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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의 독국유학기] 말하며 사는 말하며 사는 혀가 기억하지 않는 언어를 배우는 기분 독일에 산지 네달이 되었다. 마냥 놀러 온 외국인이기엔 가본 데가 좀 많고, 로컬이라고 부르기엔 아직도 안 해본 게 많은 존재가 되었다. 그동안 지하철을 타면 간판에 있는 광고 문장 정도를 읽어낼 수 있게 되었고, 그 사실에 이따금씩 기뻐하며 지냈다. 인터네셔널 셰어하우스에 사느라 영어는 더 늘었다. 하지만 글을 쓰거나 한국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할 때, 어려운 한국어 단어들은 종종 까먹는다. 어느 날에는 내가 발을 걸치는 언어들 중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 슬퍼하다가, 번역가의 일이 얼마나 고단할지 생각해보며 지낸다. 모국어를 영어로 Mother tongue이라고 하듯이, 혀가 기억하지 않는 언어를 배우는 일은 고난하다. 바닥이 없는 땅에 집을 .. 2024. 9. 11.
[내인생의일리치] 아메바언어에서 삶을 살리는 언어로! 아메바언어에서 삶을 살리는 언어로! 김미영 아~ 스트레스! 친구가 얼마 전 뜬금없이 명상센터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했다. 이유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고’였다. 일에서 겪는 스트레스도 내려놓고 갱년기 스트레스도 좀 극복해보자는 것이다. 지금 여기, 스트레스공화국. 모두들 입만 열면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냐~’ 라고 말한다. 유치원에 다니는 옆집 아이도 쪼그만 입으로 ‘스트레스 짱 나!’라고 말하고, 삶의 모든 경험에 통달했을 법한 팔순의 노모도 ‘스트레스 받아 힘들다’고 말씀하신다. 스트레스는 실적 압박에 짓눌린 회사원이나 경쟁에 내몰린 n포세대 청년만이 독점하는 말이 아니다. 사실 조금이라도 머리가 지끈거리거나 몸이 무거우면 ‘스트레스 때문인가?’하고 의심할 정도로 ‘스트레스’라는 단어는 일상 깊숙이 .. 2024. 4. 19.
[읽지못한소설읽기] 하고 싶은 말이 전부는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이 전부는 아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 『세 가지 이야기』, 고봉만 옮김, 문학동네, 2016 최근에, ‘형이상학’도 결국엔 ‘이야기’라는 생각을 잠깐 한 적이 있었다. ‘형形’이 보여야 보이는 모양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할 수 있을 텐데, ‘형이상학’은 말 그대로 ‘형形-이상而上’을 다루기 때문에 다루는 것을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그리고 계산할 수도 없다. 이를테면, ‘존재’, ‘차이’, ‘코나투스’, ‘제1원인’ 등과 같은 ‘개념’들을 결국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아닌가? 최근에는 오랜 반성 끝에 ‘인간만의 고유한’으로 시작하는 인간주의적 규정들이 점차 사라지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만의 고유한 어떤 특질을 꼽는다면 결국 그러한 ‘이야기’를 짓.. 2023. 11. 24.
‘철학함’이 만드는 세계 ‘철학함’이 만드는 세계 여러분이 알다시피, 말은 자신이 발화하는 것을 변화시킵니다. 덕분에 우리는 언뜻 수수께기처럼 보이는 기호와 의미의 더불어 태어남/인식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연애 감정이 오가는 상황 혹은 혁명으로 지칭하는 말보다 앞서서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두 경우에는 입을 열어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말한 것을 만들어내는 것과도 같은 사람, 그 일의 창시자와도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사랑의 심판대 앞에서든 혁명진압 세력 앞에서든 자기가 만들어낸 그대로 상황을 책임지고 자기가 입 밖에 낸 말의 대가를 치를 자격이 있습니다. 그 말은 말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리오타르, 왜 철학을 하는가?』, 이.. 2023.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