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가림, 그리고 엄마와 아기의 신뢰 쌓기
“낯가림은 대개 생후 7~8개월쯤 되어서 심해지는데, 이것은 아이가 정신적으로 성장하여 친한 사람과 낯선 사람을 구별할 능력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 아이에게는 독립심도 필요하지만 항상 의지할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믿음 또한 필요합니다. 아이는 낯선 것을 접하면 우선 두려움을 느끼는데, 옆에 엄마가 있는 것을 알면 안심하고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보이면서 익숙해지는 일련의 심리적인 적응 과정을 거칩니다.”(하정훈, 『삐뽀삐뽀 119 소아과』, 유니책방, 2016, 399쪽)
딸은 잘 웃는 아기다. 신생아 때부터 배냇웃음을 꽤 잘 웃어서 신기했는데, 날이 갈수록 더 잘 웃었고, 거기다가 또 딸아이 웃음소리가 너무 좋다며 매일 작정하고 웃겨 주는 아빠가 있어서(어떤 때는 ‘저러다 애 넘어가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둘이 웃겨 주고 웃고 있다) 그런지 ‘꺄르르’ 소리 내서 웃는 일도 잦다. 아기가 잘 웃으니, 보는 분들마다 기분 좋아하시고,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어 또 참 좋고 감사했다.
그런데 때가 되자 딸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여전히 잘 웃는 편이긴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무장해제 웃음을 보이는 일은 없어진 것이다. 특히 공간도 낯선데, 낯선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약간 겁을 먹은 듯 눈이 처지고 입 주변이 삐죽거리다가 이내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낯가림이 생기는 것은 아기가 잘 발달하고 있다는 지표이기도 한 만큼 당연한 일이지만, 여느 아기들보다 훨씬 낯선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형편인지라(지금은 아기를 데리고 일주일에 한두 번 출근하지만 목표(!)는 나흘 출근이다!) 알면서도 좀 당황스러웠다. 아마 마음 한구석에서 애아빠나 나나 우리 아기가 낯을 잘 안 가리고 만나는 분들에게 잘 안기고 잘 웃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곰샘께서 그렇게 낯가리는 딸아이를 보시고 자기를 지킬 수 있게 된 거라고 하시는 말씀에 “아!” 하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낯선 사람과 익숙한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은 단지 ‘인지’가 발달했다는 것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발달은 자기를 지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아무나 쫓아가고 그러면 얼마나 걱정되겠냐.” 곰샘께서 덧붙이신 말씀이다.
더불어 낯가림은 부모와의 애착 형성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낯가림과 분리불안이 같이 가기 때문이다. 보통 애착은 ‘안정 애착’, ‘회피 애착’, ‘양면적 애착’ 등으로 나누는데, 육아 관련 프로그램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실험을 통해 각각의 유형을 알 수 있다. 엄마와 아기가 방에 함께 있다가 엄마가 나가고 낯선 사람이 들어왔을 때 아기들의 행동과 그 이후 다시 엄마가 돌아왔을 때 아기가 보이는 반응을 보는 실험이다. 간단히 말하면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한 아기는 낯선 환경에 처했을 때 두려운 반응을 보이지만 다시 엄마가 돌아오면 안심하고 주변을 다시 탐색하기 시작한다. 회피 애착의 경우는 아기가 엄마가 나가도 별 상관없이 놀고 낯선 사람에게도 친근하게 대하며 다시 돌아온 엄마에게도 무관심한 반응을 보인다. 양면적 애착은 아기가 엄마가 옆에 있는데도 낯선 상황에서는 주변을 탐색하지 않고, 엄마가 나가면 극심한 두려움과 고통을 느끼며 엄마가 돌아왔을 때도 안정을 잘 찾지 못하고 계속 울면서 몸부림을 치거나 엄마를 때리기도 한다.
아기와 안정적 애착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아기가 성장했을 때 타인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가 이 시기 애착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타인과 신뢰감을 형성하며 강박적이거나 두려움 없이 관계를 맺어가는 사람이 되는 첫걸음이 아기 때 주양육자와의 신뢰 형성에 있는 것이다.
내게는 ‘애착’의 방점이 ‘사랑’보다 ‘신뢰’에 있다는 것이 크게 와 닿았다. 아기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으리라(라고 쓰면서도 최근에 있었던 입에 담기조차 힘든 사건의 부모들이 떠오르지만… 그런 부모는 정말 극극극극소수일 거라 생각한다. 아니 믿고 싶다). 사랑을 일관된 표현으로 전하는 것이 중요한 건 그것이 ‘신뢰’를 형성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뢰. 이 한자말에는 믿는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의지하다’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의지처가 있기에 아기는 탐색에 나설 수가 있는 것이다. 아기가 자기의 누운 자리에서 벗어나 집 안을 탐색하고 집 밖으로 나서고 더 큰 세상으로 나서기 위해서는 온전히 믿고 의지할 곳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 신뢰가 아기를 성장하게 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하고, 그래서 나아가 타인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관계 맺기에 나서게 한다.
갓 9개월. 자기 팔다리를 활발히 움직여 집 안 여기저기를 (가끔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돌아다니는 딸은, 팔다리를 휘저어 움직여 가다가도 문득 멈추어서 엄마나 아빠를 바라보고 씩 웃은 후 다시 갈 길(?)을 간다. 그 모습이 어떤 때는 자기가 얼마나 잘 가는지 보라는 것 같고, 또 어떤 때는 엄마 아빠가 자기를 잘 지켜보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항상 딸에게 눈을 맞추고 말한다. “응, 엄마(아빠) 여기 있어. 아이구 우리 딸 너무 잘하네!”
나는 딸이 사랑할 수 있는 엄마보다 신뢰할 수 있는 엄마가 되기를 소망한다. 언제든 나를 믿고 세상에 나가고, 그 세상에서 설사 치이는 일이 있어도 “여기 있다”고 “잘한다”고 말해줄 든든한 의지처가 있기에 또 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 갈 수 있는 그런 여성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내면이 튼튼한 사람이 되어 딸을 만나는 사람들도 그녀 덕분에 편안하고 단단해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_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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