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불교』에서 만나는 ‘불교’를 둘러싼 궁금증들
안녕하세요! 북드라망 독자님들!
북드라망의 신간 『유쾌한 불교』는 말씀드렸던 것처럼 일본의 저명한 두 사회학자가 인류의 보편종교 중 하나인 불교에 대해 대담한 책입니다. 이 책에는 불교의 탄생부터 기존의 불교 흐름과 다른 대승불교가 나오게 된 배경과 이유, 대승의 논리구조와 보살의 의미, 무상·고(苦)·무아·공(空)·중관·유식 등 난해한 개념에 대한 이야기까지 불교를 잘 모르지만 알고 싶은 이들에게 궁금한, 불교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들이 종횡무진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주로 질문하는 역할은 오사와 마사치 선생님이 맡고, 그에 대해 불교 편에서 대답하는 역할을 비교종교학을 전공한 하시즈메 다이사부로 선생님이 맡고 있습니다. 책 속에서 다루어지는 질문들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립니다. 혹시 불교를 접한 지 얼마 안 되거나 공부해 가는 중에 마음속에 들었던 의문들과 겹치는 부분들이 있으시다면, 책을 통해 하시즈메 선생님의 생각은 어떤지 확인해 보시면 어떨까요.^^
『유쾌한 불교』 대담에서 나온 질문들 몇 가지
- 불교는 이들과는 다릅니다. 기독교, 이슬람교, 유교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확산되고, 다양화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텍스트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불교의 텍스트는 굉장히 방대합니다. 게다가 종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텍스트가 다르기도 합니다. (......) 다양화와 확산을 억제하는 중심의 인력 같은 것, 불교를 정의할 조건이나 성질이 불분명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일단은 이러한 질문부터 시작해 보고 싶습니다. 도대체 불교란 무엇인가? 불교를 정의하는 조건은 무엇인가?
- 불교는 그 성립 당초부터 힌두교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지를 자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불교는 힌두교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어떤 포지션을 취할 것인지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여쭤보고 싶은 것은 불교와 힌두교의 관계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파악하면 좋을까요?
- (......) 불교의 경우에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지금 말한 것과 같은 경위로 세계 종교가 전 세계로 파급되어 간다고 했을 때, 당연하지만 그 발생지가 된 사회의 구조나 문화에 그 종교가 가장 적합했을 것입니다. 불교도 고대 인도의 사회적 맥락(배경)을 전제로 하고 있으니, 그곳에 가장 적합했겠죠.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불교는 기원이 된 인도에서 거의 사라지고 맙니다. 불교를 계승한 것은 인도 이외의 주변이죠. 잘 알려져 있듯이 불교의 전파 경로에는 북전北傳과 남전南傳이 있고, 각각이 약간 다른 불교를 전했습니다(오른쪽 지도 참조). 즉 불교가 전래된 흔적을 더듬어 보면 두 개의 체인(chain)이 됩니다. 그 체인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기원인 인도인데, 그곳만이 불교의 공백지대가 되어 버렸죠. 두 개의 체인이 연결고리를 잃은 채 떨어져 있는 느낌이에요. 어쩌다가 본래 가장 적합했던 기원지에서만 불교가 사라져 버린 걸까요? 이것은 종교사회학적으로 생각해 볼 때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까요?
- 붓다가 일체를 알고 있을 때의 ‘일체를 알고 있다’라는 상태와 일신교에서 신은 전지하다고 할 때의 ‘알고 있다’라는 상태를 비교할 경우,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이것은 직감적으로도 완전히 다른 느낌입니다. 이 두 가지를 비교한다면 어떻게 다르다고 설명하면 좋을까요?
- 일체의 현상이 무상하다고 보는 감수성과 반대로 거기에서 영원한 것을 보게 되는 감수성이 있는 거죠. 불교는 전자입니다. 어째서 무상함이 강조되는 걸까요?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 다르마는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말 중 하나지만, 그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한자로는 ‘법’에 해당하지만 ‘법률’이란 뜻과는 조금 다릅니다. 불교 사전 같은 것에는 물론 해설이 실려 있지만, 거기에 있는 다수의 용법을 꿰뚫는 것, 그것들이 일률적으로 ‘다르마’라고 불리는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 붓다의 신체와 다르마의 관계라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다르마와의 관계에서 불신은 두 개, 혹은 세 개로 분류되거든요.
이와 같은 이유로 다르마의 의미는 아주 넓어서, 그것이 무엇인지, 그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다르마란 무엇일까요?
- 좀 의문스럽습니다. ‘아미타불 당신은 어떤 권한이 있길래 극락에 왕생시켜 줄 수 있는 거냐’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어쨌든 설령 극락에 왕생했다 하더라도 깨달았다는 것은 아니지요. 극락과 니르바나(열반)는 다르니까요.
- ‘수기’授記라는 게 있죠. 수기는 부처가 수행자에게 당신은 미래에 반드시 성불할 것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것은 아직 합격하지 않았는데 니르바나 대학의 합격은 확실하다는 보증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졸업보다도 훨씬 전 단계에서 합격 내정을 받은 추천입학자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적절한 때가 되면 합격시켜 준다고 내정한 상태와 같죠. 이런 수기를 받은 보살과 받지 않은 보살이 있습니다. 물론 전자가 압도적으로 적습니다.
하지만 저는 수기라는 것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의 논리상 규칙 위반이 아닌가요? ‘당신이 이 정도 노력하면 곧 프로가 되는 것이 확실하다’와 같은 말을 듣는 겁니다. 수기라고 하는 것은 시험을 보기 전부터 합격증을 내주는 것 같은 느낌이지 않나요?
- 이렇게 하고 있으면 확실히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을 하면 절대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 같은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깨달음을 위해 대체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반대로 이런 식으로 질문을 바꿔 보시죠. 깨달음을 얻은 상태가 있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은 무엇을 하는 걸까요? 거기서부터 거꾸로 계산해 가다 보면 깨달음으로의 길이 보일지도 모르니까요. 깨달은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요?
- 최종적으로는 신에 대해 ‘존재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느냐 없느냐조차 문제가 됩니다. 이 볼펜이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신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같을 수 없다는 이야기죠.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신이 존재한다’는 명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논의는 번잡해집니다. 이 부정신학과 나가르주나의 논법 모두 부정만으로 구성되어 있어 형식적으로는 비슷하죠. 양자를 비교하면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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