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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51

중용을 이루려는 노력을 멈출 수 없는 이유 중용, 그 불가능성의 힘 공자는 순임금을 위대한 지혜를 가지신 분이라 칭송했다. 순임금은 묻기를 좋아하고, 하찮은 말도 살피기를 좋아했으며, 악은 억누르고, 선은 드러내어 그 중 최선의 것을 백성에게 쓰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임금의 정치는 중용의 정치이고, 이런 정치적 장에서는 군주와 백성이 더 이상 지배와 피지배의 대립관계로 만나지 않는다. 중용은 서로 이질적이어서 적대가 되기 쉬운 힘들을 함께 살 수 있는 관계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적대를 적당히 무마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 나는 힘들을 질적으로 통합함으로써 새로운 무언가를 낳게 하는 힘이다. 그래서 중용(中庸)은 중화(中和)에 다름 아니다. 중용의 정치 속에서 순임금과 백성의 관계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관계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 2016. 8. 11.
시중의 시간성 : 선한 것 중에서 적중한 것을 택하는 새로운 리듬 시중(時中)의 시간 지난 연재에서 나는 중용(中庸)을, 가차 없이 흐르는 시간인 크로노스와 잡아채는 시간인 카이로스 시간의 공존으로 읽었다. 두 시간은 서로 상관적이다. 카이로스의 시간이 없다면 시간이 흐른다는 것조차 알 수 없을 것이고, 카이로스의 시간 역시 크로노스의 시간이 없다면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리적으로는, 가차 없이 흐르는 시간인 크로노스와 잡아채는 시간인 카이로스는 서로 양립할 수 없다. 논리란 모순을 허용하지 않는다. 전자의 시간은 흐르는 것이고 후자의 시간은 흐르는 시간을 멈춰 세워야 비로소 포착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두 시간은 서로 모순적이다. 나는 논리적으로는 공존할 수 없지만 구체적 삶에서 두 시간은 공존하는 것이고, 그 공존 가능성을 포착하는 것이 .. 2016. 7. 28.
희노애락의 우주적 스케일, '중(中)'과 '화(和)'가 지극해지면, 천지가 제자리에 있게 되고 만물이 자란다. 중(中)과 화(和) 희로애락이 아직 마음에서 일어나지 않은 상태를 ‘중(中)’이라 한다.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희로애락이 일어나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고 한다. (發而皆中節 謂之和) ‘중(中)’은 천하의 근본이다.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화(和)’는 천하에 두루 통하는 도이다.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중(中)’과 ‘화(和)’가 지극해지면, 천지가 제자리에 있게 되고 만물이 자란다.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중용 1장은, 하늘이 부여한 성(性)을 따르는 것이 도(道)이고 그것은 교(敎)에 의해 지켜진다는 첫 구절로 시작해서, 희로애락과 천지만물의 관계를 말하는 이 구절로 끝난다. 중용을 처음 읽었을 때 이 구절이 참 놀라웠다. 문맥으로 보아서 ‘중(中)’과 ‘화(和)’가 지.. 2016. 6. 30.
『중용』: "하늘이 만물에게 부여해 준 것을 성(性)이라 한다." 天命之謂性(천명지위성)의 용법 몇 년 전에 스피노자의 『윤리학』 세미나를 하는데, 중년의 남성분이 참여하셨다. 스피노자가 기하학적 증명의 방법으로 자신의 철학을 펼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정도면 신뢰할 만 하다고 세미나에 참여하신다는 분이었다. 근데 이 분이 『윤리학』 1부 초반에서 소위 멘붕에 빠지셨다. 『윤리학』의 증명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윤리학』은 공리와 정의를 제시하고, 정리를 도출하는 방식이다. 그 선생님왈, 최초의 공리와 정의 역시 임의적인 것은 신학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 문제에 대해 여러 토론이 있었지만, 그 분은 영 개운치 않으신지 더 이상 세미나에 나오지 않으셨다. 17세기 유럽에서 데카르트와 스피노자는 신의 존재 증명을 시도했다. 두 사람 모두 기존의 철학과 .. 2016. 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