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십대의 탄생』
- 항상 '관계'속에 있는 '나'에 관한 책
한자리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이십대 사람 세 명이 용인 수지에 있는 조그만 인문학 공동체에서 만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각자의 고민들을 안고 이곳에 찾아왔다지만, 대학도 직장도 아닌 이 곳에서 몇 년간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또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무엇보다 앞서 늘어놓은 것과 같은, 이상한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 세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차단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 김고은, 김지원, 이동은, 『다른 이십대의 탄생』, <프롤로그> 중에서
오늘, 우리가 사회적으로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여기에서 온다. 서로 간의 '공통점' 내지는 '교집합'이 없는 가운데, 또는 그걸 찾아내지 못하는 가운데 생겨나는 문제들이다. 이를테면, 아무렇지도 않게 길거리에서 가래를 돋워 침을 밷는 노인과 내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면 386들에게 모조리 빼앗기고 말 것이라는 강박에 시달리는 젊은이 사이에 어떤 교집합이나 공통감이 있을 수 있을까? 20대들 끼리도 마찬가지다. 단적으로 금수저와 흙수저 사이에서 어떤 교류점이 있을 수 있겠나? 서로가 서로에게 비가시적이다. 동시에 보이는 순간 '혐오'의 대상이 되고 만다.
난 고졸 목수였고, 고은이는 대학생이었고, 동은이는 백수였다. 여느 성문조사 '직업란'에나 쓸 법한 이런 대분류에서마저도 공통점이 없는 우리는 그야말로 너무나 다른 삶들을 살고 있었다. "왜 말을 그런 식으로 하냐?"고 싸우고, "왜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하느냐"며 울고, 감정이 상할 땐 급기야 "표정이 왜 그러냐?"고 막말을 해댔다(물론 이건 좀 과장이 섞였다). 함께는 더 이상 세계가 요구하는 당위가 아니었고, 서로를 차단할 이유는 수천가지였다.
- 같은 책
'사회적으로 겪는 문제'란 이런 것이다. 실제 일상에서 매일매일 부딪히는 문제 말이다. '일상'이란 뭔가? 내 마음대로 구성되고 작동하는 '일상'이란 세상에 없다. 거기엔 내가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이질성'들이 들끓는다. 말하자면 숙주에게 아직 적응하지 못한 '바이러스'가 이곳저곳에 도사리고 있는 공간이다. 결국 여기서 필요한건 일종의 '면역력' 같은 것인데, 이건 다른 게 아니라 이 이질성들 속에서도 죽지 않는 내적 역량이다. 더불어 당장 견디기 힘든 이질성을 피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언제가부터 그런 일상의 이질성을 다루는 기술에 관한 담론이 쏟아져 나온다. 아마도 우리 사회가 거대한 권력에 의해 일상의 이질성을 마름질 하는 체제에서, 명목상으로나마 그것들을 그대로 수용하는 형식적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하면서 일어난 일일 것이다. 모든 것들이 저마다 '자기'를 내세운다. 당연하게도 이런 세계에서 '갈등'이 일상이 된다. 더불어 우리는 그런 걸 조정하는 훈련을 한 적도 별로 없다. 이런 환경 떄문이지, 최근 몇년간, 아니 거의 10여년간 '진정한 나', '나다움', '나를 찾기' 같은 형식의 '참된 나'에 관한 담론이 끝도 없이 쏟아진다. 나는 거기에 결코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참된 나'라는 건 마치 '유니콘' 같은 거다. 머릿속으로 만들어낼 수는 있어도 실제로는 없다. 진짜로 있는 건 '관계' 밖에 없다.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읽어야 할 사건-텍스트라는 것을 깨달았다. 책을 읽기 위해서도, 사건을 만나기 위해서도 우린 서로를 읽을 수 있어야 했다. 왜 동은이는 말을 그렇게 하는지, 왜 고은이는 저런 표정을 짓는지, 왜 동은이와 고은이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책-텍스트를 읽고, 사건-텍스트를 통해 서로 계속해서 새롭게 만나는 지난한 시간 속에서만 해결될 것이었다.
- 같은 책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A와 B가 관계할 때, '진짜 A'와 '진짜 B'가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 게 아니다. A와 B는 관계 'A-B'를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다. 만약 관계가 없다면 A도 없고, B도 없는 셈이다. A와 B는 그저 '관계항'일 뿐이다. 그러니까 '나'라는 건 여러 다양한 관계, 그게 인간들과의 관계들, 사물이나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든, 여하간 내가 맺는 온갖 관계들을 통해서만 어렴풋이 모양을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나'를 찾고 싶으면 훌쩍 떠날 게 아니라, 내 관계들을 돌아봐야 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 관계들을 내가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다른 이십대의 탄생』은 '관계'에 관한 책이다. 고은이 '고전'과, 그걸 둘러싼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지원이 목수 일을 통해 어떻게 세상과, 공부와 관계를 맺었는지, 동은과 예술, 공부와의 관계에 관한 책이다. 이 책에는 서로 다른 20대의 다양한 관계들이 있다. 책이 하나의 '다양체'라고 했던 들뢰즈의 말은 전적으로 맞다. 이 책은 다양한 것들의 집합인 동시에 다른 삶으로 이어지는 모종의 네트워크 안에 있다. 게다가 이십대가 아니어도 좋다. 사실 우리의 질문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옷을 바꿔입기는 하지만, 대부분 비슷한 것들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바라건데, "지금 어제와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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