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목소리, 시인의 언어와 철학자의 언어(10)
시인, 보는 사람(見者, Seer) ① - 전쟁을 보다
시인은 보는 사람이다. 시인은 현실을 제대로 보고 현실을 꿰뚫어 보고 현실 너머를 본다.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할 때 시인은 리얼리스트로서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잡다한 현상들이 눈을 어지럽힐 때 시인은 근원을 통찰한다. 시인은 삶에 대한 응시와 생활에 대한 통찰이 쌓여 여기 이곳이 전부가 아니라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비전을 보여 준다. 그들은 예언자이기도 하다. 본질적으로 시인은 본다.
군대가 머문 곳엔 가시나무가 자란다
노자는 시인이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전쟁을 본다. 전쟁은 현실이었다. 리얼리스트로서의 그의 면모는 30장에 드러난다. “군대가 머문 곳엔 가시나무가 자라고 대군이 생긴 뒤엔 반드시 흉년이 생긴다”[師之所處, 荊棘生焉. 大軍之後, 必有凶年.]
이 진술은 전쟁에 대한 일반적인 발언이 아니다. 군대가 머문 자리에 가시나무가 자란다는 말은 주둔군이 먹는 양식과 관련된다. 군대에는 병참(보급부대)이 따르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 보급부대도 한계에 이르기 마련이다. 전국시대의 특징은 전쟁이 대규모로 변했다는 데 있다.춘추시대에 귀족(군인)끼리 한 번의 승부로 단시간에 전투를 벌이고 물러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의 전투가 벌어진다. 전국시대의 전쟁은 주로 외국으로 나가서 하는 국가적인 사업, 대규모 프로젝트였기에 백성들을 총동원해야 하는 총력전 양상이었다. 손자가 병법을 쓴 것도 이런 사정과 관련된다. 전투인원뿐 아니라 훈련과 병참이 중요해졌고 지리에 대한 감각도 예리해져야 했다. 대규모 인원이 동원될 때 그들의 잠자리와 식량조달은 중대한 문제였다. 식량이 부족하면? 주둔지 주변의 어떤 것도 남아남을 수 없다. 황폐한 자리에 남는 것은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가시덤불일 수밖에.
다음 문장도 마찬가지다. 총력전으로 치러지는 전쟁일 때 군사로 동원되는 사람들은 농민밖에 없었다. 그들이 전장에 나가면 누가 농사를 짓겠는가. 식량을 생산하는 절대인원이 밖에서 싸우니 전쟁이 있은 해엔 흉년이 오는 건 필연이다. 대군이라 했으니 농민 대다수가 동원됐을 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전쟁과 흉년은 한 몸뚱이인 셈이다. 둘은 동시적으로 발생한다. “반드시”[必]란 말은 필연적으로 그리된다는 사실을 말할 것으로 수사적 강조어가 아니다. 4구 4자로 정연하게 쓰인 이 글은 전쟁의 참상을 가감 없이 보여 준다. 그 밑바닥에는 백성들의 고단한 삶이 깔려 있다. 전쟁의 리얼리즘이면서 담백한 통찰이 담긴 글이다.
전쟁터에서 말이 새끼를 낳는다
46장은 한 발 더 나간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잘 달리는 말이 거름을 준다. 천하에 도가 없으면 전쟁에 나간 말이 교외에서 새끼를 낳는다.”(또는, 전쟁에 나갈 말이 교외에서 태어난다) [天下有道, 卻走馬以糞;天下無道, 戎馬生於郊.] 노자는 말을 거론한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수단이 말이니 수긍할 수 있다. 전쟁과 관련된 당시의 현실은 후자 쪽에 방점이 놓인다. 전쟁에 나간 말들의 운명. 어떤 주석가는 원문에 보이는 교(郊)를 교외, 즉 국경이나 수도의 외곽으로 보지 않고 ‘교’(交)와 같은 글자로 보아 ‘교전지장’(交戰之場)으로 보기도 한다. 전쟁터로 읽으면 말의 처지가 더 리얼하게 읽힌다. 원문 교(郊)도 단순한 장소라기보다 전쟁터라는 말로 썼을 것이다.
『한비자』(韓非子)의 「유로喩老」에 『노자』 46장에 대한 해석이 보인다. “천하에 도가 있어 급한 일과 우환이 없으면 조용하다. 역마며 역(驛)을 쓸 일이 없다. 때문에 ‘달리는 말을 데려와 밭에 거름을 준다’고 했다. 천하가 엉망이면 공격이 쉬지 않고 몇 년을 서로 버티면서 그치지를 않아 갑옷과 투구에 서캐와 이가 생기고 침대 휘장에는 참새와 제비가 산다. 때문에 ‘전쟁에 나갈 말이 교외에서 태어난다’고 했다.”[天下有道無急患則曰靜, 遽傳不用, 故曰: ‘卻走馬以糞.’ 天下無道, 攻擊不休, 相守數年不已, 甲冑生蟣蝨, 鷰雀處帷幄, 故曰:‘戎馬生於郊.’]
한비자의 발언은 전국시대 말기 현상을 반영한다. 전쟁이 오래 끌면서 몇 년에 걸쳐 벌어지는 통에 집안이 텅 비었으니 새들이 집에서 산다고 묘사했다. 이 상황을 노자시대까지 소급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전쟁의 실상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한비도 『노자』의 이 구절을 전쟁의 리얼리즘으로 읽었다. 이 구절만으론 부족했던지 한비는 「해로解老」(『노자』풀이. 『노자』에 대한 최초의 주석서다)에서 부연한다. “임금이 엉망이면 나라 안으로는 백성에게 난폭하게 굴고 학대하며 나라 밖으로는 이웃 나라를 침략해 괴롭힌다. 안으로는 난폭하게 굴고 학대하면 백성들이 출산을 끊어버리고 밖으로는 이웃 나라를 침략해 괴롭히면 전쟁을 자주 일으킨다. 백성들이 출산을 끊어버리면 가축이 적어지고 전쟁을 자주 일으키면 병사들이 없어진다. 가축이 적어지면 전쟁에 쓸 말이 부족하고 병사들이 없어지면 군대가 위태롭다. 전쟁에 쓸 말이 부족하면 암말이 전쟁터로 나가고 군대가 위태로우면 임금 가까이에 있는 신하가 전투를 치른다. 말은 군대에서 크게 쓰인다. 교(郊)는 가깝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천하가 엉망이면 전쟁에 쓸 말이 가까운 곳에서 태어난다’고 한 것이다.”[人君者無道, 則內暴虐其民, 而外侵欺其隣國. 內暴虐則民産絶, 外侵欺則兵數起. 民産絶則畜生少, 兵數起則士卒盡. 畜生少則戎馬乏, 士卒盡則軍危殆. 戎馬乏則將馬出, 軍危殆則近臣役. 馬者, 軍之大用;郊者, 言其近也. 今所以給軍之具於將馬近臣, 故曰:‘天下無道, 戎馬生於郊矣.’ 원문에 보이는 장마(將馬)의 將이란 글자는 牸(암컷)자로 보아야 한다. 자형이 비슷해서 잘못 베껴 썼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 같은 재난이 닥치면 사람은 물론 짐승까지 죽어 나간다. 사람이 어육이 되는 판에 누가 짐승을 생각하겠는가마는.(인간 중심으로 사고하는 습성)
노자의 반전사상
도가계열의 사상은 만물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점에 특히 관심을 둔다. 자연(=천지天地)이 만물(=물物)을 낳았으므로 모든 존재(=물物)가 천지의 자손으로 서로 연결된다는 사고는 도가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이 점 오해해서는 안 된다. 자연에 대한 관점이 서양과 다른 동양의 특징이라고 할 때 이는 천하(자연)에 대한 친밀감을 얘기하는 것으로 제자백가가 공유하는 오래된 동양 특유의 사유라 할 수 있지 어느 한 학파나 특정 사고양식을 가리키지 않는다.
노자는 말[馬]을 들어 말이라는 동물을 통해 인간의 삶을 생각해 보도록 이끈다. 생명을 아끼고 소중히 다루라 누누이 말했던, 여성성을 소중하게 여기고 생명의 탄생을 우주의 탄생과도 비겼던 이가 노자다. 생명이 태어날 땐 온 우주가 도와주고 축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자연에 대한 예의고 생명에 대한 존중이다. 짐승이라고 다르겠는가. 폭력 없는 탄생이란 예나 지금이나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가. 생명 탄생에 대한 경외가 전쟁이라는 살육과 병치되는 모순. 이런 지경에 인간의 탄생을 상상해보라. 동물이 고통을 겪을 때 인간은 예외적으로 무사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때 가장 비천한 똥조차 생명을 살리는 물건으로 쓰인다. 세상이 엉망일 때는 경이의 눈으로 축복받아야 할 생명이 자기 집에서조차 태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노자는 통찰력을 넘어 ‘생명은 저주가 아닌가’라는 아이러니에 접근하는 것 같다. 전쟁에 대한 노자의 사고와 심오한 통찰은 손자와의 관련성이 뚜렷이 감지된다. 전쟁을 통해 노자는 『손자』에서 암시하는 철학적 관점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노자에겐 반전사상이 깔려 있다.
글_최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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