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심해, 그 신화를 찾아서
: 뉴욕과 허먼 멜빌
미국 래퍼 제이지가 가수 엘리샤 키스와 함께 대박 친 뉴욕의 로고송은? 정답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Empire State of Mind)’다. 제목은 몰라도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팝송이다. (뉴~욕, 뉴~욕, 뉴~욕 하고 반복되는 중독성 있는 후렴구를 떠올려보자.) 이 곡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뉴욕, 콘크리트 정글, 꿈이 만들어지는 곳. 여기서 당신이 못할 것은 없어요.”
떠오르지 않는다면 직접 들어보시라!
콘크리트 정글. 진짜 대박난 것은 노래보다 이 한 구절이다. 그 후로 뉴욕을 다룬 온갖 가이드북, 기사, 리뷰마다 “콘크리트 정글”이라는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다. ‘콘크리트’로 표상되는 모던, ‘정글’이 연상시키는 미개척지, 여기에 ‘꿈’이라는 낭만적인 방향성까지 제시되었다. 이 세 개의 표상을 종합해보면 뉴욕의 고전적인 성공 신화가 도출된다. 이 땅에서 성공을 구하고 인생을 개척하는 탐험자가 되세요! 아, 물론 신화는 신화일 뿐이다. 꿈이 모두 이루어지는 곳은 유토피아지 현실이 아니다. 정글은 더더욱 아니다. 무서운 아나콘다에게 잡아먹히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 콘크리트로 구축된 ‘야생’
그런데 희한하다. 노래 가사가 계속 입 안에서 맴돈다. 원곡자 제이지의 말마따나 뉴욕 사람들은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어하기 때문일까? 아니다. 꿈이 이루어지고 말고를 떠나서, 이 노래의 진짜 매력은 ‘콘크리트’와 ‘정글’이라는 모순된 조합이다. 이 도시-자연의 결합에는 뉴욕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진실이 숨어 있다.
뉴욕의 자연 별명은 ‘정글’ 말고도 여러 개가 있다. 가난한 예술가에게는 사시사철 한겨울이고, 일탈을 꿈꾸며 잠깐 찾아온 관광객에게 뉴욕은 오아시스다. 도시학자의 입장에서는 뉴욕처럼 온갖 불황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살아남는 생태계가 없다. 뉴욕-정글, 뉴욕-겨울, 뉴욕-오아시스, 뉴욕-생태계...... 물론, 이런 표현은 으레 은유로만 여겨진다. 뉴욕을 진짜 자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도시와 자연은 극과 극이라는 이분법적 전제가 발동하기 때문이다. 도시는 반자연, 자연은 반도시! 그런데 머리가 아니라 경험으로 생각해보면 이 두 극은 분명히 통한다. 뉴욕에서 (관광 말고) 살아간다는 것은, 자연의 스케일을 빌리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단순히 먹고 살기 힘들다는 뜻이 아니다. 이 도시에서 자본은 먹고 사는 수단 따위도 아니고, 맹목적으로 추앙받는 신도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뉴욕에서 자본은 4대 원소(공기, 물, 불, 흙) 급이 되었다. 숨 쉬고 살기 위해서는 당연히 나를 둘러싸고 선재해야 할 ‘환경’이 된 것이다.
자연은 고정된 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운동이다. 풀 자체가 자연인 것이 아니라, 풀이 나고 피고 죽고 썩는 그 생장소멸의 운동이 자연인 셈이다. 그리고 이 운동의 핵심은 우발성이다. 생명은 각자 알아서 움직이되, 그 움직임들이 서로 갈마들면서 풍요로운 세계(생태계)를 형성한다. 도시가 자연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국가에 의해 계획되고 관리되는 ‘홈 패인 공간’인 도시가 이런 우발성을 따라잡지 못한다. 도시는 반(反)자연이 아니라 오히려 미(未)자연이라고 해야 한다. 자연에 한참 못 미치는, 일종의 기준미달 생태계랄까.
계획되고 관리되는 ‘홈 패인 공간’인 도시는 자연의 우발성을 따라잡지 못한다.
그러나 뉴욕은 다르다. 뉴욕의 운동은 자연과 동일하지 않지만, 희한하게도 자연이라는 모델 없이는 이해하기 힘들만큼 풍요롭다. (뉴욕을 천박하다고 평하는 사람도 이곳의 다양한 구성원이 베푸는 풍요로움을 부정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뉴욕은 미국 안에서도 외부로 간주될만큼 ‘스스로’ 움직여 왔다. 뉴욕을 움직이는 축은 두 개다. 콘크리트를 녹일만큼 뜨거운 욕망, 그리고 어떤 체제로도 길들일 수 없는 자본. 뉴욕으로 유입되는 새 인구가 계속 새로운 아이디어와 욕구를 끌고 오면, 자본은 개인과 개인 사이를 연결하여 그 욕망이 흐르게 만든다. 결과는? 자본-욕망의 기막힌 생태계가 형성된다. 다종다양하고 생장소멸을 반복하는 소우주. 이 우주(?)의 운동 속에서 개개인은 부와 함께 비상하거나 파산한 후 조용히 쓸려나간다. 각종 예술이, 사상이, 사업이 창의적으로 피어났다가 스러진다. (이를 두고 욕망을 이용하는 자본주의의 악덕인지 혹은 다양성을 촉진하는 자본주의의 미덕인지 논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이 근대인이 살아가는 ‘자연’이라는 점은 변함 없는 사실이다.) 자본의 야생적인 순환. 이것이 뉴욕의 잔혹하고도 매혹적인 미스터리다.
그런데 정말 놀라야 할 미스터리는 따로 있다. 불과 200년 전, 뉴욕이라는 땅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자연에 대한 생생한 감각이 이 땅에 스며들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바다에 대한 감각이었다. 뉴욕은 명실상부하게 바다의 도시였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섬이었고, 바다에 의해 부를 불렸으며, 바다인의 도전 정신으로 도시를 개척해 나갔다. 그렇다. 이 ‘콘크리트 정글’이 잉태된 곳은 결국 진짜 자연이었던 것이다. 19세기, ‘야생의 땅 뉴욕’이 ‘뉴욕-자본의 야생성’에 완전히 먹혀 들어가던 시기에 양쪽의 경계를 홀로 항해하던 뉴욕인 한 명이 있었다. 허먼 멜빌. 『모비딕』의 태평양부터 『필경사 바틀비』의 월가까지 단숨에 가로질렀던 진짜 탐험자.
❙ 배와 소년: 동부 프론티어 시대
1830년. 뉴욕, 항구. “폭풍이 치는 밤, 패배한 남자가 어린 아들과 함께 지루한 시간을 죽이며 배를 기다린다. 그들을 고통스러운 도착지로 오직 실어줄 배를.” 소년은 알고 있다. 아버지의 사업이 파산했기 때문에 가족 모두가 알바니로 야반도주해야 한다. 하지만 배의 진짜 도착지는 알버니가 아니라 불행이었다. 1832년, 정신적으로 무너진 아버지는 숨을 거둔다. 1837년, 맏형이 일으켜 세운 사업이 또 다시 파산을 한다. 1839년, 소년은 뉴욕으로 다시 도망치듯 되돌아온다. 그리고 영국 리버풀로 향하는 화물선의 일꾼으로 취직한다. 다시, 배. 때는 소년이 스무 살 성년이 되기 두 달 전이었다. 1
허먼 멜빌은 전생에 배와 단단히 인연을 지은 게 틀림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처럼 한결 같이 (가족, 직업, 소설까지) 배와 얽힐 수는 없다. 특히 그가 리버풀 행 화물선에 타는 순간은 한 편의 드라마다. 멜빌의 아버지가 원래 했던 사업이 바로 리버풀에서 유럽의 사치품을 수입한 다음 뉴욕에 파는 무역업이었다. 파산하기 전까지 그는 일 년에 몇 번씩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넜었다. 십 년 후, 성년이 된 그의 아들은 이제 최하층 노동자의 처지에서 아버지와 같은 길을 떠나고 있었다. 사실 미국의 최하층 노동자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 당시 노예가 아닌 다음에야 결코 “떨어져서는” 안 되는 최악의 노동 환경이 바로 뱃사람 일이었으니까. 2
지금도 여전히 '극한직업'인 뱃일.
그렇지만 이 리버풀 항해는 ‘어쩔 수 없는 불행’이 아니었다. 멜빌은 분명 자기가 원해서 배를 탄 것이다. 항해에 동참하기 위해 하고 있던 선생님 일도 때려쳤고, 심지어 그 후에는 고래잡이 항해에 한 번 더 동참했다. 실제로 소년 시절 멜빌의 장래희망은 모험가였다.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의 바람은 실현(?)되었다. 동시대 작가들이 예일대나 하버드대에서 풋풋한 청춘을 보내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동안, 멜빌은 뙤약볕 아래에서 죽어라 선박 갑판 청소를 해야 했으니. 그의 표현을 따른다면 장학금(Scholarship) 대신에 “고래 수업(Whaleship)”을 듣고 있었던 셈이다. 3
1987년의 허먼 멜빌.
하지만 멜빌의 항해병에는 개인적인 낭만 뿐만 아니라 다른 원인도 있었다. 때는 뉴욕의 시대이자 바다의 시대였다. 당시는 비행기는커녕 철도도 아직 없었다. 배가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특히 배의 위상은 1815년 뉴욕에서 증기선이 발명되면서 절정에 달한다. 하필 뉴욕에서 증기선이 발명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 당시 뉴욕은 서부 개척이 진행되면서 상업 도시의 주도권을 뺏길까봐 걱정하고 있었다. 섬, 항구, 그리고 바다의 도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답은 운하를 뚫는 것과 빠른 배를 발명하는 것이었다. 전자의 결과는 성공이었고, 후자의 결과는 혁명이었다. 갑자기 미국 안팎의 모든 것들이 뉴욕으로 물밀 듯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미국 전역의 정보가 단 며칠이면 뉴욕에 도착했고, 뉴욕 출판사가 갓 뽑아낸 소설책은 며칠 만에 미국 전역으로 뿌려졌다. 게다가 뉴욕은 신세계로 통하는 명실상부한 출입구가 되었다. 멜빌이 태어나기 직전인 1819년, 증기선은 영국 리버풀까지 처음으로 운항되었다. 그 후로 뉴욕이 담당하는 미국 내 수입업은 15년만에 38퍼센트에서 62퍼센트로 뛰었다. 그렇다. 바야흐로 프론티어의 시대였다. 서부에서 카우보이들이 인디언들을 짓밟으며 캘리포니아를 향해 개척하고 있는 동안, 동부는 뉴욕을 중심으로 파죽지세로 해상 연결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4
프론티어, 라고 하면 인간이 일방적으로 자연을 정복하는 영상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개척은 피와 폭력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자연의 심연을 마주하는 역사이기도 했다. 아무리 덤벼도 길들여지지 않는 끝없는 자연! 이 와중에는 폭력 속에도 경외와 상상이 뒤섞이게 된다. 가령, 『모비딕』에 등장하는 고래잡이 선원들은 첨단 증기선 위에서도 여전히 전통적인 미신을 따르고 바다를 신성시한다. 아무리 항해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근대인들은 “노상강도들이 길을 따라 다니듯 (...) 육지의 파편인 다른 배를 약탈할” 줄만 알 뿐이라고 분수(!)를 알기까지 한다. 들뢰즈와 가타리 말마따나, 탈주는 양쪽의 변화를 동시에 이끌어낸다. 5
19세기까지 뉴욕이 바다와 맺었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뉴욕은 바다를 철저하게 이용했지만, 바다를 품지 않은 뉴욕 또한 상상할 수 없었다. 17세기에 네덜란드인이 ‘마하트마 섬’(맨해튼의 원래 인디언 식 이름)을 ‘뉴욕’(당시는 뉴암스테르담)으로 바꿨던 순간부터 이 땅은 오로지 바다가 열어준 길로 먹고 살았다. 노예 무역, 설탕 무역, 커피 무역의 중개지가 되면서 식민주의의 탐욕을 꽃피웠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뉴욕의 감성은 바다를 닮아갔다. 바다에 대한 경외, 모험에 관한 미신과 전설, 아무 데에도 얽매이지 않는 선원의 매너가 무성하게 퍼졌다. ‘바다’는 단순한 지리학적 개념이 아니었다. 자본과 욕망,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성이 동시에 흘러들어오는 무한한 원천이었다. 뉴욕은 그 풍요로운 영양분을 삼 세기 동안 흠뻑 빨아들인 땅이었다.
영양분을 빨아들인 혜택자 중에는 멜빌도 있었다. 사실 그는 마지막 혜택자나 다름 없었다. 19세기 중반부터 뉴욕은 증기선의 도움으로 재빠르게 자본을 긁어모으더니, 급기야 바다의 도시에서 ‘월가의 도시’로 변태했기 때문이다. 항구 도시 특유의 생동감은 고스란히 자본의 운동으로 흡수되었다. 멜빌은 뱃사람이 천직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항해를 즐겼는데, 여기에는 빠르게 변해가는 뉴욕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어느 정도 있었을 테다. 아버지와 맏형의 연이은 파산, 무분별한 개발 열풍, 거기에 리버풀을 비롯하여 소위 ‘대도시’의 슬럼가를 목격한 후 받았던 충격과 실망까지 겪었으니 뉴욕을 좋아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멜빌 자신도 뉴욕에 살면서 평생 돈 때문에 고생했는데 어찌나 진절머리가 났던지 “달러가 나를 빌어먹는다(Dallors damn me)” 6는 유명한 말을 남겼을 정도다.) 멜빌은 자연의 운동을 흉내내는 뉴욕의 자본보다 뉴욕이 직접 길을 열어준 자연에 본능적으로 더 끌렸다.
그러나 그는 결국 바다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뉴욕에 돌아온다. 그리고 생계를 위해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첫 여행 소설 『타이피 족』은 성공을 거뒀다. 그 어떤 모험가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표현력 때문이었다.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은 시작처럼 보였다. 그런데 웬 걸, 그의 펜대는 점점 멀리 나아가기 시작했다. 몸이 뉴욕에 묶이고 나자 멜빌은 마음의 심해, 특히 도시인의 마음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그 중에서도 『모비딕』은 가장 깊은 해저였다.
❙ 고래: 지금-여기의 신화
고래. 멜빌의 무의식이 평생 쫓아갔던 동물, 『모비딕』 출판 당시 세 권에 이를 정도로 깊게 파헤친 바다의 신. 왜 하필 고래일까? 왜 고래에서 이토록 폭발적인 상상력이 뽑아져 나왔을까? 그야 멜빌 자신도 모를 것이다. 독자들도 이 낯선 문학 주제 앞에서 극단적인 반응을 보였다. 동시대 사람들에게 고래는 고래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19세기 독자들은 왜 멜빌이 고래대백과사전을 썼야했는지 당체 이해하지 못했다. 20세기가 『모비딕』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고래에게는 온갖 상징이 붙기 시작했다. 고래는 아버지의 상징이다, 야만적인 문명의 상징이다, 또.....
『모비딕』 속 고래는 문학적 장치도 아니고,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의’ 동물도 아니다. 모비딕은 그가 현실에서 발견한 신화, 살아 있는 전설이다. 『모비딕』은 문학이 아니라 서사시 혹은 신화 장르로 분류되어야 한다. 도대체 신화가 무엇이냐고? 인류학자 나카자와 신이치의 담론을 잠시만 빌려보자. 그는 신화적 사고의 특징을 대칭성이라고 정의한다. 자연에서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지만, 인간이 유동적 지성을 사용하면서부터 자연을 개체별로 구분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선사 시대 인간들은 자신들 역시 자연에 연결되어 있음을 일부러 자각하기 위해서 신화를 지었다. 이것이 자연과 문명 사이의 대칭적 사고이다.
물론, 『모비딕』은 선사 시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렇지만 고래 모비딕은 그 나름대로 19세기 뉴욕의 대칭성을 체현하고 있다. 고래는 한편으로는 잔인한 자본주의 산업의 상품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뱃사람들의 삶에서 분리할 수 없는 자연이다. (모비딕 없는 에이허브 선장, 에이허브 선장 없는 모비딕은 성립되지 않는다.) 에식스호를 이리저리 치대는 바다의 예측할 수 없는 흐름. 그리고 월가에서 시작해 온 세계를 마구 뒤흔드는 자본의 통제할 수 없는 흐름. 이 두 지도를 겹쳐 보면 고래 모비딕의 모습이 드러난다. 뉴욕은, 여전히 바다에 연결되어 있다. 어느 평론가는 멜빌이 자연을 묘사할 때 제국주의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멜빌에게 ‘서구인’이라는 명칭은 좀 맞지 않다. 그는 가슴 속에 극한의 억압과 극한의 자연이 동시에 공존했던 ‘뉴욕인’이었다.
(혹여 신화와 “동물학”을 연결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멜빌의 시대보다 더 근대인 20세기를 살펴보라. 1960년대 이후 남미 문학에서는 매직 리얼리즘이 폭발했다. 역사 속에서 억압 받아왔던 남미 원주민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기상천외한 주제로 ‘오늘의 신화’를 그려냈다.)
오늘날, 멜빌의 뉴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인생 전체를 통과했던 배-뉴욕-심해-신화의 계열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서구 문명에 대한 자만이 하늘을 찔렀던 19세기는 그래도 행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고래’라도 있었으니 말이다. 21세기 뉴욕은 비행기의 도시가 되었고, 월가는 극도로 추상적인 금융자본의 성지가 되었다. 소년 멜빌을 설레게 했던 항구는 폐물이 되었다. 그렇지만 뉴욕은 여전히, 희미하게라도 짠 내음 나는 야생의 냄새를 풍긴다. 최소한 외부와 통한다는 그 감각만큼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뉴욕은 우리를 자꾸만 다른 곳으로 이끈다. 쿠바로, 콜롬비아로, 알래스카로,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21세기의 뉴욕 신화가 다시 써져야 하는 것일까? (^^)
여하튼, 『모비딕』과의 실제 항해는 다음 화를 기약하기로 하자. 뉴욕, 콘크리트 심해. 이곳의 신화를 찾아서!
글_김해완
- 각주 1) Newton Arvin, 『Herman Melville』, Grove Press, 2002, 19쪽 [본문으로]
- 각주 2) 같은 책, 51쪽 [본문으로]
- 각주 3) 같은 책, 37쪽 [본문으로]
- 각주 4) Edwin G. Burrows, Mike Walllace, 『Gotham: A History of New York City to 1898』, Oxford, 2000, 432~5쪽 [본문으로]
- 각주 5) 허먼 멜빌, 김석희 역, 『모비딕』, 작가정신, 2016년, 103쪽 [본문으로]
- 각주 6) Edwin G. Burrows, Mike Walllace, 『Gotham: A History of New York City to 1898』, Oxford, 2000, 702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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