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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주역서당

풀어주고 자유롭게 하라! 그 속에 시간의 춤이 있다 - 뇌수해

by 북드라망 2015. 4. 23.


뇌수해

풀어주고 자유롭게 하라! 그 속에 시간의 춤이 있다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 두 시. 운기잡스 세미나 회원들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다. 커튼을 내리고 작은 창문에는 암막을 둘러쳤다. 저마다 자리를 잡고 편한 자세로 영화를 본다. 등을 기대려는 벽파가 있는가 하면 아예 드러누운 사람도 있다. 영화가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한다.


“소리가 안 들려. 뭐래?”

“귀가 안 좋아. 쯧쯧.”

“가만있어 봐. 안 들리잖아.”

“나 과자 녹여 먹고 있어.” 

오늘 영화는 스피커 소리가 작다. 테스트로 설치할 때만 해도 소리가 들을만했는데 사람이 꽉 차니까 그 사람들이 내는 소리로 나레이터의 목소리가 잘 안 들린다. 갑자기 영화에서 어떤 남자가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른다.

“노래 부르네. 이때 과자 먹어!”

까르르 웃음이 터져 나온다. 

“저 남자 너무 느끼하다.”

“저게 동양적인 눈매야?”

“바닷가에서 저렇게 춤추면 정말 시원하겠다.”

“저 실루엣 봐. 온몸이 춤을 추는구먼.”


영화를 보는 내내 한마디씩 주거니 받거니 한다. 낄낄거리기도 하고, 영화 속 인물을 질투하기도 하고, 거기에 타박을 주기도 한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조여졌던 몸과 마음을 차츰 푼다.


운기잡스 세미나는 원래 오운육기와 세계지리를 횡단하는 세미나다. 그런 세미나에서 다큐멘터리를 본다는 게 생뚱맞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본다. 기(氣)가 모여서 형(形)이 만들어진 게 생명이라면 땅의 기운도 공부할 수 있고, 나라별로 어떤 기운의 특징이 있는지도 살필 수 있다.


우리는 앞서 지구라는 땅의 특질과 기후에 대해서 공부했고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탐사했다. 그러다 중국의 환경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포착했고, 성장과 발전이라는 흐름에서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는 쿠바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래서 『몰락선진국 쿠바가 옳았다』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읽고 우리는 쿠바에 매료되었다. 오늘 본 다큐멘터리 또한 쿠바에 대한 것이다.

쿠바에 매료되다!


세미나의 정해진 커리큘럼은 있지만, 옆길로 새기 일쑤다. 이 옆길 새기가 운기잡스 세미나의 매력이다. 정해진 길만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만든다. 그 새로움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봄기운을 머금고 활짝 핀 꽃들처럼 매번 새롭게 생성되는 공부. 이 봄기운을 가득 담은 괘가 있다. 그것은 바로 뇌수해다.


뇌수해(雷水解)는 풀어주고 자유롭게 하는 괘다. 위에는 진하련(震下連) 우레괘이고 아래에는 감중련(坎中連) 물괘니, 우레가 물 밖으로 나와서 모든 것이 풀린다. 감중련괘는 북쪽방향의 수(水)로 계절로 치면 겨울에 해당한다. 진하련괘는 동쪽방향의 목(木)으로 봄에 배속된다. 봄은 목 기운으로 따뜻하다. 이렇게 따뜻한 봄은 수 기운이 왕성한 겨울로부터 나온다. 겨우내 추워 얼어 있던 것이 풀리는 것이다. 그래서 뇌수해는 구속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진하련           감중련                뇌수해



세미나에서 이번에 본 다큐멘터리는 <시간의 춤>이다. 풀어주어 자유로워진다는 점에서 이 다큐멘터리와 뇌수해는 같은 맥락에 있다. 뇌수해와 <시간의 춤>. 어떻게 이 둘은 만나게 될까? 지금, 출발해 보자.



뇌수해 괘사


解 利西南 无所往(해 이서남 무소왕)

해는 서남이 이로우니, 갈 곳이 없느니라. 


其來復 吉 有攸往 夙 吉(기래복 길 유유왕 숙 길)

그 와서 회복함이 길하니, 갈 곳이 있거든 빨리하면 길하리라.


彖曰 解 險以動 動而免乎險 解(단왈 해 험이동 동이면호험 해)

단전에 이르길 해는 험해서 써 동함이니 동해서 험함을 면하는 것이 해라.


解利西南 往得衆也 其來復吉 乃得中也(해이서남 왕득중야 기래복길 내득중야)

‘해이서남(解利西南)’은 가서 무리를 얻음이요, ‘기래복길(其來復吉)’은 이에 중을 얻음이요,


有攸往夙吉 往有功也(유유왕숙길 왕유공야)

‘유유왕숙길(有攸往夙吉)’은 가서 공이 있음이라.


天地 解而雷雨 作 雷雨 作而百果草木 皆甲坼 解之時 大矣哉(천지 해이뇌우 작 뇌우 작이백과초목 개갑탁 해지시 대의재)

천지가 풀림에 우레와 비가 일어나고, 우레와 비가 일어남에 백과초목이 모두 확 열려 나오니 해의 때가 크도다.


象曰 雷雨作 解 君子 以 赦過宥罪(상왈 뇌우작 해 군자 이 사과유죄)

상전에 이르길 우레와 비가 일어나는 것이 해니, 군자가 이로써 허물은 용서하고 죄는 감형해주느니라.


해가 서남쪽이 이롭다는 것은 서남쪽은 평평한 곳이어서 험한 것이 없어서다. 그래서 뇌수해는 갈 곳이 없다. 수산건괘처럼 험하고 어려운 것이 있으면 그것을 풀기 위해서 가야 하지만, 뇌수해는 일이 다 풀렸기 때문에 갈 곳이 없다. 갈 곳이 없다는 것은 해결할 일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꽁꽁 얼어붙은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되면 꽃이 피고 잎이 나서 모든 생명이 제 모습을 회복하는 것과 같다.


1905년, 멕시코에 있는 농장에 노동자가 필요하다는 <황성신문>의 광고를 본, 천 명의 조선인들은 제물포항을 떠나 멕시코로 갔다. 멕시코를 거쳐 다시 쿠바로 이주한 300명의 한인.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쿠바로 이주했건만, 또다시 에네껜 농장에서 노예처럼 일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학교를 세워 한글을 가르치고, 상해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에게 독립자금을 보내며, 체 게바라의 혁명에도 동참하면서 억세게 살았다.


2009년, 그들의 후손들은 꼬레아노(한인)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고 여전히 태양처럼 뜨겁게 살고 있다. 화가, 발레리나, 음악가, 대학교수로 활약하면서 쿠바인으로 살고 있다. 처음 쿠바로 간 꼬레아노는 4년 뒤면 부자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지만 지금 그들은 갈 곳이 없다. 정열의 라틴 댄스와 황홀한 라틴 음악, 혁명과 낭만이 가득한 쿠바에서 그들은 뿌리내리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뇌수해 효사


初六 无咎(초육 무구)

초육은 허물이 없느니라.


象曰 剛柔之際 義无咎也(상왈 강유지제 의무구야)

상전에 이르길 강과 유가 서로 만남이라. 뜻이 허물이 없느니라.


초육은 백성의 자리인데 대신의 자리에 있는 구사와 음양응(陰陽應)이 잘된다. 양으로 강한 구사와 유(柔)로 약한 초육이 만나 화합을 이루는 것이다. 약한 초육이 강한 구사의 도움을 받으니 그 뜻이 허물이 없다.


이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한인들은 2, 3세대와 그 이후 세대들이다. 이들은 쿠바에서 소수자다. 뇌수해의 초육처럼 힘없고 약하지만, 그들은 쿠바의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중에는 피델 카스트로에 반기를 들어 혁명을 주도했던 체 게바라의 편에서 게릴라전을 했던 디오테오와 헤르니모. 쿠바에서 꽤 유명한 화가인 알리시아도 있다. 그녀는 여성의 내면을 눈으로 표현한다. 또 마딴사스 예술 전문학교에서 클래식 무용을 가르치는 교사인 디아날리스 호도밍게스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 쿠바가 불어넣어 주는 땅의 숨결을 그들 나름의 몫으로 체화한 것이다.


九二 田獲三狐 得黃矢 貞 吉(구이 전획삼호 득황시 정 길)

구이는 사냥을 해서 세 마리의 여우를 얻어 누런 화살을 얻으니, 바르게 해서 길하도다.


象曰 九二貞吉 得中道也(상왈 구이정길 득중도야)

상전에 이르길 ‘구이정길(九二貞吉)’은 중도를 얻기 때문이라.


양이 두 번째에 있어 구이다. 곡식을 해치는 밭의 새를 사냥하듯이 사회를 어지럽히는 여우를 잡아내야 한다. 사람들이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어렵게 사는 것은 모두 중도를 잃고 정직하게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이가 사냥해서 중도를 얻지 못한 여우를 잡으면 모두가 중도를 얻게 되고 그렇게 되면 모두가 바르게 나가 길하다.


중도를 얻기 위한 노력



쿠바는 춤, 사회주의, 지상 최대의 휴양지, 피델 카스트로, 미국과의 불편한 관계 등으로 유명하다. 여기에 한 가지 보태면 ‘산떼리아’라는 종교다. 이 종교는 아프리카의 종교를 서양 가톨릭에 대입한 것으로 주술적인 의식이 있다. 가톨릭은 쿠바 원주민이 서양인들이 옮긴 ‘천연두’와 ‘매독’으로 90%가 멸종된 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에게 강요된 종교였다. 이 종교를 택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가톨릭을 믿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뿌리인 아프리카의 종교를 잊지 않았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산떼리아다. 디오테오 씨는 이 종교의 사제다. 그는 산떼리아를 초자연적인 마술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한다. ‘인류의 비극과 전쟁 그리고 욕망을 멈춰주시옵소서.’


여기서 특이했던 것은 성모상과 예수님 상이 백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색의 피부를 가진 성상.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어렵게 살았던 쿠바인들은 자신들의 중도를 잃지 않았다. 남의 밭을 해치는 여우 같은 서양의 종교를 자신들의 믿음에 접목해 새로운 종교로 탄생시켰다. 창조적인 쿠바인들에게 이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六三 負且乘 致寇至 貞 吝(육삼 부차승 치구지 정 인)

육삼은 져야 할 것이 또 탐이라. 도적 이름을 이루니 바르게 하더라도 인색하리라.


象曰 負且乘 亦可醜也 自我致戎 又誰咎也(상왈 부차승 역가추야 자아치융 우수구야)

상전에 이르길 ‘부차승(負且乘)’이 또한 가히 추한 것이며, 나로부터 군사(도적)를 이르게 하였으니 또 누구를 허물하리오.


음이 세 번째에 있어 육삼이다. 중을 얻지도 못하고 제자리가 아닌 곳에 있는 육삼이 부정한 짓을 하고 있다. 제 분수를 모르고 욕심을 부려 온갖 부정한 짓을 하고 있다. 이렇게 육삼이 욕심을 부리다 보니까 자기 스스로 자신을 해치는 도적을 이르게 하고 있다.


 만약 쿠바에 정착한 한인 1, 2세대들이 절망과 한탄으로 살아갔다면 어떠했을까? 에네껜 농장에서의 삶을 비탄으로 물들였다면 어떠했을까? 하지만 그들은 삶의 한가운데 있었다. 육삼의 부정한 마음 따위는 그들에겐 안중에도 없었다. 그들은 이미 벌어진 일을 가슴 아파했지만 부닥친 힘든 삶을 끊임없이 돌파했다. 계약 노예였던 그들은 조국을 그리워하면서 삶을 이어갔고 자손을 낳고 낳았다. 동양인을 중국인으로 보는 아메리카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끈덕지게 살아낸 것이다.


꼬레아노의 삶



九四 解而拇 朋至 斯孚(구사 해이무 붕지 사부)

구사는 너의 엄지발가락에서 풀면 벗이 이르러 이에 미더우리라.


象曰 解而拇 未當位也(상왈 해이무 미당위야)

상전에 이르길 ‘해이무(解而拇)’는 위가 마땅치 아니하기 때문이라.


구양이 네 번째에 있어 구사다. 구사는 육오 인군 밑의 대신으로서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 있는 자리다. 구사가 볼 때 자신과 응하는 초육이 엄지발가락에 해당한다. 엄지발가락부터 풀려야 한다는 것은 국민 전체가 완전히 풀려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할 때 구사가 해결해야 할 일을 도와줄 친구가 찾아온다. 구사의 친구는 구이다. 같은 양인 구이가 자기를 도와주러 온다.


조선에서 떠나 온 1세대로부터 이어진 다음 세대는 근친혼을 하는 문제에 부딪혔다. 그래서 3세대부터는 쿠바인이나 멕시코인들과 결혼을 해야만 했다. 어느새 그들의 모습은 많이 변했다. 한인의 모습에서 점차 바뀌어 쿠바인이 되어갔다. 다큐멘터리의 거의 끝 부분에 나왔던 사랑의 시와 연애편지. 그들의 사랑 표현은 정중하면서도 열정적이다. 쿠바의 모습과 어딘가 닮아 있는 그들. 쿠바의 땅이 그들을 길러 냈고 이제 그들은 쿠바인이다.


六五 君子 維有解 吉 有孚于小人(육오 군자 유유해 길 유부우소인)

육오는 군자가 오직 풀림이 있으면 길하니, 소인에게 믿음이 있으리라.


象曰 君子有解 小人 退也(상왈 군자유해 소인 퇴야)

상전에 이르길 ‘군자유해(君子有解)’는 소인의 물러감이라. 


육오는 비록 음이지만 외괘에서 중을 얻은 인군자리이기 때문에 군자다. 육오 인군이 나라의 모든 일을 풀어나가려고 노력하면 해결이 되어 길한데 모든 백성이 믿고 따르도록 해결을 해주어야 한다.


발레리나 디아나와 같은 한인 4세대는 ‘한인 공동체 모임’에서 한국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봄이 오면’과 ‘꼬부랑 할머니.’ 이 노래를 언제, 누가 가르쳐 주었을까? 하지만 1, 2세대에게는 언제나 ‘애국가’가 있었다. 어린 3, 4세대의 귀에 익은 이 노래는 제목도 모르지만, 익숙하고도 낯선 노래였다. 노래는 어느새 춤으로 바뀌고 있었다. 노동절을 하루 앞둔 쿠바 혁명의 날,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혁명의 춤, 사랑의 춤, 시간의 춤을.


혁명의 춤을~ 사랑의 춤을~ 시간의 춤을~


上六 公用射隼于高墉之上 獲之 无不利(상육 공용석준우고용지상 획지 무불리)

상육은 공이 써 높은 담 위의 새매를 쏘아 잡으니, 이롭지 않음이 없도다.


象曰 公用射隼 以解悖也(상왈 공용석준 이해패야)

상전에 이르길 ‘공용석준(公用射隼)’은 거스르는 것을 풀음이라.


육음이 맨 위에 있어 상육이다. 높은 담에 있는 새매를 육오 인군이 쏘아서 잡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제까지 맺혀 있고 거슬려 있던 문제가 완전히 풀린다. 해괘의 마지막 상육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쿠바라는 땅의 힘이었다. 사람들을 포용하고 숨결을 불어넣으면서 그 땅의 사람들로 만들어버리는 쿠바라는 땅의 힘. 육오 인군이 쏘아 잡은 새매는 조선이냐 쿠바냐 하는 경계가 아니었을까? 비록 먼 조선이란 나라에서 떠나와 정착했지만 모든 구속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워진 쿠바의 꼬레아노. 쿠바의 땅은 거기 사는 꼬레아노를 끌어안고 그들을 동화시키고, 그들에게 동화되면서 시간의 춤을 춘다.


막히고 어려웠던 일들이 풀리고 해결되려면 쉽게 되지 않는다. 때론 남들의 도움이 필요하고, 때론 정직해야 하고, 때론 부정한 짓을 삼가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이가 밭을 어지럽히는 여우를 잡고, 상육이 새매를 쏘아 잡듯이 해결의 실마리를 잡아야 한다. 쿠바의 꼬레아노는 삶을 창조했다. 아프리카인들이 자신의 종교를 잊지 않고 이 땅에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듯이, 그들도 노예의 삶을 쿠바인의 삶으로 변모시켰다. 그것은 쿠바에 있는 꼬레아노들이 추는 시간의 춤이 아니라 쿠바라는 땅과 함께 추는 시간의 춤이었다. ‘시간이 죽지 않는 삶은 멋진 삶’이라고 말하는 쿠바의 꼬레아노들은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


글_이영희(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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