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의 절기는?
안녕하셔요. 인터넷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에서 절찬 판매되고 있는 화제의 신간 『절기서당, 몸과 우주의 리듬 24절기 이야기』의 편집을 마치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편집자 k입니다. 이제 내일모레면 입동(立冬)인데 본격적으로 겨울이 닥치기 전에 농사를 마무리한 것 같아 아주 뿌듯합니다. 『절기서당』 덕분에 겨울엔 귤이나 까먹으면서 봄을 기다리는 호사를 누릴 날만 남았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만…… 믿어도 되겠지요?(>.<)
다 끝났으니 말이지만, 사실 처음엔 “24절기,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절기서당』 담당하기 전엔 24절기 순서도 잘 못 외웠었어요(하하하, 저란 여자 무식한 여자;;;). 하지만 알면 보이고, 그때 보이는 건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이라고 하더니만 참말입디다.
요즘 제가 월요일 아침마다 깜짝깜짝 놀라는데요. 회사에 있는 화분 때문입니다(저희 대표님의 절친께서 북드라망의 시작을 축하하며 보내주신 큰 화분인데, 작은 화분은 벌써 여러 개 말려 죽였지만;; 큰 화분은 말려 죽이면 티가 나기에 그럭저럭 돌보고 있습니다). 얘한테 물을 주는 날은 매주 월요일, 일주일에 한 번만 물을 주어도 겉흙까지 마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한로(寒露)를 전후해서는 화분의 겉흙은 물론이고 물받이의 물까지도 아주 바짝 말라 있습니다. 천지만물에 조기(燥氣)가 작용할 때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무실 안에서 조기와 직접 만났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참 묘하더라구요.
편집자 k가 돌보는 사무실의 벤자민!
참, 햇볕의 결이 때마다 다르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네요. 점심 먹으러 가는 길, 물기가 쫙 빠진 햇볕이 뒤통수며 종아리를 송곳처럼 찔러대는 걸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절기 덕분이었습니다. 숙살지기(肅殺之氣)로 누렇게 말라가는 풀들이 이제는 흉하게 느껴지지도 않구요. “시간 안에도 특유의 냄새, 색깔, 볕, 습기, 바람이 담겨 있었다”(머리말, 8쪽)는 걸 정말 몸으로 느꼈다니까요!^^ 추운 건 싫지만 (전 지금도 너무 춥습니다 ㅠ.ㅠ) 새로운 계절과 절기에 제가 또 뭘 볼 수 있을지 다가올 입동이 기대됩니다.^^
단언컨대, 제 직업의 가장 좋은 점을 한 가지 대라고 한다면 책 한 권을 마치고 나면 하다못해 새로운 사람 이름, 단어 하나라도 얻게 된다는 점인데요. 제가 이번 책 『절기서당』에서 득템한 것은 72절후(節候)라는 것이었습니다. 72절후는 24절기를 세 마디(초후, 이후, 삼후)씩 나눈 것입니다. 24절기를 세분화한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의 절기 안에서도 세 번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요. 예를 들어 청명(淸明)의 초후에는 오동나무에 꽃이 피고, 이후에는 쥐가 메추라기가 되며, 삼후에는 무지개가 나타났다고 합니다(독자님, 많이 당황하셨어요? 궁금하시면 『절기서당』 72~74쪽을 보셔요^^). 그런데 저는 절후마다 나타나는 (지금 우리 눈으로 보기엔) 기이한 현상들에 눈이 가기보단 ‘72’라는 숫자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더라구요. 그리고 요즘 제가 『주역』 강의를 듣고 있지 않겠습니까요(ㅋㅋ)? 동양에서의 숫자는 계산만 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오라 의미를 가지고 있을 때가 많아서 72란 숫자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습니다.
24절기는 자연의 리듬이자 그에 상응하는 인간의 리듬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전통시대에 농사력으로 기능했던 24절기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이정표가 되어 줄 수 있고, 그래서 이렇게 아름다운(흠흠) 『절기서당』이라는 책으로도 나오지 않았습니까?^^ 작업을 하면서 24절기가 1년 동안의 인간의 삶이라면 72절후를 인생 전체로 보고 거기에 인간의 삶을 대입시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의 수명을 72세로 잡으면(네, 물론 2011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여자 84.4세, 남자 77.6세입니다만…플러스 마이너스는 각자 해보는 걸로;;), 3세까지는 입춘(立春), 6세까지는 우수(雨水), 9세까지는 경칩(驚蟄)…… 이렇게 해서 72세에는 대한(大寒) 말후. 그다음엔 또 다시 태어나서(^^) 입춘, 우수… 이런 리듬을 밟아 가며 살구요. ㅎㅎ
그래서 제 나이로 24절기 중 어디만큼 왔나 계산을 해 보았더니……. 헉, 맙소사! 소서(小暑) 말후입니다. 아, 막연히 (아직은 괜찮은;;) 30대 초반이라고 생각하였었는데 얼마 후면 인생의 가을이 온다는 뜻이지요. 아, 벌벌 떨리고 두렵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이것도 너무 앞서가는 것이랍니다. 해놓은 것 없어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은 처서(處暑)에나 허락이 된답니다. 그럼, 소서라… 이제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절기서당』을 펼쳐 봅니다. 먼저, 소서가 어떤 ‘때’인지부터 한번 봐야겠습니다.
“소서에는 불볕더위로 한껏 뜨거워진 한편 장마와 홍수로 초토화가 되어 버린 현장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왜냐? 우주의 흐름 중 여름[火]에서 가을[金]로 넘어가는 것, 즉 금화교역(金火交易)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진되기 때문”이래요. 천-지-인은 한 세트니까 이때에는 당연히 인간도 엄청난 에너지를 쓰게 되고 지치게 되지요. 하지만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때는 “삶이 버거운 게 아니라, 그 시절을 통과하는 우리의 몸이 버거운 것뿐”이랩니다. “몸이 고달픈 것이지 삶이 고달픈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31, 32, 33세가 소서에 해당하는 나이이니, 30대 들어 부쩍 몸이 피곤해진 것은 금화교역의 시기에 들어섰기 때문인가 봅니다. 진작 알았다면 몸을 위해 ‘치맥’을 멀리하였을 것인데……, 흑(하지만 오늘도 저를 기다리고 있는 건 어제 먹다 남은 ‘호식이 X마리 치킨’;;).
이럴 때, 『절기서당』에서는 농부의 시선을 빌려서 우리의 살 길을 찾아보자고 합니다.
농사짓는 사람에게 소서는 가혹한 절기다. 신은 농부를 시험하기라도 하듯이 길지도 않은 기간 동안 가물게도 했다가 장마로 물이 넘치게도 했다가 한다.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도 가뭄처럼 갈라지고, 홍수처럼 범람한다. 그러나 농부는 신의 장난 같은 그 기간을 미토(未土; 소서가 끼어 있는 달이 미월입니다. 미에 해당하는 오행이 토이구요. 저희 집 토끼 ‘미토’가 아니어요^^)처럼 묵묵히 버틴다. 날씨에 기가 질려서 논밭을 팽개치고 달아나거나, 무심한 하늘에 대고 욕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잡초가 무성하면 잡초를 제거하고, 가뭄이 들면 갈라진 논에 물을 대준다. 장마로 논에 물이 넘치면 물을 빼준다. 그저 모가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가을까지 잘 버티게 만드는 것밖에 없다.(136~137쪽)
아항, 버티는 것! 버티는 게 수라네요. 서른세 살, 생각이 많은 나이지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맞는 것인가 어쩐 것인가. 더 늦기 전에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구요. 하지만 저 구절을 읽고 나니 지금이라도 광장시장에 가 기술을 배워 한복장인이 되겠다거나 백 프로 현금을 융통할 수 있는 목욕관리사가 되겠다고 할 때마다, ‘제발 지금 하는 것이나 좀 잘하자’며 저를 눌러 앉혀 주신 저희 대표님께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덕분에 저는 제 인생의 소서를 잘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계사년의 대한(2014년 1월 20일)이 지나 갑오년의 입춘(2014년 2월 4일)이 오면 제 인생에는 대서(大暑)의 절기가 오겠지요. 다가올 가을을 조금이나마 채워 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대서의 끈덕끈덕한 무더위를 이겨내 보겠습니다. 독자님들은 지금 어느 절기에 계신가요?(댓글로 달아 주시면 좋겠지만 무플이라도 저는 버틸 겁니다. 지금 저는 소서에 있으니까요. 불끈!)
편집자 k
여러분도 화이팅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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