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종착지
열흘 전에 어떤 학생에게서 문자가 왔다. 고등학교 2학년인데, 중남미(“중년남성을 위한 인문 의역학”이라는 감이당의 중년 공부프로그램)에서 공부하시는 선생님의 제자라고 하면서, 『자기배려의 인문학』으로 친구들과 독서토론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친구들과 함께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정중한 내용의 문자였다. 혹시나 해서 나는 책은 다들 읽었냐고 물었다. 같이 동아리를 하는 친구가 열 한명인데, 모두 읽었노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책에 대해 독후감도 썼다는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내 주변에선 어렵다고 내 책을 전혀 읽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완독했다는 사람도 찾기 힘들다. 사실 어려워서 안 읽기도 했겠지만, 그것보다는 시간 내어 읽을 만큼 내 책이 중요하거나, 매력적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 좋은 책, 훌륭한 글이 아니라고 생각해서기도 할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말로 은행원이 참 별난 일을 했다라고 잠깐의 관심을 표현하고 만다. 나는 책 내용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지만 도무지 그러고 싶은 마음들은 없는 것 같아서 책 이야기를 전혀 하질 못한다. 그래서 요즘은 주변 사람들과 아예 책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나에겐 약간 우울한 일이었다.
그런데 아주 뜻밖의 곳에서 내 책을 읽고 책 내용에 대해서 묻고 싶다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책을 아주 꼼꼼히 읽고서 말이다. 이 친구들은 내가 말하고자하는 책의 핵심들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심지어 서평이라는 형식으로 각자 독후감을 써서 이메일로 보내주기까지 했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만나기 전날 저녁에 이 친구들의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다 나왔다. 내 책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말을 거는 사람들을 많이 봤지만 이들 만큼 기쁨을 고양시킨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철학을 숱하게 오독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철학의 종착지는 바로 이런 우정의 기쁨을 생성시키는 곳이라는 것을. 어쩌면 고매한 철학자의 높은 수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겐 그저 같이 읽고, 지성을 같이 나누겠다는 마음만 필요한 것이 아닐까. 공부하는 자들의 모든 바람은 이 우정의 현장에서 실현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날 인터뷰 두 시간 동안 나는 늦은 나이에 철학을 알게 된 것을 고마워하게 되었다. 철학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런 기쁨을 어떻게 가질 수 있었겠는가. 철학을 공부하고 뜻하지 않게 책을 낸 이후로 삶 자체가 완전히 바뀐 것 같다. 정말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내겐 너무나도 행복한 출구다. 기쁨이 고양되는, 생명력이 살아나는 지성의 출구인 것이다.
철학의 종착지는 바로 이런 우정의 기쁨을 생성시키는 곳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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