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내가 아는 '장애'는 무엇인가 -「언터쳐블: 1%의 우정」

얼마 전 「언터쳐블: 1%의 우정」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장애인활동보조와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했지요. 영화는 야밤의 자동차 추격전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곧 경찰에게 포위되었고, 운전대를 잡고 있던 드리스는 무면허!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조수석에 앉아있던 필립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폭풍 연기력을 선보입니다. 드리스는 큰소리칩니다. “거 봐라, 내가 괜히 과속한 게 아니다. 지금 시간이 없다, 빨리 가야 한다. 못 믿겠으면 트렁크에 있는 휠체어를 봐라!”라고. 경찰들은 자신들이 오해했다며 사과를 하고, 병원까지 에스코트 해줍니다. 차 안에서 드리스와 필립은 자신들의 성공(!)을 즐기며, 경찰이 간 걸 확인한 후 도망칩니다. 이 강렬한 첫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지요. 헉, 이게 뭐지???


자동차를 타고 바람을 쐬러 가는 두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제 영화는 둘의 첫 만남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필립은 사고로 인해 목부터 발까지 마비되었습니다. 목 아래는 감각이 없고, 손이나 발을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드리스가 필립의 활보가 되면서 처음 마주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다른 몸’이었습니다.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스타킹을 신어야 하고, 다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생리적인 현상도 인지하지 못하는, 어찌 보면 몸은 필립과 완전히 분리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드리스는 이런 필립을 종종 비장애인처럼 대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입니다. 초콜릿 과자를 먹는 드리스를 보고 필립도 자신에게 과자를 달라고 합니다. 드리스는 주지 않겠다며, 먹고 싶으면 직접 빼앗아가라고 말하죠. 필립은 다시 달라고 하고, 드리스는 싫다고 합니다. 이 대치상황을 지켜보는 저는 조마조마합니다. 필립은 어떤 기분일까, 드리스는 왜 안 주는 걸까. 필립은 지금 화를 참고 있는 게 분명해!

두 개의 신체가 부딪쳐서 무언가를 같이한다는 것. 그건 둘 중의 하나는 죽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S는 손발을 못 쓰니 쉴새없이 말을 한다. 이거 해줘, 저거 해줘……이런 말이 나중에는 편하게 말한다는 게 이거 해, 저거 해……이렇게 된다. 암만 돈 받고 일하는 거라지만 나는 계속 듣고만 있어야 하고 누군가 끊임없이 나에게 명령과 요구를 하는 상황이 처음에 몹시 힘들었다. (『활보 활보』, 23쪽)


저는 이게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리스는 필립에게 너~무 천사 같고, 필립이 원하는 걸 알아서 척척 해줍니다. 어떤 갈등도 없는 관계, 사실 그런 건 없을 테니까요. 영화 속 필립이 예전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일정부분 받아들이면서도, 사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면 필립은 드리스가 자신을 일반인(비장애인)처럼 대하는 점이 좋다고 말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필립이 싫어하는 다른 활보들은 하얀 가운을 입고 마치 의사가 환자를 대하듯 필립을 관리하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한편으로 이 모습은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합니다. 자칫하면 “비장애인과 똑같이 대하는 것이 차별하지 않는 행동이다”로 읽힐 수 있다는 거죠. 분명히 다른 신체이고,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대할 것인가. 만약 제가 드리스였다면 필립을 어떻게 대했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을 때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백인 부자 필립, 가난한 흑인 드리스. 이러한 시선으로 접근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선택지가 두 가지 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 극단적이지만, 여하튼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두 가지 사이 어딘가일 것입니다. 누군가의 손발처럼 움직여야 하지만, 그 사람은 환자가 아니라는 것. 그런데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케어 아니고 활동보조예요!” 케어와 활동보조의 차이. 제이는 ‘케어’라는 말에 왜 그렇게 발끈했을까. 자신을 환자 취급하는 것이 왜 그렇게 기분이 나빴을까. 자신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의존적인 존재로 보이는 게 제이는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아니다, 나는 내 힘으로 움직인다. 제이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그것일 것이다. 자신이 엄연히 자율적인 존재라는 것. ‘다른’ 신체 조건을 ‘결핍’으로 보지 말라는 것. (같은 책, 141쪽)


영화를 보기 전에는 영화를 소개하는 글을 써야지, 라고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복잡한 심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영화의 결말을 저는 이렇게 상상했거든요. 부자인 필립이 죽으면서 유산을 모두 드리스에게 남기고, 드리스는 잘 살게 되었다, 뭐 이런 문구가 엔딩에 나오겠지. 그런데 저의 이런 상상은 시원~하게 깨졌습니다. 하지만 유치한 상상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드리스가 필립에게 유산을 상속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궁금한 건 장애인을 환자 취급하면 왜 기분이 나쁠까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나는 화병 환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뭘 해도 화가 난다. 기뻐도 화가 나고, 슬퍼도 화가 나고, 뭘 해도 화가 난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화가 나는 내 앞에서 “난 환자가 아니야”라고 외치는 제이한테 어쩐지 난 조금 무시당하는 기분이다. … 하지만 생각해 보니 내가 매사에 화를 내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나는 모든 일에, 모든 사람들한테 화를 내면서 살아왔다. 그렇다면 나의 이 화병은 병원에서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라 그냥 나의 존재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 ‘마음의 장애’가 아닐까? (같은 책, 144쪽)


장애란 무엇일까요? 필립처럼 전신마비로 몸을 쓸 수 없는 상황? 혹은 드리스처럼 찢어지게 가난한 상황? 혹은 늘 화가 나 있는 상황?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쏟고 늘 스스로가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 이것 역시 ‘마음의 장애’가 아닐는지요.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모두 하나 이상의 장애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일을 하면서 나는 참으로 부끄러웠다. 이 사회 시스템에서 사십 년 넘게 살아 오면서 한 번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커다란 마음의 장애가 아니겠는가." (『활보 활보』, 8쪽)


헉! 너무 쉽게 결론으로 와버린 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이렇게 오고 나니 마음은 조금 편해졌습니다. 문득 저 역시도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못(안) 듣는 장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찾아보면 더 있을 것입니다;; 쿨럭;;) 누구는 장애인이고, 누구는 비장애인이고… 하는 구분이 아니라 각기 다른 장애가 있을 뿐이라는 것. 이것을 아는 것이 관계의 출발점이라는 것. 이 한 마디를 위해, 이렇게 길게 써내려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이 이야기들이 책 속에서 획득한 말로만 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활보 활보 - 10점
정경미 지음/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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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호연 2013.04.19 08:14 답글 | 수정/삭제 | ADDR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킬링 타임용으로 봤었는데 유쾌하지만 진중한 주제 의식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에 대해서 저런 주제로 토론할 날은 무척이나 요원해 보입니다...

    • 북드라망 2013.04.21 23:14 신고 수정/삭제

      어려운 문제지만 유쾌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모든 문제를 푸는 기본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자주 뵐게요^^