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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생생 동의보감

이야기로 동의보감에 접속하기

by 북드라망 2018. 10. 25.

고미숙 선생님의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를 읽은 분들이면 아시겠지만, 『동의보감』은 의학서라는 그릇에만 담기에는 차고 넘치는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야말로 몸과 우주, 삶의 비전이 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공부해 들어가도 공부할 거리가 무궁무진한 『동의보감』이라는 광산에 새로운 광부(?) 두 분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먼저 『낭송 제주도의 옛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 엮으신 박정복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통해 『동의보감』에 접속해 주실 거고요, 이 '이야기 동의보감'은 매달 넷째주 목요일에 찾아갑니다. 그리고 11월부터 둘째주 목요일에는 오랫동안 '요가' 수련을 해오신 정은희 선생님께서 '요가'로 『동의보감』과 접속해 주실 겁니다. 새롭게 연재되는 '생생동의보감', 기대해 주세요!



이야기로 동의보감에 접속하기

 

  

우리가 보고 듣고 느꼈던 감각이나 생각, 말, 행동 등 우리가 경험했던 것은 다음 순간 사라지는 게 아니라 우리 안으로 들어가 저장된다.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  저장하는 이유는 기억하기 위해서다. 기억해야 다음 순간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나온 집을 기억 못 한다면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방금 본 엄마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다음 순간 엄마와는 관계를 맺지 못할 것이다. 기억은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생명의 장치이다.

  



그런데 무의식에 새겨진 그 방대한 정보를 다 기억할 수는 없다. 현재에 관련된 정보만 선택되어 ‘말이 되게’ 구성된다. 정보들을 ‘말이 되게’ 연결시켜간 흐름. 이게 바로 이야기 즉 스토리(story)이다. 삶을 나타내는 표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늘 이야기를 하며 살고 있고 그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낳으며 삶은 이어진다. 그러니 의서(醫書)에도 이야기가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삶을 이야기해야 병의 원인도 알 수 있을 것이기에. 그런데도 우리는 의서는 단순히 증상과 처방의 나열 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요즘 병원의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이야기하기를 원하지 않고 단순히 증상만 보고 처방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동의보감』에는 증상과 처방이 이야기로 적나라하게 펼쳐진 경우가 많다.

 

곧 혼인하기로 한 여자가 있었다. 남편 될 사람이 장사하러 나가 2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로 인해 여자가 음식을 먹지 못하고 맥이 빠져서 바보처럼 힘없이 누워있기만 하였다. 다른 병은 없었는데 늘 안으로 향하여 앉아 있었다. 이것은 남편을 그리워하다 못해 기가 뭉친 것이다. 이것은 약으로만 치료하기 어려우며 기쁘게 해줘야 뭉친 것이 풀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성을 내게 해야 한다. 의사가 먼저 여자를 크게 화나게 하여 세 시간가량 울게 한 다음 그의 부모로 하여금 화난 것을 풀어주게 하였다. 그리고 약 한 첩을 먹였더니 곧 음식을 먹었다. 의사가 병이 비록 나아지긴 하였지만 반드시 기쁘게 해야 완치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의 남편이 돌아온다고 속였더니 과연 병이 재발하지 않았다.

 

이 의사의 처방은 한의학 이론을 몰라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상사병으로 먹지도 못하고 축 처져 아무런 의욕이 없을 때 웃기거나 화나게 하면 정신이 번쩍 들 것은 당연하다. 화 날 때 사람은 얼마나 힘이 솟는가?^^ 그때만큼 사람이 논리적이고 말이 유창할 때가 있을까?^^ 목에 힘줄을 세워가며 말할 것이다. 성냄으로 일단 정신을 차리게 한 다음 풀어주는 것으로 치료 끝이다. 

의사는 이어서 이런 치료가 음양오행의 상극원리였다고 덧붙인다.

 

비장은 생각을 주관하는데 생각을 지나치게 하면 비기가 뭉쳐서 음식을 먹지 못한다. 성내는 것은 간목에 속하므로 성내면 간기가 올라와서 뭉친 비기를 잘 흩어준다.


비장은 생각을 주관하고 오행상 토(土)에 배속된다. 성내는 것은 목(木)이다. 흙과 나무는 어떤 관계일까? 나무는 땅을 뚫고 올라온다. 땅은 나무에게 제압을 당해야 땅다워질 수 있다. 그래서 의사는 환자에게 성내도록 연기를 한 것이다.

  



『동의보감』은 어마무시하게 두껍고 음양오행 등 이론이 어렵다. 책을 사놓고도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니 스토리들이 꽤 많이 있다. 스토리들은 삶을 나타냈기에 변화와 굴곡이 많고 반전이 있다. 또 조선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리얼한 풍속들이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의사도 침이나 약으로만 치료하지 않고 연기와 연출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재미있는 스토리로 접근하니 어려웠던 한의학 이론이 조금 잡힌다. 그래서 앞으로는 동의보감에 있는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삶과 병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가를 이야기를 통해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의학 책에 이야기가 있다니 솔깃하지 않는가. 

   

글_박정복(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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