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과 다섯 남자의 ‘만남’
- 천풍구 -
‘택천쾌’에서는 결단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사람 사이에서는 ‘이별할 때’가 바로 이러한 결단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연인뿐 아니라 친구 사이에서도, 사제 관계에서도, 직장의 상사와 부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우리는 좋은 만남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어떤 사람들은 연애가 너무 하고 싶지만 시작하기 두렵다고 얘기한다. 왜? 언젠가 그 사람과 헤어지게 될 것이니 그것을 미리 염려하면 시작도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이 있는 연후에야 비로소 새로운 인연이 시작된다. 우리가 오늘 만날 천풍구 괘가 바로 이러한 ‘만남’에 대한 이야기이다.
천풍구 괘사
상괘는 ‘건괘’이고 하괘는 ‘손괘’이다. 하늘 아래 바람이 부는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바람이 온 세상을 다니며 수많은 것들을 만나는 것이 이 괘의 이름인 ‘구(姤)’이다. 여섯 개의 효 중 다섯 개는 양효이고, 새로 생긴 초효만 음효이다. 계절로는 오월(午月)에 해당한다. 午月은 음력으로 5월, 양력으로는 6월이다.
음력 4월인 사월(巳月)까지는 천지에 양기(陽氣)가 가득한 시기이다. 천지 만물이 생장의 흐름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생장의 정점을 찍고 나면, 이제 수렴의 흐름을 타야 한다. 자라기만 하면 결실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력 5월인 지금, 충만한 양기 속에서 하나의 음이 움트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 ‘천풍구(天風姤)’이다
姤 女壯 勿用取女(구 여장 물용취녀)
‘구’는 여자가 壯하니 여자를 취하지 말지니라
‘구’괘는 여자가 장(壯)하다고 보았다. ‘壯’은 씩씩하고 용맹한 사람들, 주로 남자들에게 쓰는 표현이다. 여기에서는 이제 막 들어온 음효(陰爻)의 기세가 위풍당당하다는 의미로 쓰였다. 남자들 다섯 명이 우글거리는 모임에 신입회원으로 씩씩하고 활기찬 여성이 들어온 상황을 떠올려보시라. 하지만 나머지 양효들은 이 여성을 어떻게 해보려고 하면 안 된다. 취하지 말라는 것은 그런 뜻이다.
彖曰 姤遇也 柔遇剛也(단왈 구우야 유우강야)
단전에 이르기를 ‘구’는 만남이니, ‘유’가 ‘강’을 만남이라.
勿用取女 不可與長也(물용취녀 불가여장야)
‘물용취녀’는 가히 더불어 長치 못할세라
天地相遇 品物咸章也(천지상우 품물함장야)
천지가 서로 만나니 품물이 다 章하고
剛遇中正 天下 大行也(강우중정 천하 대행야)
剛이 중정을 만나니 천하에 크게 행함이니
姤之時義 大矣哉(구지시의 대의재)
‘구’의 때와 뜻이 크도다.
象曰 天下有風姤 后以施命誥四方(상왈 천하유풍구 후이시명고사방)
상에 이르길 천하에 風이 있음이 ‘구’이니 后가 이로써 명을 베풀어 사방에 고하느니라.
단전에서는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만난 것인데, 함께 자랄 수 없으므로 취하지 말라고 한다. 부드러운 것과 강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늘은 강한 것을, 땅은 부드러운 것을 의미한다. 하늘은 양(陽)이고, 강한 것이다. 땅은 음(陰)이고 부드러운 것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른 것이기에 함께 자랄 수 없다.
『동의보감』 「잡병편」에는 ‘천지운기’가 나온다. 하늘에는 다섯 가지 기운인 목-화-토-금-수가 흐르고, 땅에는 여섯 가지 기운인 풍·한·서·습·조·화가 흐른다. 음력 2월은 인월(寅月)인데, 이때 ‘입춘’이 있다. 입춘에는 하늘 봄이 도래하지만, 땅에서는 아직 겨울의 냉기가 사라지지 않아 춥다. 다른 계절도 마찬가지이다. 하늘과 땅의 속도는 절대 같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 때문에 우리를 포함한 모든 것들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열매 맺고, 사라질 수 있는 리듬이 만들어진다. 이렇듯 천지의 기운이 서로 만나니 만물이 모두 빛을 발휘한다. 여기서 “품물(品物)”은 1품, 2품, 3품…과 같이 차등을 둔 표현이다. 상전에서는 하늘 아래 바람이 있는 것이 ‘구’괘라 하였다. 후(后)는 ‘왕’이기도 하고, ‘왕후’이기도 하다. 이들이 괘의 이치를 살펴 사방에 그 뜻을 알리라는 의미인데, 고(誥)는 문서로 그것을 전달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괘는 음효 하나가 다섯 개의 양효 사이를 맴돌고 있는 형국이니, 정절을 지키지 않는 여자라고 의심을 받게 된다. 또 이 여인은 몸이 건장하여 음란하다고 보았으니, 만난다 해도 아내로 맞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이 괘의 주인공인 초육을 ‘팜므파탈’로 보기도 한다.
천풍구 효사
初六 繫于金貞吉(초육 계우금정길)
초육은 쇠말뚝에 매면 바르게 함이 길하고
有攸往 見凶 羸豕 孚躑躅(유유왕 견흉 리시 부척촉)
가는 바를 두면 흉하리니 마른 돼지가 뛰는 것에 믿음을 두니라.
象曰 繫于金柅 柔道牽也(상왈 계우금니 유도견야)
상전에 이르기를 “계우금니”는 부드러운 도가 끌려가기 때문이라.
이제 효사의 이야기를 보자. “금니(金柅)”는 수레를 멈추게 하는 장치이다. 초육은 질주 본능을 억누르고 참아야 길하지 막 나서면 흉한 꼴을 본다. “리시(羸豕)”은 밥을 못 먹어서 파리해진 돼지이다. 이 돼지는 주변을 배회하며 먹을 것이 있는지 기회를 살피고 있다. 그런데 돼지가 날뛰더라도 여기에 ‘믿음’을 두라고 하였다.
돼지는 돌진하려는 본성이 있다. 초육은 발이 빠르기에 멧돼지처럼 성급하게 움직이는데, 특히 배가 고프기 때문에 더더욱 튀어 나가려고 한다. 하지만 혼자 움직이지 말고 위에 있는 다섯 양효들과 한마음이 되어야지, 성급하게 어느 하나의 양효와 결합하면 좋지 않다. 특히 음(陰)은 강함에 잘 이끌리므로 더욱 조심하라고 하였다.
九二 包有魚 无咎 不利賓(구이 포유어 무구 불리빈)
구이는 꾸러미에 물고기가 있으면 허물이 없으리니 손님에게 이롭지 아니하니라
象曰 包有魚 義不及賓也(상왈 포유어 의불급빈야)
상전에 이르기를 물고기를 싸두어도 응당 손님에게 알려져서는 안 된다.
‘꾸러미의 물고기’는 남자가 여자친구를, 또는 여자가 남자친구를 얻는 것을 물고기를 낚는 것으로 비유한 것 같다. 요즘도 ‘어장 관리’ 같은 표현을 쓰는 것처럼 말이다. 구이는 초육과 위치가 가깝다. 그래서 은밀하게 친해질 기회가 많다. 이 둘은 친해져도 무방하지만, 그것을 공개하면 좋지 않다. 그래서 “손님에게 이롭지 않다.”고 한 것이다. 물고기를 잡고 손님을 부르는 것은 자기가 잡은 물고기를 자랑하기 위해서이다. 누군가를 “낚게” 되면 그것을 자랑하고 싶은 게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결코 그것을 알려서는 안 된다.
어장관리?!
九三 臀无膚 (구삼 둔무부)
구삼은 엉덩이에 살이 없으나
其行 次且 厲 无大咎(기행 자저 려 무대구)
그 행동이 머뭇거리니 제 살 깎는 아픔은 있지만 큰 허물은 없다.
象曰 其行次且 行未牽也(상왈 기행 자저 행미견야)
상에서 말하기를 “기행자저”는 가더라도 이끌 수 없기 때문이다.
잉? 갑자기 웬 엉덩이 얘기인가. 『주역』에는 신체 부위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 편인데, 오늘은 엉덩이가 주인공 되시겠다. 엉덩이에 살이 없다는 건 무슨 뜻일까? 구삼은 하괘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 하괘의 중앙에는 ‘구이’가 떡 버티고 있기에 구삼으로서는 초육을 만날 기회도 없고, 주목받지도 못한다.
옛사람들은 소나 말의 힘을 가늠하기 위해 그 엉덩이를 보았다. 엉덩이에 살집이 두둑하면 힘이 있다. 이를 사람살이에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구삼의 엉덩이에 살이 없다는 것은 움직일 힘이 없다는 뜻이다.
구삼은 초육을 짝사랑한다. 이 괘가 예쁜 신입생 초육에게 온통 관심이 쏠려 있는 ‘천풍구’이다 보니 이러한 배치가 만들어진 것. 그러나 초육은 구삼에게 관심이 없으니 구삼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래서 허물이 없다고 본 것이다.
九四 包无魚 起凶(구사 포무어 기흉)
구사는 싸놓은 것에 물고기가 없더라도 흉한 일이 생길 수 있다.
象曰 无魚之凶 遠民也(상왈 무어지흉 원민야)
상에서 말하기를 “물고기가 없더라고 흉하게 되는 것은 백성과 멀어졌기 때문이다”.
효의 관계에서 1효는 4효와, 2효는 5효와, 3효는 6효와 짝을 이룬다. 원래 초육의 짝은 구사이다. 그래서 초육에 관심이 있는 모든 양효들은 4효를 의심한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구설수에 오르고 의심을 받는 처지가 된다. 그래서 물고기가 없더라도 흉한 일이 생길 수 있다고 보았다. 구사로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
상전에서는 백성과 멀어진 것이 바로 구사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이라는 말이 있다. 참외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뜻이다. 참외밭에서는 참외를 딴다고 오해받기에 십상이고, ‘이(李)’는 왕조의 성씨이므로 그 나무 밑에서 갓끈을 매만지다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구사는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조심하시오!
九五 以杞包瓜(구오 이기포과)
구오는 ‘杞나무’로 오이를 싸니
含章 有隕自天(함장유운자천)
아름다운 마음으로 있으면 하늘에서부터 떨어져 내려옴이 있다.
象曰 九五含章 中正也(상왈 구오함장 중정야)
상전에서 말하기를 구오가 아름다운 마음을 머금고 있어야 하는 것은 중정하기 때문이고
有隕自天 志不舍命也(유운자천 지불사명야)
하늘에서부터 떨어져 내려옴이 있는 것은 뜻이 명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오는 최고 권력자이다. 초육을 취하려면 취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 그러나 이는 값비싼 나무로 값싼 오이를 포장하는 격이다. 구오가 어린 여자를 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초육을 취하게 되면 권위와 덕망을 잃게 되고 다른 양효들의 시기와 반감을 사게 된다.
또, 구오와 초육은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 초육이 구오를 따른다 해도 구오의 힘 때문에 마지못해 그러는 것이지 결코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니 구오는 초육을 취하려하지 말고 화합을 추구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초육은 존경심을 갖게 되고, 나이를 초월해 구오를 따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초육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백성에게도 존경을 받으니 “아름다운 마음을 머금고 있으면 하늘에서부터 떨어져 내려옴이 있” 다고 한 것이다.
上九 姤其角 吝无咎(상구 구기각 린무구)
상구는 그 뿔을 만나니 한스럽지만 허물은 없다.
象曰 姤其角 上窮吝也(상왈 구기각 상궁인야)
상전에 이르길 “그 뿔을 만나는 것은 윗사람이 궁하여 한스러운 것이다”.
상구는 늙고 힘이 없으니 어차피 초육과는 어울릴 수 없다. 설사 초육을 만난다고 해도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정도에서 그치면 된다. 그래서 “그 뿔을 만나니”라고 한 것이다. 사랑을 이룰 수 없어 한스럽지만 다른 사람의 시기나 반감을 살 일도 없다. 그래서 허물이 없다고 한 것이다.
『십팔사략』을 보면 ‘달기’라는 여인이 나온다. 주공 단이 상나라의 주왕을 파멸시키기 위해 그녀를 교육해 주왕에게 보내는데, 두 사람의 잔인함 때문에 상나라가 망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다. 만화 『십팔사략』에서는 주공 단 역시 달기를 어여뻐했기에 그녀가 떠나는 것을 아쉬워했다. 또, 주왕이 죽은 후 달기도 처형하는데 그녀를 죽인 후 홀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었다. 상구의 모습을 상상해보자니 어쩐지 그 부분이 생각이 났다.
천풍구에서의 만남은 초육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다. 구이와 초육의 관계, 구삼과 초육의 관계, 구사와 초육의 관계, 구오와 초육의 관계, 상구와 초육의 관계는 모두 비슷한 듯 다르다. 비슷한 점은 다섯 양효들이 홍일점인 초육을 ‘어떻게 해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각각의 자리에 따라 서로 다른 관계를 맺게 된다.
우리 삶에서도 비슷하지 않을까? 어떤 시기에는 구이와 초육처럼 비밀스럽고 열정적인 관계를 만나지만, 상구와 초육처럼 머리만 쓰다듬는 관계도 만나게 된다. 마치 사랑은 언제까지 변하지 말아야 될 것 같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태양이 뜨고 지듯 우리의 마음 역시 일었다 사라지는 게 자연스러운 이치가 아닐는지. 그러니 “끝이 있으면 좋은 것이고, 좋은 것에는 끝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생성과 소멸의 리듬 안에서 그때그때 잠시 우연히 마주치고 사랑하게 되는 것뿐이리라.
글_만수(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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