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불교』에서 만나는 사상가들
오늘도 어제에 이어 『유쾌한 불교』의 내용을 조금 보여 드리고 싶은데요, 그 가운데에서도 다양하게 언급되는 서양철학(자) 이론과의 비교 및 대조 등이 드러난 부분을 보여 드리고자 합니다. 『유쾌한 불교』의 두 대담자가 화제에 올리는 철학자, 종교가, 종교학자, 사회학자, 생물학자, 정치학자 등으로는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에피쿠로스, 루크레티우스, 프란체스코, 데카르트, 로크, 버클리, 칸트, 베버, 윅스퀼, 카시러, 비트겐슈타인, 엘리아데, 벌린, 들뢰즈, 데리다, 파핏…. 이 인물들과 불교의 역사 및 이론, 그리고 종파 등을 그야말로 종횡무진 엮어 가는 점이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입니다.
특히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은 칸트인데요, 칸트의 ‘순수이성의 이율배반’ 논의가 나가르주나의 팔불 논의와 상당히 비슷하다고 합니다. 이 책의 5장 「대승교에서 밀교까지」에서 이에 대한 설명이 꽤 자세히 펼쳐집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지금, 바로 『유쾌한 불교』를 찾아주세요.^^
그럼 책 속의 몇 구절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루크레티우스에 의하면 창조주도 없을뿐더러, 신의 섭리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것을 좋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단순하게 삶을 긍정하는 사상이나 태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 이 루크레티우스식의 사고가 지금 하시즈메 선생님이 해석한 불교의 시각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에피쿠로스-루크레티우스에 의하면 세계는 원자의 인과관계로 되어 있을 뿐입니다.
다만 출발점이 거꾸로이긴 합니다. 불교는 삶의 ‘괴로움’이라는 것을 시작으로 합니다.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는 삶의 ‘쾌락’에서부터 시작하죠. 쾌락주의자를 에피쿠로스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이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참고로 십난十難으로 꼽히고 있는 명제 중 몇 가지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초월론적 변증론에 나와 있는 명제와 매우 흡사하다고나 할까, 거의 같습니다. 칸트도 이것들에 대해서 안티노미(이율배반)라고 하고 있죠. 안티노미(antinomy)란 바로 대답할 수 없는 난제, 답이 없는 난제라는 것으로, 이 지점에서 석존과 칸트는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는 겁니다. 다만 칸트는 석존처럼 ‘무기’로 일관하는 대신, 답변이 불가능하다는 사실 자체를 증명하고자 했지만요.
어쨌든 석존이라고 하는 사람은 뭔가 메타피지컬(형이상학적)한 체계의 구축을 목표로 하는 타입은 아니지 않았을까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너는 진실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라는 식으로 직접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답으로 상대방을 자기모순으로 이끌어서 그 사람이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죠. 결국 대화 상대는 ‘나는 진리를 모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고,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그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니라 거기에 도달하는 것을 도왔을 뿐이라며 이 문답의 테크닉을 자기 어머니의 일에 빗대어 ‘산파술’이라고 부릅니다. 이쪽에서는 아무것도 적극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상대방이 도달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분명하게 언어화할 수 있는 진리의 공허성입니다.
이 방식을 석존과 비교해 보면 어떤가요? 소크라테스의 문답법과 석존의 설법. 어딘가 유비적인 점도 느껴집니다.
▶제가 나가르주나의 논의에서 꽤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은, 다소 학술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칸트 논의와의 병행성입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초월론적 변증론’이라는 정말 어려울 것 같은 챕터에 순수이성의 이율배반이라는 유명한 논의가 있습니다. 이것이 나가르주나의 팔불 논의와 비슷하죠.
▶[유식론의 입장을 잘 보여 주는] 일수사견一水四見의 비유는 윅스퀼의 환경세계론을 방불케 하죠. 윅스퀼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의 생물학자로, 동물 종마다 다른 환경세계를 가지고 있다고 논했습니다. 이 사람은 하이데거라든가 메를로-퐁티라든가 하는 철학자에게 인기가 있어서 자주 인용되고 있습니다. 혹은 면역계라든가 신경계를 철저한 자기준거적 시스템, 오토포이에시스 시스템이라고 한 마투라나와 바렐라의 이론도 유식론과 잘 맞습니다. 신경계가 오토포이에시스 시스템이라는 것, 생물 개체가 인식하는 대상이라는 것은 그 신경계의 구성물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니까요.
▶ 서양 철학자가 말한 것 중에 유식론에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조지 버클리입니다. 그의 ‘존재란 지각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라는 테제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이 지각을 말나식이나 아뢰야식 수준의 지각으로까지 확장하면 유식론이 됩니다.
이처럼 서양에도 비슷한 설이 있으니 유식론은 결코 기발한 설이 아닙니다. 이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해 두고 싶습니다. 그러나 칸트나 버클리는 불교도가 아니기 때문에 그다지 곤란하지 않지만, 불교의 관점에서는 유식론에 난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나가르주나의 논의는 현대철학과 통합니다. 특별히 1970년 즈음부터 시대의 사조를 석권한 구조주의와 포스트 구조주의의 사상·철학은 나가르주나의 논리와 공진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조주의 이전의, 예를 들어 실존주의에서 구조주의를 거쳐 포스트 구조주의로 향하는 철학·사상의 흐름을 대략 특징지으면 ‘실체에서 차이로’, ‘실체에서 관계로’라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구조주의의 ‘구조’라는 것은 우선 차이의 체계죠. 이를 받아들여 데리다라든지 들뢰즈와 같은 철학자가 실체에 대해 차이의 선행성이라는 것을 더욱 철저하게 추구해 나갔습니다. 데리다와 들뢰즈는 같은 프랑스 철학자지만, 분위기가 아주 다릅니다. 하지만 둘 다 ‘차이’, 혹은 그와 유사한 개념을 중심으로 사고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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