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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이 예술

[한문이 예술] 돌아오는 시간과 반복되는 공간 속에서

by 북드라망 2025. 7. 10.

돌아오는 시간과 반복되는 공간 속에서 

동은(문탁 네트워크)

 


1. 봄은 왜 다시 돌아올까?라는 당연한 질문
코 끝이 빨개질 정도로 추운 어느 날, 목련나무 가지 끝에 도톰하게 올라온 꽃눈을 보고 곧 봄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계절을 지날 때면 어떤 방식으로든 다음 계절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봄에는 습한 쥐똥나무 꽃내가, 여름에는 더위를 식히는 바람이, 가을에는 발에 채이는 낙엽이... 그리고 다시 땅에서 솟아나는 새싹으로 봄을 알아챈다. 바싹 마른 가지 끝의 꽃눈을 보고 감탄에 가까운 질문이 떠올랐다. ‘어떻게 겨울이 지나 봄이 올 수 있는 걸까?’ 그동안 겨울에는 날이 따뜻해지기를, 여름에는 시원해지기를 기다려보기만 했지, 이 당연한 사실에 대해 의문을 가질 일이 없었다. 

이런 질문을 가지게 된 데에는 한자를 공부한 영향이 컸다. 봄 춘春이 지금까지 변화된 자형을 보면 해日와 풀을 가리키는 풀 초艸와 새싹을 본뜬 둔屯자가 합쳐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해가 풀을 비추지 않고 땅 밑에 있는 이유는 고대 사람들이 해를 사물 그 자체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기운의 상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한자를 통해 그들이 땅으로부터 강직하고, 활발하고, 뻗어나가는 기운과 새싹이 봄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자가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봄은 ‘성장의 시작’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봄이 시작이라면 가을은 ‘성장의 완결’이다. 가을 절기인 처서處暑는 여름의 절정을 달리던 양의 기운이 서서히 기울어 어딘가에 기댈수 밖에 없을 정도로 시들어버리는 시기를 의미한다.* 한자가 보여주는 사계절은 해의 기운을 받아 성장하던 생명들이 서서히 성장을 멈추고, 머물며 완결을 맞이하는 과정이다.

현대과학은 계절이 변하는 원리를 지구의 공전위치에 따라 변하는 태양의 고도로 설명한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두고 같은 궤적을 그리며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태양이 지구 주변을 돈다고 생각했던 고대 사람들은 지구의 공전 없이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계절을 이해하고 해석했다. 그들은 사계절을 성장의 시작부터 완결로 바라보았지만 완결이 곧 완성이 아니며, 완성이 아니었기 때문에 새로운 시작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나의 당연해 보이는 질문은 그들의 사유방식에 대한 경이로움에서 시작됐다. 이 경이로움을 아이들에게도 전하고 싶었으나, 수업에서는 한자에 담겨있는 고대 사람들의 직관적이면서도 은유적인 시선을 전하는 정도에 그칠 뿐이었다.  

 

 

* 처서는 가을의 두 번째 절기다. 처處는 기대고 있는 모습을 본뜬 한자로, 가을의 두 번째 절기인 처서는 더위暑가 멈춰서게 된다處는 의미를 담고 있다.



2. 역법 - 시간의 흐름을 잡아 널리 알리다
해(日)와 달(月)은 천체인 동시에 ‘하루’와 ‘한 달’을 의미하기도 한다. 천체를 이용해 시간의 단위를 만들어 내는 건 세계적으로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렇다면 일 년의 단위는 어떨까? 해 년年은 수확한 볏단을 이고 가는 사람의 형상에서 만들어진 문자로, 한해는 농산물을 기르고 수확하는 기간을 의미했다. 농업과 시간의 단위가 곧바로 연결 될 정도로 농업은 그들에게 중요한 과업이었다. 곡우穀雨나 망종芒種같이 농사와 긴밀하게 연관된 절기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대 사람들은 절기와 역법을 함께 사용했는데 14~15일 간격으로 바뀌는 절기와 다르게 역법은 1년을 단위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라마다 한해의 시작(정월)을 다르게 정해 다른 달력을 만들어 냈다. 상고시대 하나라는 1월을 정월로 두었고 은나라는 12월을 정월로 두었으며 주나라는 11월을 정월로 두었다.* 이어진 춘추전국시대에도 여러 달력이 만들어 졌고 이후 한나라가 세워질 시기에는 새롭게 만들어진 역법까지 모두 6개의 달력이 사용되고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나라마다 시간이 다를 지언정 지구 반대편 나라도 하루 이상 차이가 나지 않는다. 반면, 고대에는 비슷한 온대 지역에 살아서 같은 계절이더라도 서로 다른 날짜로 살아간 셈이다.

각자 다르게 보내고 있던 시간의 흐름을 하나로 묶어낸 사람은 한나라의 무제다. 무제는 ‘태초력太初曆’이라는 최신 달력을 만들어 한나라에 속하는 제후국들이 모두 사용하도록 했다. 그 덕에 서로 다른 날짜로 살아가던 사람들은 모두 같은 날짜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이후, 한나라에서는 국가 차원의 다양한 의례와 행사들이 모든 지역에서 태초력에 따라 한날 한시에 이루어 졌다. 날짜를 통일함으로써, 국가의 여러 업무를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덕분에 무제의 태초력은 빠르고 확실하게 한나라의 중앙집권을 이룬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시간을 다루는 일의 중요성을 알았던 무제는 자신이 즉위한 해를 기준으로 연호年號를 만들어 황제의 정체성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역법을 만드는 건 상고시대부터 통치자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과제였다. 한나라의 사례처럼 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권력 구조를 만드는 문제도 있었지만, 그런 실무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생활방식에 주도권을 가지고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둔다는 중대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역법을 만드는 건 하늘의 뜻을 이어받았다고 여겨지는 천자天子, 즉 황제 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  <사기(史記)> 26권 역서(曆書)제4장에는 “하(夏)에서는 정월(正月: 1월)을 정월로, 은(殷)에서는 12월을 정월로, 주(周)에서는 11월을 정월로 삼았다[夏正以正月 殷正以十二月 周正以十一月].”고 기록되어 있다. 


** <한서ㆍ예문지(漢書ㆍ藝文志)>에서는 고육력(古六曆)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 황제력(皇帝曆), 2) 전욱력(顓頊曆), 3) 하력(夏曆), 4) 은력(殷曆), 5) 주력(周曆), 6) 노력(魯曆) 같이 이전에 만들어진 다양한 역법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이 역법은 모두 기준(역원曆元)이 모두 달랐다. 



3. 주기적인 시간, 순환하는 공간
그들은 어떻게 역법을 만들었을까? 태초력은 1년을 365.25016일로 나누고 한 달(삭망월)을 29.53068일로 나누었다. 이는 오늘날의 날짜 계산법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정교한 수준이다. 그런데 태초력의 내용은 단순히 일 년의 길이를 정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는다. 태초력에는 1년과 삭망월 외에도 다양한 시간의 단위들이 있었다. 한 장章은 19년마다 음력의 삭단(초승달)과 양력의 동지가 일치하는 시기이고, 한 통統은 81개의 장章이며, 한 원元은 3개의 통으로 자그마치 4617년을 의미한다. 이후 시간의 단위는 점점 방대해져서 일식의 주기를 찾아내기도 하고, 다섯개의 별*이 하나로 나열되는 주기를 맞추려는 시도까지 하게 된다. 그들의 시간 개념은 점점 커졌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아주 단순했다. 한 시기를 기준으로 다시 그 시기가 돌아오는 시간을 찾아내면, 그것을 주기週期로 정의하고 시간의 단위를 만들어 냈다. 하루, 한 달, 일 년뿐만 아니라 장, 통, 원, 절기와 물후도 모두 주기로부터 만들어진 시간의 단위다. 그들에게 이런 반복적인 시간이 중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주기週期는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週이 일정하게 모습을 바꾸는 달 같은 규칙성期을 의미한다. 나는 그들이 역법을 만들면서 여러 주기를 찾아니는 일에 몰두했던 이유가 마치 계절처럼 반복되는 세상의 규칙성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시간 개념은 사계절을 반복하는 세계와 함께 만들어졌기 때문에 변화와 동떨어져 이해될 수 없었다. 그 결과, 중국인들은 시간의 주기와 공간의 순환을 함께 사유하게 되었다.

중국인은 시간과 공간을 획일적인 지대, 즉 추상적인 개념들을 설정할 수 있는 균일한 지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중국사유>, 124)


중국인들의 사상을 연구한 마르셀 그라네는 <중국사유>에서 그들이 시간과 공간을 독립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다양한 사물과 표상을 시간과 공간에 함께 설정했다고 설명한다. 봄은 동쪽을, 가을은 서쪽을, 여름은 남쪽을, 겨울은 북쪽으로 설정해 여기에 각각 속상과 표상을 부여해 체계적인 상징으로 가득 찬 세계를 구성했다. 이를 통해 시간에 관련된 표상으로 공간에 따른 행위를 할 수도 있었으며, 공간에 관련된 표상으로 시간의 행위도 가능했다. 예를 들면 군주는 봄이 되면 청색으로 된 옷을 입고 동쪽에서 지냈다고 한다. 또, 한 겨울에 비파를 연주하다가도 여름을 상기시키고 싶으면 붉은 빛과 남쪽에 해당되는 음을 연주하면 됐다. 또한 가을에 전쟁과 범죄에 대한 징벌이 행해지기도 했는데 이는 가을을 의미하는 서쪽에는 곱사등이가 많았으며 곱사등이의 두꺼운 피부가 두꺼운 갑옷, 즉 전쟁과 징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기와 방향, 색과 음정, 여러 의례와 특징들이 시간과 공간 그 자체로 이해되었다.

* 이 다섯개의 별은 세성(歲星, 목성), 형혹성(熒惑星, 화성), 태백성(太白星, 금성), 신성(辰星, 수성), 진성(鎭星, 토성)이다. 

 

4. 경륜에 대하여
통치자에게는 역법을 만드는 일 외에도 경륜經綸의 덕목이 요구되었다. 경經은 비단실을 엮어 베를 짜는 틀을 의미하고 륜綸은 감겨있는 실을 의미한다. 글자만 두고 본다면 실을 베틀에 걸고 비단을 짜는 일인 것 같지만 경륜은 ‘나라를 다스리는 능력’ 자체를 의미한다. 사용된 한자 때문에 마치 직조하듯이 세상을 잘 조직하고 다스리는 능력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나는 경륜이 시공간의 순환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륜綸의 뜻인 ‘벼리’는 펼쳐진 그물 바깥을 걸어 오므릴 수 있는 굵은 실이다. 이 한자에 사용된 륜侖은 죽간을 말아놓은 둥근 모양에서 만들어 졌다. 이 둥근 모양은 마치 순환循環하는 형상을 떠올리게 한다. 환環 또한 ‘둥근 옥’에서 만들어진 한자로, 순환은 둥그렇게 돌고 도는 현상을 의미한다. 결국 통치자에게 요구되는 ‘나라를 다스리는 능력’이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시간과 공간을 잘 다루는 일이다. 마르셀 그라네는 고대 중국인들이 그들의 시공간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주기적인 복원이 필요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 통치자는 5년을 주기로 시기마다 정해진 방향에 체류하면서 자신이 부여한 시공간의 특성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야 했다.*

경륜은 그의 계획에 따라 세계를 움직이고 시행하는 일이라기 보다는 시공간의 존재들이 주기적으로 순환될 수 있도록 조절하는 능력이었다. 그 노력으로 세계는 주기적으로 반복됐지만 질적으로 같은 세상이 반복되지는 않았다. 물후에 기록되어 있는 새싹과 낙엽, 남풍과 서풍, 집을 짓는 까치와 열 맞춰 산을 넘는 기러기들은 매년 규칙적으로 관찰되는 자연현상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세계가 잘 유지되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들이었다. 내가 목련 꽃눈을 보고 감탄했던 건, 꽃눈이 그저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는 현상이 아니라 세계가 무사히 규칙성을 지키고 있다는 증거들 중 하나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첫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봄이 다시 돌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대 중국에서 그 이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만 봄이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들도 목련의 눈꽃을 보면서 나처럼 경이롭다며 감탄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 중국사유 107, 책에서는 ‘활력’이라고 표현했지만 이는 황제가 나라 곳곳에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시키는 일에 더 가까웠다. 


** 흥미롭게도 목련은 약 1억 년 전 백악기부터 있던 식물로, 가장 초기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는 ‘살아 있는 화석’과 같은 나무이기도 하다. 내가 본 목련 나무는 그들이 봤던 목련나무와 아주 유사했을 것이다.  

 


5. 질적으로 다른 다음 한 바퀴를 향해서 
주기에 따라 공간이 순환된다는 그들의 인식은 오랜 기간 그들의 사유와 상징 체계를 쌓아가는 기반이 되었다. 시간을 보내는 것도, 사계절이 돌아오는 것도 고대부터 그대로지만 우리는 고대 사람들의 시간과 공간이 함께 한다는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힘들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일종의 자원이 되어서 누군가가 정해놓은 시공간의 질서를 따라야 할 의무도, 필요도 없어졌다. 과거 통치자에게 요구되었던 경륜은 세계를 조절하는 능력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 안에서 가능한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되었다. 최근 있었던 ‘갓생’ 열풍은 이런 인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다.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에 맞추어 살아가기 보다 새벽에 일어나 개인 시간을 보내거나 부업을 하는 등 촘촘하게 짜여진 계획에 맞춰 자신의 루틴을 만들어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인생은 자기만의 쳇바퀴를 굴려가는 일이 전부”라는 말이 떠오른다. 쳇바퀴는 일반적으로 사회의 부품처럼 여겨지는 현대인들의 일상을 비관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자기만의 쳇바퀴’다. 오늘날 시공간을 일체적으로 이해하는 건 어렵다. 그런 만큼, 나의 시간과 내가 살아가는 공간을 가까운 곳에서부터 이해하는 수 밖에는 없다. 자기만의 쳇바퀴를 만들어가는 건 곧 나의 영역을 알아가는 일이다. 나의 주변을 알아가고자 하는 태도는 주변을 앎의 대상으로 삼았던 고대인들의 태도이기도 하다. 나는 그렇게 만들어낸 자기만의 쳇바퀴를 굴리는 삶은 같은 일상을 보내더라도 절대 질적으로 같은 시간이 반복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능한 만큼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려는 사람들은 그 쳇바퀴를 목표를 향해 굴려야 한다. 이런 일상은 현재를 쉽게 수단으로 만들어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한자를 중심으로 했던 수업에서는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대신 아이들에게 한 가지 질문으로 절기 수업을 마무리했다. 기운의 변화로 세계를 이해하고 절기라는 규칙성을 발견한 고대 사람들처럼, 아이들에게도 그런 것이 있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대답은 천차만별이었다. 학원을 가는 요일로 일주일을 보낸다는 아이도 있었고, 일 년에 한 번씩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을 기다리는 아이도 있었다. 학기마다 한 번, 친구들과 파자마 파티를 하는 날,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가는 명절을 이야기한 아이도 있었다. 비록 계절 수업 끝에 계절의 변화에 대해 얘기한 아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이미 아이들은 가까운 곳으로부터 일상의 주기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언젠가 아이들이 만들어갈 작은 쳇바퀴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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