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후회하는 강도만큼 미래는 불안으로 다가옵니다
>질문 1 : 일을 쉬고 있는데 죄책감이 들고, 자신감이 없어 고민입니다.
요즘 일을 쉬면서 집안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부모님에게 죄스럽게 생각되고 마음의 가책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 일을 돌아보면서 저 자신에게 사회적 능력이 모자란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지금 일을 적극적으로 알아보지도 않고 있고 자신감도 없어지는 것이 저의 고민입니다.
정화스님 : 우선 세끼 먹고 잠자고 하는 데에 빚이 안 늘어나면 일을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하면 좋지만 일을 안 하고 세끼 밥 먹고 살만하면, 내가 잘사는 것이니까 거기에 대해서 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그야말로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인데. 내가 하겠다’ 하는 정도로 생각하면 돼요. 그런데 놀고 있는 것에 대해서나 돈을 안 벌어오는 것에 대해서 부모한테 느끼는 것들은 속에서 만들어진 지도가 하는 말입니다. (혼자 하는 말입니다)
두 번째, 사회성의 문제하고 학습성의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학교 수업은 사회성을 기르는 쪽의 유전정보가 충분히 발휘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 두 개는 완전히 유전정보가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학습성이 계속 늘어나면 시소처럼 묘하게 사회성이 떨어지게 되어있어요. 시소가 되어서 사회성이 올라가면 학습에 대한 의욕이 잘 안 생겨요. 사회성이 떨어지면, 학습성이 올라가요. 그래서 어느 부분의 활동을 운동화하려면 유전정보가 발현되도록 계속 노력을 해야 해요. 저절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사회성이 너무 떨어진다고 하면 특별히 시간을 내서 사회성이 있는 활동을 계속해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어렸을 때는 학습적 측면보다 사회적 측면이 훨씬 커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사회 전체에서 함께 학습이 이루어져야 돼요. 어떻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이 사회성을 키울 것인가로요. 그러면 학습은 좀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데 사회성이 커져요. 그런데 한 20살쯤 되면 이제 뇌 안이 정리되어서 자기가 할 일이 생겨요. 그러면 이 사람은 학습과 사회성이 상당히 균형이 맞게 되어요. 그런데 우리는 계속해서 초등학생부터 프로처럼 야구하도록 해요. 안되죠. 그렇게 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상당히 성공을 이뤘어요.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배가 안 고프다라는 성공을 이뤘고, 이게 학습의 모델처럼 되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까 말한 사회적 문제가 등장합니다. 학문영역에서부터 융합이니 복합이니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 융합과 복합은 이 사회성에서 일어나요.
내가 지금 사회성이 없는 게 아니고, 대부분의 일이 사회성을 학습하듯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인데 지금까지 우리는 그런 일들을 안 하게 되어 있으니까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인 거예요. 내가 그게 좀 떨어져서, 약해서 사회성이 있으면 좋겠어. 그러면 애들이 팀을 짜서 놀듯이 팀으로 노는 일들을 자주 해야만 이제 사회성이 일어나는 거예요. 지금 상태에서 일어나는 게 전혀 아닌 거예요. 그래서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일 안 하고 먹고 살만 하면, 가서 팀으로 노는 것에 재미를 계속 불리면 자기도 모르게 사회성이 커져요. 어른이나 어린이나 할 거 없이 그렇게 해야만 해요. 사회성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있으려고 해서 있고 없으려고 해서 없는 게 아니고 학습으로만 이루어지는 거예요.
>질문 2 : 신체는 후회하고 정신은 후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니체는 삶은 무의미다. 오류다. 라고 말했고 저도 옳다고 생각해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신체는 과거에 대해서 후회하고 정신은 삶은 무의미이고 모든 것은 오류이므로 후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체와 정신이 반대로 작동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화스님 : 사람은 신피질이 커지면서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얻었어요.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의 기본은 전부 과거의 경험이에요. 그런데 경험은 내 마음대로 안 된 것이 많아요. 본질상 내 마음대로 될 수가 없어요. 날씨처럼. 근데 내 마음대로 된다고 착각을 해요. 되지 않는데. 그래서 내 마음대로 안 될 때 울어요. 내 마음대로 하려고.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면 울면 된다는 노선이 만들어지게 돼요. 그렇게 착각이 굳어져요. ‘뭔가 하면 내 마음대로 된다.’라고. 실제로는 안 되는 건데. 과거는 내 마음대로 안 됐던 거예요. 내 마음대로 안 됐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면 내 인생이 후회스럽게 되는 거예요. 근데 ‘본래 그렇습니다’라고 하면 그 일은 후회할 일이 아니에요. 근데 나는 내 마음대로 될 일인데 내 마음대로 못했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본래 안 되는 거예요.
본래 되게 하는 것이 요즘 말로 갑질이에요. 자기가 가진 힘을 행사하면서 마치 본래 내 마음대로 되는 것처럼 착각을 하는 거예요. 자기 내부의 폭력을 그런 식으로 행사하면서 자기 만족도를 높이는 이상한 회로를 만든 거예요. 그 사람이 본래부터 자기 마음대로 됐으면 그런 회로가 만들어질 이유가 없었어요. 우리에게는 그런 권력이 대부분 없어요. 그래서 대부분 그런 사람에 비해서 도덕적이에요.
근데 방금 말한 대로 본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일이예요. 그런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고 그 과거가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것처럼 나한테 남아있게 돼요. 그래서 과거를 회상하면, 대부분이 ‘이 일을 안 했으면 더 뭔가 있는 사람이 됐을 텐데.’, ‘뭔가 했으면-’ 이런 식이에요. 이런 것이 예측되는 미래에 그대로 심어집니다. 그래서 미래에 그 일이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거예요. 과거의 후회는 미래로 가면 불안으로 바뀌어요. 그래서 미래를 생각하면 다 불안해지는 겁니다. 과거를 후회한 양의 강도만큼 미래는 불안으로 나한테 다가오는 거예요. 그런데 과거를 생각할 때 ‘내 마음대로 된다’라는 이 설정이 잘못됐어요. 내 몸조차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거예요. 아까 저분처럼 자려고 해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거잖아요. 내 몸도 신경회로에 따라 달라지는 거예요. 근데 ‘나는 왜 과거에 그렇게 살았을까’ 후회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에요. 그래서 (본래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훨씬 많은데) 마음대로 된 것이, 마음대로 했던 것이 잘 살았다는 전제는 잘못된 거예요. 그 일은 일어나게 되어있었어요. 거기다 대놓고 전제가 잘못됐지, 라고 말해줘야 돼요.
미래도 마찬가지로 그걸 토대로 이렇게 저렇게 예상할 뿐이지 안 되는 것이 훨씬 많으니까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야 돼요. 그래야 불안이라는 것이 줄어들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현대사회에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변해서 그렇게 안 해도 되는데 오래전에 쌓아왔던 것들이 계속 남아서 유전자에 작동되고 있는 거예요. (그런 작동이 전에는 생존에 굉장히 유리했어요) 그래서 그런 후회나 불안이 생기면 아 일반적인 생각의 통로가 그렇구나, 까지만 생각해야 돼요.
>질문 3 : 성과급을 분배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올라와 고민입니다.
저는 공무원입니다. 직장에서 십몇 년간 성과급을 균등분배하고 있습니다. 금년에는 제가 거둬서 분배하는 일을 맡았는데 젊은 분 한 분이 내지 않겠다고 합니다. 자신은 열심히 일했고 내놓기 억울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른 젊은 한 두 분도 어정쩡한 반응을 보여 고민이 됩니다. 그분들을 바라보는 제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고요.
정화스님 : 그분은 처음에는 이익을 보는 것 같으나 결국 손해입니다. 이것을 그 분은 그걸 모르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먹이를 구하지 못하는 박쥐에게 다른 박쥐들은 자신의 피를 내어줍니다. 내가 그 상황이 됐을 때 다른 박쥐들이 나를 돕는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어요. 돌고래는 혼자 힘으로 짝짓기를 하지 못합니다. 다른 돌고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만약 어떤 돌고래가 얌체처럼 자신은 도움을 받아 짝짓기를 하고 막상 다른 돌고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합시다. 다시는 짝짓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보살님은 아무런 고민할 것이 없고 불편해할 것이 아닙니다. 그가 일을 많이 한 것처럼 보여도 그는 짝짓기의 기회를 잃어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정에 따라서 일을 못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받을 수도 있고 또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직장이 굉장히 편해집니다. 내가 능력이 없을 때는 받고 있을 때는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질문 4 : 낯선 곳에 갔을 때 잠을 자지 못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몸에 관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낯선 곳에 갔을 때 잠을 거의 자지 못하는 편인데 얼마 전에는 3박 4일 등산을 갔어요. 잠은 매일 숙소에 내려와서 잤는데, 3일 동안 힘든 등산을 했는데도 내내 잠을 거의 못 잤어요. 너무 괴롭기도 하고 왜 이런 건가 궁금하기도 해서 여쭤봅니다.
정화스님 : 몸의 각성 주기가 깨어난 현상인데, 예를 들어 한 가족이 산에서 텐트를 치고 잔다고 했을 때 80% 남성은 의식하지 않아도 더 위험한 곳에서 자고 위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런 것이 남성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고요, 보살님이 살아오는 동안 어떤 학습을 통해 그런 회로의 스위치가 강력히 켜져서 작동을 하는 겁니다. 여기(낯선 곳)가 편안하지 않다고 인식하면서 잠을 못 자도록 신체가 작동하는 거예요. 여기까지는 어쩔 수가 없어요. 방법은 자주 그런 곳에서 자면서 몸이 편안하게 받아들이도록 학습을 해야 합니다. 생각만으로는 안 돼요.
질문 : 지금도 자주 밖에서 자는 편인데 더 늘려야 하나요?
정화스님 : 본인이 자주 그랬다고 생각하더라도 더 필요할 수도 있고, 아니면 열 번의 경험이 그런 회로를 더 강화하는 기제로 작동했을 수도 있어요. 다른 방법은 염불할 때 주변이 안온하다는 내용의 글을 써서 외워야 해요. 낯선 장소에 놓인 상태가 되면 신체가 잠을 못 자도록 원하는 것이거든요. 따라서 뇌를 속여야 해요. 굉장히 편안하다는 이미지를 그린 글을 되풀이해서 외워야 합니다. 기도라고 할 수 있지요.
정리_잘읽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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