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인간들의 안전한 파티
나의 셰어하우스에는 풀타임 직장인이 두 명 있다. 그들은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한다. 그들은 거의 홈 오피스를 해서 집에서 자주 보이지만 늘 지쳐있고, 하루만 사무실에 다녀오는 날에는 진을 다 빼고 온다. ‘일하기’는 중요하지만 앞으로 남은 모든 날을 이렇게 하루하루 진을 빼며 사는 것인가 가늠해 보기 시작하면 주 4일제 실현이 간절해진다. 이들이 일만큼 열심히 하는 것이 있다면 저녁에 부엌에 둘러앉아 담배를 물고 진토닉을 마시기 시작하다가, 주방에 있는 큰 스피커에 노래를 연결해 테크노 음악을 틀기 시작한 후 자정쯤 파티에 가거나, 지하실에 내려가 디제잉을 하며 파티를 벌이는 것이 있다. 매주 서너 병의 진을 사와 자신들이 다 마신 사실을 잊고 그 술들이 다 어디 갔냐고 묻는 사람들. 이들의 특징으로는 파티와 술과 담배 따위에 매우 후하다는 점이 있다. 자신이 마셔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이들, 함께 마실 사람이 항상 필요한 이들. 제안하면 거절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들과 잦은 파티를 가진다. 우리는 종종 방탕히 노는 시간으로부터 삶의 아름다움을 본다. 그럴 때가 오면 가끔은 해야 할 일을 못 해도, 밥을 못 먹어도 즐겨 마땅했다는 확신이 든다.
독일 클럽에는 무엇이 있는가
나의 첫 클럽은 베를린의 한 테크노 클럽이었다. 기나긴 줄을 기다려 겨우 입장한 그곳의 첫인상은 나를 당황하게 했다. 불이 반짝일 때마다 보이는 사람들의 움직임은 다들 생기 없는 좀비 같았다. 심즈에 나오는 캐릭터들처럼 모두 양옆으로 몸을 뚝딱뚝딱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껴 어떻게 춤을 출 줄 몰라 당황하는 내가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춤을 추고 있으면서 그다지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케이팝의 나라에서 자란 인간으로서 춤을 춘다는 것은 항상 지나친 주목을 받는, 긴장스러운 일이었다. 어떻게 몸을 움직여도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몸의 긴장을 느슨하게 했다.
클럽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입체적일 수 있었다. 사람들 신발 구경하기, 아름다운 사람들 관찰하기, 칭찬을 건네주기, 마음에 드는 디제이 발견하기, 너무 취한 사람들의 안부를 물어주기,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기. 친구가 되기. 클럽에서는 무엇이든지 조금 더 과감해진다.
클럽은 비일상적인 과감함이 무언에 수용되는 공간이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마음껏 무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종종 테크노 클럽에서 예상하지 못할 만큼 PC 한 규정을 발견하면, 그 규정들을 꼼꼼히 읽어보느라 그 앞에 늘 멈춰 한참을 서 있곤 했다.
No space for racism, sexism, homophobia, or any kind of discrimination.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 등의 차별을 위한 자리는 없다.
Being open towards all expressions of sexuality & gender. 모든 표현과 섹슈얼리티&젠더를 향해 열려있자.
No prejudice. More solidarity with others and special needs. 편견 없이, 다른 이들과 함께 더 연대하자.
Let’s take care of each other. 서로를 돌보자.
입장할 때는 핸드폰 앞뒤 카메라에 꼭 스티커를 붙인다. 그건 당신이 이 안에서 일어난 사실들을 밖으로, 대놓고, 함부로 유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규칙 한구석에는 이런 말도 있다.
The awareness Team is here for you, if you find yourself in an uncomfortable situation. ‘성폭력을 당했으면 찾아오세요.’가 아니라, ‘네가 편안하지 않다면 우리 팀이 너를 위해 여기 있다’는 문장에서 이 문장을 쓰기 이전에 피해당사자들의 부담감을 앞서 헤아려 봤음이 느껴진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바랄 수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이제 막 이 규정의 존재에 대해 감탄하는데, 나의 친구이자 깡마른 독일인 게이 다니엘은 규정이 있어도 문제는 많다며 까탈스럽게 클럽들을 욕한다. 이 남자가 이미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것, 잔뜩 까탈스러울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다. 그의 불만과 함께 이 사회에서 그가, 그리고 내가 얼마나 안전할 수 있는지 가늠해 본다.
오해받지 않는 몸
최근에는 특히나 잦은 파티에 갔다 왔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것은 단연 섹스 포지티브 Sex positive 테크노 파티였다. 집사람들과 단체로 갔는데 한 번도 섹스를 경험해 보지 못한 인도인 플랫 메이트가 입구에서부터 경악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옷이라고 하기엔 천이 너무 부족한 것들을 걸치고 있었다. 거의 모든 유사 남성의 엉덩이나 성기를 볼 수 있었고, 거의 모든 유사 여성의 가슴을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몸에 대한 오해와 왜곡의 경험이 잦았다. 중학생 때 빨간 립스틱을 발랐는데, 창녀가 될 거냐고 복도가 떠나가게 소리를 지르던 학생주임 선생님처럼. 어떤 이들은 빨간 입술에서 창녀의 삶까지 떠올린다.
그래서인가 클럽에도 잘 가지 않았다. 클럽에 가는 여자에게 씌워지는 걸레 이미지, 낯선 이들에게 외적 조건으로 평가당하는 몇 초, 아름답지 않은 남성들이 저지르는 무례함. 뉴스에서 지겹게 나오는 여성 대상 클럽 성폭행. 몸을 해석하는 모든 시선이 너무나 모욕적이었다.
이곳에서는 간단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몸은 삶을 경험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 홀딱 벗고 있어도 아무도 서로를 함부로 만지거나 헛소문을 만들지 않는다. 그러니 어느 순간부터 몸은 야한 것이 아니게 된다. 나는 내 춤을 추고, 그들은 그들의 즐거움을 누린다. 사람들은 본 것 이상을 넘겨짚지 않았다.
클럽에서는 사람들의 외관이 기이할수록 아름다워 보였다. 수북한 가슴털 위에 웨딩드레스를 입고 디제잉 하는 게이. 남자친구와 같이 왔지만 귀여운 여자를 볼 때마다 번쩍 들고 딥키스를 갈기는 여자. 한껏 엉덩이를 까고 강하게 욕망하는 게이들. 오늘 처음 만났지만 커플처럼 서로를 단속하는 레즈들.
맨몸에 하네스만 차고 성기를 양옆으로 세차게 흔들며 과격한 춤을 추는 늙은 게이 아저씨. 그의 무아지경이 너무 인상 깊어서 이름을 물어봤더니 이름만 말해주고 이어지는 질문은 싹 다 무시당했다. 그의 입장에서 나는 무아지경 독무에도, 게이 성생활에도 도움이 별로 안 되니 무시할 만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 사실마저 즐거웠다.
더럽고, 야하고, 기이해서 금지되었던 이미지들이 눈앞에서 춤췄다. 이 사람들이 자유로운 만큼 나도 자유롭고, 내가 자유로운 만큼 이들이 자유롭다는 것을. 우리의 자유가 이렇게 연결된다는 것이 벅찼다.
클럽에 입장하기 전, 문지기들은 관례처럼 질문한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아는지, 어떤 디제이를 아는지, 어떤 옷을 준비했는지. 이것은 배제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보호하기 위한 질문이다. 잔뜩 미쳐 보이는 이들도 안전한 곳에서라야 미칠 수 있고, 미친 사람들에게 안전할 수 있는 장소는 모두가 미친 곳일 테니 말이다.
언젠가 이런 것들에 대해 나의 플랫 메이트 독일인 니키와 이야기하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테크노 Techno라는 장르에 대해 감사해.
테크노에는 드라마틱한 기승전결이 없다. 극단적인 반복 속에 몸과 정신이 구속된다. (테크노 파티에서 정신을 차리면 아침 해가 밝아있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니키에 의하면 일렉트로닉 음악이 알려지기 전, 테크노는 레이브 Rave 문화와 함께 퀴어한 장르였다고 한다. 레이브라고 하면 숲속 혹은 공사장 같은 외진 곳에서 벌어지는 불허가의, 날 것의 파티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60년대 히피문화와 함께 자유주의, 현실 도피, 쾌락주의의 장소가 되곤 했다. 그곳이 퀴어들에게는 사회적 감시의 눈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을 탐닉하는 안전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차별받는 사람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에서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인간들이 함께 자유로울 수 있는 법이다. 자유롭기 위해 반쯤 미쳐버린 사람들. 기이하고, 입체적이고, 야생적이지만 무례하지 않은 변태들. 그 테크노 속에서 나는 기꺼이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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