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며 사는
혀가 기억하지 않는 언어를 배우는 기분
독일에 산지 네달이 되었다. 마냥 놀러 온 외국인이기엔 가본 데가 좀 많고, 로컬이라고 부르기엔 아직도 안 해본 게 많은 존재가 되었다. 그동안 지하철을 타면 간판에 있는 광고 문장 정도를 읽어낼 수 있게 되었고, 그 사실에 이따금씩 기뻐하며 지냈다. 인터네셔널 셰어하우스에 사느라 영어는 더 늘었다. 하지만 글을 쓰거나 한국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할 때, 어려운 한국어 단어들은 종종 까먹는다. 어느 날에는 내가 발을 걸치는 언어들 중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 슬퍼하다가, 번역가의 일이 얼마나 고단할지 생각해보며 지낸다.
모국어를 영어로 Mother tongue이라고 하듯이, 혀가 기억하지 않는 언어를 배우는 일은 고난하다. 바닥이 없는 땅에 집을 짓는 기분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말한다. 틀리며 감각을 얻는 것이 불가피하다. 같은 뜻을 전하고 싶어도 나의 모국어로 문장이 이루어지는 방식과 이 언어로 문장을 이루는 방식이 다르다. 어떤 때는 문장을 읽고 이 말들이 각각 무슨 뜻인지는 알아도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 코스가 끝날 때 쯤에는 반에 앉아있는 수강생 모두가 자신이 다음 단계로 가도 괜찮을지 의심에 가득 차 있다. 공부를 더 하지 않았던 과거의 나를 마구마구 싫어하며 다음 단계로 올라가면 조금 깨닫게 된다. 나만 이 번뇌를 겪는 건 아니구나 하고. 언어는 수학이 아니고 과학이 아니다. 이 레벨을 완전히 정복해야 다음 레벨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언어는 반복하며 확장해나가는 일이다. 도대체 이것들이 왜 이렇게 작용하며, 왜 이렇게 비효율적인데도 쓰는가 의구심이 팡팡 들 때는 나의 독일어 선생님들이 가장 많이 해준 말을 떠올린다. ‘It’s no logic.’ 그래, 이유가 없단다. 수많은 표와 규칙들로 이해해 볼 만한 커리큘럼을 만들어 놨지만, 언어는 논리의 영역이 아니다. 그러니까 가끔은 의심하지 말고 조금 멍청해져야 한다. 세상에 모든 것들이 입으로 설명해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게 왜인지 마음에 되게 좋은 위안이 된다. 배운다는 건 멈추지 않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
그래서 안멈춰 보려고 공부하면서
선인장도 보고, 새로 사온 차도 마시고, 오렌지 먹으려다가 잊어버리고,
빵 먹다가 남기고, 감기걸려서 약먹고, 맥주도 마시던
책상의 흔적
말하지 못해 슬픈 사람들
요새 나는 10살의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주고 내가 라현이라 부르는 이 사람은 한국에서 금방 와 국제 학교를 가야 한다. 라현이 살았던 서울의 대치동은 대다수의 어린이들이 영어 어린이집을 다니고 한국어를 초등학교 입학 후 과외 붙여서 배우는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의 엄마는 그를 영어유치원에 보내지 않았다. 한국에서 영어를 하거나 하지 못한다는 것이 어떤 명예감와 어떤 모욕감을 주는지 아는 사람으로서, 나와 그의 엄마의 가장 큰 목표는 그가 영어를 싫어하지만 않게 만들기였다.
라현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매일 수업을 하기로 했다. 일주일 동안 아침에 일어나 어학원에서 독일어를 배우고 그 집에 가 밥을 얻어먹고 그를 가르쳤다. 그리고 학교 가기 전 마지막 수업 날, 나는 라현에게 학교에 가면 필요할 만한 말을 한국어로 써오라는 숙제를 주었다. 우리는 그것을 함께 번역해보기로 했다. 우리 반이 어디야? 사물함 어디 있어? 무엇을 하면 돼? 어떻게 하면 돼? 숙제가 뭐야? ... 이어 라현이 준비해온 질문에는 ‘나는 영어를 잘 못해.’가 있었다. 그냥 쉽게 알려주면 될 걸 나는 그 애가 영어로 말하고 있음에도 스스로 영어를 못한다고 말하는 게 너무나 속상해져 아무 말을 시작했다. 너가 영어를 잘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너가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걔네가 한국어를 못한다고 생각해봐라 ... 마지막에는 내가 라현이를 혼란스럽게 만든 게 너무 확실해져서 그냥 이 문장을 알려주었다. I’m not good at english. 내 영어가 그렇게 좋진 않아. 내가 영어를 그렇게 잘하진 않아.
집에 오는 버스에 타 내가 라현에게 그런 말들을 자주 했다는 걸 깨달았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그건 곧 내가 나에게 하는 주문 같은 거였다. 나에게는 말을 못해 수치스러운 순간이 매일매일 찾아와 그랬나보다. 한국에서는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수치스러웠던 날이 더 많았는데 말이다. 라현에게 더 말해주고 싶었다. 영어를 못한다는 사실은 전혀 부끄러움의 영역이 아니라고. 네가 영어를 못해 부끄럽게 만들었던 사람들의 마음이 참 조그맣다고. 네가 내 혼란스러운 말들을 들어주었듯이 나도 네 말을 들어줄 수 있다고.
라현이가 말하고 싶었던 문장들
말 말 좋은 말
그나저나 나는 왜 이렇게 말이 하고 싶을까? 말을 하고 싶은 순간이 적어지면 말을 못해 슬펐던 날도 좀 줄어들지 않을까?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내가 네 덕에 얼마나 기뻤는지, 내가 그때 얼마나 슬펐는지 상세하게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단단히 있어 그렇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에 대한 기대가 앞으로도 나를 계속 말하게 만들 것이다. 정확한 질문과 적당한 이해를 받았을 때의 벅찬 기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집에는 12명의 사람들이 산다. 우리의 여권상의 국적을 나열해보자면 두명의 독일인, 독일과 헝가리 이중국적인, 두명의 인도인, 두명의 터키인, 세명의 코스타리카인, 그리스인 그리고 한국인이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우리들의 친구들이 드나든다. 어느 날 두명의 터키인이 창가에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나도 담배를 피려고 창가에 앉았다. 둘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 분위기였다. 그러던 중 그들이 내게 물어봤다. ‘우리 잠시 터키어로 얘기해도 괜찮아?’ 나는 순간 엄청나게 당황해 온 몸짓을 다 써서 당연히 괜찮다고 답했다. 그리고 내가 왜 그렇게 당황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한국에서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무리 중 비한국어 사용자가 있으면 일단 한국어로 얘기했고, 무리 중 한명이 도맡아 그에게 통역을 해주는 정도였다. 이들은 내가 알아 들을 수 없는 언어, 내가 소외될 수 밖에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이해를 부탁했다. 나에게는 이 마음이 아주 생소하고 커다랗게 느껴졌다. 집에 있을 때는 종종 이런 경우가 많았다. 독일인들끼리 독일어로 얘기하다가도 비 독일어 사용자가 입장하면 영어로 바꾸어 말했다. 그들이 나를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경청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나의 한국친구들을 아주 많이 사랑하는데, 우리가 같이 자라며 서로를 겪었기 때문에 서로에게 가장 정확한 질문을 해줄 수 있다고 오랫동안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생각이 얼마나 맞고 틀린지, 또 나와 다른 문화에서 자란 이 타인들이 나와 얼마나 다르고 비슷할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너를 존중한다는 건 뭘까? 같이 산다는 건 뭘까? 오랫동안 너를 존중해야 한다는 거, 우리가 결국 같이 살고 있다는 거는 머리로 알았지만, 어떻게 존중하고 어떻게 같이 살까는 미지수였다. 영영 하나의 답으로는 귀결될 수 없는 질문이다. 이상하게도 이 미지의 순간에서 나는, 말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첫번째 공간이 된다.
종종 읽기 너무 어려운 책을 만나면 작가 탓을 한다. 내가 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이걸 너무 어렵게 쓴 작가 탓이라고. 독자로서 스스로를 다그치며 읽지 않아도 되는 글이 필요한 순간이 종종 있다. 전하고 싶은 바를 쉽게 전달하는 능력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삶을 살아갈수록 깨닫게 된다. 내가 말을 못해서 슬픈 날에는 언어가 말의 뜻을 전하기 위한 도구라는 사실만을 되새겨본다. 미안해 혹은 사랑해 혹은 고마워. 삶에서 가장 중요한 말들이 이렇게나 짧고 간단한데도 커다란 깊이가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내가 가진 몇 개의 말들로 쉽게 그리고 분명하게 이야기를 만들고 전하고 싶다. 그것이 내 최선이겠지만, 가장 좋은 이야기의 조건이 될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오가는 식탁
이야기가 듣고 싶으면 들어주고, 듣기 귀찮으면 듣지 않는 공간
사진 뒤에 6명이 더 있다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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