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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씨앗문장

치심에서 발심으로! 나의 '치심극복기'

by 북드라망 2015. 9. 1.


치심(癡心), 어떤 어리석음에 대해


[사오정이] 어쩌다 유사하(流沙河)의 요괴가 되었지? 서왕모의 반도대회 때 옥파리(玉玻璃) 하나를 깨트려 옥황상제의 진노를 산 탓이란다. 아니, 그게 그렇게 큰 죄야? 실수지, 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상의 세속적 기준일 뿐이다. 하늘에선 단 한순간의 방심도 허용치 않는다. 잠깐 마음을 놓는 순간 천지의 운행과 어긋나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오정은 ‘탐진치(貪瞋癡) 가운데 치심(癡心), 곧 어리석음의 전형이다. 치심은 일종의 무지몽매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 잘 모른다. 배부르면 강 속에 웅크려 자고, 배고프며 물결을 헤치고 나와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다. 그리고는 또 자책에 시달린다. … 요컨대, 무지와 악행, 그리고 자책 이것이 치심의 기본요소다.

고미숙 『고미숙의 로드클래식』 북드라망, 2015. 105쪽


며칠 전에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내가 가지고 다니는 물건 중에 값으로만 치면 가장 비싼 전자기기가 손에서 떨어져 바닥으로 낙하하는 순간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고 선명하게 보였다. 핸드폰이 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액정이 바닥을 향한 것이 보였지만 잡을 수는 없었다. 그 짧은 순간 ‘놓쳤어! 잡을까? 잡을 수 있을까? 손엔 뭘 이렇게 많이 들고 있어 가지고! 못 잡겠네. 깨질까? 깨질까? 깨지지 마라, 여태껏 잘 버텼잖아. 깨지지 마라’라는 생각을 했다.(두 단어로 줄이면 ‘제기랄, 제발’) 그리고 철퍽. 액정이 나가서 결국 수리센터에 가야 했다.


유리는 멀쩡한데 그 안이 다 깨져버렸다. 이렇게 깨진 건 또 처음이다.



뭔가를 놓치는 것이 특기인 나로서는 사오정의 이런 부분에 감정이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마음을 놓는 순간 벌어지는 아차 싶은 순간들, 강바닥에 아니 방바닥에 웅크려 자책에 시달리는 그 기분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극복’하는가이다. 사오정의 치심은 일종의 무지몽매다. 나의 치심도 일종의 무지몽매다. 자신이 뭘 하는지, 뭘 원하는지를 잘 모른다. 차라리 독선적으로 나가면 자기라도 편할 텐데 그럴 위인도 못된다. 잡생각도 많다. 이것저것 필요할까 봐 깔아 놓은 프로그램들이 한꺼번에 돌아가는 바람에 컴퓨터가 느려지는 그 순간처럼 마음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문제는 그 순간이 나도 모르게, 중요한 순간에 덜컥 찾아온다는 것이다.


핸드폰이 떨어지는 순간, 나는 어깨에 얹어놓은 셔츠를 붙잡으려 했었다. 그 손에는 이어폰과 교통카드지갑, 핸드폰이 한 손에 들려 있었다. 다른 손은 뭐하고 있었느냐고? 가방을 붙잡고 있었다. 그러니까 애초에 핸드폰은 주머니에, 카드지갑은 목에 걸고 이어폰은 목에 걸거나 주머니에 넣어 두었으면, 하다 못해 귀에 꽂아 놓았으면 될 일이었다. 셔츠는 입거나 가방에 넣고, 가방도 똑바로 메고 있었으면 되는 거였는데 왜 나는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손에 다 움켜쥔 채로 걷고 있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이해할 수 없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왜 그랬는지 안다. 귀찮았던 거다. 별거 아니라고, 그냥 평소처럼 되는 대로 걸으면서 하나씩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러다 바람이 불고 셔츠가 날리고 나는 움찔했고 손에 쥐고 있던 가장 무거운 핸드폰이 떨어진 거다. 한 열 번쯤 이런 식으로 떨어뜨렸는데 멀쩡했던 게 행운이었던 것뿐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거다.



방심은 금물인 것을!



뭐 핸드폰 하나 떨어뜨리는 것 가지고 그러느냐면, 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다른 일들에도 이런 태도로 살아가고 있다는 거다. 나도 모르게 이런 식으로 마음을 놓고, 핸드폰이 깨지는 것 같은 사고들이 벌어지고, 딱히 애매하지만 한편으로는 심각한 결과들을 뒤로하고 방바닥에 웅크리고 자책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었던 거다.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이런 나의 치심을 잘 ‘커버’ 받으며 살아왔으니 말이다.


좌우간 '치심'의 아이콘 사오정은, 그래도 ‘본 투 비 매니저'로, 날치고 설치는 사오정과 저팔계 두 사람 사이에서 치심을 떨치고 일어나 은근과 끈기로 팀을 조율한단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이게 참 어렵다. 단적으로 주위에서 내가 제일 날치고 설치는 사람이다. 매니저는 고사하고 사고나 안 치면 다행인. 그래서 목표를 새로 정했다. 주위 좋은 팀원들을 위해 무지몽매함을 극복하고, 함께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그것을 위한 세부 목표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것’과 ‘즐거운 것을 잔뜩 만들 것’, 그리고 ‘건강할 것’이다. 무엇을 하는지 아는 것은 정말 힘들고 어렵다. 지도 한 장 없는 망망대해에 서 있는 기분. 그럴 때는 나침반을 활용한다. 나침반이 어디 있느냐고? 가장 가깝게는 직장 상사에게, 동료에게 있다. 과장님, 부장님, 사장님께 여쭤본다. 선생님께, 친구에게 물어봐도 좋다. 그리고 말 해주면 잘 실행한다. 실패했다 싶으면 다시 시작한다. 단순하고 심플하게 ‘한다.’ 그러면 쉴 시간이 생긴다. 쉬는 것은 ‘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그리고 일이 손에 붙으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슬금슬금 가늠해 보는 것도 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일에는 기준을 낮게 세운다. 나의 여러 스승님 중 한 스승님께서 가르쳐 준 마법의 주문인 “괜찮아”를 외워보는 것도 좋다. 하나하나 하다 보면 다음 것이 보일 거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가 치심을 모두 극복했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저 구절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뜨끔하다. 그래도 방구석에 웅크려 눕는 횟수가 줄었다는 것은 자랑하고 싶다. 남들이 보기엔 뭐가 바뀐지 모를 수도 있지만, 나는 안다. 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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