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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톡톡] 난산, 엄마와 태아의 팽팽한 힘이 무너질 때

by 북드라망 2015. 8. 6.


난산,  

엄마와 태아의 팽팽한 힘이 무너질 때




나는 어렸을 때 강원도 산골에서 자랐다. 지금이야 흔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동네에서 의원처럼 활동하던 노인분이 많으셨다. 그런 분 중에 한 분이 나의 할머니셨다. 일명 동네의 야메의원(?)이라고나 할까.^^ 침통 주머니를 허리춤에 차고 아픈 사람이 있는 곳에 출장을 다니셨다.


할머니는 이야기만 듣고도 어디가 아픈지 대번 아셨다. 침 주머니에서 침 하나를 꺼내서 머리에 쓱쓱 몇 번 문지르고 나서 손‧발‧얼굴에(지금 생각해 보면 혈자리 같다) 침을 찔렀다. 그러면 말간 물이 나오기도 하고, 탁하고 뭉친 혈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는 처방까지 해주셨다. 처방은 아주 간단했다. 그중에 생각나는 것이 있다. 흰 파 뿌리(전문용어로 총백)와 콩나물을 참기름에 넣고 졸인 다음 그 기름을 경기를 일으킨 아이에게 두 스푼 떠먹이면 나았다. 오~놀라워라!


할머니의 손



그리고 또 하나는 큰어머님이 셋째를 낳을 때다. 내가 어렸을 때 거의 모든 산모가 집에서 아이를 낳았다. 지금은 남자들도 함께 아이 낳는 순간을 지켜보지만, 당시에는 아이 낳을 때 아무도 못 보게 했다. 어린 나는 너무 궁금해서 밖에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어른들의 정신없는 틈을 이용해 슬며시 산모 방에 침투했다. 침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쫓겨나긴 했지만. 쩝! 큰어머님은 아이가 나오지 않아 무척 힘들어하던 표정이 선명하다. 아마 난산이었던 모양이다. 그때도 할머니는 여지없이 실력을 발휘하셨다.


그 당시 시내에 있는 병원까지는 꽤 걸렸고 가까운 약국도 버스로 20분이 걸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병원은 가격이 비쌌다. 시골에서는 병원까지 갈 만큼 시급한 병도, 돈도 많지 않았다. 그러니 마을 자체에서 해결할 수밖에. 할머니는 그런 민간요법과 의학적 지식(또는 지혜)을 어디서 배운 것일까. 아마도 어머니의, 어머니, 어머니에게서 듣고 배운 삶의 지혜일 것이다. 그 삶의 지혜에는 의료기술뿐만 아니라 상대의 말을 들어줌으로써 심신을 편하게 하는 역할도 했다. 할머니는 일상과 임상에서 겪은 기술치를 충분히 활용했기 때문에 큰어머니의 난산뿐 아니라 많은 병을 해결해 주셨다.



난산이 생기는 원인


그렇다면 큰어머니에게 난산이 생긴 까닭은 무엇일까? 큰어머니는 평소 몸이 약하거나 소화가 안 되거나 겁이 많지 않으셨다. 큰어머니의 체구는 건장했고, 잘 먹었고, 노동력이 필요한 시골이다 보니 임신 중에도 몸은 적당히 움직이셨다. 아마도 3대가 같이 사는 집안에 며느리다 보니 칠정으로 인한 기혈 소모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렇다면 동의보감에서 난산의 원인을 무엇으로 보고 있는지 확인해 보기로 하자.


●난산하는 것은 모두 임신 8~9개월에 욕망을 절제하지 않아 기혈이 허해졌기 때문이다. 

●난산하는 경우는 흔히 잘 살고 게으른 여자에게서 많이 볼 수 있으며, 가난하고 고생하는 여자에게는 적다. … 어떤 부인이 난산으로 고생한 다음부터 임신하면 유산하곤 하였다. 그래서 자소음(紫蘇飮)에 기를 보하는 약을 썼더니, 그 후에 아들을 낳았는데 아주 쉽게 낳았으므로 그 처방의 이름을 달생산(達生散)이라고 하였다. 

●임신부가 운동을 하지 않고 몸을 펴고 있지 않다가 진통을 참느라고 몸을 오그리고 모로 누워 있으면 태아가 뱃속에서 돌지 못하여 횡으로 나오거나 거꾸로 나오게 되고, 심하면 태아가 뱃속에서 죽는 일도 있으므로 삼가 조심해야 한다. 

●산달이 되면 복통이 느껴진다. 너무 일찍 놀라게 하여 임신부가 두려워하게 하면 안 된다. 두려워하면 기(氣)가 약해지고 기가 약해지면 상초(上焦)가 막히고 하초(下焦)는 불러올라 기가 돌지 않기 때문에 난산하게 된다. 급히 자소음을 먹여 그 기를 통하게 해야 한다. 

●분만할 때 갑자기 눈이 뒤집히고 입을 악물며 거품을 토할 때는 벽력단(霹靂丹)을 써야 한다. 

─『동의보감』,「잡병편」, 「부인」, 법인문화사, 1,659쪽


임신 8~9개월이면 태아는 엄마 뱃속에서 모든 형을 거의 갖추어진 상태다. 이제부터는 형을 단단하게 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겉과 안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태아는 엄마의 기혈을 끌어모은다. 이때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부부관계를 하거나 과도한 감정소모를 하면 기혈은 허해져서 난산될 수 있다. 난산을 막으려면 기혈을 잘 만들고 돌리려면 잘 자고, 잘 먹되 과하게 먹지 말아야 하고, 부부관계를 피해야 한다.


잘 자는 것과 잘 먹는 것은 혈을 잘 만들어내어 기 순환을 원활하게 만드는 것이다. 부부관계를 피하라는 것은 기혈의 흐름을 과도하게 끌어올려 소모한다. 이때 기혈이 어지러워져 심장에 무리를 준다. 이렇게 어지러운 기운은 태아에게도 영향을 미쳐 경기를 일으키거나 전간(癲癎:간질)을 발생시킨다. 아기가 태어날 때 같이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는 기혈을 보하면서 어느 정도의 운동으로 근력을 키워야 한다. 따라서 적절한 걷기와 가벼운 계단 오르내리기와 일상을 진행하는 것이 좋다.


순산의 어려움




난산에 좋은 약


산달이 되면 임신부들은 두렵다. 아이를 낳을 때의 고통, 아이가 무사하게 태어날지에 대한 걱정 등 다양한 두려움이 생긴다. 두려우면 호흡이 원활하지 않고, 숨이 가쁘면서 기가 약해지거나 상초에 기가 머물러 답답해진다. 상초의 기가 막히면 하초로 내려가던 기 역시 순환이 안 되어 올라오지 못하고 정체된다. 기는 혈과 함께 다니기 때문에 기가 약해지고 막히면 혈 또한 약해지고 막힌다. 기혈이 약해지면 자궁 수축이나 이완하는 힘 역시 약해지니 당연히 난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 기를 통하게 하는 약이 자소음(紫蘇飮)에 기를 보한 ‘달생산(達生散)’이다.


달생산에 들어가는 인삼, 당귀, 백작약은 임신부의 기혈을 보충해 주어 체력을 높여준다. 또, 자소음에 들어있는 ‘자소엽’은 자줏빛 잎을 가진 향기로운 냄새를 가진 식물이다. 자소엽의 향기는 기가 상초에 머물러 있는 것을 끌어내려 퍼트려주는 작용을 하여 기를 통하게 한다. 기가 통하면 호흡도 편해진다. 호흡은 폐로 하지만 그 기를 하초인 신장에서 끌어 내려주어야 깊게 할 수 있다. 이런 원리에 의해 상초에 기가 머물면 하초에도 기가 정체된다. 따라서 상초의 기를 풀어주면 가슴에 있는 담과 기(氣)를 내려가서 하초의 기울까지 풀어주는 작용을 한다.


분만할 때 갑자기 눈이 뒤집히고 입을 악물며 거품을 토하는 것은 음이 허하여 양을 제압하지 못해서이다. 분만할 때는 산모의 모든 기혈이 자궁 쪽으로 몰린다. 전신으로 퍼져 있어야 할 기혈이 아이를 내보내기 위해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쏠린다. 또한, 두려워하고 긴장하는 마음도 한몫한다. 이럴 때 기혈이 손상되거나 혈이 부족하여 근맥을 자양하지 못한다. 이것은 간의 화가 쉽게 항진하고 요동하기 때문이다. 열사가 지나치게 성하여 간경을 졸이고 열이 극에 달함으로 인해 간풍이 내부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럴 때 ‘벽력단’을 쓰면 좋다. 벽력단(霹靂丹)의 주재료는 잠퇴지(누에 알을 깔았던 종이)이다. 잠퇴지는 혈에 풍사를 몰아내고 경련을 진정시키는 작용을 한다. (약에 대한 설명은 다음 ‘난산의 약’ 편을 참조해주시기를^^)


난산을 이겨내려면?



난산이란 엄마와 태아의 팽팽한 힘이 무너질 때 발생한다. 엄마가 감정이나 욕망을 과하게 쓰거나, 몸의 근육들을 제대로 쓰지 않아 무기력해졌을 때 몸과 마음에 이상이 생긴다. 또 태아가 엄마와 호흡을 맞추지 않고 너무 일찍 나오려고 하거나 늦게 나오려고 할 때 난산으로 이어진다. 서로의 호흡과 타이밍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순산이냐 난산이냐의 갈림길에 선다. 난산을 이겨내려면 우선 엄마의 심신이 편안해야 한다. 두려움과 긴장 속에서 엄마의 몸 상태를 잘 판단할 수 없다. 또 태아가 보내는 신호를 제때 받지 못한다. 할머니가 아픈 사람을 치료하기 전에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치료한 것처럼, 엄마와 태아는 서로의 코드를 읽어내야 한다. 엄마는 태아를 한 개체로 인정하여 태아를 세상 밖으로 밀어내는 힘의 조율을, 태아는 엄마의 자궁으로부터 독립하려는 힘의 조율을 해야 한다. 두 힘의 신호체계를 맞출 때 난산이 아닌 순산으로 이어지게 된다.



글_용재(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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