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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과학/과학 톡톡

유명한, 너무나 유명한 공식 "E=mc2"는 살아있다?!

by 북드라망 2013. 10. 22.

한 권의 책, 세 개의 시선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민희 옮김, 『E=mc2』, 2005, 생각의나무




# 박영대


우주선이나 섬광들을 들먹이는 대신, 나는 E=mc2의 전기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전기란 시대적 배경과 함께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의 순서로 구성된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공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 이 책의 중반부에는 E=mc2이 유년기를 거쳐 성년기에 이르는 과정을 길게 쓰고 있다. 여기에서는 미국의 과학자들과 나치 독일의 과학자들 사이의 숨막히는 경쟁이 그려진다. 누가 먼저 이 행성을 장악하는 치명적인 원자 폭탄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겨루는 것이다. …… 이 책의 후반부는 전쟁을 겪어낸 공식이 장년기에 이른 모습을 그려낸다. …… 그 공식이 저 멀리 우주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었다는 데 있다. 어떻게 별이 타오르는지, 별은 또 어떻게 행성을 따뜻하게 유지하는지, 어떻게 블랙홀이 생기는지, 또 어떻게 세계의 종말이 올 것인지까지도 설명해주는 것이다.


─『E=mc2』 머리말 중


『E=mc2』이 재미있다는 얘기를 몇 번씩이나 들어왔었다. 그래서 ‘어떤 부분이 그리도 재미있을까’ 늘 궁금했었는데 이번에 그 이유를 알았다. E=mc2의 다양한 활약상 때문이었다. 과학공식은 특정 영역을 다루는 것이라 생각했다. 중력가속도의 공식은 중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처럼. 하지만 E=mc2은 그 이상이었다.



아인슈타인이 만든 E=mc2은 ‘에너지와 질량은 같다’는 뜻이다. 물리적 양을 나타내는 질량과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 이 둘은 동일한 것의 다른 모습이며 그러므로 서로 변환될 수 있다. 질량이 사라지면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반대로 에너지를 계속 투여하면 질량이 커진다. 그래서 E=mc2은 우리가 갖고 있던 질량과 에너지의 구분을 해소시켰고, 이후 질량과 에너지에 대한 수많은 문제들을 풀어내는 열쇠가 된다. 공식을 만든 아인슈타인조차 이렇게 다양한 활용법에 대해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1938년, 오토 한(Otto Hahn)과 리제 마이트너(Lise Meitner)는 우라늄 실험을 한 결과, 갑자기 등장한 엄청난 에너지 때문에 난관에 부딪혔다. 우라늄에 작은 중성자 하나를 넣었는데, 무거운 우라늄이 반으로 쪼개진 것이다. 이를 가능케 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데, 이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마이트너는 이 때 을 떠올렸고, 결국 그들은 반응 후 ‘사라진 질량’에서 그 답을 찾았다. 질량이 사라지고 에너지로 바뀌면서 우라늄을 조각낸 것이다. 이것이 핵분열 현상이다.


핵분열은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원자폭탄으로 개발된다. 원자폭탄은 우라늄의 분열반응이 빠르고 연쇄적으로 일어난 형태다. 매우 조밀하게 뭉쳐진 우라늄들이 연이어 분열반응을 일으키면서 원자 내의 질량이 사라지고 에너지가 분출된다. 그 결과 열이 1000만 도(°C) 이상 치솟고, 폭발한다. 1945년 8월6일 미군 폭격기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을 때, 폭탄 안에서 이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E=mc2은 태양의 문제로 넓혀졌다. 20세기 초, 태양의 문제는 ‘어떻게 태양이 타오를 수 있을까’였다. 태양의 90%가 수소임을 밝혀낸 과학자들은 수소를 가지고 태양의 연료를 설명해냈다. 4개의 수소 원자가 압축되면 헬륨으로 변한다. 수소의 질량이 1이라면, 4개의 수소가 모이면 질량이 4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결합 후 헬륨이 되었을 때는 3.993으로 0.007이 부족하다. 이 0.007의 질량이 에너지로 변화되어 태양을 불타오르게 만드는 것이다. E=mc2이 없었다면, 헬륨 결합과 태양이라는 서로 다른 현상을 함께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왕~ 굿! +_+)b


과학자들은 E=mc2를 통해 우리 지구의 모습도 그려내었다. 지구가 형성될 때 내부에는 방사능 원자들이 있었다. 이들이  폭발을 반복하면서 심층에서 열을 분출해냈고, 그것이 표면에서 식으면 지각이 형성된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을 지구 내부의 E=mc2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E=mc2의 폭발작용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면, 결국 뜨거운 열은 지표면을 뚫고 올라와 화산이 된다. 실로 우리는 E=mc2로 이루어진 행성 위에 살고 있는 셈이다.


나아가 E=mc2은 이제 중력과 만나 별의 몰락까지 설명해낸다. 별은 수소를 태우는 에너지를 통해 유지된다. 수소나 헬륨, 탄소 등의 모든 연료를 다 소진하고 나면, 더 이상 에너지를 만들지 못하고 별은 내부로 무너져 버린다. 그러면 별 내부로 높은 압력(에너지)이 전해지는데, 이 에너지는 E=mc2에 의해 질량으로 작용한다. 곧 중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증가한 중력은 더 강한 압력을 만들어내고 그로인해 질량은 더 증가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별의 내부에는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강력한 중력이 생겨난다. 빛조차 나올 수 없어서 검게 보이는 부분, 이것이 블랙홀이다. 별의 몰락은  작용을 거치면서 블랙홀로 바뀌는 것이다.


이처럼 E=mc2은 원자에서부터 우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들을 이해하는 결정적 요소로 활용되었다. E=mc2 공식이 없었다면, 이 현상들은 미스테리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자연이 정말  공식대로 움직일지, 혹은 다른 과학으로 E=mc2가 바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E=mc2을 통해 이해했을 때,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식은 매우 다양하게, 심지어 공식의 창안자도 예상치 못한 분야에까지 사용된다. 공식을 어떻게 사용할 것이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E=mc2의 활약상, 앞으로 E=mc2가 또 어떤 놀라운 방식으로 쓰일지 기대된다.



# 정철현


좋은 등식이란 단순히 계산을 하기 위한 방정식이 아니다. 거의 같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두 개체가 실제로 같은지 확인시켜주는 저울도 아니다. 과학자들이 오히려 ‘=’를 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한 망원경, 즉 미지의 영역으로 안내하는 도구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공식은 어쩌다가 말 대신 부호로 기록된 것일 뿐이다. 이것이 아인슈타인이 1905년의 공식에 ‘=’를 이용하게 된 배경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과학자들은 그들이 에너지의 모든 원천, 이를테면 화학에너지, 열 에너지, 자기 에너지, 그 밖의 모든 에너지의 원천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른 종류의 에너지가 숨어 있는 또 다른 장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공식은 그곳을 찾기 위한 일종의 망원경이었다. 하지만 에너지가 숨겨진 곳은 우주 저 멀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여기, 아인슈타인을 가르친 강사들 앞에도 늘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곳에서 광대한 에너지의 원천을 찾아냈다. 그것은 눈앞에 있는 물질들, 그 속에 숨어 있었다.(48쪽)


데이비드 보더니스의『E=mc2』은 매우 특이한 책이다. 인물이 아닌, 공식에 대한 전기이고, 게다가 책 2부에서는  의 조상님(^^;;)까지 다룬다. 'E', '=', 'm', 'c', '2'가  의 조상이란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 하나가 눈에 띈다. 바로 ‘=’이다. 에너지나 질량을 설명하는 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을 설명하다니…. ‘=’에 무슨 의미가 있다 말인가? ‘2=2’이듯이 그냥 같다는 소리 아닌가?
 

잠깐 간단한 수학공식을 살펴보자. 가로 길이와 세로 길이를 곱하면 넓이를 구할 수 있다.  한 변의 길이가 2인 정사각형의 넓이는 4다. 2×2=4이니까. 참 쉽다^^ 하지만 고대인들은 이런 식의 계산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길이는 아무리 두 번 곱한다 하더라도 길이일 뿐이지, 넓이가 아니었다. 길이와 넓이는 완전히 다른 속성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의 말이 맞다. 길이와 넓이는 분명 다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 둘 사이에 “=”을 쓰고 있다. ‘=’에는 분명 ‘같음’과는 다른 어떤 의미가 더 있었다.


숨겨진(?) 의미를 찾아 출발↗


다시  E=mc2으로 가보자. 여기서 ‘=’은 남다른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E와 m을 좌우에 끼고 있는 ‘=’의 자태는 놀람 그 자체였다. 질량은 구체적인 물질들에나 있는 것이고, 에너지는 보이지도 않고 형태도 없는 기(氣)와 같은 비물질인데, 이것들이 같단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다. 



여러분은 중성자가 핵을 쪼개는 연쇄과정을 보고 계십니다. *-_-*

1938년, 오토 한과 리제 마이트너는 중성자가 들어간 우라늄 원자핵이 반으로 쪼개는 현상과 마주한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매우 강한 힘으로 결합된 원자핵이 고작 중성자 하나 들어갔다고 부수어질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런 일이 외부로부터 엄청난 에너지가 투입되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럴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그들은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그러던 중, 리제 마이트너는  E=mc2을 통해 그 에너지의 근원을 보게 된다. 만약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된다면, 우라늄 핵이 갈라지면서 발생한 매우 미세한 질량 손실은 단단한 핵을 반으로 쪼갤 힘이 될 수 있었다. 실제로 계산을 해보니, 그 값이 완전히 일치했다. 이는 완전 놀라운 일이었다. 아주 작고 미세한 원자핵 속에 그런 엄청난 힘이 있다니!


그전까지 물질은 그저 수동적이었고, 이것을 붕괴시키려면 외부에서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바로 물질 내부에 그 자신을 분열시키고, 운동시킬 수 있는 엄청난 에너지원이 있었다. 수동적 물질에서, 자신의 질량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에너지를 산출하는 물질. 이 능동적 물질을 ‘방사능’이다. ‘=’이 우리를 완전히 다른 물질의 세계로 인도하는 순간이었다.
 

이제 태양도 좀 달리 보인다. 그전까지는 ‘외부의 동력없이, 태양이 어찌해서 스스로 타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면, 이제는 그렇지 않다. 태양은 수소의 압축에서 생겨나는 질량 손실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스스로 빛나고 있다!
 

그동안 ‘=’의 힘을 너무 과소평가했던 건 아닐까?^^;; 나는 ‘=’이 단지 같음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E=mc2은 따로 분리되어 존재했던 물질들의 세계와 에너지의 세계가 결국은 같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했다. 즉 물질과 에너지를 더 높은 차원에서 통합했다는 데에 이 공식의 의의가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보더니스는 ‘=’에게 통합의 측면을 넘어서, 매우 새로운 차원의 힘을 부여하고 있었다.
 

보더니스는 ‘=’을 망원경, 미지의 영역으로 안내하는 도구라 비유한다. 그것은 인간 시력의 한계를 뛰어넘어, 저 멀리 새로운 곳을 볼 수 있는 힘, 새로운 감각을 준다. 갈릴레오의 망원경은 중세적 세계를 넘어서, 새로운 세계로 17세기인들을 인도하지 않았던가. 몇 백년 후의 우리 역시 ‘=’이라는 망원경을 통해서, 스스로 붕괴되는 우라늄을, 저 멀리 존재하는 태양의 모습을 속속들이 볼 수 있다. 이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질적으로 다른 세계가 ‘=’을 통해 내 눈 앞에 생생히 펼쳐진다. 바로 ‘=’의 힘은 지금 우리가 서있는 곳과는 다른 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감각을 주는 데 있었다.
 

바로 이것이 과학의 위대한 점이 아닐까 싶다. 수학의 언어로 이루어진 과학이 우리에게 주는 새로운 감각들. 우리는 과학이 인도한 새로운 감각들을 통해 제 3의, 제 4의 감각, 아니 천 개의 감각을 갖는다. 이를 통해 이 세상을 아주 풍부하게 바라보는 일, 이것이 과학을 공부하는 기쁨 아닐까?



# 신근영 


맥스웰은 빛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앞뒤로 진동하는 빛의 움직임이었다. 빛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할 때 약간의 전기가 생성되고, 그 전기가 앞으로 움직이는 동안 자기의 힘을 약간 일으킬 수 있으며, 자기가 움직일 때 그것은 또 다른 전기를 일으키는, 이런 과정들이 새끼줄 꼬이듯 진행된다고 보았다. 전기와 자기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짧고 빠르게 뛰어오르며 계속해서 서로의 등을 짚고 넘어간다. 맥스웰은 이것을 ‘얼싸안기(mutual embrace)’라고 표현했다. 뢰버가 보았던 태양계를 가로지며 돌진하는 빛이나, 맥스웰이 케임브리지 대학 교정에서 보았던 석탑에 비쳐졌다가 퉁겨져 나오는 빛이나, 다 이런 재빠른 뛰어넘기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75쪽)


‘빛은 무엇인가?’ 내 머릿속은 이 질문에 답해보려 바쁘게 움직인다. 어둠을 가르는 한줄기 빛에서부터, 그 빛을 이루며 출렁이는 파동들로, 그리고 다시 하나의 작은 빛 알갱이. 그러다가 양자역학적으로 빛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머릿속에 떠오른 빛의 모습을 제각각이지만, 이 이미지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잡것이 섞이지 않은 순정한 모습, 단일하게 이루어져 오롯이 그 자체로 말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그 순연한 자태는 언제나 정지된 그림으로 떠오른다. 한마디로 말해, 어떤 실체를 찾아내려 한다.


실체를 찾기에 바쁜 마음. 이것이 ‘OO은 무엇인가’와 같은, 어떤 것의 정체(正體)를 묻는 질문 앞에서 쉽게 빠지게 되는 함정이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사물들은 그런 실체와는 전혀 상관없는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빛은 그런 것들 중 하나다.


빛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어떤 답을 만들어내는가?


빛은 전기장과 자기장의 상호작용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전기가 일어나고, 여기서 다시 자기장이 일어나고, 이로부터 또 전기가 일어나고, 다시 자기장이……. 『E=mc2』의 보더니스는 이런 빛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한다. “전기적인 부분은 가물거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자기 부분을 누른다. 그 자기 부분은 에너지가 올라감에 따라 전기를 생성해서 이 순환이 계속 진행되도록 한다.” 전기장과 자기장은 서로가 서로의 스위치인 셈이다.


빛은 단일한 하나의 실체가 아니다. 전기장과 자기장이 “새끼줄 꼬이듯” 서로를 얼싸 안은 모습이 빛이다. 더욱이 이 둘은 서로를 밀어주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멈춘 모습의 빛을 만날 수 없다. 정지상태의 빛은, 말 그대로 우리 머릿속에만 존재한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함정에 빠져버리게 된다. 이런 질문을 하고 싶어지는 거다. ‘전기장과 자기장 중 어떤 것이 먼저이지’, 라고. 요컨대, 빛이 발생하는 근원적 원인 하나를 짚어내고 싶어진다. 그러나 전기장과 자기장의 ‘관계’, 그 ‘순환의 고리’에서 비롯되는 운동을 빼놓고 빛은 없다. 굳이 빛의 원인을 꼭 하나만 말해야 한다면, 그건 ‘순환의 고리’를 이루는 ‘관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원인은 언제나 복수적이다. 그리고 복수적 원인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있다. 이것이 빛을 비롯해,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의 조건이다. 사실 이런 모습은 뭔가 불명확해 보여 찝찝하다. 그러나 명확함을 내려놓으면, 요컨대 실체를 찾고자 하는 마음을 접어두면, 이보다 더 다이내믹한 세계는 없다. 상상해보자. 모든 것들이 서로가 서로를 껴안고 출렁이며 춤추고 있는 모습을. 물론 때로 그 얼싸안은 모습이, 춤이 아니라 싸움인 경우도 많다. 그러나 춤이든, 싸움이든, 세계의 어떤 것도 독립적으로, 그것도 우두커니 서서 존재하는 것들은 없다.


잭슨 폴록, 「Number 4 (Gray and Red)」, 1948


보더니스의 『E=mc2』이 신나게 읽히는 이유도 이와 관련된다. 보더니스는 ‘E=mc2’이라는 공식의 역사를 쓰겠다고 한다. 허나, 정작 그 공식을 만들어낸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는 얼마 없다. 그 공식이 어떻게 유도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대신 이 공식을 둘러싼 수많은 인물들이 출현한다.


제자를 질투하고 모함하는 스승, 사이좋은 사제지간, 찐한 우정으로 맺어진 동료와 티격태격하는 라이벌들, 혁명과 전쟁 속의 삶과 죽음, 거기에 과학이 맺어준 사랑이야기, 묘한 애증관계 속에 연인도 친구도 아닌 남녀까지. 18세기에서 20세기에 걸친 이런 이야기들은 보통 과학계의 뒷이야기들처럼 다뤄진다. 그러나 이런 수많은 선분들의 교차가 없다면, E=mc2은 죽은 시체나 진배없다.


역사상 가장 우아하고 단순하다는 E=mc2. 그 공식 아래에 교차하고 있는 수많은 선분들. 그것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지점에 E=mc2이 자리한다. 요컨대, E=mc2은 이런 얽힘들이 이뤄내는 연쇄반응 속에서 출현한다.


그렇기에 E=mc2 그 자체에 대한 정확한 실체를 기대하면서 이 책을 펼친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그 깔끔함 대신 왁자지껄한 향연을 만나게 될 것이다. 사람들간의 삶과 사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짧고 빠르게 뛰어오르며 계속해서 서로의 등을 짚고 넘어”가는, 그 “얼싸안기”의 향연. 세기를 가로지는 그 향연을 즐기는 팁은 하나다. 잠시 실체를 찾는 마음을 내려놓을 것! 그럴 때 비로소 향연의 호스트로서 E=mc2의 모습도 눈에 들어올테니 말이다. 



E=mc2 - 10점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민희 옮김, 한창우 감수/생각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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