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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과학

세균들, '게임이론'의 타당성을 부수다!

by 북드라망 2012. 4. 18.
눈치 보는 사회, 병든 사회
- 클릭! 과학기사

신근영(남산강학원 Q&?)

과학, 쫄지 말고 맘껏 읽자구요~

오늘은 인터넷 과학 잡지에 실린 4월 5일자 기사 한 편을 같이 읽어보려 한다. 꼭 한 번은 이런 것을 해보고 싶었다. 과학하면 왠지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보통은 과학 관련 글 앞에서는 아예 사고를 정지시켜버린다. 그럴 필요 없다. 앞으로 보겠지만, 과학자나 과학 전문 기자나 다 자기 나름대로 해석한다. 우리라고 못할 것 없다.

이 글은 세균관련 실험을 소개하는 기사에 대한 나 나름의 해석이다. 어느 쪽이 맞는지 판가름해보셔도 좋다. 그러나 그보다는 쫄지 않으면 과학을 맘껏 사용할 수 있다는 것, 그로부터 내 삶에 어떤 배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으면 좋겠다.

기사 내용을 소개해야 해서 글이 좀 길겠지만, 일단 클릭하신 거 끝까지 읽어 봐 주시길. (*^^*) 내 얘기가 재미없어도 세균들이 알려주는 인간 세상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거기다 덤으로 과학자들이 대체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는지도 알 수 있다.

일단 이 기사 제목은  「세균도 사람처럼 ‘게임이론’ 즐긴다」이다. 제목이 어떠신지. 난 이 제목을 보자마자 인상이 찌푸려졌다. 게임이론에 대해 늘 의구심을 품어왔었는데, 세균도 게임이론을 즐긴다니. 게임이론이 뭔지 모르신다고 걱정 마시길. 기사 안에 상세한 설명이 들어있으니, 기사를 함께 읽어 가면 곧 알게 되실 거다. 그럼 이제 들어가 보자. 기사 내용은 중요한 것들만 추려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단세포 생물에 불과한 세균들도 군집 내 다른 세균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펴보고 그에 따라 결단을 내린다. 수학 계산으로 사회 상황의 변화를 설명하고 분석하는 ‘게임이론’ 수준의 고민과 의견이 오간다.미국 라이스대학교와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 공동연구진은 지난달 말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제243회 미국화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하등생물인 세균 군집이 인간처럼 의사소통을 하고 결단을 내린다는 내용의 발표를 해 관심을 끌었다.

게임이론, 이익을 위한 눈치 게임

다음에는 게임이론의 예로 유명한 것이 죄수의 딜레마가 나온다. 공범을 저지른 두 명의 죄수가 있다. 증거가 불충분해서 수사에 어려움을 겪던 형사는 이 사건을 해결할 묘책을 떠올리고 두 죄수를 찾아간다. 우선 두 죄수를 다른 방에 격리시켜 이야기를 나눌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각각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먼저 자백을 하는 사람은 무죄로 석방되지만 다른 사람은 1년 형을 받는다. 둘 다 자백을 하면 형량은 3개월로 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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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의 딜레마. 나는 어떤 카드를 선택할 것인가? 최선책 혹은 차선책?

이제 두 죄수의 고민이 시작된다. 증거가 불충분하니 입을 다물면 1개월 정도 복역으로 모든 일이 마무리된다. 그런데 다른 방의 친구가 고백을 해버리면 자신만 1년 형을 받는다. 반면 자신이 자백하면 무죄 석방이거나 형이 3개월로 줄어든다. 그러니 괜한 모험을 하기 보다는 자백을 하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린다. 자백하지 않으면 죄가 들통 나지 않음에도 결국에는 둘 중 한 명이 먼저 자백을 하게 되고 형사는 수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이것이 죄수의 딜레마다. 납득이 되시는지. 암튼 이 설명 다음에 게임이론을 정리하는 기사가 나온다.

‘게임이론’의 대표 사례로 거론되는 ‘죄수의 딜레마’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남의 눈치를 보다가 결국 최선이 아닌 차선책을 택하게 된다.

게임이론은 오늘날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강력한 이론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이 이론 덕분에 시장에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을 계산에 넣고 행동하는 게 현명하다는 이미지가 생겼다. 기사는 이런 게임이론을 좀 더 지지하기 위한 두 가지의 예를 보여준다.

배트맨 시리즈로 지난 2008년 제작된 영화 「다크 나이트」(Dark Knight)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등장한다. 악당 조커가 배 두 척에 탄 사람들을 이용해 ‘죄수의 딜레마’와 유사한 상황을 만든다. 각 배에는 폭탄이 장착되어 있는데 버튼을 누르면 상대방의 배가 폭발한다. 둘 다 누르지 않으면 살겠지만 상대가 버튼을 누른다면 이쪽이 먼저 죽게 된다. 그러므로 먼저 버튼을 눌러 상대방 배를 폭파시키는 편이 안전하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챙겨야 하는 것일까?

「뷰티풀 마인드」(A Beautiful Mind)의 모델인 수학자 존 내쉬(John Nash)는 이 딜레마를 수학적으로 분석해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한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기도 했다. 그만큼 게임이론이 집단과 개인의 판단을 분석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영화와 게임이론의 수학화로 유명해진 존 내쉬 이야기까지 보태져 게임이론은 더욱 힘을 받는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게임이론을 한다는 세균 이야기가 나온다.

게임이론을 이용하는 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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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오누시크(José Onuchic) 교수가 이끄는 미국 라이스대 연구진과 에셸 벤야콥(Eshel Ben-Jacob) 교수가 이끄는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연구진은 최근 “세균들도 인간처럼 게임이론을 이용해 결정을 내린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단세포 미생물로 인간의 몸과 자연환경에서 살아가는 세균은 적게는 수백만 마리에서 많게는 수조 마리에 이르는 군집상태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각 개체가 개별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고 군집 전체가 동일한 행동패턴을 보이면 쉽게 고칠 수 없는 만성질환이 생긴다.

집단행동을 하려면 의사소통이 원활해야 한다. 세균들은…호르몬을 이용해 자신의 의사를 표출한다. 이웃한 세균은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평소에는 인체 내에서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가던 세균도 어느 순간 집단의 의견이 변화하고 통일되기 시작하면 갑자기 돌변해 독성 물질을 내뿜으며 질병을 일으킨다. 연구진은 흙 속에서 흔히 발견되는 고초균을 대상으로 실험을 실시했다.

고초균은 가뭄, 방사능, 인구과잉 등으로 인해 환경이 가혹하고 비호의적으로 변하면 갑옷처럼 단단한 껍질로 몸을 감싸고 10시간 정도 걸려 포자로 변신한다.…이 과정에서 고초균은…이웃 세균의 판단을 살피고 집단행동을 결정한다.

포자로 변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일단 포자로 변하면 주변의 자원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제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다. 게다가 깨어날 시기를 제대로 고르지 않으면 환경변화에 살아남을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이웃 세균의 눈치를 보고 고민을 시작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인체의 세포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보고 있다. 평소에는 멀쩡한 세포라도 어느 순간 화학신호를 받으면 악성종양으로 변질되거나 다른 기관에 암세포를 전이시키기도 한다.

기사는 이런 의사소통을 잘 분석해서 신약을 만들겠다는 과학자의 얘기를 인용하며 끝난다.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하다. 그럼 이제부터 이 연구와 기사에 대한 나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보겠다.

세균들은 언제, 왜 눈치 게임에 빠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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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의 딜레마는 '원래 주어진' 상황이 아니다. 그것은 특수상황이다. 살기가 힘들어지고 척박해질 때, 우리는 눈치를 보며 옆사람과 똑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세균들은 분명 게임이론이 말해주는 행동을 보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언제, 왜 세균들이 그런 행동을 보이는가’다. 기사를 읽으며 발견하셨는지. 그렇다. 우선 세균들은 포자로 변하기 위해서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그럼 세포가 눈치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사에 따르면 “가뭄, 방사능, 인구과잉 등으로 인해 환경이 가혹하고 비호의적으로 변하면” 포자로 변신하기 위해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한 마디로 살기 힘들어지면 세포들은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평상시 세균들 각 개체는 눈치 보지 않고 개별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군집생활을 한다. 이럴 때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세균들이, 삶이 어려워져 눈치를 보기 시작하고 하나의 행동패턴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면서 독성 물질을 내뿜으면 쉽게 고칠 수 없는 만성질환의 원인이 된다. 이것은 일종의 세균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파시즘적 상태다.

난 알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토록 게임이론이 잘 들어맞는 것으로 얘기되는 이유를. 초기 자본주의로 삶을 위협받던 독일인들의 현실이 파시즘을 일으켰음을. 오늘날 왜 다시 인종주의와 같은 파시즘적 상태가 꿈틀대는지를. 세균들은 그런 사회가 사람들이 살기에는 너무나 척박한 환경이라고 얘기해 주고 있었다. 서로가 눈치를 보고 그래서 최선이 아닌 차선을 택하게 되는 사회, 그곳은 삶이 빈곤한 사회, 병든 사회라는 것!

나의 최선을 살기

이 기사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찌푸려졌던 인상이 세균들로 인해 풀려버렸다. 게임이론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였다. 정말 기특한 놈들이다. 게임이론을 이렇게 한 방에 부숴버릴 수 있다니. 그럼에도 이 실험을 했던 과학자들은 세균이 말해주는 교훈은 보이지 않았던 듯하다. 게임 이론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신약 개발에 흥분해서일까.

기사를 쓴 기자 역시 나와는 전혀 다른 시선을 가졌다. 게임이론을 수학화한 내쉬는 평생 정신분열증을 안고 살았다. 게임이론에 심취한 내쉬는 과대망상적으로 눈치게임에 빠져버렸다. 그는 평범한 잡지들 속에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잡지들을 모으며 있지도 않은 암호 해독에 몰두했다. 결국 분열증으로 인해 내쉬는 상상 속의 인물들을 옆에 데리고 다니며 평생 눈치를 보며 살게 되었다. 그러나 기자는 이런 내용은 전혀 쓰지 않고 있다.

영화 「다크 나이트」는 정반대의 내용이다. 그 영화에서 폭탄이 장착된 두 배가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것은 맞다. 그러나 두 배는 모두 폭탄 버튼을 누르지 않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두 배에 탄 사람들은 딜레마에 빠져 싸우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 즉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게임이론이 먹혀들지 않는 예가 되는 장면을 게임이론을 지지하는 내용으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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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내용도, 세균들의 실험도 동일한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사회에서 게임이론이 잘도 쓰인다면, 이것은 그 사회가 병들었다는 증거라는 것. 그럼 이 병든 상태를 어떻게 깰 수 있을까. 세균들은 환경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린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굳이 기다릴 필요가 없다.

다시 보자. ‘환경이 나빠지면 눈치 본다’가 참이면 ‘눈치 보지 않으면 환경이 좋아진다’도 참이다. 또 영화 ‘다크 나이트’가 말해주듯, 자신에게 최선이 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두 척의 배가 모두 사는 길이다. 그러니 눈치 보며 살지 말자. 이익을 위해 차선을 택하기보다, 자신의 최선을 살자. 그러면 병든 사회도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

※ 한마디 더. 세균들이 그렇게 넋 놓고 기다리기만 하는지는 사실 알 수 없다. 이 세균들은 실험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배양되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실제 자연에서는 바람이나  동식물들을 이용하여 다른 사회로 이동하기 위해 포자 상태로 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즉, 기다리는 게 아니라 이동하기 위한 수단으로 세균들의 변신이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가설이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말해보자면, 실험실에서 성공적으로 배양되는 세균들은 극히 일부분이라는 점이다. 일상에서는 온갖 곳에 득실거리는 세균이 이상하게도 실험실에만 들어가면 영 맥을 못춘다. 실험실에 적당한 세균들은 기본적으로 활동성이 작은 놈들이다. 고초균의 배양이 성공적이었던 것을 보면 그 세균의 수동적 기다림은 맞는 얘기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세균이 수동적으로 환경이 바뀌기만을 기다린다고 성급하게 일반화할 수는 없다.

※ 위 기사는 「ScienceTimes」 4월 5일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2012.04.0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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