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체감 거리 제로(0)의 현장실습, 활보를 통해 배운 것들



체감 거리 0mm




활보 속의 공부


공부하는 백수들에게 활동보조인 일은 종합선물세트다. 돈 솔찬히 주고, 시간 맘대로 정할 수 있고, 남들이 인정해주는 일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종임에 분명하다. 이정도만 해도 활보는 실로 특A급 일거리다. 그런데 장점이 한 가지 더 있다. 일을 하면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어떤 공부를 할 수 있나? 한마디로 말해서 ‘한 몸이 되는 공부’를 할 수 있다.


활보 일은 식사, 목욕, 신변처리 등의 모든 생활을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이용자의 개인 경호원처럼 1:1로 매우 밀접하게 붙어있다. 나는 주 5일 일하면서 하루에 7시간 동안 이용자 T를 만난다. T와 나는 현재 물리적으로 누구보다도 가장 오래 있는 사이이고, 가장 가까운 사이이다. 정말 좋아하고 아끼는 애인사이라도 이 정도의 거리에서 이정도의 시간을 소화하는 것이 만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각자의 모든 사소한 행동 패턴들을 숨길 수가 없다. 서로의 ‘꼬라지’를 그대로 드러낼 수밖에 없고 매사 마찰이 생긴다. 이용자와 트러블이 생기지 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처음 내가 보기에 나의 이용자 T는 꼼꼼병에 걸린 것 같았다. 수수료 500원도 아까워서 20분 넘게 저 멀리 있는 ATM까지 가서 돈을 뽑고, 있는 쿠폰 없는 쿠폰은 다 챙기고, 커피집 스탬프도 꼭 찍고, 특히 스마트 월렛으로 대형마트의 포인트 적립은 반드시 해야 한다. 내가 내 돈으로 사는 것까지 꼭 자기 카드에 적립을 해야 속이 풀리는 그 경제학과 출신의 재테크정신에 학을 뗐었다. 이용자가 어이없어 하는 나의 꼬라지는 덜렁대는 것이었다. 툭하면 뭐를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바깥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이용자의 핸드폰이 없었다. 심장이 덜컹하여 핸드폰을 신나게 찾았는데 알고 보니 침대 위에 고이 놓여 있었다;; 물건을 잃어버린 적은 아직 없으나 이런 일이 다반사다. 내 핸드폰도 빼먹고, 이용자 지갑도 빼먹고, 집 열쇠도 빼먹고 매번 아무데나 쑤셔 넣은 다음에 못 찾겠다고 헤매서 이용자의 속을 터지게 했었다. 그때 등 뒤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시선;; 이렇게 서로가 부딪히는 지점이 생기는 것은 어느 활보 일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단계다.


오래 붙어있는 사람의 행동이 내 맘같지 않으면 속이 터지기 마련인가?



나의 상태를 바라보지 않고 시선이 바깥에만 가 있으면 남 탓을 하는 오류에 빠진다. 500원 때문에 저 먼 ATM까지 가거나, 다신 안 갈 가게의 쿠폰을 모으는 것 등에 대해서 나는 전적으로 T가 틀린 생각을 하고 있다고 여겼다. 속으로 자본주의에 찌들었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내가 덜렁대는 것도 T가 재촉을 해서 그런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T에게 잔뜩 잘못이 있다고 상정해놓고 돈벌이나 하자고 생각하거나, 봉사활동 한다고 생각한 채로 그저 내가 참아야지 하면서 일을 할 때가 있었다. 혹은 강압적인 방식으로 자기식대로 하자고 이용자를 몰아세웠던 경우가 있었다. 그렇게 자신을 억누르거나 상대를 협박하는 것은 활보 일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처사였다.


활보 일은 나를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지 못하게 하는 편중된 기준을 감지하고 제거하는 기회로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일을 하면서 나의 한계를 자주 본다. 그동안 T의 ‘적립’을 전면 거부했던 나의 라이프 스타일은 소비를 조장하는 사회에 대한 저항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거창한 반자본운동(?)과 아무데나 물건을 넣고 찾지 못하는 일은 매사를 대충 처리하는 나의 악덕과 연관이 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일을 하면서 문제 상황으로 불거지지 않았으면 그냥 계속 넘어갔을 일이다. 문제에 대해 T와 대화를 하면서 내 습관화된 행동이 별 이유 없이 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생활을 어떻게 대충 넘기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젠 군말 없이 내 돈 챙기는 마음으로 꼬박꼬박 쿠폰을 모은다. 그리고 T가 시키는 대로 정해진 위치에 물건을 넣는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만큼, 나는 T에게 너는 나와 얼마나 다른지를 꾸준히 말해준다.(잔소리꾼 -_-V) 이젠 웬만한 ATM명세표는 그냥 버려달라는 T를 보면서, 조금 스마트해진 정리감각을 보이는 나를 보면서 서로가 서로를 알게 모르게 조금씩 바꿔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활보를 공부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다른 존재와의 밀접한 만남 속에서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를 감지할 수 있기를, 그리고 상대방이 지닌 차이들을 나를 바꾸는 가치로 만들 수 있기를, 전혀 다른 둘이 함께 호흡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결국 활보와 이용자 간의 끈끈한 관계 속에서 새로운 ‘한 몸’을 구성하는 과제를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활보공부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변화시켜서 합체로봇이 된 것처럼 ‘궁합’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연습하는 것이다. 기존의 개체성을 지우고 새롭게 하나의 블록을 형성하는 거다. 그렇게 함께 편안한 생활 하나를 만들어 가는 시도를 해본다. 결국 활보일은 '같이', '좋은 삶'을 구성해나가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장(場)이다. 이때 두 삶은 하나로 같이 간다. T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나의 삶의 질 또한 높이는 것이 된다. 두 삶이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변용의 실패/성공 여부에 따라서 서로의 하루의 1/3이 지옥 같은 삶이 될 수도, 천국 같은 삶이 될 수도 있다.





눌언민행(訥言敏行)


스스로 생각하는 바이지만 나와 T는 쏘울(?)이 좀 통하는 편이다. 나는 T에게 잔소리꾼이고 헛소리꾼이다. 이용자는 나의 잔소리에는 쉽게 상처받지 않고 가볍게 무시해주시고 나의 헛소리에는 곧잘 피식한다. 물론 서로 짜증에 겨워 묵언수행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일에는 어떻게 놀지만을 고민하는 유쾌한 관계다. 이 둘이 아주 가끔 눌언민행(訥言敏行)의 합체형에 다가갈 때가 있다.


눌언민행(訥言敏行)은 논어에 있는 말이다. 뜻을 그대로 해석하면 “말은 어눌하게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한다.”이다. 공자는 눌언민행을 훌륭한 정치인이자 완성된 인격을 갖춘 사람, 곧 ‘군자’의 덕목이라고 말한다. 말을 어눌하게 한다는 것[訥言]은 말을 일부러 더듬으면서 말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말만, 내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말만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신중히 말한 것은 재빨리 실천에 옮긴다[敏行]. 군자는 헛된 공약 등등의 말뿐인 것은 줄이고, 말한 공약은 행동으로 최대한 빠릿빠릿하게 실천해서 자신의 무게감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이 말의 요지다.


T를 지켜보면서 눌언(訥言)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환불요청 같은 불편한 요구를 할 때에는 나보고 하라고 시키기는 하지만(;;) 둘이 '합체!'할 때 대개 나의 입은 전적으로 T에게 양도한다. T는 말을 하기 되게 힘들고, 말이 느리면서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T는 필요한 단어만 핵심적으로 골라 말하려 하고, 말을 꼭 끝까지 마치려 한다. 이렇게 되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그의 말에 모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냥 얼버무리는 식으로 끝을 흐리는 나의 어투와는 전혀 다른 힘을 얻는다. T는 나의 의사까지 담아서 말을 꺼낸다. 사람들은 그의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한다.


듣는 사람으로하여금 '경청'하게 하는 힘!




어눌하기에 집중?


나는 최대한 민첩하게 움직인다[敏行]. 이용자는 일상생활 하나하나가 시간을 엄청 많이 잡아먹기 때문에 아무리 말을 조심스럽게 하더라도 말을 지키는 것이 쉽지가 않다. 이동 중에 워낙 돌발 상황이 많아 약속시간에 맞춰 가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항상은 아니지만 필요한 순간에는 정말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줘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게 평범한 일상일지 몰라도 게을러터진 나에게는 그렇게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일은 스스로 엄청난 변신(化)을 요구한다;; 두 몸이 하나의 신경체계에서 관리하는 것처럼, 남의 몸을 내 몸 하듯이 해야 한다. 헷갈리고 쉽지가 않다. 장애인 일반의 일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수동휠체어를 사용하는 T와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은 온 정신을 집중해야한다.


우선 버스 기사의 시선을 최대한 끌어서 리프트를 내릴 수 있도록 차를 가까이 대게 하고, 문이 열리면 버스 기사가 말을 듣지 못했을까봐 리프트를 내려달라고 크게 말한 다음, 리프트가 내려지지 않으면 발로 차서 내릴 수 있도록 한다. 혹여나 리프트가 내려오지 않는다면 남자승객들에게 부탁해서 휠체어를 들어 올리고, 어떻게든 휠체어가 버스에 올라가면 장애인석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비켜달라고 말을 한 후, 장애인석 의자를 접어서 올리고, 휠체어를 버스 바닥에 있는 안전장치 홈에 끼워서 고정시킨 다음, 버스카드를 찍고, 리프트를 내릴 수 있도록 가까이 차를 대기 위해서 버스기사에게 하차할 정류장을 꼭 말해줘야 한다. 이것이 1-2분 안에 되어야지 다른 승객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 탑승할 수 있다. 신속정확하게 사안을 처리하는 행정가의 자세로 합쳐진 두 몸의 손과 발이 되어 움직여야 한다.


그것들이 물 흐르듯 될 때가 가끔 있는 것이다. 나의 전 신체가 발이 되고 T의 전 신체가 입이 되는 순간, 서로 다른 내가 되어 한 몸이 되는 때가 있는 것이다. 알바 둘째 날, T의 몸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휠체어 손잡이를 꽉 쥐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헉헉대면서 재빨리 오를 때, 내 몸 속속들이 찢어지는 것 같이 고통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은, 몸이 새로 깨어나는 것 같은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되는대로 지껄이는 나의 몸이 침묵을 지키고 이용자가 천천히 말을 내뱉을 때, 내가 느낄 수 있는 온 세계가 그의 입에 몰두하는 듯한 그 밀도 있는 순간을 나는 좋아한다. 빠른 발과 침묵하는 입, 핵심을 찌르는 혀와 방해하지 않으려 고이 모은 무릎이 나란히 한 폭으로 겹쳐지는 순간이 가끔 어딘가에서 찾아온다.


이건 정말 다른 직업에서 맛볼 수 없는 체험이다. 어떤 직업에서도 1:1로 이렇게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고, 호흡을 맞출 기회도 없다. 활보의 여러 단점들을 외면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것만은 고집하고 싶다. 이 ‘되기’ 연습은 활보 일에서만 가능할지 모르는 공부라고! 어찌 매력적이지 않은가. 돈 벌며 전혀 다른 몸이 될 수 있는 기회. 이건 아무데서나 얻을 수 있는 찬스가 아니다. 주변의 백수 여러분들께 한번 권해본다. 이 활보, 또한 해보지 않으시겠는가?


글_박준오


전혀 다른 몸이 될 수 있는 기회, 활보. 한번 해보지 않겠는가!



설정

트랙백

댓글

  • 조아하자 2015.06.19 20:01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저는 몸 쓰는 일은 잘 못해서... ㅜㅜ 그래서 IT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