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스님,『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 도덕과 윤리는 종이 한장 차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삶의 기준은 없습니다. 각자에게 맞는 삶의 방식이 있을 뿐입니다. 이를테면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지만 혼자 평범하게 살다간 독각이라고 하는 수행자들이 있었다는 데서도 이것을 알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전제를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춰 충실하게 사는 게 중요합니다. 들뜨지 않고 담담하게 살 수 있다면 충분히 ‘잘 사는 것’입니다.
- 정화 스님,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2017, 북드라망, 96쪽
"왜 저는 타인의 반응에 무심할까요?"라는 질문에 답한 말씀이다. '타인의 반응'에 너무 민감한 것도 좋지 않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또는 못한다고 해서 그 때문에 마음을 괴롭히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다. '좋은 일', 그렇다. 사실 도덕과 윤리는 바로 거기서 갈라진다. 도덕은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는다. 그것은 '마땅한 일'이다. 반면에 윤리는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에서 좋은 것으로 향하는 것이다.
여기서 '좋은 것'이 어떤 쾌락이나 탐욕의 실현은 아니다. 극단적으로 쾌락을 쫓거나, 탐욕을 실현하려고 하면 그 끝에 있는 것, 아니 그 과정 속에서도 자신에게 좋을 수가 없다. 선인들이 가르치는 내용은 항상 그와 같다. 욕심을 실현시키려고 하지 말고, 욕심을 줄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면 '좋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분명히 좋은 미덕이지만, 그 때문에 마음이 괴롭고 그 때문에 번뇌에 사로잡힌다면 차라리 그러하지 않는 편이 낫다. '형편에 맞게' 행하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하다. 문제는 대체로 자신의 '형편'이 어떠한지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데 있다. 너무 과소하게 평가하거나, 너무 과대하게 평가한다. 그러므로, '담담한 마음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지도 모른다. 그래야만 제 '형편'을 그대로 볼 수 있으니까.
다만 주의할 점이 한가지 있는 듯 하다. 그건 정말 단순하고도 어려운 일인데, 다름 아니라 단번에 번뇌를 떨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건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대개의 경우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들은 한번에 되지 않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느끼곤 한다. 그러고는 '이 방법은 아닌 것 같아'하며 속단하기도 쉽다. 그러니까 '실패' 앞에서도 담담해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나 싶다. 들떠서 새 방편을 찾는 것과, 담담하게 찾는 것은 분명 다른 것이니까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담담'해지기 시작하면, 좋은 삶은 알아서 온다는 것이다. 본래 삶의 여러 문제들은 밖에서 오기보다는 안에서 생기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담담하게 살 수 있다면 충분히 잘 사는 것'이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 정화 지음/북드라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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