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연재 ▽/아기가왔다 1

딸의 직장생활 - 사이사이로 흘러드는 고마운 애정들_아빠

by 북드라망 2018. 3. 9.

딸의 - 사이사이로 흘러드는 고마운 애정들



이제 10개월인 우리 딸은, 무려 ‘직장생활’을 한다. 엄마, 아빠와 함께 출근해서 내내 놀고, 떼쓰고, 밥 먹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그러는데, 그런 그녀를 보고, 고미숙 선생님께서는 ‘인턴사원’이라 하셨다. 물론 하는 짓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인턴사원’이 아니라, 사장의 철 안 난 자식 같은 모습인데, 실제로도 그렇다. 우리 딸은 아빠네 회사 사장님의 '철'은커녕 ㅊ도 안 난 딸이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회사에서 아빠의 주업무는, 집에서 그러하듯 ‘육아’다. 아니 집에서도 ‘육아’가 주업이고, 회사에서도 ‘육아’가 주업이면 그냥 집에서 ‘육아’하지 왜 출근까지 해서 ‘육아’를 하느냐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양육자에게 외출은 절대로, 결단코, 기필코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다. 특히나 그게 현대의 대도시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동네 빵집에서 사색에 잠김



쌍둥이가 아니라면 대개 아기를 두 사람이 동시에 보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한 사람이 아기를 보고, 다른 사람들은 그 시간에 돈을 버는 게 훨씬 효율적이기도 하거니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가는 데서 생기는 무수한 불편들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혼자, 아니 아기와 둘만 덜렁 집에 남겨진 양육자를 생각해 보자. 그에게는 말할 입이 있고, 그 입으로 말도 하지만 듣는 이는 듣는지 어쩌는지 제 갈길 가기 바쁜 아기뿐이다. 자동차 소리만 들리는 아파트 십몇층 거실에 덩그러니 아기와 둘만 앉아 있다 보면 간혹 머리가 멍해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아빠는 요즘 집에 있을 때 꼭 라디오를 틀어놓는다.(95.9 표준FM 고정이다. '시선집중'부터 '지금은 라디오시대'까지 고정이다.) 다만 며칠이라면 괜찮다. 아기가 매일매일 얼마나 경이로운 성장을 거듭하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채워져야 할 기쁨의 그릇이 가득 찬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면 슬슬 입도 간지럽고, 허리도 아프다. 그리고 어쩐지 고립감 비슷한 것이 엄습한다. 아기는 너무너무 예쁘지만, 내 말에 대답해 주기엔 아직 너무 어리다. 그리고 어쨌든 양육자도 어른으로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일들이 분명히 있는데 간단한 통화 한번 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나도 좀 놀란 일이 있는데, 본래 이 아빠는 스팸전화를 친절하게 받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심지어 언젠가는 주변인들에게보다 텔레마케터에게 더 친절하게 군다는 소릴 들은 적도 있다. 실제로도 그랬다. 그런데 아기가 울거나 기저귀를 가는 와중에 걸려왔고, 무심코 받은 스팸전화에 버럭까지는 아니어도 조금 짜증을 낸 적이 있었다. 그때 문득, 내가 좀 변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원래도 좀 그랬지만 마음에 여유가 없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집에서 나가야 한다. 원래 아빠는 집에‘만’ 있는 걸 세상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집 밖은 위험하기도 하고, 어쨌거나 성가신 일이 생길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는 곳이다. 요지는 집 밖에 나가면 어쨌든 사람들과 부대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과 부대끼는 걸 매우, 매~우 싫어했던 이 아빠는 될 수 있으면 집에만 붙어 있는 걸 좋아했던 것이다. 아, 그랬던 내가 사람을 그리워하다니. 아기는 이렇게 많은 걸 바꿔 놓는다.


외근중


그래서 아빠는 겨울이 오기 전까지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산책을 나가곤 했었다. 그때는 마침 육아휴직기간이기도 하고, 딸도 갓 신생아 티를 벗은 참이라 회사에까지 데리고 나가진 못했던 것이다. 처음 산책을 나갔던 날이 마침 공교롭게도 점심시간이어서, 집 근처 공원에서 실컷 직장인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딸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오가는 걸 본 것이 처음이어서 그런지 이리저리 눈을 굴려가며 사람 구경을 했었다. 그날부터 며칠 동안 점심시간을 골라서 나가곤 했는데, 그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 겨울이 왔다. 아빠와 딸은 다시 집에 갇혔...구나 했는데, 아빠의 육아휴직이 끝나고, 딸도 9개월이나 인생을 견뎌냈으니, 아 드디어 1월부터 대망의 가족출근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사실 아빠는 산책을 다닐 때부터 조금 걱정을 했었다. 아빠 혼자라면 모르겠지만, 아기는 좀 경우가 다르지 않은가. 제 몸도 못 가누는 조그만 녀석을 막 그렇게 밖에 데리고 가도 되는 것인지 영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그런데 웬걸, 이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9월의 햇살도 즐기고, 바람이 얼굴에 닿으면 슬쩍슬쩍 웃기도 하고 그랬다. 아마 그런 모습들 덕에 ‘출근해도 문제 없겠군’ 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우리 딸은 지금까지 꽤 성공적으로 직장생활에 적응하는 듯 보인다. 사무실이라고 해서 집에서보다 특별히 더 떼를 쓰거나, 특별히 안 먹거나, 특별히 안 놀거나, 특별히 더 안 싸지 않으니까 말이다. 아니다. 오히려 우리 딸은 이 생활을 꽤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무실 책상 아래에서 번쩍번쩍 빛나고 있는 멀티탭을 향해 돌진하기도 하고, 전광석화와도 같이 곳곳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들을 떼어내기도 한다. 얼마나 신나게 노는지 회사에 다녀온 날이면 마치 진짜 일 마치고 돌아온 직장인마냥 늘어지게 잔다. 


아빠의 입장에서 딸의 직장생활이 가진 특장점 중 하나는 바로 ‘낯가림’ 문제다. 회사로 찾아오시는 여러 손님들을 보기도 하고, 엄마를 따라서 남산에도 가고, 규문에도 가고, 문탁네트워크에도 다니다 보니 확실히 낯가림이 적은 듯하다. 물론 그냥 자유롭게 풀어놓으면 금방 엄마에게 쿵쾅거리며 기어가지만(최근에 4족 보행술을 마스터해서 바닥을 밀고 다닐 때보다 시끄럽다), 그래도 낯선 사람을 보고 자지러지게 막 울거나 그러진 않는다. 마음에 드는 낯선 사람이라면 살짝 안겨 있기까지 한다! 너무 엄마에게 붙어 있으려고 한다거나, 너무 엄마에게 관심이 없다거나 한다면 문제겠지만, 지금 이 정도 수준이라면 딱 좋다! 아,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 아기는 엄마를 심하게 밝히는 편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엄마와 아빠가 있으면 대부분 엄마 쪽으로 간다. 아빠랑 더 많은 시간을 보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약간 섭섭하기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휴 다행이다’ 싶은 마음도 함께 든다. 음, 후자 쪽이 우세하다. 함께 있는 중에도 아빠한테만 매달린다면, 아빠의 멘탈은 진즉에 터져나갔을지도.




여전히 우리 딸은 어딘가에 의지해서야 겨우 선다. 말인즉, 스스로 서는 일도 남았고, 서서 걷는 일도 남아 있으며, 걷다가 뛰는 일도 남아 있다. 그리고, 혼자서 오래 걷는 법도 배워야 한다. 아빠가 지금 이 자리에서 보기에는 여전히 많은 날들이 남아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안다. 그 많은 날들의 끝에서 돌아보면 그 날들이 결코 ‘많은’ 게 아니었다는 걸 말이다. 어린 딸과 그녀의 엄마와 아빠가 함께 회사엘 가고, 우당탕 거리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 사이사이로 많은 이들의 애정이 흘러들어온다.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_ 아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