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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백수는 고전을 읽는다

공자가 수업료로 육포를 받은 이유

by 북드라망 2012. 2. 27.
달콤, 살벌한 도반(道伴)

류시성(감이당 연구원)

子曰 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述而 7)
자왈 자행속수이상 오미상무회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마른 고기 한 묶음 이상을 가지고 와서 내게 예물로 바치는 자가 있다면, 내 일찍이 가르쳐 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

子曰 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述而 8)
자왈 불분불계 불비불발 거일우 불이삼우반 즉불부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는 이가 마음속으로 분발하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으며, 표현하고자 애태우지 않으면 말문을 열어 주지 않으니, 사각형의 한 귀퉁이를 들어 주었는데 이것을 가지고 남은 세 귀퉁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다시 더 가르쳐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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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묘한 말이다. 왜냐고? 그냥 ‘수업료’ 받으면 가르쳤다는 썰렁한 문장 같은데 그걸 가지고 무슨 호들갑을 그렇게 떠느냐고? 혹시 나, 공자-빠돌이 아니냐고? (인정하기 싫지만) 다 맞는 말이다. 공자에게도 먹고사는 일은 우리만큼이나 중요했을 테니까. 뚜렷한 직장 없이 인생의 대부분을 백수로 보낸 공자도 생계를 위해서는 부득불(不得不) 수업료를 챙기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니까. (나도 원고료를...^^) 그런데 이 말, 당시 배치 안에서 보면 상당히 파격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공자가 살던 시대도 지식과 권력과 부(富)는 한 세트다. 지식인은 관료이자 곧 부(富)를 독점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던 게 보통. 뭘 배우려거든 반드시 이들을 찾아가야 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찾아갈 때 맨손으로 가면 참 곤란하다. 당시 스승이나 윗사람을 찾아가서 가르침을 청하는 사람은 반드시 폐백(幣帛)을 준비하는 게 예의였다(원래 폐백은 신랑이 신부 집에 갈 때 바리바리 싸들고 가던 게 아니다). 누구에게 찾아가느냐에 따라 준비하는 폐백도 다 다르다. 군주(君主)에게 갈 때는 옥(玉)을, 경(卿;장관급 이상)에게는 새끼 양을, 대부(大夫)에게는 기러기를, 사(士)에게는 꿩을, 공인(工人)이나 상인(商人)에게는 닭을 가져가야 했다.

이 관례대로라면 사(士)계급인 공자는 꿩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공자는 꿩 대신 속수(束脩)를 받는다. 수(脩)(우리가 지극히 사랑하는) 고기를 말린 포라는 뜻이며 속(束)은 그 포를 10개 단위로 묶은 것을 의미한다. 명절에 지인을 찾아갈 때 가지고 가는 참치세트 정도로 보면 된다. 당시에 이 육포세트(束脩)는 약방의 감초처럼 모든 폐백에 들어가던 베이스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게 실로 파격 그 자체다. 예법(禮法)을 극도로 중시했던 공자를 생각하면 당근 예의에 맞는 꿩을 받아야 하건만 공자는 배우는 일에서만은 이 예법을 철저히 무시한다. 더구나 지식은 권력과 부(富)로 가는 입구가 아니던가. 이 문턱을 지식인 스스로가 대폭 낮춰 버렸으니 이 얼마나 파격적인 일인가. 지식은 특정 집단만이 소유할 수 있다는 상식을 깨고 나가는 발상. 여기에 바로 이 문장의 오묘한 맛이 있다.

이 문장엔 유교무류(有敎無類)라는 말이 항상 세트로 따라 다닌다(무슨 ‘세트론’도 아니고 참...^^). 배움에 있어서 빈부(貧富)·귀천(貴賤)이 따로 없다는 뜻이다. 후대 학자들은 이 말 때문에 공자를 평등주의 교육관을 가진 인물로 평가하곤 한다. 출신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 가르쳤다는 말이니 그 평가도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여기엔 전제되어야 할 게 빠져 있다. 바로 배우고자 하는 자의 ‘열정’이 그것이다. 이 전제를 쏙 빼놓고 유교무류(有敎無類)했다는 말만 가지고 평등을 운운하는 건 지극히 근대적 발상이다. 모든 사람은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아니 모든 사람은 교육받아야만 한다! 이 근대적 전제엔 자발성이나 열정이란 고스란히 지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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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공자의 저 말이 오묘하다는 건 이 열정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아니다. 오히려 이 말엔 예법에 좀 어긋나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면서 그 예(禮)를 무너뜨리지 않는 태도, 공자 자신의 생계문제, 공자가 평생토록 배움(學)에 가졌던 마음가짐이 절묘하게 오버랩되어 있다. 배움과 생계, 예법을 교묘하게 관통해 가고 있는 말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 말은 절대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생각마저 불러온다. 지극히 일상적이면서 그 안에 자신이 가진 철학을 녹여낸 단단한 이 말 한 마디.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있으면 예(禮)를 갖출 수업료를 내라. 간절함이 있으면 속수(束脩) 정도는 마련할 수 있다. 나는 그걸로 먹고살겠다.’ 공부하려는 마음을 먹는 순간부터 이 예(禮)를 몸에 익히게 만드는 스승, 공자는 그야말로 탁월하면서도 교묘한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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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시작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우린 늘 사후가 궁금하다!) 열정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가르친다고 말하는, 매우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듯한 공자. 그러나 공부가 시작되면 완전 해병대 조교로 돌변한다. 일단 스스로 분발하는 마음(憤)을 내지 않으면 절대 길을 열어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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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啓)라는 글자가 재밌는데 ‘열다’라는 뜻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문(門)은 두 개로 이루어진 문이다. 반면 호(戶)는 외짝 문이다. 요즘 방문처럼 하나짜리 문이라는 말이다. 이 문을 오른손(又)으로 밀어서 여는 게 바로 啓의 의미다(口는 나중에 뜻을 명확히 하기 위해 삽입되었다). 그러니 분발하는 마음이 없으면 문밖에 세워 두고 절대 문 열어 주지 않는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누구나 공부할 수 있다고 해서 들어왔더니 이거 완전 지옥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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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悱)도 마찬가지다. 마음으로는 알고 있는데 입 밖으로 아는 게 튀어나오지 않는 간질간질한 상태. 이 지경(!)에 이르지 않으면 문은 열리지 않는다(發도 원래 창고 문을 열어 준다는 의미다). 이 얼마나 살벌한 문전박대형 교육현장이란 말인가! 그러니 공부해서 누군가의 문하(門下)가 된다는 건 이 생지옥을 통과하겠다는 발심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다. 그런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수법이다. 아마 여태까지 모든 스승들이 제자를 꼬실 때 쓰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었을 터. 친절하게 들어오라고 해서 열나게 굴리는! 이 낡은 수법을 수없이 봐 왔을 터인데 제자들 또한 스승의 꼬임에 너무나 적극적으로(!) 말려들었다는 거. 이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광경이 바로 강학(講學)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흥미로운 건 단연 스승의 안목이다. 제자가 어느 정도 상태에 올랐는지를 정확히 간파해 내는 것은 전적으로 스승의 몫이기 때문이다. 마치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올 때 어미가 밖에서 단 한 번의 일격으로 새 세상을 열어 주는 것처럼 스승은 그 산파의 지혜를 가진 자다. 제자에게 그동안 보지 못한 세계를 선사하는 일격! 사실 이 기술(!) 때문에 세상의 모든 스승은 제자들 앞에서 떵떵거릴 수 있었음이 분명하다. 공자가 처음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난 아무나 안 가르쳐!’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결정적인 건 스승과 제자의 호흡이다. 네 귀퉁이가 있는 물건의 한 모서리를 들었는데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으면 바로 낙제다! (점차 알아가겠지만 공자만큼 까칠한 성격도 참 드물다) 일타삼피로 알아듣지 못하면 문전박대는 물론이고 다시는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스승이 한 마디를 던지면 지금 뭘 말하는지 곧장 알아들어야 하는 이 끔찍한 서바이벌 공부법. 마냥 공부만 좋아해서는(好學) 여기에 오를 수 없다. 이 살벌한 현장에서 살아남는 길은 오로지 배운 걸 잘 익히는 길밖에는 도리가 없다. 허나 어디 공자가 매번 새로운 걸 가르쳤겠는가. 더구나 책도 많지 않았던 시대에! 그저 가르친 것을 계속해서 몸에 익히게 했을 터인데 그걸 하지 않고 이걸 던져도 무감각, 저걸 던져도 무감각이니 어찌 더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스승의 몫은 단지 여기까지다.

子曰 譬如爲山 未成一簣 止 吾止也 譬如平地 雖覆一簣 進 吾往也(子罕 18)
자왈 비여위산 미성일궤 지 오지야 비여평지 수복일궤 진 오왕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자면 산을 쌓는 것과 같다. 한 삼태기를 못 이루고서 그만두는 것도 내가 그만두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땅을 고르는 것과 같다. 비록 한 삼태기를 부어서 나아감도 내가 가는 것이다.”


산을 다 쌓았는데 마지막 한 삼태기*만 가져다 부으면 완성이다. 하지만 그걸 못하고 그만둬 버리는 것. 땅을 골라서 산을 쌓기로 마음먹고 한 삼태기를 갖다 붓는 것. 이건 전적으로 내 몫이다. 아무리 고귀한 스승이 옆에 있어도 자기가 발심하지 않으면 절대로 알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자들에게 스승은 어떤 일격도 ‘선물’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삶을 보다 나은 삶으로 만들기 위해 발버둥치는 자, 그걸 완성하기 위해 자기 존재를 다 거는 자, 그건 결국 자기만이 갈 수 있는 길이다. 그럼 스승은 뭐냐고? 그 또한 이 배움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일 뿐, 완성된 자가 아니다. 그러니 이 배움의 길 위에선 누구나 도반(道伴)일 수밖에 없다.

공자에게 어떤 존경할 만한 점이 있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그저 남들이 짖어대니까 따라서 짖어대는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다고 스스로를 평가한 명나라 사상가 이탁오(李卓吾, 1527~1602). 더 이상 개이기를 멈추고 남은 생을 자유롭고 열정적으로 공부하다 죽은 그는 이 문장을 이렇게 평가한 바 있다.
 

“산을 쌓아 올리는 것을 비유할 때, 만약 먼저 나아감을 말하고 나서 뒤에 멈춤을 말했다면, 이는 곧 강궁(强弓)으로 쏜 화살이 끝에 가서 힘을 잃는 것이다. 멈춤을 말하고 뒤에 나아감을 말하였기에 쇠퇴했다가 다시 일어나고 끊어졌다가 다시 살아나서 무한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고무시켜 줌이 있다.”

이 무한의 길을 함께 가는 스승과 제자. 그들은 달콤, 살벌한 도반(道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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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스승은 사슴도 의사가 되게 한다!

* 삼태기: 볏짚으로 만든 도구. 흙이나 거름, 곡식을 운반하는데 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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