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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주역서당

어떻게 오를 것인가? - 지풍승

by 북드라망 2015. 7. 16.


지풍승, 어떻게 오를 것인가?




仰以觀於天文,俯以察於地理,是故知幽明之故。(앙이관어천문, 부이찰어지리, 시고지유명지고)

(위로) 우러러서는 천문을 보고, (아래로) 구부려서는 지리를 살피니라. 이런 까닭에 그윽하고 밝은 (천지의) 도리를 안다.


첫 문장부터 한문 원문이라니! 숨이 턱 막힐 것이다. 어서 빨리 해석을 보고 숨부터 고르시라. 위의 문장은 『주역』(앞으로는 ‘주역’이라는 말이 빈번하게 사용될 것이므로 ‘『』’ 표시를 생략하겠다.)의 괘사와 효사를 설명한 책인 「계사전」에 나오는 구절로 성인이 역을 저술할 때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는 주역에 덧씌워진 신비한 이미지 때문에 성인(주역 저술에 참여한 성인을 흔히 복희씨, 문왕, 주공 … 공자라고 한다)들이 초월적인 능력을 발휘해 주역을 저술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달리 그 방법은 너무도 간단하고 평범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피고, 고개를 숙여 땅을 살핀 게 전부 아닌가. 물론 이 간단명료 작업만으로도 천지의 이치와 만물의 변화를 ‘케치’해낸 성인들의 관찰력은 비범하기 이를 데 없지만.


성인들은 천지자연의 도리를 관찰한 뒤, 인간들이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지침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주역 64괘다. 오늘 공부할 마흔여섯 번째 괘 지풍승(地風升)도 천지자연에서 추출한(?) 삶의 지혜가 담겨있다.


천지자연의 도리를 안다.



象曰 地中生木이 升이니

상왈 지중생목이 승이니

상전에 이르길 땅 가운데에서 나무가 나오는 것이 승이니


君子가 以하야 順德하야 積小以高大하나니라.

군자가 이하야 순덕하야 적소이고대하나니라.

군자가 이로써 덕에 순해서 작은 것을 쌓아 크게 하느니라. 


지풍숭의 형상을 설명한 대상전이다. 지풍승(升)은 땅에서 나무가 나오는 형상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성인은 화창한 봄날 땅을 뚫고 올라온 나무의 새싹을 보고 지풍승이라는 괘를 만든 것이다. 성인은 생각했을 것이다. 작은 새싹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자라나 아름드리 고목이 되듯 사람(구체적으로는 ‘군자’)도 덕을 따라 순리대로 행하며 작은 것을 쌓아서 크게 되어야 한다고. 이런 ‘사소한’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나서 인간의 삶에 대입하는 저 적용능력이란! 정말이지 성인이라고 칭송받는 대는 다 이유가 있다. 자 그럼 좀 더 구체적으로 성인의 말씀을 찬찬히 따라가면서 지풍승을 탐색해보도록 하자.



<괘사> 대인이여 남쪽으로 ‘올라가면’ 길하리라


앞서도 말했듯 지풍승은 나무가 쑥쑥 커 올라가는 형상이라고 해서 괘명을 승(升:오를 승)이라고 하였다. 괘상을 보면서 이야기해 보자. 외괘(위쪽에 있는 괘)는 곤삼절(☷ : 곤을 땅을 나타내고, 삼절을 세 효가 끊어진 것을 말한다) 땅괘이고, 내괘(아래쪽에 있는 괘)는 손하절(☴ : 손은 바람을 나타내고, 하절은 가장 아래에 있는 효가 끊어진 것을 말한다.) 바람괘이다. 바람괘는 주역에서 나무라고도 설명하므로 괘 모양만 봐도 나무가 땅을 뚫고 올라가는 형상이란 걸 알 수 있다.


그럼 앞서 나온 택지췌와는 무슨 관계일까. 앞에서 주역 64괘는 모두 일련의 호응관계를 맺는다고 말했다. 천풍구(44번째)-택지췌(45번째)-지풍승(46번째)을 보면 천풍구는 ‘만난다’, 택지췌는 ‘모인다’, 지풍승은 ’오른다‘의 뜻이 있다. 이 셋을 합치면 만나서 모이고 쌓이면 위로 올라간다는 서사가 구성된다. 한눈에 보기에도 나빠 보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지풍승 괘사에서는 크게 형통하다고 말한다.


升은 元亨하니 用見大人호대 勿恤*코 南征하면 吉하리라.

승은 원형하니 용견대인호대 물휼코 남정하면 길하리라. 

승은 크게 형통하니, 써 대인을 보되 근심치 말고 남으로 가면 길하리라. 

*근심 휼(恤)


지풍승, 나무가 쑥쑥 커 올라가는 형상



나무가 쑥쑥 크는 것처럼 무엇이든 쌓여서 올라가는 때이니 형통할 수밖에. 그런데 뒤이어 용견대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갑자기 대인을 보라니? 주역의 ‘다짜고짜 뜬금포’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주역을 읽으면서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이제 우리에게도 ‘뭐 나름의 뜻이 있겠지’라고 생각할 여유가 있다.


여기서 대인은 구이를 말한다. 내괘에 위치한 구이를 보라. 주역에서는 자리를 중시하는데 강한 양이 중의 자리를 잘 지키고 있다. 하여 대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자리가 좋아도 구이가 있는 두 번째 효는 신하의 자리다. 아시다시피 군주의 자리는 다섯 번째 효이기 때문이다. 지풍승에서 군주는 육오다. 육오가 외괘에서 중, 그러니까 군주의 자리에 앉아있다. 아쉬운 점은 육오가 음이므로 유약한 군주라는 것이다. 유약한 군주 육오는 재야에 묻힌 대인 구이를 만나 도움을 받아야 정사를 펼칠 수 있다. 구이도 육오의 부름을 받아 중앙정계로 나아가야 원대한 포부를 실행할 수 있다.


한데 첫 만남이란 언제나 두렵고 근심스럽다. ‘저 사람이 과연 믿을만한 사람인지’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하지만 근심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근심걱정일랑 운명에 맡겨두고 서로를 철석같이 믿어야 한다. ‘남쪽으로 가면 길하다’는 것은 구이가 자신이 있던 북쪽(괘의 아래쪽은 북쪽)을 떠나 육오가 있는 남쪽(괘의 위쪽은 남쪽)으로 가는 것을 말한다. 궁벽한 시골을 떠나 번화한 도읍으로 군주를 만나러 출발!



<효사> 오르되 바르게 순리대로 올라라!


初六은 允升이니 大吉하니라.

초육은 윤승이니 대길하니라.

초육은 믿어서 오름이니 크게 길하니라.


주역은 효의 성격과 효가 위치한 자리가 합당한지 아닌지에 따라 길·흉과 정(正)·부정(不正)이 결정된다. 초육은 양의 자리에 음이 위치한 탓에 길하지도 정하지도 않다.(지난 시간에도 다루었는데 1효-양, 2효-음, 3효-양, 4효-음, 5효-양, 6-음의 자리다.) 게다가 자신의 짝인 육사와는 음음(陰陰)커플로 자석의 같은 극처럼 서로를 밀어낸다. 그런데도 ‘믿음을 가지고 올라가면 크게 길하다고 한다.’ 초육이 자리도 바르지 않고, 짝과 응하지도 않는데 좋게 해석하는 이유는 유약하고 어리기 때문이다. 지풍승을 땅을 뚫고 자라나는 나무로 비유하면 초육은 작은 새싹인 셈인데, 작은 새싹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거기다 바로 위에 있는 강한 구오에게 의지해서 쑥쑥 자란다면 길할 수밖에. 비록 좋은 ‘짝’을 만나진 못했지만 대신 자신을 키워줄 든든한 조력자를 만났다.


象曰 允升大吉은 上合志也라.

상왈 윤승대길은 상합지야라.

상전에 이르길 ‘윤승대길’은 위와 뜻이 합함이라.


초육 효사를 풀어주는 상전에서도 같은 말을 한다. 초육은 구이와 뜻을 합해서 구이를 믿고 올라가기 때문에 크게 길하다고.


九二는 孚乃利用禴*이니 无咎리라.

구이는 부내이용약이니 무구리라.

구이는 믿어서 이에 간략한 제사를 씀이 이로우니, 허물이 없으리라.

*간략한 제사 약(禴)


자 이번에는 초육의 조력자이자 군주 육오와 짝하는 구이를 보자. 구이는 양이 음자리에 있어서 자리에 합당하지 않다. 하지만 강건한 양이 내괘의 가운데 자리(흔히 中에 있다고 표현한다.)를 얻었기 때문에 아무런 허물이 되지 않는다. 구이가 초육을 기르고, 육오를 보필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건 전적으로 강하고 바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한데 사람의 마음이란 게 간사해서 보통 힘이 비범하고 능력이 출중하면 오만해지기 십상이다. 구오도 충분히 자신의 타고난 것들을 과신하고 오만해질 수 있다. 하지만 구오는 ‘대인’이다. 자신의 출중한 능력만큼, 자신을 다스릴 내공이 있다. ‘믿어서 이에 간략한 제사를 씀이 이로우니 허물이 없다는 것’은 구이가 육오에 대한 믿음을 돈독히 하면서 소박하고 정갈한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정성어린 마음을 다한다는 것을 뜻한다. 자신의 능력만 믿고 군주를 업신여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정성어린 마음을 다한다.



九三은 升虛邑이로다.

구삼은 승허읍이로다.

구삼은 빈 읍에 오름이로다.


구삼은 양이 양자리에 바르게(正) 있고 내괘인 손하절 바람괘의 끝에 위치한다. 구이에게는 못 미친다 하더라도 구삼의 기세도 대단하다. 거기다 앞에는 효사에서 빈 읍이라고 표현한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곤삼절 땅괘가 있다. 기운이 세고 포부가 큰 사나이가 너른 들판을 내달리는 형국이다. 그러니 구삼은 어디 하나 거칠 것 없이 승승장구한다.

 

六四는 王用享于岐山이면 吉코 无咎하리라.

육사는 왕용향우기산이면 길코 무구하리라.

육사는 왕이 써 기산에서 제사를 지내면 길하고 허물이 없으리라.


육사는 음이 음의 자리에 바르게 자리했다. 육사는 주역을 저술한 사람 중 한 명인 문왕의 이야기다. 여기에는 배경 지식이 필요한데 그 옛날 폭군 주왕의 치세 때 은나라의 서쪽을 다스리던 제후가 바로 문왕이었다. 문왕은 서쪽 땅의 기산에 있었는데 천자인 주와는 다르게 인자하고 바른 정치를 해서 백성들에게 덕망이 높았다. ‘기산에서 제사를 지내면 길하고 허물이 없으리라’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문왕이 기산에서 백성들을 다스리니 길하고 허물이 없다는 말이다. 주의 폭정 속에서도 신에게 제사를 올리듯 정성을 다해 백성들을 보살핀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문자 그대로 문왕이 서쪽 기산에 올라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보는 것이다. 주의 폭정으로 조화가 어그러진 천지를 위해 문왕이 제사를 지내니 길하고 허물이 없다는 뜻이리라.


六五는 貞이라야 吉하리니 升階로다.

육오는 정이라야 길하리니 승계로다.

육오는 바르게 하여야 길하리니 섬돌에 오르도다.


육오는 군주, 천자의 자리다. 비록 유약한 음이지만 만사를 주관하는 천자다. ‘섬돌에 오른다’는 말은 천자가 제위에 오른다는 말이다. 섬돌과 제위라니. 너무 뜬금없는 비약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극을 보면 황제를 부를 때 쓰는 폐하라는 말도 궁궐의 계단 밑이라는 뜻이다. 신하는 직접 천자를 보고 말할 수가 없다. 천자가 거처하는 전각의 계단 밑에 꿇어앉아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 천자의 시중을 드는 시위가 천자에게 전해준다. 이런 예의 격식이 천자에 대한 경칭이 된 것이다.


천자의 자리



천자는 이 우주의 중심이다. 하늘에 정점에 북극성이 있는 것처럼 세상의 중심에는 천자가 있다. 하여 중국 천자의 궁궐인 자금성도 북극성을 지칭하는 자미성에서 유래했다. 북극성이 모든 별자리를 주관하듯 천자도 천하를 주관한다. 천자의 말 한마디가 만물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처럼. 하여 천자가 먼저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리에 올라야(升) 한다. 한데 육오가 제위에 오른다는 말을 하면서 ‘바르게 하여야 길하다’는 충고를 덧붙였다. 그 이유는 육오가 음이기 때문이다. 유약한 음이 자칫 잘못하면 바르지 못한 곳에 빠질 염려가 있으므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충고를 한 것이다.


上六은 冥升이니 利于不息之貞하니라.

상육은 명승이니 이우불식지정하니라.

상육은 어둡게 오름이니, 쉬지 않는 바름이 이로우니라.


상육은 지풍승의 극단이다. 끊임없는 순환을 전제하는 주역에서 극에 이른다는 것은 변화를 준비해야 할 때가 다가왔다는 말이다. 변화는 순환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지만 굉장히 혼란한 시기이기도 하다. 하여 주역에서는 이 극단의 시기를 길하게 해석하지는 않는다. 상육은 오르는데 ‘어둡게’ 오른다. 어둡게 오른다는 것은 위로 올라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욕심을 부린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아등바등 높이 올라가도 결국에는 아무것도 없는 암흑뿐이다. 그러므로 ‘쉬지 말고 바르게 해야 이롭다는’는 경고하는 것이다.


쉬지 말고 바르게 나아가라.



정리해보면 지풍승은 ‘오른다’, ‘나아가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어리고 유약한 초육은 구이의 도움을 받아 쑥쑥 자라나고, 구이는 육오 천자의 부름을 받아 벼슬길로 나아간다. 구삼은 거칠 것 없이 질주하며, 구사는 산에 올라 제사를 지내고, 백성들을 보살핀다. 육오 천자는 제위에 올라 만물을 다스리고, 상육은 욕심에 눈이 멀어서 부정하게 오른다.


여섯 개의 효사는 달리 보면 우리가 무언가를 성취해 나갈 때의 과정과도 비슷하다. 초육은 시작의 단계이고 구이는 내가 가진 능력을 발휘할 때를 만나는 단계이고, 구삼은 승승장구하는 단계이고, 육사는 나에게 닥친 어려움을 견디며 나아가는 단계이고, 육오는 일정한 지위에 올라 지휘하고 결단해야 하는 단계다.


이건 일, 공부, 기술 등 세상만사 어디에나 통용되는 과정이다. 한데 우리는 항상 빨리 ‘오르고’, 빨리 ‘나아가기’를 원한다. 남들보다 빨리, 남들보다 많이. 그래서 주역에는 효마다 경계의 말을 덧붙였는지 모른다. 그리고도 안심하지 못해 상육에서 강하게 충고한다. 욕심을 내서 부정하게 오르지 말라고. ‘쉬지 말고’ 오르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대신 바르게 순리대로 오르도록 ‘쉬지 말고’ 노력하라고. 자 살다보면 오를 때(升)도 있고, 내려갈 때(降)도 있다. 이제 지풍승괘를 배웠으니 올라갈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지혜를 얻었을 것이다.



글_곰진(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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