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안전하고 무리 없는 출산법은?
- 『동의보감』이 전하는 출산법① -
출산의 지혜는 나라마다 있었다
1492년, 콜롬버스는 산타마리아 호를 몰고 포르투갈 리스본 항을 떠난 지 70일 만에 카리브 해의 바하마 군도에 도착했다. 이 역사적인 항해로 콜롬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 이후 신대륙에는 금과 은을 손에 넣기 위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젊은 성직자 라스 카사스(Las Casas, Bartolome de, 1474~1566)도 포함되었다. 그는 신대륙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인디언의 역사』라는 책을 남겼다. 이 책에서 그는 인디언은 몸이 날래고 헤엄을 잘 치며 특히 여자들이 뛰어나다고 묘사하고 있다.
혼인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나 여자나 다 같이 마음 내키는 대로, 짝을 택하며 비난하거나 질투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고 짝을 버린다. 인디언들은 엄청나게 다산을 한다. 임신한 여자들은 해산 당일까지 일을 하며 거의 진통도 느끼지 않고 아이를 낳는다. 다음날 강에서 목욕을 하면 출산 전처럼 깨끗하고 건강해진다.
─하워드 진, 『미국민중사 1』, 이후, 24쪽에서 재인용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서양인이 본 인디언 여성의 해산 모습이다. 해산 당일까지 일을 하며 일상을 유지하다가 거의 진통도 느끼지 않고 아이를 낳는다는 문구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인다. 해산 다음날 목욕을 하고 나면 출산 전처럼 돌아간다고 하니, 출산이 마치 일상적인 일처럼 느껴져 놀랍기만 하다. 출산이 이렇게 홀가분한 것이었던가?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어떠할까? 신대륙의 저편, 인도로 가보자. 출산에 관해 인도인은 5천년 동안 전통적 방법을 지켜 왔다. 인도 여성들은 출산일이 다가오면 자취를 감춘다. 인도에서는 임산부를 자식 없는 부모뿐만 아니라 외간 남자에게 보이면 “예쁜 아이가 태어났을 때 질투를 해서 저주를 받게 된다”고 해서 남편들이 아내를 숨기는 습관이 있다. 숨는다고 해도 마당 한 쪽에 있는 헛간이나 집안의 방 하나를 산실로 해서 숨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이런 터부는 상당히 엄격하게 지켜진다.
인도에서는 남편들이 임신한 아내를 숨기는 습관이 있다.
산부는 그 안에서 출산 전 1주일, 그리고 출산 후 3주 동안 칩거하는데, 안에 일단 들어가면 바깥에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 아기는 산파가 받는다. 부자가 됐든 가난뱅이가 됐든 자기집 아니면 산실에서 산파가 받아내는데, 산파는 대부분 석녀(石女)다. 출산을 경험하지도 못하고 아이를 가질 수도 없는 석녀가 산파가 된다는 것은, 생리가 없어 피를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때 묻지 않은 여자로 간주하고 있는 듯하다.
인도의 여성은 여러 가지 터부와 규칙을 지키며 아이를 낳는데, 그런 것들이 꼭 미신이라고는 할 수 없다. 태어나는 아이를 조용한 환경에서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이고, 산실에 타인을 들이지 않는 것도 태어나는 아기를 놀라지 않게 하고자 하는 배려이다. 갓난 아기는 이제까지 어머니의 태내라고 하는 가장 편안한 환경 속에서 살다가 이를 벗어나 갑자기 소란스럽고 시끄러운 바깥 세상으로 떨어져 나오면 굉장한 쇼크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그 쇼크에 놀라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다이쿠바라 야타로, 『티베트 의학의 지혜』, 여강출판사, 32~35쪽 정리
인도 여성은 출산 전과 출산 후에 많은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출산하는데, 이와 대조적인 것이 티베트 유목민의 출산이다. 이들의 출산은 한마디로 매우 빠르다. 마치 암탉이 알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은 출산이라고 할까? 임산부는 머리 위의 텐트 기둥에 있는 손잡이에 매달려서 경험 많은 산파의 도움으로 서서 아기를 낳는다. 산기(産氣)를 느끼는 것은 아기와 모체를 잇는 파이프가 끊어지고 그것이 자연히 닫혀져 아기가 밀려나오는 현상이다. 그때 어머니가 서 있으면 아기는 밀리는 힘에 의해 그대로 나온다. 뉴턴의 법칙대로 아기 자체의 무게로 나오는 것이다. 선 자세에서는 ‘진통이 일어난다 → 아기가 밀려 나온다 → 낳는다’는 일련의 과정이 원활해져 거의 완전한 자연분만이 가능한 것이다.
『티베트 의학의 지혜』, 여강출판사, 47쪽 정리
이렇듯 나라마다 출산의 방식, 출산을 맞이하는 태도는 다르다. 다만 그들의 환경과 문화에 따라 각기 다른 출산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수천 년 세월을 거쳐 다듬어 온 지혜의 소산이다.
출산은 자연현상이다
출산은 병이 아니라 자연스런 몸의 현상이다. 산달이 되면 누구나 진통이 오고 아기는 모체로부터 이탈하여 밀려나오므로 그때를 기다리고 있으면 자연분만이 가능하다. 티베트 유목민들이 행하는 입식 출산이 아니라도 자연분만이 가장 안전하고 무리 없는 출산법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앞서 본 것처럼 출산법은 각 나라의 문화와 전통에 따라 있어왔다. 우리나라에도 물론 오래된 출산의 노하우가 있다. 그 노하우를 『동의보감』에는 열 가지 제시하고 있다. 그것을 열거하면 정산, 좌산, 와산, 횡산, 역산, 편산, 애산, 반장산, 열산, 동산이다. 이번에는 그 중에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동의보감에서 제시하는 다섯 가지 출산법
정산(正産)은 정상적인 출산을 말한다. 임신한 지 10개월이 되면, 갑자기 배꼽 주위에 산통이 오고 태아가 아래로 처지며 양수가 쏟아지는데 한번 힘을 주면 아이가 나온다. 정상적인 분만 과정을 보여준다. 좌산(坐産)은 태아의 엉덩이가 먼저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임산부가 너무 일찍 힘을 주었기 때문에 생긴다. 해산할 무렵에 산모가 피곤하여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에 태아가 나올 길이 막혀서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이때는 높은 곳에 수건을 달아매고 산모가 그 수건에 매달려서 다리를 약간씩 구부리게 하면 태아가 순조롭게 나온다.
와산(臥産)은 산모가 반듯이 누워서 등을 자리에 붙이고 낳는 것인데, 몸을 구부리지 않으면 태아는 산도를 따라 저절로 쉽게 나온다. 횡산(橫産)은 태아의 손이나 팔이 먼저 나오는 것을 이른다. 이때는 산모를 반듯이 눕히고 산파가 천천히 먼저 태아의 하부를 위로 가게 밀어 올리고 손을 넣어 가운뎃손가락으로 태아의 어깨를 위로 밀어 올려서 바로잡는다. 그런 다음 점차 손으로 귀를 잡아당겨 머리를 바로 놓이게 하여, 태아의 몸이 바르게 되고 산도(山道)가 트이면 출산을 촉진하는 약을 먹인다. 그런 다음 산모로 하여금 자리에 편안히 누워서 힘을 주게 하면 아이를 쉽게 낳는다.
역산(逆産)은 태아의 발이 먼저 나오는 것이다. ‘횡산’은 태아의 손이 먼저 나오는 것인데, 이렇게 손이나 발이 먼저 나왔을 때는 가는 침으로 아이의 손바닥이나 발바닥을 1~2푼 깊이로 서너 번 찌르고 그 자리에 소금을 바른 다음 살살 밀어 넣으면 아이가 아파 놀라는 순간 몸을 움츠리고 한번 돌면서 곧 순조롭게 나온다. 또 태아의 다리가 먼저 나오는 것은 이른바 ‘연꽃을 밟고 나온다’고 하는데, 이때는 급히 태아의 발바닥에 소금을 바르고 긁어 주는 동시에 산모의 배에도 소금을 바르고 문질러 주면 자연히 아이가 바로 돌아서 나온다.
『동의보감』에서 제시하는 출산법은 출산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감안한 노하우를 보여준다. 여기에는 출산이 우리 삶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자연스런 일이라는 것을 전제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도 출산은 집에서 자연분만 하는 것이었다. 우리 엄마도 아이를 일곱 낳았다. 첫 출산만 큰어머니의 도움을 받았고, 나머지는 모두 엄마 혼자 낳으셨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출산은 어떠한가?
병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출산
요즘 산부인과에서는 자연분만을 그다지 존중하지 않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예정일이 지나면 진통이 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진통촉진제를 사용하여 출산을 앞당기려고 한다. 태아가 너무 커져서 산모가 위험하다거나 어떤 긴급사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일요일만큼은 쉬고 싶어서, 또는 근무시간 안에 끝내고 싶어하는 병원 측의 사정으로 출산일이나 시간을 결정해 버린다.
진통촉진제는 자궁의 근육을 수축시켜 복근력으로 아기를 밀어내는 것이다. 그것을 사용하면 빨리 낳을 수는 있지만 모체나 아기에게 아무 영향이 없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진통이라는 것은 아기를 감싸고 있는 태반 유니트가 자연스럽게 자궁내막에서 떨어져 나갈 때 생긴다. 그때까지 아기는 파이프를 통해 모체에서 산소와 영양을 공급받고 있는데 그 파이프가 하나씩 하나씩 끊겨 지금까지 양수 속에서 이루어지던 아가미 호흡이 폐호흡으로 변환하기 위한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그 준비가 충분해졌을 때 태반이 벗겨져 밀려나온다.
그런 단계에서 진통촉진제를 사용하면 아직 몸의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자궁의 근육을 수축시켜 밀어내려는 것이므로 파이프가 비틀린 모양이 된다. 자연분만이라면 모든 공급파이프가 자연스럽게 닫히지만 인공적으로는 닫히게 할 수 없으므로 출혈이 많아진다. 물론 그렇게 되면 지혈제나 근육수축제 등을 투여하여 처치하지만 자연의 리듬을 무시하면서까지 외부에서 처치한다는 게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다.
병원에서는 진통촉진제, 제왕절개를 통한 출산을 권유한다.
또 하나 최근 빈번하게 시술되는 것이 제왕절개에 의한 출산이다. 이것 역시 분만의 위험 때문에 시술되는 것이 아니라 분만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서 마구 시술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정상분만이라면 아기는 좁은 산도를 통해 나올 때에 흉곽이 좁혀져 일시적인 산소 결핍 상태가 된다. 그런 상태를 거쳐 태어나자마자 복원력으로 흉곽이 넓어지면서 산소가 들어온다. 아직 폐 안에는 물이 차 있는데 그 물을 밀어내는 형식으로 공기가 들어오는 것이다. 폐를 통해 산소를 혈액에 공급하는 것, 즉 호흡하는 인간으로서의 첫걸음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제왕절개로 분만하면 이 과정이 생략되므로 폐의 물은 의사가 빼내야 한다. 자신이 필요한 만큼의 산소를 섭취해서 물을 밀어내는 게 아니라 물이 빼내어지고 거기에 공기가 들어오는 것이다. 그때 들어온 공기에 의해 그 아기의 혈액의 질이 결정되는데, 외부에서 정해진 양은 나중에 저항력에도 문제가 된다. 산소의 양도, 정상분만이라면 태어난 순간에 자신에게 필요한 양을 한순간에 섭취하므로 혈액 속 헤모글로빈의 농도가 알맞게 균형을 이루지만, 산도를 빠져나오는 시련을 겪지 않은 아기는 혈액의 균형을 잘 맞추지 못해 신생아 황달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티베트 의학의 지혜』, 48~50쪽 정리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요청되는 건 자연분만일까? 병원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출산이라면 이 또한 어렵지 않을까 싶다. 출산을 앞둔 임산부의 블로그에 이런 글귀가 있다. 이 글이 출산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출산의 주체는 산모와 아기라면, 분만의 주체는 의료진이에요. 사실 병원에서 자연분만을 권장한다고 하더라도 출산과 분만을 이렇게 구분해서 본다면 무통주사, 촉진제, 관장, 제모, 회음부 절개 등 의료진의 효율적인 시스템 관리를 위한 방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연분만도 출산이 아닌 분만으로 보는 것이지요.
글_이영희(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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