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출근과 퇴근의 소용돌이 속에서
“육퇴 아직도 못했어요 ㅠㅠ”
“육퇴 후 맥주 넘 꿀맛이에요!!!”
“육퇴 후 남편도 귀찮아요 ㅠ”
“오늘따라 퇴근하기 힘들었네요”
엄마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하소연들이다. 육퇴―육아 퇴근은 아기가 밤잠(통잠)에 들었다는 것을 말한다. 아기가 잠자리에 든 다음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엄마들의 간절함이 ‘육퇴’라는 말을 만들어 냈으리라.
연말이 되면서부터, 그러니까 딸이 7개월 후반부에 들어서면서부터 체력적으로 힘든 느낌이 여실히 든다. 하루는 퇴근 후에 계속 앉을 새도 없이 집안을 돌아다니며 치웠다가 아기를 안았다가 다시 집안일을 하다가 문득 ‘아니 근데 이 인간(아기아빠)은 뭘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어 옆을 보았다. 그랬더니 피곤에 찌든 아빠가 역시 아기 똥을 닦이고 기저귀를 채우기 위해 씨름하거나 이유식을 만들거나 설거지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엄마와 아빠 모두 허리를 펼 새도 없이 절로 나오는 ‘아이고’ 소리를 내며 쉴 틈 없이 구르고 있다.
아, 이래서 (육아)선배님들께서 아직 못 움직일 때가 좋을 때라고 하셨구나! 딸이 아직 이동능력을 갖추지 못했을 때만 해도, 이 정도로 엄마 아빠도 같이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아직 딸이 분유만 먹었을 때만 해도 이 정도로 신경 쓸 일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 모르겠다. 지난 일은 이미 겪었기 때문에 언제나 조금은 더 쉽게 느껴지는 건지도. 지금 일은 늘 막 겪고 있는 중이기에 더 힘들게 느껴지는 건지도. 하지만 분명한 건 엄마도 아빠도 ‘쉴 틈’이라는 것이 정말 전혀 없는 느낌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육아 퇴근이라니. 그런 게 있기는 한가 싶다. 물론 우리 딸은 대체로 통잠을 자고(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는 새벽에 계속 깨서 안아주어야 하지만;;),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저녁 8시 30분에서 9시 사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9시 정도면 우리 집은 육퇴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기가 잔다고 퇴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대체로 (육아)야근이 남아 있다. 다음 날 아기가 먹을 것들을 미리 준비해 놔야 한다거나 빨래를 개놓아야 한다거나 빨래를 널어야 한다거나 설거지를 해야 한다거나 설거지 한 그릇들을 정리해 놓아야 한다거나… 아무튼 할 일은 줄지어 있다. 드물게 일이 없거나 너무 피곤해 다음 날로 일을 미뤄 버리는 날은 역시 너무 피곤하기 때문에 아기가 잠들고 나면 나도 바로 잠자리에 든다.
그러니 집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져본 것은 내 기억으로는 출산 전이 마지막이다. 이런 엄마와 달리 아빠는 어떻게 해서든 아기가 잠든 후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 시간마저 없으면 버티기가 더 힘든 성정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직 (엄마보다) 젊어서인 것 같기도 하고, 아빠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엄마는 아기가 ‘앵’ 하고 울기만 해도 일어나고, 아침에 딸이 깨서 어떻게 움직여 보려고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나도 일어난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아빠나 엄마나 모두 야행성이라 참 잘 맞았는데, 이제 엄마는 ‘야행’이 뭔지도 잊어가는 처지가 되었고, 아빠는 아직도 안간힘을 쓰면서 ‘밤’을 지키려 하고 있다. 따라서 아침에 아기의 첫 기저귀를 갈고 밥을 먹이는 건 거의 엄마 일이다. 그러니까 육아 퇴근에 맞추어 육아 출근이라는 것이 있다면 엄마는 육아 출근을 한 뒤에 서둘러 일을 하고 다시 회사로 출근을 한다. 회사로 출근하는 시간이 엄마에게는 육아 퇴근인 셈이다. 또 회사에서 퇴근하면 엄마를 반기는 아기와 역시 엄마를 반기는 (휴식이 필요한) 아빠를 보며 두번째 육아 출근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출근’이라는 단어까지 써 놓고 보니, 육아가 빼도 박도 못하게 ‘노동’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글쎄, 육아는 노동일까? 노동이라면… 오늘날 노동은 신성하거나 가치 있는 무엇이라기보다는 적게 할수록 좋은 것이며 가능한 한 안 할수록 최고인 게 되어 가는데, 육아도 그런 것이 되어 버린 걸까. 물론 과한 말이라는 것을 안다. ‘육퇴’에 담긴 이른바 ‘독박육아’의 힘겨움, 자기 시간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옛날 사람이 되어 놔서 그런지, 나는 사실 ‘퇴근’한다는 말, “일터에서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다”는 말이 ‘육아’와 함께 쓰이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아이와 부모가 권리와 의무를 주고받는 계약관계가 되어 버린 세태가 ‘자기 시간을 갖고 싶다’는 표현을 ‘퇴근’이라는 단어와 연결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돌봄의 의무, 부양의 의무…. 아기의 탄생이 가져온 지극한 사랑의 마음, 그냥 모두 내주고 싶고 내 몸을 던져서라도 지키고 싶은 그 마음은 아기가 자라 아이가 되고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면서 어떻게 바뀌어 가기에 ‘의무’만이 앙상하게 남게 된 것일까. 우리는 그 마음을 어떻게 가꾸어야 하는지 잘 모른 채, 어어 하는 사이에 모든 게 화폐로 환산되는 시대에 마음도 내어주고 말아 버린 건 아닐까.
오늘도 ‘아이고’ 소리를 삼키며 허리를 굽혀, 잠든 딸을 이부자리에 누이고 다시 ‘으으’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허리를 펴며, 이걸로 오늘은 딸을 다시 안을 일 없이 딸이 푹 잠들기를, 이것이 성공적인(?) ‘육퇴’이기를 바라다가.... 엄마는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던 것이다.
_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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