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산을 순산으로 만드는 약
달생산과 불수산이 만드는 마법의 세계!
난산의 원인
영화 『판의 미로(El Laberinto Del Fauno, Pan's Labyrinth, 2006)』는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영화이다. 독재의 삼엄한 분위기를 대변하는 대령과 어린 소녀 오필리아의 대칭성의 세계가 대비를 이루면서 영화는 전개된다. 매우 공포스럽고 참혹한 군사 독재 세계는 철통 같아서 도저히 출구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소녀는 판이라는 정령과 접속하면서 분필로 직접 문을 그리면서 출구를 발견한다. 대령은 체제에 불복종하는 사람은 용서하지 않고 살육을 일삼지만, 신기하게도 대령은 아이에 집착한다. 여자에게는 전남편의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이 바로 영화 속 주인공 오필리아다. 이런 공포와 삼엄한 감시 속에서 엄마는 아버지의 욕망을 위해 임신을 하고 노심초사와 전전긍긍으로 일관한다. 결국 아이는 겨우 살리지만 엄마는 목숨을 잃는다. 난산을 한 것이다.
마음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난산을 하게 된다
양의학적으로 난산은 이상분만(異常分娩)이다. 동의보감에서 난산의 가장 큰 원인은 임신 8~9월에 욕망을 절제하지 않아서라고 지적한다. 이 밖에도 난산의 원인은 다양하다. 원래부터 기혈이 허약한 임산부가 후반부에 양생을 지키지 않았거나 오히려 너무 몸을 쓰지 않아 비만하여 기혈이 막혀 태아가 구를 수 없을 때 난산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판의 미로의 오필리아 엄마는 왜 난산을 했을까. 물론 시절이 워낙 공포스러웠겠지만 감정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해 기혈의 순환이 막힌 것이다. 특히 임신 8~9월은 수양명대장경맥과 수소음신경맥이 태아를 기르면서 마무리되는 과정이다. 대장 경맥은 땅의 기운을 받아서 피부를 생성하는데 그 바탕이 되는 기혈이 부족하니 아이는 엄마의 기혈을 당겨서 피부를 형성한다. 그리고 이때 아기의 몸체와 골격이 자라며 9개의 몸의 구멍이 생기고 혼백 중에 백이 노니며 오른손을 움직인다고 동의보감은 말한다.
9개의 구멍은 눈2, 코2, 귀2, 입1, 생식기2로 9개이다. 한의학에서 구멍은 단순히 생리적인 기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외부와 내가 소통할 수 있는 네트워크적 능력이다. 판의 미로에서 탐욕의 화신으로 ‘손바닥 괴물’이 등장한다. 재밌는 것은 눈의 부재이다. 그러니까 이 괴물에게는 눈이 없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의역학에서 눈은 머리에 뚫려 있는 마음의 창이다. 그런데 그 창이 차단되면 마음의 감응 능력은 상실된다. 손바닥 괴물 앞에는 식탁 위에 끝없이 펼쳐진 음식이 있다. 너무 많아서 배가 터져서 죽을 것 같은 음식이. 그런데 그 괴물의 몸은 파리하고 창백하다. 혼자 아무리 맛난 것을 믾이 먹어보았자 몸에 기혈이 돌겠는가.
<판의 미로>에 등장하는 손바닥 괴물의 손에 달린 눈은 오직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작동한다
괴물의 신체는 아무와도 연결되지 못한 닫힌 마음의 결과이다. 괴물의 눈은 어디에 있는가. 접시 위에 눈알이 놓여 있다. 그리고 오필리아가 그 많은 음식 중에 포도 2알을 따먹자마자 괴물은 눈알을 손바닥에 끼우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자기 것은 조금도 뺏기지 않겠다는 듯이. 괴물에게 눈은 자신의 탐욕을 위해 작동하는 장치일 뿐이다. 구멍은 소통의 능력을 의미한다. 임신 8개월에 네트워크를 위한 9규가 형성됨을 기억하자. 그리고 혼백 중 백이 형성된다. 의역학에서 죽음이란 하늘과 땅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하늘의 기운을 받은 것이 혼이고 땅의 기운을 받은 것이 백이다. 죽으면 혼은 하늘로 백은 땅으로 가는데 그 백이 만들어지는 시기가 8개월째인 것이다. 그리고 9개월째는 돌의 기운을 받아서 피부, 털, 모든 뼈마디가 완전해지고 몸을 세 번 돌린다고 한다. 그러니까 태아는 엄마 뱃속에서 밖으로 나가야 하니 돌의 기운으로 내 몸을 단단히 다져서 지키기 위한 총력전을 벌인다. 그렇게 몸을 다지고 아기는 3번의 몸을 구르는 데 기혈이 부족하면 원활하게 움직일 수가 없게 되어 난산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을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태아는 양수로 길러지다가 열 달이 차면 혈기가 완전해지고 형태와 정신이 갖추어져 꿈에서 깨듯이 스스로 포를 가르고 길을 찾는다고 동의보감은 말한다. 양수는 본래 포속에서 태아를 기르는 물이다. 태의 근원이 튼튼할 때는 포가 터지면 양수를 따라 나오기 때문에 쉽게 아이가 나온다. 하지만 태의 근원이 약하면 머리를 돌리는 것이 더디고 양수가 말라버려 더러운 피가 길을 막기 때문에 난산이 된다고 동의보감은 말하고 있다.
난산에 좋은 약
난산을 막기 위한 대표적인 약이 ‘달생산’과 ‘불수산’이다. 달생산은 기와 혈을 보충하여 임산부의 체력을 키워준다. 특히 양수의 양을 적당하게 만들어주어 태아가 산도를 쉽게 통과하도록 해준다. 약재 중 인삼은 기를, 당귀, 백작약이 피를 보해준다. 그리고 대복피, 소엽, 지각, 사인이 기운을 아래로 내려 양수가 충분하도록 해주어 태아가 구르는데 지장이 없도록 한다.
또한 불수산은 약의 이름부터가 자비롭다. 불은 부처님 불(佛)자이고 수는 손수(手)자이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손길이 태아를 돌봐주듯이 그렇게 순조롭게 아이를 낳게 도와달라는 뜻이다. 이름만으로도 부처님의 자비심을 받고 싶은 염원이 전해져온다. 불수산은 피를 보하는 약 당귀와 천궁으로 구성된다. 집중적으로 피를 보충해주어 자궁에 혈이 부족해지지 않도록 하고 자궁이 아이를 낳는 데 최선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돕는다. 불수산은 궁귀탕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천궁과 당귀가 같은 양으로 작용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판의 미로에서 엄마가 아이를 낳기까지 갖은 통증으로 고생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정령 판은 만드레이크라는 인삼같이 생긴 뿌리를 주며 이것을 우유에 담가 엄마 침대 밑에 놓으라고 한다. 그리고 매일 신선한 피 한두 방울을 주라는 주문을 한다. 그렇게 하자 신기하게도 어머니의 증상은 호전되었다. 아마 판이 준 만드레이크가 달생산과 불수산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태에 기와 혈을 공급해서 자궁을 튼튼히 하고 양수를 충만하는 역할을. 그러던 중에 침대 밑에 있는 만드레이크를 대령에게 들키고 만다. 엄마와 아이를 지켜주었던 만드레이크는 벽난로 속으로 던져지고 화염에 휩싸인다. 오필리아는 강력하게 저항한다. 만드레이크가 엄마와 아이를 살리는 중이라고 강변하지만 우유에 담긴 인삼 같은 식물이 엄마와 아이를 살린다는 말을 사람들은 믿을리가 없다. 동화를 너무 봐서 정신이 나갔다며 현실은 마법이 아니라며 동화는 없다고 단언한다.
마법의 세계는 신비한 세계가 아니다. 온 우주와 연결되어 있음을 믿을 때 열리는 세계이다
하지만 의역학의 세계에서는 만드레이크의 마법이 통한다. 우선 그 식물은 인삼을 닮아있다. 인삼의 약효로 보아 기운을 북돋을 수 있다. 그리고 한두 방울의 피는 혈을 보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유에 담겨져 있다. 우유는 각종 기운의 집약체로 볼 수 있다. 기운의 세계에서는 천지 만물의 기운이 아이와 엄마에게 영향을 미치는 마법과도 같은 세상이 열린다. 하지만 단절된 세상에서는 이 모든 것은 동화 속에서만 통용되는 헛짓일 뿐이다.
난산을 순산으로 만드는 능력
엄마는 죽고 아이는 태어났다. 오필리아는 정령의 인도로 아이를 안고 숲으로 도망간다. 대령은 아이를 결사적으로 찾기 위해 쫓아온다. 판의 정령은 오필리아에게 아이의 피가 필요하다며 아이의 피를 요구한다. 하지만 오필리아는 자신이 살기 위해 아이가 피를 흘리게 할 수 없다고 거부한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대령은 오필리아를 찾아내서 죽이고 아이를 되찾는다. 그런데 대령 앞에는 게릴라 군이 둘러싸여 있다. 사면초가. 그러자 대령은 게릴라군에게 자신의 아들이라며 죽거든 자신의 이름과 시계를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게릴라군은 아이는 너의 이름도 모를 거라며 대령을 죽인다. 이제야 대령이 아이에게 집착한 이유를 알겠다. 그는 자신의 분신이 필요했던 것이다. 자신이 못 이룬 것을 이루어줄 자기 증식으로써의 아이가. 시계를 전해준 것도 시간의 연속성을 아이에게 알리고 싶은 의지였던 것이다.
시계로 대변되는 연속성의 세계에는 출구가 없다
대령의 세계는 너무나 많은 사람의 피를 흘리면서 지켜낸 세계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많은 죽음이 필요하다니. 하지만 오필리아는 자신이 죽음에 처해짐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다. 남의 피를 통해 자신을 지키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녀는 물론 죽었다. 하지만 그녀는 죽은 것이 아니다. 오필리아는 출구가 없을 때마다 분필로 출구를 그려냈듯이 죽음은 새로운 세상을 여는 입구가 되었다. 오필리아의 세계에서는 삶과 죽음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자만이 새로운 세상을 구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판의 미로의 마지막 멘트가 인상적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자신이 왔던 세계의 공주로 돌아갔고 그녀는 지상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나 볼 수 있는 세계는 아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자만이 볼 수 있는 세계라고 하면서 영화는 마무리되고 있다.
아이를 낳는 것이야말로 마법의 세계이다. 하지만 이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아이조차 오직 자기 분식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대령이 그러했듯이. 난산은 생명의 힘을 믿지 못할 때 일어난다. 내 몸의 힘을 믿고 우주와 연결된 에너지로 충만할 때 난산은 순산으로 바뀔 수 있다. 안타깝게도 오필리아의 엄마는 죽었지만 그 죽음을 통해 오필리아가 본 마법의 세계를 인정한다면 엄마의 죽음도 출구가 될 것이다. 난산의 약, 달생산 불수산과 만드레이크가 겹쳐진다. 이 세계에서 약은 그냥 약이 아니다. 약이란 우주의 기운과 접속하는 능력이다. 달생산, ‘빠르게(達)’ 낳게 해준다(生)는 뜻이지만 순조롭게 생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불수산은 부처님의 손길이다. 어떻게 접속하는가에 따라 달생을 할 수도 불수의 자비심과 접속할 수도 있다. 그것은 오직 나에게 달려 있다. 온 우주와 연결되어 있음을 믿는 것이야말로 나 자신을 믿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난산을 순산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열쇠인 것이다.
글_박장금(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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