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의 소박한 건강
8년 전 부천의 10평짜리 가게에서 건강식품을 팔았다. ‘건강을 지켜야 한다’, '건강하기 위해 병을 막아야 한다', ‘유기농 인증을 받은 식품을 먹어야 건강하다’. 손님들에게 건강과 음식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말했다.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할수록 건강해지고 싶은 욕망이 커졌다. 나에게 건강은 병이 없는 상태였다. 병으로 육체와 정신이 무기력해진다고 생각했고 통증도 피하고 싶었다. 일하고 공부하고 여행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등 원하는 걸 하는데 몸이 장애가 되지 않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건강식을 먹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책과 인터넷의 정보로 건강한 음식에 대한 정답을 찾았다. 친환경 음식을 챙겨먹기 시작했다. 식품첨가물과 육고기를 식사에서 최대한 배제했고 커피, 빵, 과자와 같이 건강에 안 좋다고 생각되는 음식을 줄이려고 애썼다. 식생활을 바꾸니 몸 컨디션이 좋아진다고 느꼈다. 건강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는 음식들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니 그런 음식에 대한 집착이 생겨났다. 외식을 할 때면 고춧가루의 원산지나 두부의 GMO여부가 의심스러웠다. 과자, 빵, 커피처럼 먹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음식을 먹게 되면 죄책감이 생겼다. 이렇게 먹으면 병이 생길까 걱정되었다. 오랫동안 음식을 가려먹다가 주변을 돌아보니 건강식을 먹어도 병에 걸리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건강을 지키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건강하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다. 그런데 왜 나는 건강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건강에 대한 상이 잘못된 건 아닐까? 『동의보감』, 「내경편」 상고천진론(천하의 진실을 논함) 속 성인의 말씀에서 그 답을 찾아본다.
편안한 마음이 중요하다
皆謂之虛邪賊風 避之有時 恬憺虛無 眞氣從之 精神內守 病安從來?
“허사적풍(虛邪賊風)은 그것을 피하는데 때가 있으니 마음을 편히 가지고 욕심 부리지 않으면 진기(眞氣)가 따라온다. 정과 신이 안에서 지킬 것이니 병이 어디에서 오겠는가?”
허사적풍은 병을 일으킬 수 있는 외부의 기운이다. 허사(虛邪)는 몸이 허약한 틈을 타서 침범하여 병을 일으키는 기운이다. 적풍(賊風)은 계절의 이상 기후이다. 적풍을 만난 몸이 균형을 잃으면 병이 된다. 허사적풍을 맞았다고 해서 항상 병에 걸리는 게 아니라는 게 생각해봐야할 지점이다.
우리 몸의 생명력, 진기(眞氣)가 충만하면 허사적풍을 만나도 우리는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진기는 선천으로 받기도 하고 호흡과 곡기가 합해져 후천으로 만들기도 한다. 진기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건 편안한 마음, 욕심 부리지 않는 마음이다. 감정이 요동치면 기 흐름이 순조롭지 않게 된다. ‘성내면 기가 올라가고 기뻐하면 기가 늘어진다. 슬퍼하면 기가 가라앉고 두려워하면 기가 내려간다.’ (<동의보감> 「내경편」) 마음이 안정되어야 기가 순조로워지고 기가 순조로울 때 음식과 호흡이 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나는 그동안 병에 대한 두려움, 건강식만 고집했던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먹은 음식은 진기로 충분히 생성되지 않는다. 허사적풍이 찾아왔을 때 진기가 부족한 몸은 쉽게 균형을 잃고 병에 걸린다. 건강을 지키겠다고 분주하게 노력했지만 병에 걸리기 쉬운 신체를 가지게 되는 셈이다. 이런 나에게 동의보감이 말해준 건 욕심을 버리라는 거다.
욕심을 버리면 두려움이 없어진다
是以志閑而少慾 心安而不懼
이런 까닭에 뜻(志)이 한가하면 욕심(慾)이 적어지고 마음이 안정되면 두려움이 없게 된다.
나는 그동안 ‘완벽한 건강 상태’라는 걸 꿈꿔왔었다. 병이란 외부의 나쁜 기운이 내 몸에 침입한 것이니까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동의보감』을 공부하다보니 병은 내 몸이 균형을 잃은 상태이고, 내 감정과 일상이 어긋난 데서 비롯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한 ‘병이 없는 완벽한 건강’이 있는 게 아니라 ‘한때 삐끗해서 허약해졌어도 기운을 조절하면서 살아가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병과 건강에 대한 대립적 시각을 버리고 다시 생각해보자. 병이 없다고 자만하며 절제하지 않고 산다면 그 건강이 병의 원인이 된다. 병이 불균형한 생활을 자각하고 변화할 수 있다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나는 우울증을 앓은 다음에야 지금의 생활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팠기 때문에 폭음 폭식을 멈출 수 있었고 욕심을 절제하는 삶의 방식을 배워나가고 있다. 건강은 지켜내야 할 완벽한 목적지가 아니다. 완벽한 건강이라는 허상에 매달렸던 욕심을 내려놓으니 두려움과 불안도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소박한 음식을 달게 먹는다
나는 건강식에 대한 정답을 정해 놓았고 거기에 어긋난 건 모두 나쁜 식사였다. 그런 생각에 빠져 있었으니 두려움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두려움이 생기게 하는 식습관에서 어떤 음식도 건강식이 될 수 없다.
故美其食 任其服 樂其俗 高下不相慕 其民故曰朴
따라서 그 먹는 음식(=자기가 먹는 음식)을 맛있게(美=달게甘) 먹고 어떤 옷이든 편안하게 입으며 자기가 사는 방식을 즐기고 직위가 높고 낮음을 서로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백성은 자연히 소박해지는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음식이 다시 보였다. 음식은 나를 살게 하는 양분이다. 오늘 생각하고 컴퓨터 앞에서 이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에너지를 만든 건 내가 먹은 음식들이다. 진기를 만드는 음식은 소박하다. 호흡과 곡식의 기운이 후천의 진기를 만든다. 편안한 마음으로 밥을 먹을 때 진기가 생성된다. 그 기운을 잘 쓸 수 있다면 그게 건강식이다. 눈앞에 있는 사람들과 마음 편히 먹는 밥이면 나는 오늘 충분히 건강하다.
고은미(기탄동감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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