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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아기가왔다 1

아빠는 흡연자-"아빠 또 담배 펴!?"_아빠

by 북드라망 2018. 3. 23.

아빠는 - "아빠 또 담배 펴!?"



아빠는 흡연자다. ‘흡연자’란 무엇인가. 매일매일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다른 말로는 문명사회에서 살아가는 야만인이다. 흑흑. 사실, 아기가 엄마 뱃속에 있던 때에는 담배를 끊을 생각이었다. ‘결심’이라는 거창한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담백하게 ‘당연히 끊어야지’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 어떤 비장함이나 그걸 동반한 결단 따위는 없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아기가 태어나면 뭐 참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비흡연자로 신분세탁이 될 줄 알았던 것이다. 심지어 몹시 오만하게도 ‘아기가 있는데도 담배를 못 끊는 인간이 있다니...’라고까지 생각했다. 지금은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점보다 그 따위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더 부끄럽다. 




엄마 혼자 출근 하는 날, 아빠는 엄마가 집을 나서기 전에 잽싸게 집을 나간다. 엄마가 "지금 늦었어, 빨리 나가야 돼"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현관문을 닫는 게 핵심이다. 그 귀중한 흡연 시간을 놓치면 엄마가 돌아오는 저녁 6시 무렵까지 아빠는 꼼짝없이 니코틴껌이나 씹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니코틴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금연 보조제로서 담배의 주요한 중독 유발 물질인 니코틴을 껌에 섞어 놓은 것이다. 친절하게도 니코틴 함량마저 고를 수 있게 되어 있다. 하루 반갑쯤 피운다면 2mg, 한갑 넘게 피운다면 4mg짜리를 고르면 된다. 입에 넣고 씹으면 알싸한 담배맛이 입안을 휘휘 돌며, 침을 삼키면 목도 살짝 따끔하다. 담배 연기를 못 마셔서 아우성치는 뇌에 약간의 위로가 된다. 참 훌륭한 물건이다. 그러나, 이건 ‘껌’이지 ‘담배’가 아니다. 이 둘의 사이는 진짜 오이와 오이비누만큼이나 멀다. 얼마든지 담배를 피울 수 있으나 피우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니코틴껌을 씹으면 그럭저럭 참아가며 넘어갈 수는 있지만, 담배를 피울 수 없는 상황에서 대용품으로 씹다 보면, 비참한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아오 담배를 피워야 하는데!!’ 못 피워서 비참한 게 아니라, 고작 담배를 못 피워서 그러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다.


그런 참담함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도 엄마가 퇴근해서 돌아오면 아빠는 다시 쌔앵~하고 밖으로 나간다. 얼른 (연기로 된) 니코틴 좀 달라고 아우성치는 몸뚱이를 끌고서. 그렇다. 육아란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일이다. 도대체 겨우 11개월밖에 안 된 아기를 보는 자가 담배를 피워서야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나 요즘 분위기라면 더욱 그렇다. 아기 없이 담배를 피우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 판에 집에 아기가 있는데도 담배를 피우다니. 연일 티브이에서는 집 안에서 피우는 게 아니어도 간접흡연이 된다는 둥 어쩐다는 둥 한다. 아... 그런 것까지 다 생각하고 나면 아빠는 아기를 만지는 것도 조심스럽고, 그 앞에서 숨을 쉬는 것도 미안해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못 끊는 자신에 대해 자괴감이 든다. 


요즘엔 날이 부쩍 풀려서 딸이 점심 이유식을 먹고 나면 유모차에 태워서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곤 한다. 지난 주에는 그냥 놓치기엔 너무 아까운 공기와 햇볕이 있는 날까지 있었으니, 요즘은 그야말로 산책의 부흥기라 할 수 있겠다. 몇 달 만에 나온 것이지만, 겨울 전엔 너무 어려서 별로 보이는 것도 없었을 딸에겐 밖에서 보는 것들이 너무 신기한 모양이다. 유모차 앞에 달린 안전바를 잡고서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딸이 스르륵 잠이 든다. 아, 아빠는 이 순간을 기다렸다. 잠든 딸이 타고 있는 유모차를 멀찍이 세워놓고 전자스틱에 궐련을 톡 꽂아 한모금 주욱 빨면, 아, 좋다. 그 상태로 벤치에 앉아 책도 읽었다. 그러고 나서야 집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담배를 피우고 집에 들어오면 아빠는 일단, 손을 씻고, 리스테린 용액을 입에 퍼부어 넣는다. 뭐, 잔류 유독물질이 폐에 있다가 호흡을 할 때 나와서 간접흡연이 된다고 하니 거의 아무 효과가 없겠지만, 그래도 기분이 좀 다르니까 그렇게 한다. 물론 담배를 타 피우고 난 후에는 일부러 숨을 좀 더 크게 내쉬기도 한다. 그뿐인가, 담배도 바꿨다. 그 이름도 굉장한 ‘궐련형 전자담배’로 말이다. 유독물질이 좀 적다고도 하고, 냄새도 덜 난다고 하니 뭐 어쩌겠나. 바꿨다.(그래도 역시 담배는 불담배가 훠얼씬 맛있다) 그런 저런 것들을 다 놓고 생각해보면 그렇게 궁색하고, 모양 빠지고, 한심할 수가 없다. 이쯤 되면 그냥 끊고 말지 싶겠지만, ‘중독’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뭐 ‘중독’이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그렇지만, 음, 나는 사실 담배 피우는 걸 좋아한다. 잠깐씩 하던 일을 멈출 수도 있고,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짬도 나고 말이다. 게다가 피우고 나면 기분도 좋아진다. 그러고 보니 아빠가, ‘아빠’가 아니었던 그 시절 그 때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담배를 피우는 걸 정말 좋아했었다. 단순히 ‘중독’만 문제라면 어떻게든 끊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담배 자체에 대한 애정이 있다 보니 쉽게 끊을 수 없는 것도 같다. 차라리 담배에 중독성이 없다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다. 아마 그래도 꽤 많이 피워대지 않았을까 싶긴 하다. 그런 와중에 다행인 건 아빠가 술을 전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런 나더러 차라리 술을 마시라는 사람도 있다.  


아기가 자라면, 분명 우리 딸도 여느 어린이들처럼 "아빠 또 담배 펴!?"라고 하면서 아빠의 흡연을 방해할게다. 더 자라서 청소년이 되면, 모를 일이다. 우리 딸이 흡연의 길에 들어서게 될지 말이다. 이 아빠도 아버지가 담배 피우는 걸 말리려던 어린이였던 적이 있었고, 말리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흡연의 길에 들어선 청소년이었던 적도 있었다. 만약에 우리 딸이 아빠와 같은 경로를 걷게 된다면 어떨까. 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아빠가 담배를 너무 좋아하는 왕골초이기는 하지만, 이게 몸에 좋아서 피우는 건 아니지 않은가. 몸이 축나는 걸 알면서도 하는 짓인데, 우리 딸이 그렇게 된다면? 아마 우리 딸의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빠도 최선을 다해 딸을 말릴게다. 물론 이미 들어서고 난 다음에는 잘 안 되리라는 걸 안다. 그리고 결국엔 아빠 말을 귓등으로 듣고, 아빠와 같은 담배사랑의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무슨 기사에서 봤는데 (믿지는 않지만) 흡연도 유전이라더라. 여하튼, 그렇게 되면 그때는 어쩌겠는가. 속으로는 딸이 금연하길 바라겠지만, 최대한 담담하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여야지. 


_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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