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나의 이름이 아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이름이 많았다. 태어날 때 부모님이 정해준 이름, 성인이 되어서 정하는 자字, 친구들이 붙여주거나 자기가 만들어 붙이는 호號, 또 관직 앞에 성만 붙여서 부를 때도 있으니 종류만 네 가지다. 연암의 가까운 친구였던 선비 이덕무는 호를 많이 지었던 탓에 그중에서도 이름이 꽤나 많았다. 젊은 시절에 쓴 호만 해도, 삼호거사, 경재, 정암, 을엄, 형암, 영처, 선귤헌, 감감자, 범재거사, 9개나 된다. (그밖에도 청음관, 탑좌인, 재래도인, 매탕, 단좌헌, 주충어재, 학초목당, 향초원, 청장관 ‘등’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이덕무가 호를 또 하나 지었다. 당堂 하나를 짓고 ‘선귤당蟬(매미)橘(귤)堂(집)’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거처에 붙이는 당호는 이름 대신 쓰이기도 한다. 일례로 사임당이 있다.) 그리고는 연암에게 기문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연암은 또 이름을 지었느냐며 “그대는 왜 어지럽게도 호가 많은가”하고,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 바람 소리에 비유해보자. 바람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인데 나무에 부딪힘으로써 소리를 내게 되고 도리어 나무를 흔들어 댄다. 너는 일어나 나무를 살펴보아라. 나무가 가만히 있을 때 바람이 어디에 있더냐? 너의 몸에는 본시 이름이 없었으나 몸이 생겨남에 따라 이름이 생겨서 네 몸을 칭칭 감아 너를 겁박하고 억류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또 저 울리는 종에 비유해보자. 북채를 멈추어도 그 소리는 울려 퍼진다. 그렇듯이 사람의 몸이 백 번 죽어도 이름은 그대로 남아 있으며, 그것은 실체가 없으므로 변하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이는 마치 매미의 허물이나 귤의 껍질과 같아서, 껍질이나 허물과 같은 외물에서 매미 소리를 찾거나 귤 향기를 맡으려 한다면 이는 껍질이나 허물이 저처럼 텅 비어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 박지원, 『연암집』(하), 「선귤당기」, 돌베개, p100)
‘이름’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름은 본래 내 것도 아닌데, 내 몸에 붙어서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고 나를 ‘칭칭 감아 겁박’하는 무엇이다. 내 것이라곤 하지만, 나에게서 비롯된 게 아니라 그 이름을 부르는 다른 사람 입에 달려있어서 내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떻게 떼어낼 수도 없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무엇’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눈에 보이지는 않는데 나무를 흔드는 바람이나 실속은 없는 매미 허물, 귤 껍질과 비슷하다고 할 수밖에. 그래서 연암은 이덕무에게 묻는다. 그 많은 이름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십니까?
이덕무는 그 ‘실체’도 없고, ‘겁박’이 되는 이름들을 많이도 붙여왔다. 예를 들어 ‘팔분당八分堂’이라는 호는 성인이 10분分이라고 했을 때, 9분까지는 대현이니 이를 수 없는 정도이고, 5나 6 정도에 머문다면 학문에 게으른 것이니, 8분을 지표삼아 가겠다는 의미다. 어린아이의 무엇이든 배우기를 즐거워하는 태도, 처녀의 부끄러워 감추려고 하는 태도가 자신이 글을 쓰는 태도라 하여 ‘영처嬰處’라는 호도 지었다. 이번에 지은 ‘선귤蟬橘’은 자신의 집이 작지만 그것과 관련 없이 즐겁다는 의미에서 붙인 당호다.
연암의 질문에 이덕무는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의 말처럼, 이름에는 그것을 붙일만한 실체가 없는데, 사람들이 그게 저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그저 매미 허물과 귤 껍질이 있을 뿐이지요. 제가 감당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세상엔 이런저런 이름만 있을 뿐인데요!
처음 세상에 태어난 아기는 이름이 없다. 부모가 이름을 붙여주면 그때 비로소 그 아이는 그들의 자식이 된다. 그 아이가 자라서 자字를 짓게 되면, 그때 아이는 어른이 된다. 그리고 누군가의 ‘아빠’, ‘연인’, ‘선생’이 된다. 그렇게 이름이 생긴다. 이덕무가 짓는 호號도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만나겠다는, 혹은 만나고 있다는 것에서 생기는 이름이다. 그것은 ‘나의’ 이름들이 아니다. 내가 그 많은 이름들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름은 그 자체로 존재를 규정하는 ‘겁박’이지만, 역시 그것은 나의 이름이 아니다.
글_이윤하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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