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보기
오전 9시. 첫 번째 이용자 A씨 집에 도착,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로 일을 시작한다. 아침잠이 많아 잘 일어나지 못하는 이용자를 위해 최대한 크게 인사를 한다. 설거지를 하고 커피 물을 미리 끊여 놓는다. 이용자가 커피나 물을 찾으면 갖다 주고 거실과 작은 방 청소를 한다. 그동안 A씨는 출근 준비를 한다. A씨는 아침잠이 많은 편이다. 종종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잠들어버리는데 그렇게 되면 출근시간은 11시를 훌쩍 넘겨버린다. A씨가 겨우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침대에 있는 세탁물을 세탁기에 넣고 소변통과 쓰레기통을 비운다. 그사이 A씨는 머리감고 세수를 한 후 옷을 갈아입기 위해 다시 방으로 들어온다. 옷을 챙겨주고 세탁기를 돌린다. 이제부터 마음이 급해진다. 두 번째 이용자 집으로 12시까지 가야하기 때문이다. 물론 B씨의 집은 같은 빌라 위층이다. 하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 침대를 정리하고 방을 닦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빨래를 널어야 한다. 출근 준비가 끝난 A씨를 따라 노트북 가방을 들고 같이 나가서 가방을 건네줘야 하고 휠체어를 접어 뒷좌석에 실어야 한다. 인사를 한 후 재빨리 집으로 돌아와 나머지 일들을 끝낸 다음 두 번째 이용자 집으로 이동한다.
집에 들어서면서 “안녕하세요. 아버님! 약은 드셨어요?”라고 하며 일을 시작한다. 밥상을 차리고 침대를 정리하고 이불을 털고 쓰레기치우고 재떨이를 비우고 작은 방을 닦고 나면 이용자의 식사가 끝난다. 설거지를 하고 쌀을 씻어 놓고 부엌과 화장실 청소를 한 후, 나도 간단히 점심을 먹는다. 남은 일과를 하면 나면 오후 3시. 이제 활동지에 사인을 받고 집으로. 요즘 나의 일상이다. 5월부터 일주일에 4번. 이용자 2명을 3시간씩 하루 6시간 가사지원서비스를 하고 있다. 오전과 오후 일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오전에 하는 일은 장애 1,2급 이용자를 위한 장애인활동보조로 보건복지부가 관리, 장애인복지관이나 장애인자립센터에서 위탁 운영된다. 오후에 하는 일은 경기도에만 있는 생활도우미 활동이다. 장애 3급 이용자들을 보조하는 활동이며 경기도 재정으로 운영 관리되고 각 장애인복지관에서 사업선정을 받아 운영된다. 하는 일은 장애인활동보조인(이하 활보)과 같으며 다른 점은 활보는 언제든지(시간제약이나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 등에 상관없이) 활동할 수 있지만 생활도우미는 복지관이 운영되는 시간에만 일할 수 있다는(오후 6시 이후,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은 활동할 수 없다) 점이다.
활보와의 만남
작년 7월, 찾아온 병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있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원망스럽고 세상 그 어떤 사람보다 내 자신이 제일 불쌍하고 안쓰러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금언니는 활보를 해보라고 했다. 아니 아파서 내 몸 하나 추스르지도 못하는데 무슨 일을 하라고 하나 싶었다. “너 아프기 전에도 일했잖아?” 맞다. 그랬다. 검사결과가 나오고 아니 사실 항암을 시작하기 전까지 그전과 똑같이 일을 했었다. 나의 일은 대안학교에서 아이들 밥을 해주는 일이였다. 아이들 70명과 어른 10명의 밥과 반찬을 혼자서 했었다. 어쩜 아프다는 것은 핑계였는지도 모르겠다. 언니는 정확히 내가 지금 어떤 마음장으로 살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계속해서 교육은 받고 있는지 일은 시작했는지 등을 끈질기게 물어봤다.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네네, 가요..."
역지사지 하며 활보(闊步) 하기
활보를 하기 위해서는 준비서류와 교육이 필요하다. 준비서류는 각 센터마다 다른데 그 센터의 특성에 따라 다르다. 내가 채용된 복지관은 생긴 지 3년 밖에 안 되어서인지 준비서류부터 좀 까다로웠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건강진단서(직장제출용. 향정신성 검사), 후견등기사항부존재증명서(법원). 앞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건강진단서까지는 알겠는데 향정신성 검사와 후견등기사항부존재증명서는 뭐지? 2014년부터 활보에 대한 자격이 한층 강화되면서 향정신성 물질(마약류)을 복용하는지에 대한 검사가 추가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후견등기사항부존재증명서는 금치산자(자기 행위의 결과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의사능력이 없는 심신상실의 상태로 후견인이 필요한 사람)를 확인하는 서류로서 법원에서 발급받을 수 있다. 이런 복잡한(?)서류들 때문에도 몸을 바삐 움직여야 했다. 차츰 주변사람들에게 쏠려 있던 감정에서도 벗어나게 되었다.
또 몸을 움직이다 보니 아프다는 번뇌와 망상으로 온갖 시비를 만들던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활보교육을 받고 장애인 이용자를 만나면서 치료 때문에 일상을 제대로 살 수 없다며 짜증내고 도와주지 않는다고 주변에 대해 원망만 일삼던 나의 태도가 얼마나 한심한 모습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양치질하고 몸을 씻고 밥을 먹는 일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얼마나 힘들게 해내야 하는 일인지 알았고, 5분이면 뚝딱 끊여내는 라면을 40-50분 동안 정성을 쏟아 끊여 먹는 모습들을 보면서 어떤 상황에서든 최선을 다해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느리지만 하나하나 차근차근 스스로 해보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자립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반면 나는 자립하고 있는가? 새삼 내 자신에게 질문이 생기기도 했다. 우리는 몸이 불편한 분들이 어떤 일을 하거나 움직일 때 묻지도 않고 당연히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고 단정한다. 이런 태도는 그분들을 불쾌하게 만들기도 한다, 느리지만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은 혼자 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항상 도움이 필요한지를 먼저 물어보고 도와주는 것이 활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강사의 말이 생각났다. 특히 지적장애인들이 자조(自助) 모임을 만들어 매년 축제를 하고 있다는 영상물을 보면서 ‘설마, 주변에서 도움을 줬겠지…….’ 라고 생각 했다.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런 행사를 스스로 진행할 수 없을 것이라는 나만의 분별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준비에서부터 마무리까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 “우리는 다를 뿐이다”라고 외치면서 폐회를 선언하는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다. 다른 장애에 비해 지적장애를 가지면 직장생활을 못할 것이라는 나의 편견도 완전히 깨져버렸다. 이 대회를 준비하는 준비위원 중 한 분의 일상생활이 잠깐 소개되었다. 그 분은 우체국에서 분류작업을 하고 한 달에 60만원을 벌고 있다고 당당히 말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그가 문제없이 일을 해내는 모습이 놀랐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례를 접하면서 정상, 비정상, 장애, 비장애 등 그 어떤 것도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저 나처럼 아픈 사람은 아픈 모습대로,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장애 그대로,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모습 그대로 각자의 현장을 살아내는 것이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활보를 시작한 지 3개월 차. 여러 가지 문제들로 고민스럽지만 앞으로도 부딪치는 현장 속에서 어떤 것들을 배우게 될지 기대가 된다. 그래서 큰 걸음으로 힘차고 당당하게 걸을 수 있기를 바란다.
글_능금(能今)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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