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연암을만나다] 집중, 불꽃을 피우는 길

집중, 불꽃을 피우는 길


 

황해도 부근 금천의 협곡에 묵고 있을 시절, 연암의 집 앞에 살던 청년이 있었다. 대문을 마주하고 있는 사이라니! 이 둘의 사이는 예사롭지 않다. 이 청년이 연암을 찾아간 어느 날, 연암은 망건도 쓰지 않고 버선도 신지 않고, 창문턱에 다리를 척~걸쳐 놓고 누워서 행랑것과 문답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연암은 사흘을 굶은 상태였다. 이 청년을 보고서야 옷을 갖추어 입고 앉아 당세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하는데, 이 둘의 이야기는 밤새도록 계속되었다고 한다. (배고픔도 잊고) 밤새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이라~




이 청년이 바로 이낙서 李落瑞(이서구 李書九)다. 연암보다 17살이 어린 친구다. 어지간히 책을 좋아하던 청년이었는지, 마루에서부터 시렁에 이르기까지 책으로 가득 차있었다고 한다. 잠시 상상을 해보자. 사방팔방으로 책이 쌓여 있는 방이 있다. 그 안에서는 어디에 무슨 책이 있는지 한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뿐더러, 책 하나를 꺼내려고 하면 엉덩이로 반대쪽에 쌓인 책을 무너뜨릴 것만 같다.


이 방을 머릿속이라고 생각해보면, 더 답답하다. 하지만 왠지 익숙한 기분도 든다. ‘바쁘니 닥치는 대로 우선 읽고 보자!’ 혹은 ‘지금은 아는 게 없으니까!’라는 마음으로 읽은 책들을 머릿속 여기저기 쑤셔 박아 놓기 일쑤다. 싹을 틔우지 못한 고민들도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다. 흩어져 있는 이야기들을 꺼내어 쓸 때가 오면 어디에 있는지, 어디서부터 온 생각인지 알 수도 없다.


연암은 우선 이 방에서 벗어나 몸을 창 밖에 두고, 구멍을 내어 밖에서 안을 엿보라고 한다. 그리하면 한 쪽 눈만으로도 방안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고. 어딘가에 휩쓸려가고 있다고 느껴질 때, 중심을 잡지 못하고 머릿속이 번다해질 때, 거리를 두고 바라보라는 것. 그러면 우선, 상황파악이 된다. 그래야 그 다음을 갈 수 있다. 태풍 속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이어서 연암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관조하는 법을 일러준다.


“자네가 이미 약約의 도道를 알았으니, 나는 또 자네에게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관조하는 법을 가르칠 수 있지 않겠는가. 저 해라는 것은 가장 왕성한 양기陽氣일세. 온 누리를 감싸 주고 온갖 생물을 길러 주며, 습한 곳이라도 볕을 쪼이면 마르게 되고 어두운 곳이라도 빛을 받으면 밝아지네. 그렇지만 해가 나무를 태우거나 쇠를 녹여내지 못하는 것은 왜인가? 광선이 두루 퍼지고 정기精氣(양기)가 흩어지기 때문일세. 만약 만리를 두루 비추는 빛을 거두어 아주 작은 틈으로 들어갈 정도의 광선이 되도록 모으고 유리구슬(돋보기)로 받아서 그 정광精光(양광陽光)을 콩알만한 크기로 만들면, 처음에는 불길이 자라면서 반짝반짝 빛나다가 갑자기 불꽃이 일며 활활 타오르는 것은 왜인가? 광선이 한 군데로 집중되어 흩어지지 않고 정기가 모여서 하나가 된 때문일세.”


(박지원 지음, 신호열·김명호 옮김, 「소완정기」,『연암집(중)』, 돌베개, 68~69쪽)


흔히 ‘거리 두고 바라보기’, ‘관조’ 이런 것들을 들었을 때, 그저 나에게 떨어뜨려놓고 생각해보는 정도로 편안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면서 문득, 태풍 속에서 나와서 거리를 둔다고 해결이 되는 걸까? 뭔가 좀 부족한 느낌이었다. 물론 실제로 복잡한 문제들 속에 휩싸여 있을 땐, 거리를 두고 자기 객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엄청 도움이 되기도 했다. 거리가 확보되지 않으면 방안에 어떤 책들이 있는지, 내 머릿속에 어떤 고민들이 엉켜있는지 알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은?


태양의 따뜻한 기운은 세상을 덥히고, 만물을 키워내기도 하지만, 열을 한데 모아야 ‘빛(불)’이 만들기도 한다. 어떨 땐, 광선들이 흩어져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머릿속 고민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떠다니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고민을 사유로 만들어 갈 수 있다. 광선을 한 군데로 모아야 불을 피워낼 수 있는 것처럼, 집중을 만들어 내야 한다. 유리구슬이 필요한 거다. 집약集約시킬 수 있는 투명한 유리구슬이!




연암은 마지막으로 강조한다. 투명한 유리구슬, 비어있는 마음만이 바깥의 광선을 받아들여 불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실제로 복잡한 머릿속에서 나와 생각이란 걸 해보려고 할 때면, 마음이 아직 비어있지 않아서 고민들이 잘 꿰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나의 사심들이 깃들어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대한 투명한 마음으로 고민들을 잘 모으고 집중해서, 새로운 생각의 길들을 내어가고 싶다.


글_원자연(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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