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뉴욕과 올리버 색스 ① : ‘아프고 웃긴’ 뉴욕의 신경의사


세상의 구멍, ‘웃픈’ 이야기로 채우다

: 뉴욕과 올리버 색스




작년 여름, 플랫아이런빌딩 앞 공원에 앉아 있다가 한 남자를 보았다. 그는 다리를 덜덜 떨면서 허공에서 드럼스틱을 두드리고 있었다. 공원에는 나와 남자만 앉아 있었다. 이름만 공원이지 사실은 세 개의 도로(25번 스트리트, 5번 에비뉴, 브로드웨이)가 교차하면서 붕 뜨게 된 자투리 공간이었다. (양쪽으로 차가 끊임없이 지나가는데, 역설적으로 공간 자체는 무관심에 방치되어 있다.) 남자가 하도 이상하게 행동하기에,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척하면서 곁눈질로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 남자가 이해불가한 말을 외치는 게 아닌가. "이 미친 뉴욕은 내 지랄 맞은 음악보다 더 구려(This crazy city is worse than my f***ing music)!" 헉. 나는 뜨악, 입을 벌렸다.


This crazy city is worse than my f***ing music! 두구두구두구다다당!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는 계속 평온하게 ‘에어 드럼’을 연주했고, 뉴욕은 계속 평온하게 흘러갔다. 마치 남자와 남자가 앉아 있던 공원 전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 뉴욕의 구멍, 뉴요커의 유머


이때부터였다. 내가 뉴욕의 기인(奇人)을 관찰하기 시작한 것은. 그랜드센트럴 기차역에서 이마에 흰 페인트를 칠하고 북한의 위협에 대해 지껄였던 샐러리맨. 지하철 노약자석에서 유모차를 끌고 있다가 천장을 향해 벼락처럼 욕을 퍼부었던 아줌마. 건물 천막 아래 으슥한 곳에서 갑자기 튀어나와서 지팡이로 행인을 놀래던 할아버지. 왼팔에 구찌 핸드백을 차고 오른팔로는 아이들이 굶고 있다고 구걸하던 여자. 브라이언트 공원에서 내 빨간 담요를 훔치더니 슈퍼맨처럼 어깨에 두르고 뱅뱅 돌던 아저씨. 과장하지 말라고? 아니다. 진짜로 보았다. 보려고 할수록 점점 더 많이 보였을 뿐이다.


이렇게나 버라이어티 하지만, 이들은 ‘뉴욕’이란 가시적인 무대에서는 늘 빠져 있다. 책 『뉴욕 사람들(Humans of New York, 한국어판 제목은 『휴먼스 오브 뉴욕』)』은 출판되어도 <뉴욕 기인들(Odds of New York)>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들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서도 잘 보이지 않는다. 뉴욕 생활자들도 이들을 보면 보지 않은 척 지나간다. 위험하기 때문인 걸까? 여하튼, 이들의 자리는 도려내어진 ‘구멍’ 같다. 내가 첫 기인을 틈새 공원에서 마주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뉴욕인들의 반응이 수상하다. 못 본 척 하면서도, 꼭 한 마디 던진다. “뭐, 여기는 뉴욕이니까(Well, this is New York).” 이 말은 의미심장하다. 뉴욕에는 원래 이상한 사람이 많다는 뜻이 될 수도 있고, 옆 사람의 발작적 행동처럼 위험에 노출되는 게 당연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괴상망측한 행동을 하는 사람 중에는 신경증환자가 많다고 한다. 뇌에서 특정 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생기면 사람은 특정 행동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뉴욕은 신경증에 걸리기 딱 좋은 도시라는 뜻도 되지 않을까?


누구도 공개적으로 이런 질문을 묻지 않지만, 여기에 대한 잠정적인 대답은 ‘그렇다’이다. 뉴욕은 이상하고도 위험한 곳이다. 뉴욕 전체의 위험에 비하면 ‘기인’의 위협은 별 것 아니다. 뉴욕의 가장 큰 위협은 시카고처럼 갱단도 아니고 시리아처럼 테러집단도 아니다. 바로 ‘일상 유지’다. 여기서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건 숱한 위험을 가로지르는 것이다. 언제 가스 폭발이 일어날지 모를 낡은 아파트에 살아야 하고, 아침마다 사고가 끊이지 않는 백 년 된 지하철을 타야하며, 내년에는 살인적인 집값 때문에 (더 낡은) 슬럼가로 밀려날지도 모른다. 외부인이 매 초마다 유입되어서 사람을 믿기도 힘들고, 다문화는 고스란히 ‘다편견’이 되어 봉변을 일으킨다. 설상가상으로 자본의 속도는 세상에서 가장 빠르다. 이 속도에 맞춰 살아가려면 몸이 부서져라 일해야 한다. 이런 마당에 매스미디어에서는 뉴욕에 대한 온갖 환상적인 이미지를 뿌려대니, 이 얼마나 이상한가. 표상과 일상의 간극이 가장 큰 장소가 뉴욕이다. 의사의 시선에서는 뉴욕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정신줄’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고로, 신경증환자가 문제가 아니다. 뉴욕의 진정한 ‘구멍’은 모두가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 하는 도시 자체의 위협이다. ‘미친 사람’은 존재 자체로 위험이다. 하지만 ‘일반 사람’은 이들을 통해 또 다른 위험을 상기한다. 자신도 언제든지 이렇게 병들 수 있다는 것을. 이 미친 도시에서 미치지 않고 살아가기가 더 힘들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이곳에서는 병보다는 생의 의지가 느껴진다. 어째서일까? 매스미디어의 눈속임 때문만은 아니다. 논문 「“오직 뉴욕에서만”: 뉴욕 경험의 서사」는 참신한 주장을 내세운다. 뉴욕이 특별한 까닭은 이야기 스타일 때문이다. 뉴욕 사람들은 끔찍한 소재를 가지고 유머를 구사하는데 선수들이라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책 읽는 여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노숙자 할아버지가 알고 보니 그 책의 작가였다던가, 빌려줄 아파트가 없다는 중국인 집주인을 상대로 인종차별 하지 말라고 안 되는 중국어로 열심히 싸웠는데 정작 그 사람은 아파트 주인이 아니었다던가, 주중에는 정신 사나운 틱 환자인데 주말에는 전설의 재즈 드러머로 변신한다던가……. 이런 ‘웃픈(웃기고 슬픈)’ 이야기가 바로 ‘뉴욕 레전드’다. 이야기 속에는 분명 위험(타인, 인종차별, 신경증)이 전제되어 있지만, 이 위험 요소가 일상과 부딪히면서 빚어내는 예측불가 사건이 웃음을 끌어낸다. “일상의 고역에서 유머를 찾는 행동이 구술자를 ‘희생자’에서 ‘생존자’로 변신시킨다. 사람들은 시사한다. ‘그래, 나는 두려웠고, 곤란했고, 짜증났으며, 위협 당했지. 하지만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살아남았어!’”[각주:1] 이처럼, ‘구멍’은 이야기를 통해 삶에 연결된다. 위험 요소에 서사를 입히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대신 ‘그 다음’이 궁금해진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자, 삶의 의지다.


이 기술을 뉴욕에 와서 익힌 것일까? 아니면 태생부터 이 능력을 갖췄다가 우연히 뉴욕에 닿은 것일까? 모터사이클 라이더로서 오 년 간 미 서부를 떠돌다가, 홀연히 뉴욕으로 건너와서 오십 년 동안 의사-이야기꾼이 된 영국인이 있다. 뉴욕이라는 장소에 애착이 없다면서 시민증 대신 굳이 ‘외국인 거류증’을 고집하더니, 결국 죽을 때까지 뉴욕을 떠나지 못했다. 왜? 뉴욕처럼 “다양하고 방대한 신경계 환자 인구가 있는 곳이어야”[각주:2]  재미나기 때문이란다. 신경증환자의 병을 유머러스하게 ‘웃픈(웃기고 아픈)’ 이야기로 채워준 사람. 올리버 색스다.



❙ ‘아프고 웃긴’ 뉴욕의 신경의사


1965년, 30대 초반의 영국인 신경의사가 뉴욕에 왔다. 아니, 아직 의사는 아니었고 ‘의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해야겠다. 그는 직업의식으로나 생활 태도로나 ‘풋내기’였다. 그가 사랑했던 캘리포니아의 벌판을 떠나 무작정 뉴욕으로 건너온 까닭은 오직 한 가지였다. 전환점. “고생스럽더라도 진짜 삶이 있는 곳, 일에 나를 바칠 수 있는 곳, 그러면서 진짜 나, 내 안의 참 목소리를 찾을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각주:3]  하지만 그는 뉴욕에서 거꾸로 삶의 밑바닥으로 추락한다. 마약중독자가 된 것이다. 동성애자로서 이성애자 룸메이트를 짝사랑했다가 호되게 차인 후 마약에 손을 댔는데, 뉴욕에 와서는 외로워서 복용량을 더 높여버린 게 화근이었다. 이 즈음 되면 이자가 의사인지 환자인지 알 수가 없다!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1933~2015), 젊은 시절 그의 바이크와 함께.


올리버 색스가 쓴 자서전 『온 더 무브』를 읽어보면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 사람,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한두 번 드는 게 아니다. 명색이 의사이건만 끊임없이 병원 신세를 진다. 여행과 운동을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서 사고를 일부러 찾아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수영하다가 파도에 휩쓸려 어깨 근육이 파열되고, 모터사이클 브레이크가 고장 나서 가스가 떨어질 때까지 달리고, 역도를 무리해서 연습하다가 허리를 삐끗하고, 산을 타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다리뼈가 산산이 부서진다. 이런 역경(?)을 통해 건장한 남성의 신체를 가지게 되었으나, 사실은 정말 건강한 것도 아니었다. 앓았던 병은 또 엄청 많다. 안면인식장애, 난청, 약간의 분열증이 있었다. 게다가 마약을 했다. 마약을 끊기로 결심한 뒤로는 정신과상담도 다녔다. 그렇지만 『온 더 무브』에는 이런 건강 문제가 전면에 등장한 적이 없다. 아메리카 전국일주를 떠난 이야기를 열심히 설명하다가, 한 200쪽 지나니까 ‘나는 원래 안면인식장애가 있어서……’라는 식의 언급이 나와 독자를 뜨악하게 만든다.


이 못 말리는 청년 의사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스무 살에 대학에 들어가면서 서른두 살에 뉴욕에 정착하기까지, 그를 추동했던 욕망은 ‘몸의 실험’이었다. 내 몸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가, 내 몸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가. 이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면 아픈 것이나 마약 중독쯤은 대수도 아니었다. 이 충동 뒤에는 ‘동성애’라는 “수치스러운 질병”[각주:4]이 숨어 있었다. 색스는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보았던 1930년대 잉글랜드에서 태어났고,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성적 취향을 온몸으로 긍정해본 적이 없었다. 성격도 소심해서 게이바에서조차 쉽게 인연을 만나지도 못했다. 색스는 자신의 몸을 얽어맨 일종의 소통 불능 상태를 모터사이클 여행과 새로운 사람과의 친분으로 ‘격하게’ 해소했던 셈이다.


여기까지 보면 ‘아픈 의사’다. 색스가 ‘웃긴 의사’로 훈련받은 것은 뉴욕에서였다. 마약에 찌들어 있는데, 어느 순간 마약이 속삭였다고 한다. “올리버, 너 살아서 내년에도 새해 첫날을 맞이하고 싶다면 도움을 받아야 돼.”[각주:5] 무의식에 남아 있던 의사 본능이었을까? 색스는 정신분석 전문가를 찾아갔다.


정신분열증을 앓는 마이클 형을 생각하면서 셴골드에게 나도 정신분열증이냐고 물었다.

“아닙니다.” 셰골드가 대답했다.

또 물었다. 그러면 “단순한 신경과민인가요?”

“아닙니다.” 셰골드가 대답했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우리는 이 문제를 거기에서 내려놨고, 지난 49년 동안 거기 그대로 놔두었다.

- 같은 책, 186쪽


이 순간, 색스에게 빛이 보인다. 그렇다. 문제를 “거기 그대로 놔두어야” 한다. 병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매뉴얼화된 해결책을 찾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문제가 삶의 나머지 부분과 어떻게 관계해서 벌어졌는지, 그 이야기를 더듬어야 한다. 병명, 처방전, “말로 표현된 것, 의식에 드러난 것 너머의 무언가에 귀 기울이는 법”[각주:6]을 치열하게 배워야 한다. 핵심은 병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병을 가진 채로 계속 살아가는 것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니까.



이때부터 뉴욕 신경의사 색스의 삶이 시작된다. 그는 연구의에서 일반의로 위치를 바꾸고, 병동에서 하루 18시간 씩 일하기 시작한다. 병원 근처에 아파트를 얻고 환자들이 언제든 자신을 방문할 수 있도록 했다. 그는 환자에게 배웠다. 모든 병에는 서사가 있고, 또 병은 환자의 인생에서 서사를 끄집어내는 귀중한 징표이기도 하다. 그래서 똑같은 병을 앓는 환자라도 병을 앓기까지의 또 앓고 난 후의 이야기는 전혀 똑같지 않다. 게다가, 병례사는 가장 특수한 사례에서 시작해 가장 보편적인 메시지로 나아갈 수 있는 특별한 이야기다. 병을 품은 삶이 보여주는 역동성은 결과가 비극이든 희극이든 언제나 경이로우며, 생사(生死)의 철학적 문제까지 도달하기 때문이다. 색스는 이들의 이야기를 흠뻑 빠져들고, 생생한 글쓰기로 옮겨내어 마침내 책으로 출판하기에 이른다.


치료에서 저술까지. 색스에게는 이 활동이 아픔이라는 원초적인 비극에서 철학적인 유머로 넘어가는 훈련이다. 뜻 깊은 유머는 최소 두 가지가 충족되어야 한다. 출구가 없어보이는 상황을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비틀 것. 그렇게 비틂으로써 ‘그래도 살아갈 길은 있다’는 메시지를 던질 것. 인간은 모두 죽는다. 영원히 계속되는 이야기는 없다. 병에 걸리든 걸리지 않든, 결국 우리는 죽음에 도달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무언가를 선택할 자유를 짊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이왕 ‘계속 사는’ 것, ‘가볍게’ 가는 게 좋지 않겠는가? 수천 명의 이야기 속에서, 그리고 그들과의 우정 속에서 색스는 이 가벼움을 얻는다. 편안한 유머감각이가 생긴 것이다! 뉴욕에 온 순간부터 섹스를 35년 동안이나 못 해봤다고 킬킬대고, 기억상실증 환자가 자꾸 자기 얼굴을 까먹는 것을 보며 웃음을 터뜨리고, 신경증 약물 부작용으로 걷기 힘들어진 환자와 다정하게 식물원에 동행한다. 아파하는 환자와 수십 명씩 대화하면서도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는다.


참, 유머는 얻기 힘든 덕목 아닌가? 유머의 진가는 색스의 ‘절친’인 시인 톰 건(색스의 자서전 제목 ‘온 더 무브’는 톰 건의 시 제목이기도 하다)이 그의 책에 대해 남긴 평만 봐도 알 수 있다.


네가 보여주곤 하던 ‘그레이트 다이어리’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어. 대단한 재능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한 가지 자질이 너무나 부족했어. 정말이지 가장 중요한 자질, 인간애라고 불러도 좋고 연민이라고 불러도 좋고, 그쯤 되는 것 말이야. 그리고 솔직히 네가 좋은 작가가 될 가능성이 없다고 체념했어. 그런 자질은 가르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 그때 내가 몰랐던 건 인간애라는 것이 사람이 삼십대가 될 때까지 성장이 유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이야. 그때 네가 썼던 글에서 빠져 있던 그것이 지금 <깨어남>에서 최고 지휘자 역할을 해냈어.”

- 『온 더 무브』, 353쪽


『깨어남』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 <사랑의 기적>의 한 장면.




❙ 존재(세상)의 구멍, 신경증


색스가 평생 애정을 쏟았던 신경증이란 무엇일까? 신경증은 정신병과 구별된다. 정신병이 심리적인 문제로 일어나는 질환이라면, 신경증은 생리적인 문제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뇌에서 호르몬 분비가 원활하게 되지 않아서 행동을 조절할 수 없게 되는 병이다. 하지만 이런 정의는 모호하기만 하다. 대체 어디까지가 ‘심리(心理)’이고 또 ‘생리(生理)’인가? 이 두 영역 사이에 전혀 연관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색스는 환자들이 “겪는 무수한 장애가 ‘신경과’ 장애이면서 ‘정신과’ 장애”[각주:7]라고 주장한다. 신경증 발병에 심리적인 문제가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신경증을 얻은 후 세상을 완전히 다르게 지각되기 때문이다. 세상이 갑자기 딴판으로 바뀌었는데 어떻게 ‘마음’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색스가 가장 애정했던 신경증은 고유수용성감각이었다. 고유수용성감각이란 신체의 위치, 자세, 운동 등의 정보를 뇌로 전달해주는 감각이다. 이 감각에 문제가 생기면 나는 내 몸 전체를 감각할 수 없게 된다. 가령, 오른쪽 다리의 고유수용성감각에 문제가 생기면 나는 더 이상 그 다리가 존재하는지 느낄 수 없게 된다. 손으로 다리를 만져봐도 다리를 만지는 (아직 고유수용성감각이 남아 있는) 손만 느껴질 뿐, 손과 접촉한 다리는 느껴지지 않는다. 남의 다리를 만지는 기분인 것이다. 이처럼 느낄 수 없으니 어디 있는지 알 수도 없고, 알 수 없으니 움직일 수도, 사용할 수도 없게 된다. 말 그대로 몸에 ‘구멍’이 생기는 것이다. 몸이라는 전체 지도에 다리 부분이 뻥, 뚫려버린다. 그 장소와 연결되는 고속도로, 국도, 보도, 다리, 모든 게 끊겨 공터가 되고 만다.


인식의 구멍은 현실의 구멍과 매개없이 곧바로 이어진다. 도시학자 제인 제이콥스는 말했다. 도시 거주민은 도시 설계도와 관계 없이 자신의 지각(知覺)대로 지도를 그린다고. 가령, 구글맵에 찍힌 뉴욕은 엄격하게 계획된 바둑판처럼 보이지만, 마음의 지도 위에서는 같은 공간이 꺾이고 휘고 구멍날 수 있다. 이 지도는 내가 살아가는 동선대로, 내가 꽂히는 관심사대로 새로 업데이트된다. 반면 지도가 누락시키는 ‘구멍’도 있다. 사람들은 어떤 장소를 “완전히 무시하고” 굳이 “상기시키지 않으면 실제로 알지 못한다(...). 용도와 활기라는 불이 도시 안에서 퍼져 나가지 못한다면 어느 곳이든 암흑 속의 장소가 된다.”[각주:8]


공간에 “용도와 활기라는 불”을 지피는 것은 언제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사람들의 몸이다. 다시 말하면, 제이콥스가 말하는 세상의 지각(知覺)-지도를 그리기 위해서는 몸이 필요하고, 이 몸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몸의 지각(知覺)-지도가 필요하다. 즉, 신경이다. 신경은 매 순간 외친다. 나는 지금-여기 있다고. 이 외침을 듣지 못하는 순간, 신경증이 찾아온다. 그리고 내가 사는 세계에는 ‘정말로’ 구멍이 나 버리고 난다. (그렇게 생각하면 비공식적으로 신경증을 앓는 사람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이 도시에서 ‘나는 지금-여기 있다’는 생생한 감각을 매번 여유롭게 느끼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신경증을 어떻게 치료할까, 를 물으려면 병원에 가야한다. 하지만 신경증과 함께 어떻게 살까,를 물으려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신경증환자는 새로 생긴 존재(세상)의 구멍을 포함하여 삶의 지도를 다시 그린다. 그 수밖에는 없다. 이제부터 색스가 탐험하려는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다.


※ 다음 달에 뉴욕과 올리버 색스, 두번째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글_김해완


온 더 무브 - 10점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알마


  1. 각주 1) Cornelia Cody, “‘Only in New York’: The New York City Personal Experience Narrative,” , Indiana University Press, 2005, p.220 [본문으로]
  2. 각주 2) 올리버 색스, 이민아 역, 『온 더 무브』, 알마, 2016년, 358쪽 [본문으로]
  3. 각주 3) 같은 책, 153쪽 [본문으로]
  4. 각주 4) 같은 책, 77쪽 [본문으로]
  5. 각주 5) 같은 책, 185쪽 [본문으로]
  6. 각주 6) 같은 책, 188쪽 [본문으로]
  7. 각주 7) 같은 책, 219쪽 [본문으로]
  8. 각주 8) 제인 제이콥스, 유강은 역,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그린비, 2014년, 494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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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조아하자 2016.09.03 21:15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정신병으로 알려져 있고 정신과에서 다루고 있는 정신분열증도 현대의학으로는 생물학적인 원인에 의해 생기는 병이라는 게 이미 밝혀졌죠. 문제는 진짜 정신분열증인데도 자기가 정신분열증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환자가 많아서 약을 계속 거르거나 피해 다니다가 결국 통제불능 되거나 그런 경우도 많다는 것...

    • 북드라망 2016.09.05 10:31 신고 수정/삭제

      그렇군요. 자기 상태를 인정하는 것부터가 병과 함께 사는 첫 걸음일텐데, 그것부터가 쉽지 않군요.
      그런면에서 보면 올리버 색스는 의사를 찾아가 진단을 받은 게 참 다행스러운 일인 것 같네요.
      댓글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화영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