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이 병이 되는 이유
학교를 졸업하고 간간히 알바를 할 때, 내 몸은 나른하거나 밤샘에 찌들어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일하지 않을 때는 대부분 잠을 자거나 깨어 있어도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잠을 아무리 자도 늘 기운이 없었으며 힘든 일도 하지 않았는데 피곤하단 말을 달고 살았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일이 생기면 무조건 일을 했다. 늦은 밤 일이 끝나야 겨우 김밥천국에서 해장국으로 배를 채우는 등 식생활이 불규칙했다.
잘 먹고 푹 자는데 몸은 늘 무겁고 피곤했다. 왜 그런 걸까? 딱히 몸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랫동안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동의보감』을 보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가해도 병이 생긴다
구선이 말했다. “사람에게 나른해지는 병이 까닭 없이 발생하는 것이 있으니 반드시 무겁거나 가벼운 것을 가지고 종일 바쁘게 다닌 데서만 오지 않는다. 오직 한가한 사람에게 이 병이 많이 생긴다. 대개 한가하고 편안한 사람은 흔히 운동을 하지 않으며 배불리 먹고 앉아 있거나 잠이나 자기 때문에 경락이 잘 통하지 않고 혈맥이 응체되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귀인의 얼굴은 즐거운 듯 하나 마음은 괴롭고 천한 사람의 마음속은 한가하나 얼굴은 고통스러워 보인다.” (『동의보감』, 법인문화사, 251쪽)
구선은 온종일 일을 하는 것도 병을 일으키지만 몸을 쓰지 않는 것도 병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누적 된 피로 등으로 병이 생긴다는 건 이해가 간다. 그런데 몸을 혹사시키지 않고 편안하고 한가롭게 지내는 데 어째서 병으로 연결된다는 걸까.
구선이 말한 나른해지는 병은 『동의보감』에서 혈의 응체, 즉 혈의 운행을 주관하는 기(氣)의 문제이다. 인체는 이 기의 운동(氣機)으로 이루어지며 혈의 운행과 생성도 기기에 따른다. 기는 승(升)·강(降)·출(出)·입(入)이라는 운동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한다. 호흡을 할 때 청기를 흡입하고 탁기를 내보내는 출입(出入) 운동, 하초에 위치한 신(腎)에서 화생된 원기(元氣)를 전신으로 산포하고 납기 작용을 통해 폐가 들이마신 청기를 단전으로 내리는 승강(升降)운동, 비위(脾胃)에서 음식물을 소화해 생성한 정미물질을 폐로 보내고 찌꺼기는 장과 방광으로 보내는 승강운동 등이 그것이다. 장부의 생리 활동도 기의 승강·출입 운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기기의 운동은 기의 변화·운동하는 특성에서 비롯된다. 때문에 기가 정체되면 이 기의 승강출입 운동의 균형이 깨지게 된다. 흘러야 하는 기가 정체된 것. 이를 “기기실조(氣機失調)”라 한다. 그 중에 나른해지는 병은 혈맥의 “기기가 원활하지 않거나 지체되어 소통되지 않는 상태”(『기초한의학』, 전통의학연구소, 성보사, 260쪽), 기체(氣滯)를 가리킨다. 구선이 말한 한가한 사람이란 기가 원활하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배불리 먹고 앉아 있거나 잠을 자는 등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당장은 몸이 편안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비위에서의 승강출입 운동은 실조된다. 우리 몸은 기기의 승강출입 운동의 도움을 받아 음식을 소화 흡수하고 이를 통해 살아간다. 위에서 음식물을 영양물질과 찌꺼기로 전화하여 그 정미물질은 다시 위기(胃氣)에 의해 비(脾)로 올려 보내진다. 비에서 이를 산포하여 폐로 보내면 수도를 소통·조절하는 폐에서 청기와 합쳐져 찌꺼기는 방광으로 보내고 진액은 전신에 고루 퍼트려 오장의 경맥(기가 흐르는 통로)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동시에 기는 진액·혈의 운반 뿐 아니라 비·위·장·심·폐 등 장부기(臟腑氣)의 작용을 통한 기화(氣化)작용을 통해 진액과 혈을 생산해내는 데 기력이 약한 사람이 혈색이 없는 것은 기가 부족해 혈을 생성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가 혈을 생성·운반하고 영양을 공급하는 작용을 하고 혈은 기의 매개체가 되어 상호 전화·의존하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구선이 경락과 혈의 응체를 말할 때 이는 기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음을 지적한 것이다.
경락이 잘 통하지 않고 혈맥이 응체되는 이유는 몸의 기운은 빠지지만 이것이 제대로 채워지지 않고 기력이 없어 기가 돌지 않기 때문에 기운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곧 혈의 생성·운행에 영향을 미치고 혈의 응체를 야기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움직이지 않는 것 자체가 기혈의 소통을 막아 병을 만드는 것이다. 무기력하고 피곤함을 느끼는 건 단순히 잘 먹고 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감정도 흐르게 하라
구선이 말했듯이 ‘귀인의 얼굴은 즐거운 듯 하나 마음은 괴롭다’는 말은 기운의 정체라는 차원에서 감정의 뭉침을 말한다. 감정이 뭉치는 것도 기혈이 흐르지 못하는 것과 관련되는 것이다. 귀인의 얼굴은 한가한 듯 하나 마음은 괴로운 것은 이 감정이 쌓이기 때문이다. 천한 사람은 몸을 많이 움직이니 고통스러운 것 같지만 마음속엔 감정이 쌓일 여가가 없다. 그러니 겉은 고통스러워 보이나 마음은 한가하다고 말한 것이다.
몸을 쓰지 않는 현대인들은 얼굴은 즐거운 듯 보이나 마음은 괴로운 상황에 많이 노출되어 있을 거다. 그래서 작은 일에 쉽게 삐지고 심하면 우울증에 정신병원에 노출되는 지도 모르겠다. 나도 감정을 조절하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것이 기의 소통의 문제이기에 나는 등산과 108배로 기를 순환시키고 있다. 불규칙적인 리듬이 몸의 항상성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규칙적인 리듬을 타려고 노력중이다.
정리하자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는 것. 몸은 기의 흐름의 변화 속에 있기에 기가 잘 흐르게 하는 리듬을 타는 게 중요하다. 몸이 피곤하다고 무조건 쉬는 게 아니라 기가 잘 흐르게 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몸이 보내는 신호를 보아야 한다. 몸이 처지고 답답하다는 것은 당장 누으라는 뜻이 아니라 내 몸의 기운이 막혀있다는 신호이다. 이 신호를 잘 살펴서 몸을 움직이기만 하면 이로써 기운은 막히지 않고 흐르게 될 것이다.
강지영(기탄동감 세미나)
'출발! 인문의역학! ▽ > 기탄동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운명을 여는 힘, 호흡 (0) | 2016.12.08 |
---|---|
밥의 소박한 건강 (1) | 2016.11.10 |
정(精)을 통해 익히는 삶의 윤리 (0) | 2016.10.27 |
십병구담 - 열가지 병 중 아홉가지는 '담' 때문! (0) | 2016.10.13 |
"단 것을 많이 먹으면 머리가 아프고, 모발이 빠진다" - 맛의 균형을 찾는 양생법 (0) | 2016.09.29 |
[기탄동감]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을까? 동의보감이 알려주는 '바뀌는 방법' (0) | 2016.09.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