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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좋다

[불교가좋다] '내려놓는 것'과 '열심히 하는 것'

by 북드라망 2019. 5. 20.

'내려놓는 것'과 '열심히 하는 것'

 


질문1. 감정을 내려놓으면 에너지를 발동시키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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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감정이 부정적으로 작동할 때도 있고 긍정적으로 작동할 때도 있는데. 예를 들자면, 시험을 잘 보고 싶은 아이는 시험에 무심한 아이보다 불안 강도가 높지만 좋은 성과를 거둘 가능성도 높지 않나요? ‘감정을 내려놓아라.’ ‘흘러가게 두어라’, 하는 것은 할 수 있는데, 그 상황에서도 에너지를 발동시킬 수 있는 원리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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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 욕망은 가장 기본적인 생의 에너지 중의 하나에요. 욕망을 내려놨다고 하는 말은 욕망 그 자체가 소멸했다는 말이 아니에요. 욕망이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만드는 쪽으로 가는 일을, 그렇지 않는 쪽으로 가도록 한다는 거예요. 욕망의 크기나 감정은 똑같은데 운전석이 달라져 있어요. 그래서 내려놓는 과정을 지나야 돼요. 안 지나면 안 돼. 운전의 방향이 바뀌려면 일단 이것을 내려놓고 다시 보는 훈련을 해야 해요. 그러면 안에서 이 욕망이 다른 식으로 변주를 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 욕망 자체가 사라지는 게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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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에 방금 말한 대로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이 있는데, ‘난 왜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이 많이 올라오는지 모르겠어’라고 말 안 해도 됩니다. 왜냐하면 신체가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어요. 눈을 뜨면 보이도록 되어 있죠. 귀를 열면 들리도록 되어 있죠. 감정의 기간은 딱 눈만 뜨면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80% 이상이 되도록 되어 있어요. 감정을 해석하는  신경세포 수가 천만 개에요. 천만 개 중에서 800만 개 이상이 무조건 부정적인 것하고만 일을 해요. 그래서 감정이 눈을 뜨면 부정적인 거예요. 이것은 수십 억 년을 지나온 진화 과정에서 그렇게 됐어요. 그래서 그냥 기본적으로는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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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감정 자체만을 놓고 보면 부정적인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거예요. 지금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그렇게 부정적으로 이웃을 해석한 후손들이에요. 숲에서 무엇이 움직이면 ‘사자다’라고 도망친 놈은 살아남았고, ‘뭐가 있어’라고 즐겁게 가면 다 잡아먹혔죠. 진화하는 과정에서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공포심을 가지고 도망간 후손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예요. 그래서 감정은 공포를 위주로 해서 부정적인 쪽으로 해석하도록 되어 있어요. 긍정적으로 하면 잘 되면 굉장히 좋지만, 리스크가 클 수가 있어요. 그런데 부정적으로 보면 마음은 힘들지만 리스크가 줄어들어요. 생존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부정적으로 보는 훈련을 생명체들이 해 온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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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안 해도 될 것까지도 그렇게 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리스크도 줄이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잘 사는 방법이죠. 그래서 부정적인 것이 나오면 기본적으로 ‘아, 진화가 만들어 놓은 감정의 눈이 저렇게 나왔구나’라고 먼저 보면서 거기에 대해서 절대 비난하면 안 돼요. 그런 식으로 부전적으로 감정을 순환시키는 통로를 활성화시키는 것을 어리석음이라고 해요. ‘나는 왜 이래’가 아니라 거의 모든 인간이 다 그렇다니까요. 다만 후천적 학습을 통해 가지고 ‘잘 할 거야’라고 학습을 했느냐에 따라서 다른 부위들이 개입하면서 감정을 다른 식으로 해소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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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2. '최선'이란 좋은 말 안에도 부정적 욕망이 많을 수 있지 않을까요?



질문 : 욕망이나 욕구가 사실 인간의 에너지를 만들어 내잖아요. 그런데 에너지의 방향을 바꾸어서 긍정적인 곳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요. 잘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니까 에너지가 대단히 크게 발동을 해서 ‘최선을 다 한다’ 이렇게 되는 건데. 그 ‘최선’ 안에는 애착도 있고 대단히 부정적인 욕망도 있는 거잖아요. ‘최선’이라는 그 말 자체가 이미 내려놓음이 안 되고 나의 기준이 되는 것 일수도 있잖아요. 어떻게 긍정적인 방식으로 자기 안에서 올라오는 에너지들을 활용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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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 어떤 분의 이야기인데, 자기가 돈을 벌면서 살아온 과정을 보니까 400백만 원을 넣기 시작하면서부터 전체적으로 불유쾌한 삶의 힘들이 커져갔다고 해요. 400백만이 될 때까지는 같은 욕망이라도 그것이 긍정적인 욕망으로 자기 삶에 작용하고 좋아졌는데, 월급이 400백만 원이 넘어가는 순간부터 전혀 그렇게 작용하지 않더래요. 그래서 상당히 월급을 많이 받다가 도저히 그렇게 안 돼서 다 때려 치고 훨씬 적은 곳에서 살면서 다른 식으로 산다고 해요. 그러니까 우리 생활에 안정적인 필요성을 어느 정도 갖추고 난 다음에 그걸 통해서 자기 삶을 즐겁게 보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그렇습니다. 더 있으면 좋을 것처럼 생각하는데 실제 안 그렇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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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각 개인마다 다르니까 자기가 설정을 해서 먹고, 자고, 사는 기본적인 요소를 어디까지 설정한 다음에, 그 다음부터는 내려놓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이때부터는 이 다음이 자기 삶에 먹혀 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죠. 욕망은 욕망 그 자체가 목적이에요. 눈은 보는 것이 목적이잖아요. 눈한테는 보는 것이 일이잖아요. 그런데 심리 상태 중에서 욕망은 욕망하는 것이 일이에요. 그 사람 처지를 보면 400백만 원 정도 되면 괜찮은데 계속해서 500, 600, 700을 벌자고 욕망하는 것이 되는 거예요. 이것은 의미가 없잖아요. 그런데 500, 600을 벌 때 훨씬 더 힘들어지는 거예요. 그 사람 말로 하면 400정도 됐어도 충분한데, 500 벌어서 더 힘들어지고, 600에 가면 더 힘들어지고 삶이 계속 힘들어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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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그러냐면 뇌 속에 들어있는 욕망은, 욕망하는 것이 자기 의무라서 그 행위를 하는 거지 삶 전체를 보면서 욕망을 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것이 작동을 하되 불필요하게 자기 삶을 좀먹는 데까지 가지 않도록 보는 훈련을 해야 하죠. 그것을 지혜 있는 눈이라고 말하고, ‘나는 왜 아무것도 안 보이지. 내일 모레 죽어’ 이렇게 하는 것은 욕망이 전혀 또 다른 것이죠. 내려놓는다고 하는 욕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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