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을 때, 이윤이 아닌 다른 기준을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덜컥 돈과 일이 맡겨졌을 때 비로소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하는 감각을 익히는 상황 속에서 배움이 일어나는 것이다. 가령 ‘어쩌다’ 예술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그 진행은 결코 순탄치 않았고 그저 간당간당했던 것을 돌아보며 동은은 자신의 조건과 능력을 헤아리는 것 이상으로 “함께 일을 해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211쪽) 알았어야 한다고 진단한다. 일이 잘못되거나 생각보다 제대로 나오지 않았을 때 나도 하게 되는 생각이기에 그의 고민에 공감이 되었다. 우리는 종종 머릿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과 그렇지 못한 현상태의 간극에 괴로워하거나 아쉬워하게 된다. 그런데 이때 좀 더 노력하고 능력을 기르겠다는 해결책은 사태를 타파하기는커녕 나를 쳇바퀴처럼 돌게 만든다. 그런데 동은은 여기서 함께 일을 해낸다는 것을 배우는 것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진시킨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을 생각하기! 이것이야말로 이들을 ‘다른 이십대’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저자들은 여타 다른 이십대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령 ‘길드다’의 공금을 두고 고민하던 고은은 소비 외 다른 방식으로 돈을 써본 적이 없는 이십대의 시선을 깨닫는다. 이는 지원이 말한 ‘욜로’를 자처하며 소비로만 자신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십대의 사고방식과도 공명한다. 이런 이들의 공부는 ‘다른’ 이십대가 되는 길을 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즉 목적과 수단이 일치했다. 이때 다른 길이란 비교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길을 내는 것은 나와 다른 이들과 마주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이십대의 문제만은 아니다. 하지만 유독 우리 세대가 다른 이들에 대한 접속불량을 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그건 아마도 ‘욜로’로 표방되는, 소비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느끼게끔 하는 시대상과도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원이 말했듯 이는 출구가 없는, 삶을 수단으로 만드는 일을 가속화할 뿐이다. 출구는 오직 나와 다른 힘과 마주치는 것뿐이다. 그것이 ‘다른’이십대든 삽십대든, 책이든 뭐든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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