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분류표를 넘어서는 생명의 경이로움

생명을 어떻게 분류할까

신근영(남산강학원Q&?)

어떤 중국 백과사전의 동물 분류표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어떤 중국 백과사전을 보고 『말과 사물』이란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푸코를 자극한 그 중국 백과사전에는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동물 분류표가 실려 있었다.

<동물은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a) 황제에 속하는 동물 (b) 향료로 처리하여 방부 보존된 동물 (c) 사육동물 (d) 젖을 빠는 돼지 (e) 인어 (f) 전설상의 동물 (g) 주인 없는 개 (h) 이 분류에 포함되는 동물 (i) 광폭한 동물 (j) 셀 수 없는 동물 (k) 낙타털과 같이 미세한 모필로 그려질 수 있는 동물 (l) 기타 (m) 물 주전자를 깨뜨리는 동물 (n) 멀리서 볼 때 파리같이 보이는 동물>
ㅡ푸코, 『말과 사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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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분류(e)' 말고 '분류(f)'여야 하는 것 아닌가? 음... 알 수 없다.

14종류로 구분된 이 동물 분류가 마음에 드시는지. 아마도 대부분은 이런 것이 동물 분류가 될 수 있는지 의아해 하실 거 같다. 황제에 속하는 동물은 뭐며, 미세한 모필로 그려질 수 있는 동물이란 분류는 무언지. 물 주전자를 깨뜨리는 동물에, 멀리서 볼 때 파리같이 보이는 동물이라는 분류 항목에 이를 때면,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그 웃음의 이면에는 중국 백과사전의 분류가 비과학적이라는 생각도 깔려 있다. 분류라는 것이 사물의 객관적 속성에 맞춰 적절하게 이뤄져야 함에도, 이 사전에 나온 분류는 지극히 자의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궁금하다. 사물의 객관적 속성이란 게 뭘까? 분류를 위한 절대적 기준은 있을까?

동물? 식물?

자, 이제 생명에 대한 과학적인 분류를 살펴보자. 학창시절 누구나 한 번쯤 외워봤을 생물 분류 단계가 있다. ‘종속과문강문계’. 린네에서 출발한 이 분류의 가장 큰 단위는 계(界)다. 그리고 이 계는 동물과 식물로 나뉜다. 이 계에 문제를 제기한 첫번째 등장인물은 버섯이다.

우리가 잘 알듯, 버섯은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니 당연히 식물이다. 그런데 식물이라면 모름지기 광합성으로 자체 영양분을 조달해야 한다. 그러나 버섯은 그러지 못한다. 버섯이 주는 쫄깃한 식감에 감탄하며, 어쩜 고기(동물)와 이리도 비슷한지, 이 버섯이란 식물을 기특하게 여기지는 않았는지. 버섯이 이처럼 고기와 비슷한 식감을 주는 것은 살아가는 방식이 고기(동물)들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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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은 식물 같은 순진한 외모에 동물 같은 엉큼함을 겸비한 생물이다. 모 게임에서 왜 버섯이 적군(?)으로 등장하는지 생각해보자!

버섯은 말한 대로 다른 식물들처럼 영양분을 만들지 않는다. 버섯은 오히려 먹이 위에 자라며 영양분을 직접 흡수한다. 요컨대, 먹는 꼴만 보자면 버섯은 동물이다. 버섯을 비롯한 균류들은 식물도 동물도 아니고 식물이 아닌 것도 동물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근래 유행하는 유전자 단위까지 들어갈 것도 없이 살아가는 방식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린네의 분류표는 흔들린다.

린네의 분류표를 곤란에 빠뜨린 두번째 등장인물은 단세포 생물들이다. 단세포 생물들은 동물일까, 식물일까. 짚신벌레나 아메바는 움직이면서 먹이를 잡아먹기에 동물이 되었고 광합성을 하는 단세포는 식물이 되었다. 그런데 광합성을 하면서 움직이는 단세포나, 움직임/광합성 구도로 해결되지 않는 단세포들은 당최 분류체계 속에 등록될 수 없었다. 그러다 광합성 식물이 질긴 세포벽을 가진다는 것에 착안해 박테리아를 식물 영역에 등록시키기로 한다. 박테리아는 식물과 비슷한 세포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물인지, 식물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생물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에 맞추다보면 계속해서 임의적인 기준들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린네식의 분류표는 대대적인 수정작업을 피할 수 없었다.

박테리아와 인간, 그리고 고세균


린네식 분류의 한계 때문에 1950년대 이후 생물계는 새로운 분류 체계로 들어간다. 3단계 5계. 우선 생물을 원핵 단세포 생물, 진핵 단세포 생물, 진핵 다세포 생물이라는 3단계로 나눈다. 그 다음 진핵 다세포 생물을 다시 식물, 균류, 동물로 나누어 총 5계로 구성하여 분류를 완성한다.

이 분류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한 가지 무시할 수 없는 성과가 이 분류표에는 들어있다. 바로 박테리아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지구 최초의 생명체이자, 최장수 생명체, 그리고 최다 생명체가 이렇게 늦게야, 그것도 인간들의 분류 속에 한 자리 차지했다는 것에 좋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암튼 이 분류도 유전 암호 해독 기술과 함께 새로운 분류체계에 자리를 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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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자. 비록 생긴 건 이래도... 박테리아는 고세균보다 인간과 훨씬 더 가깝다는 사실.

박테리아 유전자의 핵심 부분에 대한 염기서열이 밝혀짐에 따라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한 때 원시적이고 형태적인 다양성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이유로 적당하게 하나의 계통으로 분류되었던 박테리아를 크게 둘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만이 아니라 양자의 차이는 세 개의 다세포 생물계(식물, 동물, 균류)를 합친 것보다도 (유전적 차이와 변이의 측면에서) 훨씬 더 컸다.

뭔 말인지 어려우신지.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이렇다. 조그맣고 꿈틀거리는 애들은 다 같이 ‘박테리아’라는 같은 놈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다. 박테리아 중에 ‘고세균’이라는 게 있다. 이 놈들은 말 그대로 완전히 다른 놈들이다.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이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거룩한 법칙의 첫번째 예외가 고세균에 속하는 심해저 열수 분출공의 생물들이다. 이들의 에너지원은 지구 내부의 열이다.

고세균들 중 많은 경우는 산소가 없는 극단적인 조건에서 살았다. 그 놈들의 생체 메커니즘은 일반 박테리아와는 완전히 달랐다. 고세균으로 인해 분류 체계는 이제 단계를 버리고 3개의 영역으로 나뉜다. 세균, 고세균, 진핵 생물. 그리고 진핵 생물은 진핵 단세포 생물과 진핵 다세포 생물로 나뉜다. 이 분류표는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을 알려준다. 인간의 눈에는 박테리아나 고세균이 훨씬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박테리아는 고세균보다 인간에 훨훨 가깝다.

그러나 고세균만으로도 생명의 분류가 완결될 수 없었다. 2010년, 새로운 외계 생명체가 발견된 것. 이제 그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펠리샤에게 일을 주세요

2010년 12월. 전 세계가 술렁거렸다.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의 중대 발표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우주국’이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 때문인지, E.T와 같은 외계 생명체의 발견을 기대했다. 하지만 발표를 들은 사람들은 실망했다.

분자생물학은 탄소, 수소, 질소, 산소, 황, 인의 6대 기본 원소로 생명체를 규정한다. 바꿔 말하면, 이런 6대 원소를 가지지 않은 것은 생명체가 아니다. 하지만 펠리샤 울프-사이몬 박사는 캘리포니아 동부 요세미티 국립공원 내의 모노 호수에서 이 정의를 깨는 생명체를 발견했다. 이 생명체는 ‘인’ 대신 ‘비소’를 사용하는 생명체였다. 그녀는 이 생명체에 GFAJ-1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나사의 중대 발표란 바로 이 생명체의 발견을 알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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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 Felisha A Job! (GFAJ-1의 실사)

펠리사 울프-사이몬 박사가 새로운 생명체에게 붙여준 이름에는 그녀의 한(恨)이 서려 있다. 그녀는 6대 원소가 아닌 다른 원소로 구성된 생명체를 찾고자 했다. 그녀는 연구비 지원을 위해 이곳저곳을 헤맸다. 하지만 6대 원소로 생명체를 정의하는 상황에서 그녀의 그런 연구는 황당무계할 따름이었다. 그녀는 겨우 나사에서 연구비 지원을 받고 새로운 생명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방황했던 나날들을 떠올리며 그 생명체에게 GFAJ-1, 즉 Give Felisha A Job-1(펠리샤에게 일을 주세요-1)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사람들은 E.T가 아닌 것에 실망했지만, 난 이 발표가 재미났다. 우선 외계 생명체가 먼 우주가 아니라 이 지구에 살고 있다는 점. 지구는 생각보다 많은 차원들이 겹쳐진 시공간일지 모른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쳐놓은 덫에 우리가 걸린 당황스러움과 멋쩍음이랄까. 생명체를 6대 원소로 정의해 놓고는 그 정의에 어긋나는 생명체를 발견한 게 중대한 일이 돼 버린 것. (^^;;)

분류를 넘어서는 생명


생명을 6대 원소로 정의해 놓은 것을 보면 뭔지 몰라도 과학적이게 느껴진다. 이에 비하면 중국 백과사전의 분류표는 정말 우습게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백과사전의 분류만큼이나 펠리샤에 얽힌 에피소드 역시 너무나 웃겼다.

사실 푸코가 소개한 그 책은 모두 뻥~~~이다. 푸코는 그 황당한 동물분류표로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이 역사적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사물의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속성이 있는 게 아니라, 시대에 따라 사람들이 만나는 세계가 달라진다는 것. 우리가 살펴본 과학의 분류 체계의 변동은 푸코의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어떤 면에서 분류란 생명체 그 자체의 속성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어떻게 세계를 만나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생명의 분류표는 임의적이다. 그렇기에 생명에 대한 과학의 분류는 끊임없이 변해왔다. 어떤 때는 생물의 활동이, 어떤 때는 영양분을 섭취하는 방식이, 또 다른 때에는 세포의 구성이, 그리고 근래에는 화학적 성분이나 유전자가 분류의 기준을 이룬다. 그러나 분류의 기준이 되는 이런 내용들은 대상이 되는 생명체가 가진 속성으로부터 나왔다. 이런 점에서 분류는 완전히 자의적이라 할 수도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기준으로도 모든 생명체를 포괄하는 분류표를 만들 수 없다는 점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세상을 적당히 분류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분류가 정답으로서 작동하는 순간, 또 다른 펠리샤들의 힘든 사연이 이어질 것이다. 우리에게는 분류의 정답보다는 더 많은 펠리샤 같은 과학자가 필요하다. 언제나 정답에서 미끄러지는, 분류에서 빗나가는 그 생명의 경이로움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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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과 표현이 서로 다른 모습들을 갖는다고 해서 이것들이 서로 다른 단계들인 것은 아니다. 생명권이나 정신권은 없다. 오히려 무엇보다도 하나의 동일한 <기계권>만이 있을 따름이다."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천 개의 고원』,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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