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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열의 자기만의 고전 읽기

노자의 목소리, 시인의 언어와 철학자의 언어(11) 시인, 보는 사람(見者, Seer) ② - 세상을 보다

by 북드라망 2021. 6. 4.

노자의 목소리, 시인의 언어와 철학자의 언어(11)
시인, 보는 사람(見者, Seer) ② - 세상을 보다


천지는 인하지 않다


앞의 글에서 통찰력 이야기를 했는데, 통찰력이라고 하니 다른 글 하나가 떠오른다. 5장이다. “천지는 어질지 않다.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로 여긴다.”[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어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유가에서는 생생지인(生生之仁)이라 해서 주어를 천지로 두고 만물을 탄생시키는 생명력을 말하기도 한다. 이때 말한 인(仁)을 인간세계에 적용해 만물을 살리는 정치로 해석해 인(仁)을 재정의한다. 유가의 정치철학으로서, 천지를 본받는 정치의 통합적 관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인용한 노자의 말은 이러한 유가의 세계관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노자는 단언한다. “천지는 어질지 않다.”[天地不仁.] 천지가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로, 제사를 지낼 때는 잘 모시지만 제사를 마치면 아무렇게 버려도 아무 미련 없는 그런 존재로 만물을 다룬다니. 

 


왕필은 이 구절에 주석을 붙여, “천지는 스스로 그러함에 맡겨 인위도 없고 조작도 없다. 만물은 스스로 다스리고 질서를 세운다. 때문에 불인하다고 했다. 어진 이는 반드시 조작하고 세우고 베풀고 교화해 은혜가 생기고 인위가 나온다.”[天地任自然, 無爲無造, 萬物自相治理, 故不仁也. 仁者必造立施化, 有恩有爲.]라고 했다. 불인(不仁)을 자연과 등치시켰으니 인위와 조작이 반대되는 개념으로 등장한다. 인위와 조작은 은혜와 짝이 되어 인(仁)으로 수렴된다. 인자(仁者)의 자리에 왕을 놓으면 정치사상으로 넘어가 유가를 비판하는 쪽으로 읽을 수 있다. 인위(人爲)를 행하면 편애가 생겨 치우치게 된다는 인간의 성정에 대한 통찰이기도 하다. 통찰의 논리적 귀결은, 치자(治者)는 치우치지 않는 천지를 배워 무심(無心)과 빔[虛]을 지향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도가적 메시지로 향하게 된다.  


다르게 읽어 보자. 자연은 무심한 것인가? 노자의 무심함은 유가의 인간적 관점을 배격한다는 점에서 혁신이다. 유가는 인간중심주의를 포기하지 못한다. 노자는 그런 사고를 근저에서 까부순다. 천지는 천지고 만물은 만물일 뿐이다.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산에 가면 짐승의 시체가 조용히 썩고 있고 나무도 쓰러져 부패하는 몸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것이 묵묵한 천지의 질서다. 인간적인 감정이 끼어들 수 있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보다 무수한 일이 벌어지고 천지는 말이 없다. 사람이 보지 않아도 눈부신 꽃이 피었다 지고 인간과 상관없이 나무는 자란다. 천지는 천지이고 인간은 인간이다. 천지와 인간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서로 기대 산다는 사실을 인간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천지는 무엇을 특별히 사랑하지 않는다. 인간만을 총애하지 않는다. 


얘기를 확장해 보자. 모든 걸 인간 쪽으로 끌어당겨 해석하는 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중심으로 해석하지 않는 길도 있는 법이다. 다른 사유의 길. 이 부분이 중요하다. 휴머니즘, 혹은 인간 중심의 종교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노자는 새로운 상상법을 도입한다. 세상을 보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변혁하는 사유에 대해, 자기만의 방법이 전부라는 자기중심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 혹은 대안적 사유가 여기 있다. 익숙한 사고의 이면을 꿰뚫어 보고 다른 세계를 상상할 길을 암시하니 획기적이다. 자신을 객관화할 줄 아는 능력을 얻는다면 이만한 통찰력이 어디 있을까.

 


천하는 신기한 기물이다


현실에 대한 통찰력은 다른 장에서도 볼 수 있다. 29장:“천하는 신기한 기물이라 인위적으로 무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위적으로 무얼 하려는 자는 실패한다. 붙잡으려는 자는 놓친다.”[天下神器, 不可爲也. 爲者敗之, 執者失之. 백서본:夫天下, 神器也, 非可爲者也. 爲之者敗之, 執之者, 失之. 백서본의 문장이 명확하다.] 


신기(神器)라 했으니 까다로운 글자인 신(神)이라는 말부터 풀이해 보자. 동양인은 이 글자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미주알고주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나 직관을 언어화하는 일도 사고에 윤곽을 부여하는 작업이니 시도해 볼 만하다. 신령스럽다고 흔히 해석하는 신(神)은 느낌이긴 하되 일상적인 느낌을 넘어서는 다른 종류의 감각이다. 일차적으로 일상에서 느끼기 어려운 감각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적 표현이지만 신기하고 괴이하기도 하고 정신을 자극하는 예외적 상태가 구체적 사물로 응결되었을 때 귀신, 신령한 존재를 가리킬 때 神(정령)이라고도 한다. 깊은 숲이나 산, 계곡에 들어갔을 때 느끼는, 서늘한 기운과 함께 오는 기이한 어떤 존재감, 그 느낌. 신비롭고 형언하기 어려운, 그러나 분명 감지되는 기운. 


신(神)은 일차적으로 자연(천지)에 들어와 생생하게 접촉하면서 얻는 말이지만 인간세계에 적용되면 인간의 지혜와 이해로 파악하기 어려운 일이나 능력, 초월적인 사태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 말이 확장되면 도가 계통에서 인간의 도덕적 잠재력, 내면의 힘 혹은 자연이 준 자발적인 능력을 신뢰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신(神)에 대한 함의는 생각보다 넓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에서 출발해 인간사회의 현상에 대한 말로 쓰이기도 하고 인간 개인의 잠재력까지 포괄한다. 그 바탕에는 인간이 미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천하를 신기(神器)라고 했다. 천지가 아니고 천하다. 천지라는 자연이 아니라 천하라는 인간세상이다. 인간세상―천하는 천지 사이를 가리킨다. 천하는 천지에서 나왔다. 인간세상에 국한되기는 하나 천지와 구별된다고 해서 천하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다. 천지가 신기(神器)이므로 천하도 신기라는 연관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천하이기에 인간의 질서가 부여되어야 하는 건 묻지 않아도 아는 일. 인간의 질서를 만들 때 인위적으로 다 할 수 있을 만큼 전부 통제가 가능하지 않기에, 간단치 않다고 신기(神器)라 표현한 것이다. 

 


인간세계는 충분히 복잡하다. 그것은 정확히 자연을 닮았다. 사계의 순환과 리듬이라고 간단하게 자연의 질서를 말하지만 그것은 복잡한 결이 단순해 보이도록 설명하는 방식일 뿐, 인간의 지식을 뛰어넘는 신령스러움, 혹은 신성함이 있다는 말이다. 인간사회도 마찬가지다. 천하는 정교하고 복합적인 세계라 정치는 복합적인 자연스러움을 보존하는 쪽으로 행해져야 한다. 인간사회의 리듬과 호흡을 존중해주고 그 상태를 유지하도록 놓아두라는 말이다. 무위(無爲)라는 말의 뜻이기도 하다. 무위에 반대되는 모든 행동을 “위자”(爲者), “집자”(執者)라고 했다. 어떤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꼭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위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최소화하고 자연의 리듬을 도와주는 말로 이해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노자는 비유적으로 말한다. “큰 나라를 다스리기는 작은 생선 요리하듯 해야한다.”[治大國若烹小鮮:60장] 어렵다는 생각과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는 각오 없이 정치하는 것의 무모함을 경고한다. 노자의 이상국가는 “나라를 작게 하고 백성의 수를 적게 한다”[小國寡民:80장]는 데 있으므로 대국에 대한 사고는 이상국가[소국]에 비추어 봐야 하기에 60장과 같은 말이 나온 것이지만 진시황의 통일이라는 거대국가의 탄생이라는 이후 역사의 추세를 보면 60장과 80장은 곱씹어 볼 만한 부분이 있다. 결국 천하는 신기(神器)라는 말에 근원을 두고 운용한 말로 보이기 때문이다.       


천하는 신기(神器)라는 말은 정치현실에 대한 통찰력 있는 말일까. 나는 그렇게 읽는다. 우리 삶에 대한 말로 바꿔 읽어도 무방하다. 인간이라는 존재, 사회라는 공동체를 탐구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인간의 지식으로 다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과 신령스런 어떤 존재를 존중한다는 둘 사이의 거리는 크지 않을까. 인간과 사회에 대한 숱한 시도와 노력은 가상하다. 그러나 그 귀한 실천에 신령스런 존재에 대한 존중이 빠져 있을 때 천하는 건조해지는 게 아닐까. 신기(神器)라는 말이 당위의 언어로 들리지 않고 경고의 언어로 들리기에 노자의 안목은 무섭다. 


노자는 28장에 도를 통나무를 비유하면서 기(器)라는 말을 썼다. 여기서는 天下=器이기에 스케일이 커졌다. 도에서 자연이 나오고 자연에서 천지가 탄생했으니 천하가 도를 지향한다는 점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도가 통나무였으니 나무가 흩어져[散] 자연으로, 천지로 기(器)가 쓰이는 것도 용이하게 추론할 수 있다. 쓰임새가 확장되었지만 한 범주 안에서 놀고 있다. 천하만이 기(器)로 쓰이지 않는다. 더 확산될 수 있다, 기(器)의 확장은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말이 보이는 41장을 예비한다. 41장은 다른 각도에서 얘기를 건네기 때문에 단락을 바꿔야 한다.  

 

글_최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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