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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나의 고전분투기36

위대한 스승 공자, "내 대답이 모두 다른 이유는…" 공자(孔子)가 위대한 스승인 이유 동아시아 전체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되어지는 것 중에 하나가 『논어(論語)』이다. 한 때 우리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둥,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둥, 『논어』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가 있었다. 그리고 2,500년이라는 세월을 넘어서 여전히 우리에게 『논어』가 의미가 있다는 것은 공자라는 인물이 대단한 인물이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논어』는 참 별 이야기가 없는 책이다. 새로울 것 하나도 없는 이야기 속에서 도대체 공자의 어떤 면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그를 동양 최고(最高)의 스승으로 만들었을까? 공자는 그가 살아생전에 공부한 것을 제대로 펼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공자의 정치적 이상은 실현 불가능.. 2015. 11. 25.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방법은? 혁명이지! [나의 고전분투기 - 『대학장구』] 신(新)은 혁(革)이다 새로움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서 마침내 새로워질 수 있을까?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처럼, 매일 한 지게씩 흙을 옮긴다면 언젠가는 산을 옮기게 되지 않을까? 점진적 변화론은 진화론이나 과학사에서도 한때 주류를 차지했던 관점이고, 지금도 만만찮은 세를 가지고 있다. 허리 굽은 유인원에서 점점 허리를 꼿꼿이 세우게 되는 호모사피엔스까지의 진화론적 해석, 과학은 자연에 대한 앎의 점진적 축적 과정이라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의 관점들이 그것이다. 점진적 변화라는 관점에서는 현재가 언제나 최상의 진보된 상태다. 뭔가 구린내가 나는 것 같지 않은가? 점진적 변화라는 관점에서는 혁명은 더 이상 설자리가 없어진다. 지금까지는 현재가 최상이고,.. 2015. 11. 18.
[새연재] 논어, 공자와 제자들의 박터지는 배움의 기록을 만나다 『논어(論語)』 ‘공자 스쿨’을 소개합니다 나는 3년 전에 『논어(論語)』를 만났다. 처음 『논어』를 읽는다고 했을 때 고루한 훈계서 일거라고 막연히 생각했고, 그런 책을 굳이 읽어야 하나 잠깐 고민도 했었다. 그래도 다들 읽는 이유가 있긴 하겠지 하고, 눈 딱 감고 세미나를 시작했다. 그런데 『논어』는 내가 생각했던 훈계서가 아니었다. 그냥 별 이야기가 없다고 하는 편이 더 낫다. 훈계를 하고 있다기보다 공자(孔子)와 그의 제자들이 모여서 서로 묻고 대답한 것을 적어 놓았다. 제자들의 질문에 스승은 친절하게 답을 해 주기도 하고, 때로는 공자가 자신의 고민을 제자들에게 털어 놓기도 한다. 공자의 제자들은 스승에게 사랑받는 제자를 질투하기도 하고, 서로 스승에게 자기가 더 낫지 않느냐고 묻는다. 제후들과.. 2015. 11. 11.
[새연재] 나의 고전분투기─스스로 사유하기 위해 『대학』을 읽다 『대학장구(大學章句)』의 새로움 철학이 종교와 다른 것은 일체의 초월성이 배제된 내재성의 구도를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철학은 끊임없이 개념을 창조해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철학이 생산한 개념은 그토록 쉽게 양식(bon sens)으로 영토화 되어 버리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이 끊임없이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철학이 창조한 개념은 언제나 배치에 따라 다른 의미작용을 하는 다양체였기 때문이다. 들뢰즈는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이 개념 옆에는 어떤 개념을 놓을 것인가? 각각에는 어떤 구성요소들이 있는가? 이는 개념들의 창조에 관한 질문들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개념의 창조는 무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배치를 바꾸는 문제다. 그것은 익숙한 사유를 절단하여 새로 이어붙이.. 2015. 1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