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아내와 삼초와 루크레티우스 - 세상에서 가장 '큰' 나의 아내


#아내2-삼초-루크레티우스

세상에서 가장 큰 것




아내와 나는 나이 차이가 없다. 남편과 아내보다는 글쎄, 그냥 친구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판단력과 실행력, 그리고 통찰력은 나보다 곱절은 강하다. 어느 누구보다 평온한 일상을 사랑하지만(아마 내가 크고 작은 사고를 쳐놔서 더욱 그럴 것이다), 아내는 작은 소동이나 사건이 발생했을 때 더 기운을 내고 눈을 반짝인다.


가족에게 돌발적인 사건이 발생하거나, 술꾼이던 남편에게 고민거리가 생기면 그전까지는 소파에 앉아 평온하게 커피를 마시던 아내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소대를 이끄는 대장이 된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눈만 끔벅거리는 산초다. 특히 내가 집을 돌보지 않고 술만 마시던 시절, 더욱 그런 힘은 강하게 드러냈을 것이다. 평소에는 눈에 보이지 않다가, 어려울 땐 어느새 나타나 우리들 심정을 헤아려주는 건 아내뿐이라는 걸 깨달은 건 오랜 세월이 지나서다. 그러나 가족을 생각하지 않는 나의 이기주의는 여전하다.



아내는 그런 때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곤 했다. 김장도 그런 때 자기 스스로 익혔다고 한다. 남편은 술이며 회사일로 속을 썩이고, 아이들은 어려서 말썽이 끊이지 않고, 시댁조차 평범하지 않아 김치하나 제대로 공수받기 힘들자, 아내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김치 담그는 법을 배웠다. 그때는 나도 술에 취해 살던 때라 아내가 직접 담근 김치인 줄도 모르고 먹었다. 심지어 “김치가 왜 이리 짜”라며 투정까지 부려가며 말이다. 별것 아니지만 왠지 자꾸 떠올라서, 그 장면이 곱씹게 되어 가슴이 아프다.




아마 삼초(三焦)가 그러하리라. 어떤 이는 몸 안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장기로 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보이지 않는 기(氣)로 여기기도 한다. 그것은 아내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우리 몸을 움직인다. 초(焦)를 膲(삼초 초:기관으로서 유형의 삼초)로 보든, 樵(땔나무 초:상·중·하 마디)나 무형의 기(氣)로 보든, 그것은 다른 장부처럼 묵직한 실체로 존재하진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중에 모든 기를 움직이고, 순간 신체 전체가 되어 음식물을 운행시키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삼초는 결독지관으로, 전신의 수도가 통하게 하는 것을 주관한다[三焦者. 決瀆之官, 水道出焉](허준, 『동의보감』, 442쪽) 그렇다면 그것은 가장 큰 장부이리라. 그래서 삼초를 고부(孤腑)라고도 부른다. 여러 장부를 감싸고 있는 ‘강’(腔:몸 안의 빈 공간)이 그것이다. 비어 있지만, 그래서 전혀 보이지 않지만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신체. 이게 작동하지 않으면 숨이 차고(상초), 뱃속이 그득하고(중초), 몸 아래가 붓는다(하초). 아내가 아프면 가족이 아픈 것이다.



오늘 새벽에도 날이 추워, 내복을 찾았는데 쉽게 찾지 못하자 내 입에서 아내를 부르는 소리가 튀어 나왔다. 아내가 지긋이 이른다. “에이, 그거 하나 못찾고 나를 찾아. 여기 있잖아” 양말들 틈으로 삐져나온 내복이 보인다. “내가 먼저 죽으면 어찌 살려고 그래” 아내가 뒤 돌아서고 저만치 갔다. 내복에 몸뚱이를 집어넣는 내내 저 말이 계속 마음을 때린다. 그러다  몸뚱이가 반쯤 제 집에 들어갈 때쯤, 힘이 풀렸는지, 넋이 나갔는지, 내질러 앉아 저 말을 곱씹는다.


마치 루크레티우스가 말한 ‘이름 없는 원소’가 영혼에서 사라져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루크레티우스(Titus Lucretius Carus, BC 94? ~ BC 55?)는 영혼이 정신과 나머지 영혼으로 형성된 물질이라고 말한다. 정신은 가슴에 있지만, 나머지 영혼은 유기체 전체에 두루 퍼져 있다며, ‘영혼의 위상학적 토대’도 설파한다. 또 영혼을 이루는 미세한 원소는 네 가지다. 영혼은 원자들의 복합체인 것이다. “영혼 전체는 매우 작은 씨앗들로 되어 있어야만 한다.”(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강대진 옮김, 208쪽) 바람(숨), 열기, 공기 그리고 제4원소로 ‘이름 없는 원소’(akatonomaston). 특히 마지막 ‘이름 없는 원소’는 영혼의 지적 작용을 지배한다. 그런데 이름 없는 원소는 가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미세한 알갱이로 나머지 영혼에 두루 퍼져 있다. 마치 삼초처럼 보이지 않지만 가장 큰 것처럼 영혼에 퍼져 있다. 루크레티우스는 영혼조차 물질(물체)이고, 따라서 신체의 다른 부분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영혼도 신체인 것이다. 따라서 이름 없는 원소(루크레티우스는 네번째 본성이라고도 했다)는 유기체 전체에 퍼져 있는 신체의 가장 큰 부분이다. 가장 작은 알갱이이지만 가장 크다. 사실 영혼의 삼초(三焦)라고 할만하다. 이게 죽어버리면 다른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과도 같다. 아내가 사라지면 나도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 무슨 이기적이고 돼먹지 못한 생각이냐고 된소리를 들을지 모르겠지만, 아내 일에 관해서 나는 정말로 속이 좁다. 아내가 한 김치는 나만 먹었으면 좋겠다. 내 내복은 아내가 계속 찾아 주었으면 좋겠다. 당연히 아내는 나에게만 보였으면 좋겠다. 이제나저제나 목 빠지게 기다리게 하는 놈은 언제나 나겠지만 남이 내 아내의 아름다움을 아는 것은 싫다. 밴댕이 소갈딱지라고? 할 수 없지. 물론 큰 걱정은 없다. 가장 큰 것은 범인(凡人)들에게 보일 리가 없으니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은 당신의 아내다. 큰 눈으로 보세요. 



글_약선생(감이당 대중지성)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 10점
루크레티우스 지음, 강대진 옮김/아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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