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움직이지 않는다?
동물과 비교해서 식물이 답답하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동물들은 자신의 보금자리를 스스로 만들고 먹이도 찾아 나선다. 새가 둥지를 짓고 호랑이가 사냥을 하는 것처럼. 하지만 식물은 그렇지 못한 듯 보였다. 비가 내리길, 비옥한 땅에 심겨지길 마냥 기다린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신이 살아갈 장소를 그저 운에 맡기는 것이 답답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식물도 자기 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그것도 굉장히 활발하게.
자연경관을 바꾸는 식물들
식물들이 주어진 물과 토양에서 살아가는 건 아니다. 식물들은 직접 물과 토양을 바꿔가면서 자신들이 살아갈 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놀라운 과정들을 살펴보자.
나무가 사라졌을 때 땅이 급격하게 쇠약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빗물이 직접 땅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빗물은 흙에 들어있는 영양분을 씻어 내려 토양을 황폐하게 만든다. 따라서 빗물이 땅에 부딪히는 것을 조절해야 하는데, 나무가 빗물과 땅 사이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무가 사라지고 나서야 사람들은 나무가 빗물을 어떻게 조절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초본·관목·교목 등 식물의 형태에 따라, 그리고 종에 따라, 잎에 떨어진 빗물이 고이고 이동하는 길이 달라진다. 빗물 중 일부는 나무갓에 걸렸다가 땅에 도달하지 않은 채 잎과 줄기에서 증발해 다시 대기로 돌아간다. 일부는 잎 사이로 떨어지거나 잎에 고였다가 떨어지는 ‘나무갓 통과수’가 되어 땅에 도달한다. 나머지는 ‘줄기수’의 형태로 가지와 줄기를 타고 땅으로 흘러내린다. …… [그렇게 흘러내린 물은] 나무 뿌리가 만든 통로를 따라서만 토양 깊숙이 침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ㅡ이본 배스킨, 『아름다운 생명의 그물』
우리에게, 나무가 사라진 사막의 모습은 황폐한 자연을 의미한다. 하지만 나무는 거꾸로 가뭄을 유발하기도 한다는 놀라운 사실!
나무는 빗물을 다양한 방법으로 관리한다. 우선 빗물이 땅으로 곧장 떨어지는 것을 막아준다. 전체 빗물 중에 잎에 떨어져 증발하는 비율이 15%에 이르며, 나머지는 나무갓(가지와 잎이 많이 달려있는 줄기의 윗부분) 통과수나 줄기수가 되어 흐른다. 이런 식으로 토양의 침식을 막는다. 또 뿌리는 물길을 만들어서 빗물이 제멋대로 흐르지 않게 돕는다. 그렇게 통제된 물은 뿌리가 만든 물길을 따라 토양 깊숙이 스며들어, 건기에 나무가 요긴하게 사용한다. 나무는 이처럼 잎에서 뿌리까지 여러 방법으로 물을 통제하고 토양을 보호한다. 나무가 농사에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땅의 영양분을 지켜주고 강의 수량을 일정하게 조절해 준다. 그래서 나무는 빗물을 조절하는 정교한 파이프라인과 같다.
때론 물길을 바꾸는 나무들이 그 지역을 사막화시키기도 한다. 미국 텍사스 주변의 치후아후안 사막이 바로 그런 경우다. 한 세기 전 이곳은 풀들이 융단처럼 무성한 곳이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수만 마리의 소를 들여와서 먹일 정도로 풀이 많았다.
하지만 풀이 조금 줄어든 틈을 타 키 작은 관목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관목류는 뿌리를 굉장히 넓게 퍼트려 그 일대의 물과 양분을 모두 자기에게로 모았다. 그 결과 관목류가 자라고 있는 주변만 풍요롭게 변했고, 그 외의 지역은 굉장히 황폐해졌다. 몇 십 년 지나지 않아 치후아후안 일대는 완전히 사막으로 변했다. 관목류의 침입으로 초원지대가 사막으로, 경관 자체가 바뀌어 버렸다.
식물, 자연의 마법사
이번엔 식물이 좀 더 적극적으로 자연경관을 변화시키는 경우를 보자. 침엽수와 비의 관계가 그렇다. 비와 식물들의 관계는 일방적이라 생각하기 쉽다. 비는 그저 내리고 식물들은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짝사랑의 관계. 하지만 그렇지 않다. 식물도 비를 만들 수 있다.
미국의 캐스케이드 산맥에는 해발 수천 미터에서 전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다. 거기에 습기를 머금은 구름이 지나가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전나무가 자신의 뾰족한 잎으로 구름에서 물을 빗질해내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나무는 구름에서 물을 직접 만들며 살아간다. 이건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다. 하와이의 높은 지대의 숲에서 알프스에 이르기까지, 고지대의 나무들은 구름에서 수분을 짜낼 수 있다. 그렇게 식물과 구름, 높은 산이 함께 비를 만들어 낸다.
물만 그럴까. 식물은 불도 일으킨다. 활활 타는 산불을 떠올리면 불이 식물에게 치명적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불은 식물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특정 식물은 의도적으로 불이 날 확률을 높이기도 한다. 불은 자연공동체에게 새롭게 시작할 기초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불은 경관의 모습을 크게 바꾸고, 천이 주기를 다시 설정하며, 불에 적응한 식물들의 씨가 퍼지거나 싹이 트도록 함으로써, 교란과 재생을 일으키는 중요한 원천이 된다. …… 불은 숲을 쓸어버림으로써 영양염류가 가득한 잿더미 속에서 미루나무와 버드나무가 재생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본 배스킨, 『아름다운 생명의 그물』
불을 내는 나무로는 가문비나무가 유명하다. 가문비나무 자체도 수지 성분이 많아 불이 더 쉽게 붙기도 하고, 마른 바늘잎을 많이 떨어뜨려 불길을 거세게 한다. 말코손바닥사슴과 비버의 도움으로 불을 내서, 숲 전체의 경관을 바꿔버린다. 숲이 모자이크처럼 다양한 군락과 연못, 습지로 되어 있는 경우 불이 그렇게 넓게 퍼지지 않으니 안심하시길. 균질적인 경관일수록 불이 크게 확산된다.
불이 난 후 남은 재들은 쇠약해진 땅을 기름지게 만들고, 씨앗에게 좋은 양분이 된다. 이런 방식으로 나무들은 불을 일으켜 숲의 경관을 변화시키는 시도를 주기적으로 한다. 불을 내는 것은 나무가 다음 세대에 건강하게 자라기 위한 중요한 방법이다.
이처럼 식물은 물과 불을 만들어 낸다. 이 정도면 자연의 마법사라고 불러도 오버(?)는 아닌 듯싶다.
자연은 수동적인 것, 인간의 손길을 기다려야만 하는 재료인 것일까? 오히려 우리가 만들어내는 모든 작품들이 '자연'에 포함되는 것은 아닐까?
식물이 건네는 새로운 상상력
지금 우리는 식물을 움직일 수 없는, 수동적 생물로 여긴다. 식물은 굉장히 느리게 자라고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우리가 특정 순간에 식물 하나만 떼놓고 보아서가 아닐까. 좀 더 넓은 시간 동안, 식물공동체 전체를 보면 달라질 수 있다. 식물은 뿌리의 균근류, 줄기와 잎의 곤충들과 함께 살아간다. 또한 바람, 햇빛을 포함한 자연공동체 속에 있기도 하다. 식물은 그 속에서 자신의 조건을 스스로 형성해가고 있다.
세포가 발생해온 역사를 봐도, 식물은 우리의 예상과 다르다. 세포가 생겨난 지 얼마 안 된 원시시대에는 엽록체가 독립된 세포로 있었다. 그러던 중 섬모를 통해 움직이던 세포가 엽록체 세포를 잡아 먹으면서, 엽록체가 다른 세포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후 엽록체가 세포 속에 자리를 잡고 함께 살아가면서,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식물세포로 진화했다. 다른 세포를 잡아먹고 이동할 수 있음을 ‘동물’스럽다고 한다면, 식물세포는 엽록체를 가진 동물세포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제 ‘식물(植物)은 심겨지고(植) 고정되어 있는 생물(物)’이란 생각을 바꾸는 게 좋겠다. 나아가 동/식물의 경계나 ‘움직인다’, ‘활동한다’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야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 우린 ‘활동’을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것에만 제한시켜 온 건지도 모른다. 식물의 활동을 놓고 ‘움직인다’를 새롭게 상상해보면, 분명 다른 자연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역동적인 식물이 주는 상상력, 그것을 넓게 펼쳐보자.
Odilon Red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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