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제1회 북드라망 ‘봄·봄·봄’ 한뼘리뷰 대회>(링크)가, 무려 62편의 응모작이 모였을만큼 '성황리'에 열렸습니다. 당선(링크)되신 분들께 다시 한번 축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 이제 오늘부터 (업무일 기준) 약 8일간 리뷰대회 당선작들을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대망의 1위 성민호님의 글부터 시작되니까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
이슈메일이라는, 긍정과 극복의 삶
- 1등 성민호
왜 굳이 제목을 ‘두 개의 항해로’라고 붙였을까? 왜 ‘이슈메일의 항 해로’가 아닐까? 책을 다 읽고 놀라움이 가라앉자 내게 찾아든 생각이다. 저자는 두 개의 극복을 경험했고, 이 책은 두 번째 극복에 대한 기록 같았다. 첫 번째 극복은 무척 강렬한 것이었다. ‘YES’로 순종하는 기독교도에서 ‘NO’로 의심하는 철학도로의 변화. 교회도, 가족도, 신도 그 어떤 의지처도 버려야 했던 이 전환은 말 못할 정도로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웠을 것이고 동시에 흥분되었을 것이다. 한 세계가 붕괴되는 경험. 잘 알지는 못해도 그 느낌이 전해진다.
이 책의 본론에서는 바로 그 첫 번째 극복이 극복된다. ‘아멘’의 반대항인 ‘아니오’가, 종교에 반기를 든 철학이, 유신론에 맞서는 무신론이 극복된다. 도전하고, 전제를 뒤집고, 극한까지 정답을 캐묻는 ‘에이해브적인’ 지식탐구 방식이 극복된다. 이제 문제는 종교가 틀렸고 철학이 옳았음을 입증하는 일이 아니다. 어떻게 철학하는가만이 문제다. 철학하는 삶으로 ‘향해가는’ 것이 아니라 철학하는 삶을 계속 ‘살아가는’ 것이 중요해진 거다. 이것은 배움의 터가 변한 일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대학 도서관에서 감이당 공부공동체로의 이동. 이와 더불어 혼자 읽고 파고들고 답을 찾아가는 고독한 과정은 함께 읽고 질문하고 나누는 떠들썩한 놀이로 바뀌었다. 여기서는 그저 더 많이 알고, 정답만을 찾아 오답 들을 지워나가는 일은 불필요하다. 아니, 오히려 종교의 세계를 뚫고 나 온 동력이었던 부정의 힘은 “‘아니오’의 포지션을 고집할 때 나오는 경직 성”(143쪽)으로 재발견되고 넘어가야 할 무엇이 된다. 이 과정에서 호명 된 인물이 바로 이슈메일이다.
그 이름에서부터 아웃사이더인 이슈메일은 화자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슈메일과 에이해브를 대조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도 했다. 서술자와 서술 대상을 나란히 놓다니, 너무 편파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곰곰 생각하다 보니, 시선과 목소리로 드러날 뿐인 화자를 한 인 물로 발견하고 거기에서 삶의 태도를 추출해냈다는 사실이 놀랍게 여겨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텍스트 전체는 물론 작가와 작가를 둘러싼 시대를 촘촘하게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럴 때라야 비로소 <모비딕>의 장황한 곁다리 설명들이 단지 부록이나 참고사항 정도로 읽히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쯤에 이르면 <모비딕>은 ‘에이해브의 피쿼드호가 불구대천의 원 수인 흰고래를 잡으러 가는 이야기’로 요약될 수 없다. 부끄럽지만 나는 처음에 그렇게 읽었다. 모비딕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에이해브는 강자인 지 약자인지, 복수의 결말은 역시 파멸일 수밖에 없는지 등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판에 박힌 질문들만을 해댔다. 하지만 이슈메일의 눈과 귀에 주목한다고 생각해보면, 갑자기 아주 많은 것들이 제 소리를 내고 있음이 보인다. 결코 완성되지 않을 고래학 체계, 각양각색의 선원들, 갑판 구 석구석의 물건들. 그뿐 아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에이해브를 통해 비치는 미국적이고 남근적인 정복욕과 종말론의 흔적까지 엿보인다. 이슈메일은 에이해브가 흰색만을 보는 곳에서 다양한 색깔과 이야 기들을 본다. 그는 망대에서조차 물줄기만을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는 자다. 세계를 관찰함으로써 이리저리 샛길을 내야 하므로. “미완의 고래, 미완의 지식, 미완의 진리탐구”(113쪽)! 그는 떠나지만 맞짱뜨기 위해서 가 아니라 만나고 싶어서 떠난다. 차안대를 쓴 경주마마냥 목적을 향해 질주하는 선장과는 다르다. 에이해브가 화자였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책 전체는 분노로, 신과 자연의 악에 대한 저항과 절규에 찬 의문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퀴퀘그도 항해사들도 포경선의 뒷얘기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슈메일에게는 얼마나 다양하고 또 얼마나 기이한 것들이 다가오는가. 접속의 능력. 이것이 친구 맺을 줄 알고 웃을 줄 아는‘철학도’ 이슈메일의 탁월함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새로운 항해로를 발견하고 저자가 얼마나 기뻤는지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느껴졌다. 그와 함께 강박과 앙심에 찬 무신론적 저항이 헐거워졌고, 무엇보다 자신의 자리에서 펼쳐지는 공부를 긍정할 수 있었기 때 문일 것이다. 연결과 미완성이라는, 저자가 이슈메일로부터 이끌어낸 새 로운 철학함의 이미지는, 사람들 속에서 공부하는 우리에게 엄숙함과 피로가 아니라 명랑함과 웃음으로 나아가는 비전이 된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 왜 여전히 두 개의 항해로, 두 명의 사부님이어야 하는가? 에이해브는 충분히 반박되지 않았는가? 저자의 의중이야 알 수 없지만, 어쩐지 이 질문 자체에서 나 자신의 경직성이 들통 나고 있는 듯하다. 하나를 택했다면 이전의 것을 버리는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유치하면서도 뿌리 깊은 이분법. 그러나 이슈메일에게는 에이해브의 광기조차 하나의 접속 가능한 창구로 열려 있다. 저자가 말했듯, 이는 우리 의 철학을 출항하게 하는 용기와 도약의 항해로로 남아있으니까. 이슈메일적인 두 번째 극복은 그 어느 것도 부정하지 않으며 그것들과 함께 뻗어 나가는 긍정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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