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활·보 활보(闊步)

서로에 대해 모든 걸 알아야만 친해질 수 있는 걸까?

by 북드라망 2015. 5. 18.



G씨와의 거리두기





연애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랑이고 상대가 나에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우린 한 몸이라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세세한 것까지 이야기 했다. 그러나 헤어질 땐 마치 처음 만난 사람마냥 낯선 그녀가 되어 내 곁에서 떠나갔다. 그녀에 관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활보할 때도 그랬다. 나는 내 이용자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용자 G씨는 손을 잘 못쓰고 말을 심하게 어눌하게 한다. 그래서 내가 밥도 먹여주고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 통역 역할도 한다. 그러다보니 나는 G씨에 대해 많이 알아야 했다. 어떤 반찬을 좋아하는지 얼마나 먹을지 못 먹는 것은 무엇인지 등 많은 것을 알아야 했다. 그래야 제대로 활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통역할 때도 마찬가지다. G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단순히 전달만 하는 게 아니라 그 대화 내용의 맥락도 알아야 했고 잘 알지도 못하는 법이나 은행 업무 같은 것들을 잘 알아야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나는 어느새 G씨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당연히 G씨는 나에게 거의 모든 것을 다 털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 말씀해주세요"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날이었다. G씨가 갑자기 나가야 한다며 외출 준비를 부탁했다. 그래서 나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그 때 G씨는 학교에 갈 것이며 볼일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무슨 볼일인진 모르나 일단 따라 나섰다. G씨는 분주하게 학교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나는 대체 어딜 가려고 그러지? 라고 생각이 들어 물었다. 그러자 G씨는 자기가 다니는 학과 사무실로 가려고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을 한 지는 이미 30분정도 지난 후였다. 나는 왜 미리 알려주지 않느냐고 화내며 학과 사무실을 찾아다녔다. 결국 우리는 힘을 합쳐 사무실을 찾았다. 그런데 과 사무실에서 직원과 대화를 통역 하면서 G씨가 알고자 했던 것은 사실 전화 한통이면 가능하기도 하고 굳이 오지 않고 전화하지 않아도 알 수도 있는 내용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왜 나에게 미리 이야기 하지 않고 여기 와서 고생이며 나한테 말 했으면 고생 하지 않고도 해결할 테니, 그러니 다음부턴 나한테 꼭 말하고 움직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G씨는 알았다며 다음엔 잘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이 G씨가 이런 일을 나와 상의하고 하겠다는 뜻인 줄 알았다.


내가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G씨가 가는 곳엔 당연히 내가 같이 갈 것이고, 통역이 필요할 땐 내가 할 것이니, 어디를 가는지 무슨 일인지 내가 알아야 잘 대처하고 잘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G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은 자신의 일이며 어디를 가든 자신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G씨는 활보는 자신의 손과 입 역할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교에서의 일 이후로도 G씨는 나에게 가끔 내용에 대해 알려주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았다. 내용을 알려 줄 때는 자신도 잘 모르는 일들이었다. 그런 일이 있을 때에만 나에게 내용을 알려주고 상의했다.


생각해보니 G씨는 나에게 필요 이상으로 묻지 않았다. 물론 내가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그런 것들은 물었다. 하지만 이런 건 모두 G씨에게 필요한 것이다. 내가 멀리 살면 출근 할 때 지각할 수도 있고, G씨가 나와 계약한 시간보다 더 빠른 시간에 나를 쓰기 용의한지 알기 위함이었고,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야 자신이 못하는 것들을 나에게 부탁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G씨가 공부할 때나 책 읽을 때는 내가 많이 도와주었다. 그렇게 G씨는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건 묻지 않았다. 하지만 G씨가 묻지 않아도 나는 내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G씨에 대해 알아야 한 만큼 G씨도 나에 대해 알아야 서로 통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내 맘같지 않네...



우린 서로 알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입장이 달랐다. 그리고 내가 알고 싶은데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겐 큰 스트레스였다. 그렇게 힘들게 지내다 어느 날 더 이상은 이렇겐 못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 없이 어디 잘 해봐라 라는 마음을 먹고 어딜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 묻지도 않을뿐더러 통역할 때 G씨의 의사를 전달만 할 뿐 내용이나 목적 같은 것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G씨가 모르는 것을 나에게 물어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사실 모르기도 하고 갑자기 묻는 게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G씨가 무엇을 묻든 내가 알면 안다고 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되는 것인데 나는 이때까지 나에게 물어보면 다 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G씨와 얼굴 붉힐 일도 없어지고 모르는 것을 겨우겨우 알아가며 이야기 하지 않아도 G씨가 알아서 해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G씨가 말을 잘 못한다고 해서 혹은 잘 모른다고 해서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건 내 오만한 판단이었다. G씨는 손을 못 쓰고 말이 어눌할 뿐,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의 기준으로 잘 판단하고 있던 거였다. 그리고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봤다. 지금 만약 내게 활보가 있는데 내가 말을 잘 못하고 손을 못 쓴다고 모든 것을 말해야 하고 모든 판단을 활보에게 맡긴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너무도 답답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비밀을 활보에게 모두 오픈하고 산다면 나는 활보의 눈치를 엄청 볼 것 같았다. 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G씨에게 말했다. 그동안 내가 이렇게 생각했었고 앞으로는 어딜 가는지 묻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니 G씨는 너무 좋아했다. 그리고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G씨는 자기는 나에게 모든 것을 알려줄 생각도 없고, 어디를 가는지 그건 자신의 자유이기 때문에 내가 그동안 물을 때마다 불편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린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하며 뭔가 가까워짐을 느끼게 되었다. 관계도 더 좋아졌고 G씨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 것 같았다.


너와 나를 위한 거리 두기~



이제 더 이상 출근하기 전에 혹은 출근해서 내가 먼저 오늘 무엇을 하는지 묻지 않는다. G씨가 필요하면 몇 시에 무엇을 하는지 이야기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방법이 나에게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실 여전히 어딜 가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그래서 정 궁금하면 묻는다. 그럼 G씨는 어딜 가는지 알려준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왜냐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G씨의 자유다.


글_관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