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백수 자립에 관한 한 보고서』
- 세상은 무너지고, 내 인생은…
공식적인 청년백수의 수는 대략 100만. 여기에 취준생, 단기 취업자, 알바생 등 잠재적 청년백수들까지 합하면 그 숫자조차 가능하기가 어려운 시대. 이제는 누구나 다 안다. 이 숫자를 줄일 방법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이것이 놀랍도록 절망적인 소식도 아니라는 것을. 그만큼 백수가 익숙한 존재로 우리 일상 안에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비단 청년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중년백수, 노년백수들도 넘쳐난다. 태반이 백수로 살아가는 시대. 이게 우리의 현주소다.
- 류시성·송혜경 외 13인의 청년백수 지음, 『청년백수 자립에 관한 한 보고서』, 머리말, 2016, 북드라망
새해가 밝았다. 그러고도 열흘이 지났는데, 여전히 새해가 그렇게 ‘밝’은지 모르겠다. 굳이 말하자면, ‘밝다’고 믿고 싶은 마음이 큰 것이리라.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대통령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고, 정책이 바뀐다 한들, 내 인생이 바뀔까 싶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대통령도, 정권도, 정책도 아닌 ‘내 인생’이다. 아마, 아주 약간은 바뀔지도 모르겠다. 새 정부가 일을 엄청 잘해서 ‘소득주도성장’이 우리 사회에도 제대로 자리를 잡고, 주머니가 두둑해진 사람들이 ‘이제 좀 넉넉해졌으니 책도 사볼까’해가지고, 책도 막 잘 팔리고 그런 일이 생기면……(흐뭇), 하지만 이 ‘위기’ 이전에도 그렇게까지 잘 팔린 적이 없는 책이 잘 팔릴 리가 있겠나.(껄걸)
뭐 여하튼, 문제가 되는 것은 ‘내 인생’인데, 세상에는 ‘내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한 그런 ‘내 인생’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이 책 『청년백수에 관한 한 보고서』는 바로 그런 (답답한) ‘인생’들에 관한 책이다. 사실, 나에게 ‘책’이란 (어느 유명한 철학 연구자의 인터뷰에서 본 것처럼)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 같은 것이다. 말하자면, 인생의 답답함에 관한 토로 같은 것이 아니라,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뭐랄까 복잡한 사고 끝에 나온 ‘주장’을 담은 것이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책에 대한 오래된 관념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딱히 신뢰할 만한 주장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며, 치밀한 사유를 전개하는 것도 아닌데다가, 그렇다고 딱히 희망적이랄까 그런 것도 아니다. 차라리 이것은 어떤 생존기, 혹은 서바이벌 게임에 관한 기록 같은 것이다. 돈이 없어서 죽느냐 사느냐 그런 차원이 아니라, 내가 ‘인간’이 되느냐 마느냐의 차원에서 말이다.
다시 한번 ‘내 인생’에 대해서 생각한다. 10대 때에는 (사실 IMF 이전이라고 나을 것도 없었지만) IMF를 맞아 전전긍긍하던 부모님을 보며 대학을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더랬다. 그 다음에는 등록금 때문에 전전긍긍, 그 다음에는 그 모든 ‘교육’, ‘주거’, ‘생활’ 덕에 쌓인 빚을 갚느라 전전긍긍 중이다. 물론 재미있게도 그 사이에 꾸준히 버는 돈이 조금씩이나마 늘기는 했다. 그렇게 소득이 늘면서 인생이 나아졌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버는 돈과 상관없이 쓰기도 많이 썼고, 한 시절 잘 즐기기도 했으니 말이다. 지금도 솔직히 말하면 아무도 모르게 꽁돈 1억원쯤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하다. 여전히 인간이 덜 된 탓이리라.
그러니까, 수입이 엄청나게 늘더라도 내가 더 나은 인간, 혹은 ‘자립적인 인간’이 되리라 생각하기가 어렵다. 아마 수입이 늘어난 그대로 지금과 똑같은 인간으로 살지 않겠나 싶다. 다행스럽게도 수입이 그렇게 늘어날 일이 없을 듯하다. 요즘 분위기로 봐서는 안 망하면 다행이지 싶을 정도니까. 그 와중에 그 찬란한 ‘희망’이라도 있냐 하면 그것도 없다. 말하자면, ‘내 인생’의 차원에서는 다른 솔루션이 절실히 필요한 때가 아닌가?
요즘 들어서, 이 ‘불안감’을 조금 어떻게 해볼 마음에 무려 ‘경제학’ 공부를 좀 해보고 있다. 시대적 격변기에 한몫 잡아볼까 하는 마음이 아주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어쩐지 ‘경제학’을 공부하면 ‘찬스’가 눈에 더 잘 띄지 않을까 싶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역시 ‘공부’는 그런 것과 상관이 없다. 애덤 스미스라든가, 리카도, 폴라니 같은 양반이 ‘투자의 적기’ 같은 것을 알려줄 리가 있겠나. 차라리 이 공부가 유도하는 변화는 ‘내 인생’과 ‘내 세계’를 객관화하는 태도를 길러주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다른 말로 하자면, ‘중심’이 조금 더 단단해 지는 느낌도 들고 말이다. 아, 『청년백수 자립에 관한 한 보고서』의 모태가 되었던 ‘공자 프로젝트’의 핵심이 바로 그것이었다. ‘공부로 자립하기’. 다만 ‘마음이 편안해 진다’ 하는 ‘정신승리적 문제’가 아니라, ‘무너지는 세상’ 앞에서 공포에 짓눌리지 않고 말 그대로 ‘자립적 인간’으로 생존하는 법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세상이 ‘무너지는 일’은 도저히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까. 그게 무너지든 말든(뭐 안 무너지게 노력은 해야겠지만) 일단 ‘내 인생’을 ‘인생’답게 건사하는 법을 익히는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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