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Yoga’, 내 안의 유동하는 에너지와 만나는 것 (2)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 본성을 만나는 길, ‘요가’
요가는 바로 이 에고가 만들어내는 ‘마음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를 다룬다. 끊임없이 샤트바, 라자스, 타마스가 초미세한 비율로 움직이며 나를 둘러싼 현실세계의 5대원소와 결합하며, 감각기관은 받아들이고 운동기관은 표현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산만해질 수밖에 없다. 한시도 잠시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감각기관과 운동기관은 끊임없이 경험을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행동하고, 이 과정에서 생각과 판단들이 만들어진다. 우리 안의 에너지는 너무도 민감하고 미세하게 움직여서 가만히 있거나 고요히 있기가 어렵다. 그것은 가만히 앉아있어 보면 알 수 있다. 잠시도 아무 생각도 없이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끝없는 생각과 마음들이 일어나고, 과거와 미래에 관련된 생각이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이와 같은 상태가 바로 인간 생명의 전제조건이다.
바로 이런 인간 안의 에너지의 흐름의 변화를 스스로의 힘으로 알아낸 인간이 있다. 그는 샹키아 철학을 가르치던 수행처를 찾았던 사람이다. 그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알고자 했다. 상키야 철학에 바탕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인간 본성을 알고자했던 사람, 바로 고타마이다. 그는 붓다가 되기 전 요가를 수행했다. 그는 “그의 의식에 몰려드는 그 모든 사고와 갈망은 아주 짧은 시간만 지속” (『스스로 깨달은 자 붓다』, 128쪽, 카렌 암스트롱 지음, 푸른숲 출판사)되는 것을 알게 됐다. 또한 “갈망이 아무리 강해도, 그것은 곧 사라지고 완전히 다른 것으로 대체되었다. 어떤 것도 오래 지속되지 않” (『스스로 깨달은 자 붓다』, 129쪽, 카렌 암스트롱 지음, 푸른숲 출판사)는 자신을 관찰했다. 인간 고타마는 삶이란 끝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마치 샥티가 낳고 낳는 그것이 결코 멈추지 않기 때문에, 변화하는 것을 붙잡고 유지하려는 마음으로부터 괴로움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자신 안에서 아주 작은 갈망과 쾌락과 수없는 마음들이 시간 단위로, 분 단위로 끝없이 변화하는 것을 관찰했다.
이러한 끝없는 변화로 인하여, 인간은 늘 뭔가 다른 것이 되려고 하고 다른 것이 되어간다. 고타마는 이런 상태가 인간 본성의 조건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자신의 본성이 이렇게 끝없는 변화 속에 있고, 또 이 변화로 인해 만들어지는 자신의 수없는 마음으로 인해 괴로워진다는 것을 말이다.
고타마가 인간 본성을 관찰한 것은 그 약점을 닦아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성과 친해져서 그 능력들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괴로움이라는 문제의 해법이 자신 안에, 즉 그가 ‘이 한 길 길이의 몸통, 이 몸과 마음’이라고 부른 것 속에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구원은 자신이 세속적 본성을 다듬는 것에서 나오며, 따라서 말을 타는 사람이 자기가 훈련하는 말을 잘 알듯이 자신의 본성을 연구하고 그것을 샅샅이 알아야 했다.
『스스로 깨달은 자 붓다』, 129쪽, 카렌 암스트롱 지음, 푸른숲 출판사
고타마가 인간 본성을 관찰한 것은 인간이 선하다거나 악하다는 것을 판단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의 본성이 어떻게 우리를 특정한 상태로 만드는지 알고 싶어서이다. 인간이 자주 만나는 그 괴로움이란, 어디 외부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통과 자신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됨을 말이다. 우리는 쉽게 말한다. 감각기관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느낌들과 그 느낌에 따라 생기는 감정들과 그 감정들을 담은 마음상태로 인해 즐겁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다고 말이다. 그리고 즐거움은 붙잡고, 괴로움은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 작은 소박한 마음이 무엇이 문제냐고…. 하지만 이 마음은 결코 소박하지 않다.
고타마가 요가 수행과 명상을 통해서 관찰한 인간의 본성은 “인간은 끊임없이 뭔가 다른 것이 되기를 갈망하고, 어딘가 다른 곳에 가기를 갈망하며, 가지지 않은 뭔가를 얻으려고 갈망한다는 것” (『스스로 깨달은 자 붓다』, 131쪽, 카렌 암스트롱 지음, 푸른숲 출판사)이다. 고타마는 요가를 수행하면서 생각들이 그의 마음을 통과하는 방식을 관찰했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마음의 평화가 깨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 깨달은 자 붓다』, 131쪽, 카렌 암스트롱 지음, 푸른숲 출판사) 이 과정이 모두 개인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 과정 속에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었다.
파탄잘리가 『요가수트라』에서 “요가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흐름을 통제하는 것이다” (『요가수트라』, 10쪽, 파탄잘리 지음, 정창영·송방호 편역, 시공사)라고 말할 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은 바로 고타마가 관찰한 마음이다. 그리고 요가를 한다는 것은 이러한 자신 안의 변화를 신체적으로 느끼고 알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요가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 ‘yuj유즈’가 그 어근으로, ‘얽어매다’, ‘결합하다’, ‘멍에를 씌우듯 이어붙이다’등의 뜻과 ‘자신의 주의력을 이끌어 주며, 집중시키며, 그것을 사용하고 응용한다’등의 뜻” (『요가 디피카』, 15쪽, 아헹가 지음, 법보신문사)을 가지고 있다.
요가의 특정한 ‘신체 자세(아사나)’를 하고 ‘프라나야마’라고 불리우는 호흡을 하며 이 과정에 집중하는 수련자는 자신 안에서 끝없이 일어나고 변화하는 느낌과 통증 그리고 그로 인한 감각을 바라본다. 요가의 신체 동작이 자신 안에서 만들어내는 통증과 느낌과 감각을 관찰하며 자신을 만나고 있다. 요가를 수련하는 동안 요가 동작과 호흡이 만들어내는 그 현재적 상태에만 집중하게 된다. 아사나와 호흡은 마음을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붙잡는다. 현재 자신 안에서 벌어지는 느낌과 감각에 묶인다. 마치 말을 마차에 묶어두는 것처럼 말이다.
미묘하면서도 끊임없이 변해가는 마음은 변화하는 것이 원래적 본성이다. 작은 느낌, 작은 통증, 작은 움직임에도 변화된다. 이처럼 현재적 상태에서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는 훈련을 해나가게 되면, 자신의 마음이 끝없이 출렁이고 변화되고 있으며, 변화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직 변화의 과정만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끊임없는 감각기관과 운동기관의 움직임이 일어난다. 몸을 구성하는 물질들이 외부에서 들어온다. 더불어 호흡도 들어오고 나간다. 여기에 스스로 수행하는 동작이 결합되면서 새로운 에너지 상태인 몸으로 변화되고 있다. 요가는 이렇게 유동하는 에너지가 만들어내는 현재적 몸과 마음을 관찰하고, 그 관찰 속에 있는 것이 바로 집중된 상태임을 경험하는 과정이다. 요가는 집중의 상태를 경험하고 동시적으로 자신 안의 에너지들이 결합되어진 속에 머무름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오직 변화뿐
이처럼 요가는 내 안의 에너지들이 흐르고 있는 그 상태를 집중해서 만나가는 작업이다. 자신의 시선을 내부로 돌려서 자신의 안에서 일어나는 에너지 흐름의 변화를 관찰하는 닦음을 필요로 한다. 허니 어찌 수련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우리가 요가를 운동 중의 하나, 특히나 예쁜 몸을 만드는데 효과적인 운동으로 생각하게 됐다는 것은 내 안의 에너지 흐름을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은 없음을 뜻한다. 겉으로 보이는 자신의 몸이 늘씬하고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만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요가는 이 세계가 만들어진 에너지의 흐름과 나라는 개인이 만들어지는 에너지의 흐름이, 서로를 연결하고 흐르고 있음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을 내 스스로의 힘으로 관찰하고 경험함으로써 겉으로 보이기에는 독립체이지만, 자연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는 존재임을 알아가는 과정임을 말이다.
그런데 예쁘고 늘씬한 몸을 원하는 마음은 고정된 상태에 도달해서 변하지 않겠다는 마음과 같다. 변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음의 속성을 가지고서 변하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말이다. 자연의 힘인 프라크리티는 오직 낳고 낳는 과정을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낳는 변화의 과정을 붓디를 내재한 인간은 만날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다. 변화의 과정을 경험함으로써 인간은 자신 안에 내재된 붓디를 만날 기회를 갖게 된다. 때문에 이제 요가를 한다는 것은, 내 안과 밖에 흐르는 에너지의 흐름을 만나고 경험함으로써 세계와 자신의 본성에 다가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글_정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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